이드 2부 –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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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난리가 났다.
폭탄 해제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기를 조작하면 끝이다.
하지만 일단은 폭탄의 스위치가 눌렸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고, 라미아를 통해서 수십 배 뻥튀기된 폭탄의 이야기를 들었던 일리나의 호들갑에 이드도 덩달아 당황하고 다급해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 이거 해제 절차가 어떻게 되더라?”
한 학기를 놀고 시험지를 받았을 때의 심정이 이럴까? 이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생각해 보면 이드가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폭탄 전문가가 아닌 이상 폭발물의 해제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사실 이 폭탄도 이드가 일부러 준비한 게 아니라 몬스터를 상대하는 작전 중에 우연히 손에 들어온 물건이었다.
몬스터가 쓸고 지나간 곳을 수복하던 중에 쑥대밭이 된 군사시설에서 찾은 폭탄이었다. 총은 몇 번 만져 보고 쏴 봤지만, 이런 대형의 폭탄은 영화에서만 봤지 직접 눈앞에서 본 것은 이드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신기한 마음과 호기심에 눈을 반짝인 이드는 보고하면서 그중 하나를 빼먹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자리에 있는 폭탄이 바로 그 실수의 결과물이다.
처음 폭탄을 가져왔을 때 이드도 쉴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져 보고 두드려 보고 열어 봤다. 폭탄에 붙어 있던 설명서가 있어서 살피는 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원래 군대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단순하고 복잡함을 거부하는 때문이었다.
“맞다! 설명서! 설명서가 있었어.”
위기 상황이 닥치면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사람이 있고 공회전만 하다가 퍼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전자에 속하는 이드는 재빠르게 처음 폭탄을 손에 쥐고 흐뭇해하던 때를 떠올리고 드럼통의 주변을 살폈다.
“왜 없어? 분명 설명서가 같이 있었는데!!”
“꺄악! 뭐예요, 이제 터지는 거예요? 이제 이 주변 100km가 죽음의 땅이 되는 건가요? 아니, 이럴 때가 아니에요. 이드,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요!”
“아니, 이 폭탄은 그 폭탄이 아니에요.”
이드는 다급한 중에도 그건 꼭 대답해 주고 싶었다.
‘그 폭탄이라면 우리가 찾고 있는 카린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거야.”
진짜 사람을 찾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라미아는 그녀에게 무슨 폭탄을 이야기한 것일까. 그 폭탄은 쓰라고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 맞다. 라미아!”
라미아를 떠올린 이드는 그녀의 아공간이 생각났다. 이드는 급히 라미아를 잡아 그녀의 아공간을 뒤져 설명서를 찾을 수 있었다. 아공간에 수납할 때 따로 넣어 둔 모양이었다.
폭탄은 폭발 3초를 남겨 두고 해제되었다.
“휴유유~”
이드는 땀 한 점 없이 반들반들한 이마를 훔치고, 그 옆으로 일리나가 기대앉았다.
옆에서 그 호들갑을 지켜보고 있던 쉴라는 조용히 숨소리를 죽였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 같기는 한데.’
자신도 이드가 내어 놓은 물건을 여기저기 만지다가 뭔가를 눌렀고, 작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드들이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 것으로 보아 보통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뭐, 일단 해결은 된 것 같지만…?
쉴라는 이 상황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사과를 하고 싶어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사과를 할 것 아닌가. 자신의 사과는 일반인의 사과와 달랐다. 은색 기사단장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든 쉴라였지만 막상 자신을 노려보는 이드와 시선을 마주치자 생각과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제가 뭔가 실수한 것 같은데, 사과할 수 있도록 상황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그녀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에휴…괜찮습니다. 말리지 않은 제 탓이 크니까요.”
이드는 쉴라의 솔직한 말에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호기심에 폭탄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지 않은 자신의 탓이었다.
“하지만 방금 모습을 봐서는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쉴라는 엉뚱한 곳에서 고집이 강했다. 이드는 몇 번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오히려 일의 전후를 파악하고 꼭 사과를 해야겠다는 듯 물어 왔다.
결국 라미아가 나섰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 드럼통에 파이어볼 스크롤 백 장이 들어 있어요. 쉴라 경은 방금 그 스크롤들을 한 번에 발동시킬 뻔하셨고요.]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런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꺼내 놓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잠시 파이어볼 수백 개의 위력을 예측하던 쉴라가 놀라서 소리쳤다. 바람처럼 폭탄에서 십 미터가량 떨어진 것은 덤이다.
이드는 시원하게 뒷북을 치는 쉴라를 보며 밍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위험한 물건이니까 지금 쓰려는 거죠. 저 안에 먹거리라도 들었으면 이 시점에 왜 꺼내겠어요?”
“…..”
틀리지 않은 말에 쉴라가 침묵했다.
“그럼 설마 이 폭탄이란 물건을 저 건물 안에 던지겠다는 말입니까?”
“밖에서 터트려 봤자 입구만 막히지 크게 효과가 없을 테니까 그래야겠죠? 아마 효과가 좋을 거예요!”
이드는 든든하다는 듯 드럼통을 툭툭 두드리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파이어볼 백 개의 위력이라면 확실히 효과는 좋겠지요.”
파이어볼 하나면 작은 통나무집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위력이다. 한 번에 백 개면 작은 성도 돌무덤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데 그 위력이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무너질 수도 있어요.”
