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08화
골목의 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신음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런 일이 많았던 리오였다. 그는 솔직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천성이 기사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리오는 소리가 난 쪽으로 소리 없이 다가가 보았다. 리오는 머리를 살짝 내밀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한 중년의 사나이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의 여성에게 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주점에서 만났던 여성이었다.
“이런… 그러니 적당히 좀 마실 것이지….”
그녀의 얼굴을 더듬던 사나이의 떨리는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어느덧 그녀의 가슴 쪽에 머물러 있었다.
“아앗….”
그녀의 입에서 소리가 나자 사나이는 급히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으며 일(?)을 계속 진행해 나갔다.
“흐흐흐… 조금만 더… 어억!”
중년의 사나이의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그녀에게서 차츰 멀어져 갔다. 그의 몸이 무엇인가에 붙들려 허공에 떠 있었다. 그는 슬쩍 뒤를 돌아다 보았다. 붉은 장발의 낯선 사나이가 그를 한심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사나이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리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시오…?”
리오는 그리 안녕하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사나이에게 물었다.
“당신, 가족이 있소?”
그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그 사나이를 반대편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따뜻한 집에 돌아가 편히 쉬시오. 그러는 게 천국에 가는 지름길일 거요.”
사나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리오는 한숨을 쉬며 술에 취해 추행당하는 것도 느끼지 못했던 그녀를 바라보았다.
“후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그냥 슬럼가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리오는 그녀를 일으켜 어깨에 멘 채 여관으로 계속 향했다. 물론 음란한 성격의 리오는 아니었다. 여관의 주인 아주머니가 이상하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리오는 개의치 않고 그녀와 함께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침대에 눕힌 리오는 다시 한번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후우… 데리고 오긴 했지만 어쩌지? 목욕을 시켜야 하나…?”
하지만 그 정도의 용기가 있는 리오는 아니었다. 리오는 조용히 쪽지를 적고 이불을 그녀에게 덮어준 후 의자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자본 게 언제냐… 쳇.”
리오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의자에 깊숙이 눌러앉아 잠을 청했다. 가이라스 왕국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살짝 빠져나온 리오였다. 지크에게만 나중에 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했고 그 이외엔 도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마도 세레나는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리오는 예상하고 있었다. 리카와 클루토, 머셀도 아마 같을 것이다. 슈렌은 잠시 들린 처지여서 바로 다른 공간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떠난 사람이어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였다.
“흐음… 태라트님은 바로 왕국으로 떠난다고 하셨고… 지크가 따라갔으니 염려는 없겠지. 위험한 상황이면 할아범이 알아서 할 거고….”
리오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제국에 밀항한 후 계속 잠만 자는 그였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라고는 하기 약간 어렵지만 희미한 빛이 아침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웅….”
리오의 침대에서 대신 자고 있던 수수께끼의 여성은 머리를 만지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리오가 의자에 푹 눌러앉아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검을 빼어든 그녀는 리오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
아무 말 없이 그녀는 리오의 목에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눈에 탁자 위에 놓여진 조그마한 쪽지가 들어왔다. 그녀는 단검을 거두고 그 쪽지를 들어서 읽어보았다.
「잘 잤나? 네가 일어났을 때면 난 의자에서 자고 있겠지. 여자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 어떻게 하나, 어쨌든 만취하고 일어났을 때는 목욕이 좋다는 말을 들었어. 여관방에 있는 목욕실에서 목욕이나 하시지. 목욕한 후에 그 너덜너덜한 옷은 버리고 탁자 밑에 있는 새 옷을 입어, 사이즈가 맞을지 모르겠군. 마지막으로 그냥 나가도 아무 말을 안 하지. 뭐 인사 정도야 받아줄 수 있지만 말이야.
-리오 스나이퍼.」
그녀는 다 읽은 후 쪽지를 박박 찢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단검을 빼어들고 리오에게 향했다. 그때, 리오가 몸을 뒤척이며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웅… 목욕하고 옷이나 갈아입어… 난 스테이크가 아니라구…. 푸우….”
마치 잠꼬대처럼 들리는 리오의 말을 듣고 그녀는 황급히 검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탁자 밑에 있는 여성용 옷이 들어왔다. 자신의 긴 금발을 가져다가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후우….”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나서 천천히 자신의 옷을 벗었다. 흰색의 살결이 방 안을 환히 비추는 듯했다. 옷을 모두 벗은 그녀는 욕실로 향했다.
리오는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실눈을 뜨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죽여주는군….”
리오는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방안에 들어올 때도 그녀는 나체일 것이 분명하니까…. 절제성이 있어야만 하는 가즈 나이트의 특성 중 하나였다.
목욕을 마치고 타월을 몸에 두른 채 방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서 다른 쪽지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리오의 방을 빠져나갔다.
한 시간 후쯤, 리오가 일어서서 쪽지를 바라보았을 때 리오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맙소, 리오 스나이퍼 씨. 내 이름은 크리스라고 합니다. 도시의 공원 분수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소. 그럼 이만….」
“푸훗! 남자인가, 여자 말투가 왜 이러지…?”
필체도 마치 남자와 같았다. 리오는 계속 웃으며 방을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리오는 여관비를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갔다. 그때 주인이 빙긋이 웃으며 리오에게 한 처음의 인사는 이것이었다.
