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33화
병원의 1층을 점거한 제국군들은 흥분해 소리치는 병원 원장의 입을 강제로 닫은 후에 차례차례 병실 문을 열어 젖히며 사람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워낙 조용히 처리하였기 때문에 다른 층의 사람들은 알고 있지 못하였을 정도였다.
“1층엔 없습니다 대령님.”
한 병사의 보고를 받은 대령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2층으로 병사들을 올려 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옆에서 수배장을 들고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신고는 확실한 건가?”
“예, 세 사람이 동시에 신고했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봅니다.”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래층에서 보았던 병원의 시설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 이 도시의 시장에게 병원 시설을 보완하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군, 저렇게 손으로 처리하다간 생사람도 잡겠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대령은 다시 굳은 표정을 지으며 2층으로 올라섰다.
파악!
“아이고!”
복도를 달리던 도중에 2층으로 올라오던 대령과 충돌한 클루토는 자신의 모자를 집으면서 약간 비틀거린 대령에게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령은 자신의 베레모를 고쳐 쓰며 옷을 툭툭 털었다. 클루토는 보지도 않는 그였다. 클루토는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옆의 부관이 들고 있는 수배장을 보고서 새하얗게 질려 그만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말았다. 부관은 그가 그런 행동을 취하자 이상한 눈초리로 잠시 바라보았으나 대령의 명으로 클루토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클루토는 황급히 일행이 있는 3층으로 뛰어 올라가며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하필이면 이럴 때에…!!”
마법 주문을 익히고 있는 자신이라도 총과 메탈재킷은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둘 다 인간에게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병기였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은 상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했다. 여기까지 온 것도 거의 지크의 덕택이었지만 지금은 그도 잠깐 사라진 상태였다.
병실의 문을 연 클루토는 몸을 일으켜 세운 채 책을 읽고 있는 세레나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큰일이에요 큰일! 제국군이 이 병원에 들이닥쳤다고요! 어서 피해야 해요!”
세레나의 표정도 하얗게 굳어졌고, 잠을 자고 있던 리카와 프시케도 흠칫 놀라며 깨어났다.
“진짜야 클루토? 제국군이 와 있다고!?”
클루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예, 프시케 누나와 지크가 수배되었나 봐요. 수배장도 들고 있더라고요.”
일행은 서둘러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얼마나 걸렸을까… 세레나와 리카는 아직 머리가 아픈 듯 비틀거리며 병실을 나섰고, 프시케와 클루토는 그들을 부축하며 천천히 건물 양쪽에 있는 비상 계단으로 향했다. 그들이 계단에 거의 다다랐을 때, 뒤에서 군홧소리가 들려왔다.
“엇, 거기 계단 쪽!”
클루토의 정신이 그만큼 집중된 적은 이번이 처음일지 모른다. 알고는 있었지만 사용은 거의 안 하던 고난도의 광 계열 마법을 돌아봄과 동시에 군인들에게 뿜어냈던 것이었다.
“6급 주문, <라이트 스플라슈>!!”
수십 개의 광탄들이 무방비 상태의 군인들에게 날아 꽂혔고, 그와 동시에 클루토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어서 내려가요! 뒤는 내가 맡을 테니까!! 리카 너도!”
리카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올라오는 병사들을 돌아보는 클루토의 뒷모습이 리오와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클루토…?”
세레나는 클루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리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클루토를 실망 시켜선 안 되겠지? 저 아인 꼭 올 거야, 리오처럼….”
리카는 다시 한번 클루토를 돌아본 후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클루토는 양손에 마법력을 가득 모으고 홀로 남아 중얼거렸다.
“더 이상 리오나 지크에게 의지할 순 없어…! 꼭 내 손으로 당신들을 지켜줄 거야!!”
달려오는 병사들에게 다시 한번 라이트 스플라슈가 터져 나왔고, 병원 3층의 복도는 광탄의 효과로 전체가 번뜩였다. 그리고, 총성도….
“…!”
마차를 타고 가던 한 귀공자가 언덕 위에 위치한 병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집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펠, 잠깐 저 병원으로 마차를 돌려주겠나?”
집사는 자신의 주인이 병원에 가자는 말에 약간 놀라는 기색을 보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차부에게 병원으로 마차를 돌리라는 말을 전했다.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
세레나 일행이 1층에 내려와 뒷문을 열었을 때,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행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섯 대의 메탈재킷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젠…! 어쩔 수 없군요, 프시케 씨는 제가 저들을 막을 동안에 리카를 데리고 빠져나가세요, 지크 씨가 분명 당신들을 찾아줄 테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고요. 알았죠?”
프시케는 고개를 흔들며 그럴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안 돼요! 언니마저 여기에 남는다면 전 괴로워서 어찌할 수 없을 거예요! 꼭 같이 갈 거예요!!”
프시케가 그렇게 나오자, 옆에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리카도 나섰다.