구해야 할 사람이 있는 건물이 무너지면 그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다.
“그럴 염려는 없습니다. 딱 보기에도 품질 좋은 단단한 돌처럼 보이지 않아요? 무엇보다 이 폭탄은 단순히 폭발력이 강한 물건이 아니거든요. 라미아가 예로 들었던 것은 이 물건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인 거죠.”
이드의 덤덤한 설명에 쉴라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방금 전 만져 봐서 그냥 튼튼한 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던 드럼통에서 냉기가 뿜어지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 폭탄이란 물건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런데 카린이란 기사분이 진짜 저 안에 있을까요?”
묘한 긴장감을 풀어내며 일리나가 끼어들었다.
“… …”
이드와 쉴라의 시선이 마주치며 묘한 침묵을 만들었다.
우선 이드가 부정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확신할 수는 없죠.”
“그러나 이 협곡은 입구에서 이곳까지 거의 외길입니다. 따로 숨을 곳도 없지요. 외부에 있지 않다면 저 안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었다면 진작에 연락을 취했을 카린은 아직 연락이 없다.
그래서 위험이 있더라도 생각이 있다는 이드의 말에 쉴라가 귀를 기울인 것이다.
몬스터와 인간을 합성하는 미치광이 마법사들의 소굴이다. 만약 그 속에 카린이 있다면, 그리고 살아 있다면 도대체 지금 어떤 끔찍한 일을 겪고 있을까. 그런 생각만 하면 애써 누르고 있는 살기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일단 충분히 쉬고 재정비를 한 후 전격적으로 움직이도록 하죠. 처음은 이 녀석의 도움을 받아도,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곳을 뒤지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요. 덤으로 우리를 기다라고 있을 녀석들도 좀 고생을 하고요. 라미아, 우릴 지켜보는 장치는 없지?”
[없어요. 마법 결계가 발동되면서 저희 위치는 확인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희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어요.]
라미아의 확답까지 받은 이드는 그대로 자리를 깔고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있을 전투를 기념하면서 짜릿하게 한잔해요.”
“술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쉴라가 사양하자 일리나가 기쁜 얼굴로 잔을 내밀어 음료를 받으며 말했다.
“마셔 보세요. 술이 아니에요. 톡 쏘는 식감이 재미있죠. 특히 달콤해서 아주 좋아요.”
일리나의 적극적인 추천에 쉴라는 슬쩍 한 모금을 마시고는 살그머니 귓불을 붉히며 맛을 인정했다.
이드들은 전투 직전의 여유를 충분히 즐겼다.
더구나 절벽 안에 기다리고 있을 적이 튀어나오지 않고 경계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자리를 옮겨 가며 쉬었다.
덕분에 안에서 기다리던 마법사들과 전사들은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입구만 노려보고 있어야 했다. 저려 오는 다리만큼 그들의 적의도 높아만 갔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요.”
안에서 일어나는 간절한 마음이 닿았는지 이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음료수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겨우 소화를 시킨 일리나와 쉴라가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음료수 한 박스는 비운 것 같았다. 폭탄과 달리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와서 다행이었다.
이드는 드럼통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당당히 건물 입구로 다가갔다.
“알 카즈네 신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거기가 생각나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사진으로만 봐서 바로 생각나지 않았네요.]
“알 카즈네가 뭐예요?”
일리나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이드와 라미아와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지구의 요르단이란 곳에 있는 고대 도시 유적 안의 신전인데, 이곳처럼 협곡의 돌을 파고 깎아서 만든 신전이에요.”
[제가 뒤에 사진으로 보여 줄게요.]
세 사람이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 앞에 선 쉴라가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긴장할 때입니다. 문을 열겠습니다.”
“쉴라 경. 잠시만.”
이드가 거대한 문짝 위에 손을 올린 쉴라를 멈추고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 손에는 일라이져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문을 열면 시선이 너무 몰리죠. 그리고 다시 닫으면 바로 튀어나올 수도 있어요.”
이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에 드럼통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둥글게 오려 낸 원판의 중앙에 손가락을 박아 넣어 손에 쥐고 당겼다.
그르륵.
돌이 갈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원형의 석판이 떨어지고 그 속이 드러났다.
햇살이 쨍쨍한 바깥보다는 어두웠지만 문 안도 캄캄하지는 않았다. 마법으로 만들어 놓은 빛이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오십 미터 들어간 곳에 있는 삼 층 높이의 너른 공간에 11마리의 트롤과 통일된 복장의 전사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 2층과 3층의 난간으로 보이는 곳에는 한눈에 직업을 알 수 있는 마법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순간 이드와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로 마주쳤다.
멀뚱멀뚱.
잠시 뜻 모를 시선이 오고간 후 이드가 손을 들고는 흔들었다.
“……안녕?”
“…..이런 XX 새끼가………….”
워낙에 어이없어서일까, 반응이 조금 늦었다. 욕설이 튀어나오는 순간 이드는 얼굴을 치웠고, 그 사이로 뒤에서 달려온 쉴라가 폭탄을 던져 넣었다. 날아가는 폭탄의 위에 달린 시계에 보이는 타이머는 막 3에서 2로 바뀌고 있었다.
이드는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잘라낸 석판으로 다시 문을 막았다.
그리고 귀를 막고 외쳤다.
“폭발합니다. 안에 있는 분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