“밤새 즐거우셨습니까?”
리오는 피식 웃으며 계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관을 천천히 나섰다. 길거리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국도 많이 찍혀 있었다. 리오는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의 분수대엔 글에 적힌 대로 크리스가 앉아 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음… 그건 그렇고 저 아가씨가 왜 날 보자고 한 거지?’
리오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오를 본 크리스는 인사를 하며 손을 이리저리 교차했다. 리오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 아니. 말을 하세요 크리스 씨.”
크리스는 리오의 말을 듣고서 남자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갈 정도였다. 크리스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손을 이리저리 교차했다. 리오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차 하며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아차…! 이거 정말 실례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지요…?”
크리스는 손을 이리저리 교차하며 괜찮다는 수화를 해 보였다. 그러나 리오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으음… 실례가 많군요…. 그건 그렇고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크리스는 조용히 생각하다가 다시 수화를 통해 자신을 수도로 데리고 가달라는 뜻을 리오에게 전하였다. 리오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머리를 긁었다.
“아, 저… 그건….”
크리스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손을 이리저리 교차했다. 리오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그것은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그리고 전 어젯밤에 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정말이에요.”
크리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뜻을 리오에게 비쳤다. 리오는 우물쭈물하다가 그녀에게 수도로 가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의 수화에 따르면 그녀의 친척이 제국 수도에 있어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혼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후우… 이런이런. 제 여행은 위험하다고요, 그런데…!”
크리스는 리오의 옆에 바싹 붙으며 그와 팔짱을 꼈다. 리오는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녀를 제국까지 데려다주기로 하였다. 그의 약점 중 고치지 못한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여자에 약하다는 것….
그때, 공원의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는 흠칫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메탈자켓 여섯 대가 사방의 거리를 포위한 채 리오에게 포신을 겨누고 있었다. 제일 앞에 있는 메탈자켓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라 불법 무기 소지자! 넌 완전히 포위되었으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20초의 여유를 주겠다!!」
리오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크리스에게 물었다.
“아, 아니. 검이 이곳에서는 불법 무기란 말이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메탈자켓들을 바라보았다. 전에 가이라스 성문에서 보았던 메탈자켓과는 형태가 달랐다. 그것보다 약간 작다고나 할까? 하지만 메탈자켓은 메탈자켓이었다. 양 어깨에 달린 포구에서 엘리마이트 빔이 쏘아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공원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그 포위망 안에 있는 사람은 리오와 크리스뿐이었다. 리오는 손목을 천천히 풀며 메탈자켓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좋아, 박살을 내주지. 크리스는 제 옆에 꼭 붙어있어요, 알았죠?”
크리스는 리오의 곁에 꼭 붙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천천히 디바이너를 뽑아들었다.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메탈자켓부터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이제 사람이 아니라 이 녀석들과의 싸움이군, 후훗….”
리오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메탈자켓에게 수화를 하며 도발하기 시작했다. 메탈자켓 안에 내장된 수화 판독기가 써낸 글을 읽은 탑승자는 분노에 20초를 참지 못하고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다. 판독기가 화면에 출력한 글은 다음과 같았다.
<···Are you ready? Ha ha ha… >
메탈자켓 대대의 대장이 전 대원에게 발사 명령을 내렸다.
“없애버려! 같이 있는 여자도 상관하지 말고 쏴라! 사고라고 얼버무리면 돼!!”
여섯 대의 어깨에 부착되어있는 엘리마이트 포구에서 흰색의 광선이 리오와 크리스를 향해 뿜어졌다.
“하아아아앗!!”
리오는 자신의 반탄력을 증가시켜 엘리마이트 빔을 모조리 튕겨낸 후 디바이너로 땅을 후려쳤다.
“가랏! 지뢰 자르기!!!”
칼날과 같은 충격파가 땅을 타고서 리오의 앞에 있는 메탈자켓 두 대를 향했다. 메탈자켓의 기동성으로 그 충격파를 피한다는 건 무리였다. 충격파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메탈자켓 두 대는 조종사가 탈출하자마자 폭염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자신의 정면을 막고 있는 메탈자켓이 사라지자 리오는 크리스에게 소리쳤다.
“자, 달려요 크리스! 어서!!”
그러나 크리스는 치마를 입고 있어서 그리 빨리 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리오는 어젯밤에 애꾸눈을 후려치던 기세의 여자치고는 못 달린다고 생각했다.
리오가 거의 공원의 출구에 다다랐을 때 크리스는 리오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리오는 우물쭈물하면서 크리스를 계속 기다렸다. 그녀의 뒤로 메탈자켓 네 대가 눈을 흩날리며 굉장한 속도로 둘을 뒤쫓고 있었다.
“꺄아악!”
급한 상황인데 그만 크리스가 넘어지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크리스는 메탈자켓들에게 포위되었고 리오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자! 동료를 놔두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어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엘리마이트 빔을 이 여자의 얼굴에 쏴버릴 것이다!」
리오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메탈자켓의 기계 손에 붙들려 발버둥 치는 크리스의 모습을 보고 결국 디바이너를 땅에 꽂고서 손을 올린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