“맞아요! 그리고 세레나 언니는 리오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만약에, 리오가 이 근처에 있다면 우리에게 꼭 와줄 거예요, 그때까지 저도 싸울 거예요!”
셋이 이러고 있을 동안, 메탈재킷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중에 파란색의 머리를 가진 여자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 여자만 우리에게 넘겨준다면 너희들은 보내주마! 2분의 여유를 준다, 그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엘리마이트 빔으로 모두 박살낼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프시케는 일행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본 프시케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감격한 듯 눈물을 흘렸다.
“… 절 이렇게까지 생각해준 사람들은 당신들 밖에 없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전 가볼게요. 절 생각해준 사람들을 더 괴롭힐 마음은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세레나는 깜짝 놀라며 나가려는 그녀를 말렸다.
“무슨 소리에요! 이대로 그냥 가버린다면 위에서 싸우고 있는 클루토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요! 우리들은 걱정하지 말고…!!”
그러나, 프시케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지크 씨에게 전해주세요. 즐거웠다고요….”
그녀가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것을 확인한 대령은 무전기를 들어 상부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약속대로 보내주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병원의 사람들까지 모조리 없애란 말입니까!! … 알겠습니다. 명령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대령은 무전을 끊고 기기를 발로 후려치며 부관에게 명했다.
“… 자네도 들었겠지? 알아서 하게나… 젠장!!”
대령은 분노에 몸을 떨며 선글라스를 조용히 꼈다. 표정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부관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곧이어, 프시케를 잡았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부관은 메탈재킷 부대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전원은 엘리마이트 빔을 충전시켜라. 목표는 여자의 일행이 있는 병원이다.”
군인들에게 잡힌 프시케는 그리 난폭하지 않게 수갑이 채워졌고, 그 상태로 그녀는 뒷열의 대령에게로 보내졌다. 프시케는 조용히 그에게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약속은 지키겠죠?”
그러나 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시케는 그의 괴로운 듯 찡그려진 이마살을 보고서 그에게 달려들어 소리쳤다.
“말을 하세요! 저들에겐 아무 짓도 안 할 거죠!!”
대령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변명은 하지 않겠소…. 저주하려면 황제 폐하 말고 나를 저주하시오….”
프시케는 울분을 터뜨리며 대령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대령은 그녀를 말리려는 병사들에게 손을 들어 그녀를 놔두라고 했다.
“지크 씨가 당신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리카와 세레나는 변하게 될 지크의 얼굴을 상상도 하기 싫은 듯,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했다. 생각보다 여린 마음을 가진 지크였기에 더욱 그럴 것이 분명했다.
“어쩌죠… 지크가 프시케 언니를 이만저만 생각하는 게 아니었는데….”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뭐라 할 자신이 없구나. 으응? 근데 저들이 왜 가만히 있는 거지?”
그녀가 메탈재킷을 보았을 때, 그들의 어깨에 장치되어 있는 엘리마이트 캐넌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둘은 순간 얼어붙는 듯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둘이 꼼짝도 못 하고 있을 때, 뒤의 계단에서 누군가가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루토였다.
“어떻게 됐어요! 그리고 프시케 누나는!?”
클루토는 그들의 얼굴 표정과 대충의 상황을 살펴보고 나서 치를 떨었다.
“이 자식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클루토는 양손으로 거대한 호선을 그리며 전방의 메탈재킷들을 쏘아보았다. 세레나와 리카는 지금까지완 다른 클루토의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물러서요! 휘말리면 위험한 대주문이니까요!!”
메탈재킷의 탑승자들은 병원 내부에서 감지된 거대한 마력에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의 머신건을 수동으로 바꾸었다. 아직 엘리마이트 광선이 충전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클루토의 앞에서 빛을 발하던 거대한 마법진에 걸맞은 빛의 기둥이 메탈재킷 한 대를 노리고 굉음을 발하며 뿜어졌다.
“4급 주문! <코메트>!!”
머신건의 탄환과 대광선이 교차했고, 코메트를 맞은 메탈재킷은 빛에 의해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져갔다. 그러나….
“크아앗!!”
교차된 탄환에 명중된 클루토는 피를 뿜으며 앞으로 쓰러졌고, 그 모습을 본 리카와 세레나는 사색이 되어 클루토에게 달려들었다. 나머지 메탈재킷 탑승자들은 엘리마이트 빔 게이지가 충전된 것을 확인하고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다.
“안 돼, 클루토…! 안 돼!!!”
클루토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프시케는 절규했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푸른색의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근처에 있는 군인들은 모두 놀라 그녀에게서 떨어졌고, 그녀의 손을 묶고 있던 수갑도 산산조각이 나며 땅에 떨어졌다.
“캬아아아앗!!”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군인들의 귀에 울려 퍼졌고, 군인들은 곧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을 자신들의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