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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37화


8장 [난투]

프시케가 사라진 지 이틀이 되는 날, 일행은 결국 그녀를 찾지 못하고 이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리오와 지크가 나가서 직접 찾아다녔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리오와 지크는 짐을 지고서 여관을 나섰다. 다른 일행은 이미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지크, 괜찮냐?”

괜찮냐는 리오의 질문에 지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냐니, 뭐가?”

리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밖에 나가자 오랫만에 밝은 햇살이 그들의 시야를 밝혔다. 지크는 손으로 눈 위에 그늘을 만든 후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와우, 오랫만에 맑은 하늘을 보는데? 이곳은 언제나 구름이 끼어 있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말이야.”

리오도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맑은 하늘을 보는 건 오랫만이야. 그건 그렇고 슈렌은 잘 되어가는 걸까?”

“당연하지. 그 ‘완벽 지상주의자’가 설마 실패를 하겠어? 걱정 말고 우리 일이나 잘 하자구.”

여관의 밖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는 여섯 명의 일행들은 각자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리오와 지크는 그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많다….’

그들에겐 일행이 적당히 있는 것도 심심하지 않아서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많은 것은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있으라 할 수도 없는 것이라서 둘은 고민이 컸다.

“자, 모두들 준비가 끝났으면 출발하자구. 지체하면 할수록 제국군에게 들킬 염려가 있으니까 말이야.”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리오가 맨 앞에서 인솔하고 있었고, 지크가 뒤에서 일행을 받쳐주고 있었다. 적어도 기습을 당할 염려는 없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정문을 바라본 리오의 표정은 약간 굳어졌다. 들어올 때는 없었던 제국군의 검문 검색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고 메탈재킷 몇 대와 제국군 2개 중대도 있었다.

“이런… 이걸 생각 못했다니 원…!”

꽤나 심각한 문제여서 그는 일행을 모아놓고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잘 됐다는 표정으로 싸우자는 의견을 내었고, 세레나는 웬만하면 피해가자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나, 조금 후에 어쩔 수 없이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한 노인이 리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정문으로 달려가 제국군에게 보고를 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은 중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른 문에 있는 메탈재킷 부대에게 지원 요청을 하고 중대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의논을 하던 일행은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흠칫 놀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근처에 있던 주민들은 모조리 어디론가 피했고, 남은 것은 문 쪽에서 달려오는 제국군과 여덟 명의 리오 일행이었다.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디바이너에 손을 가져갔다.

“이런… 회의 끝이군.”

일행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고 마법력을 끌어올리며 전투에 대비했다. 지크는 장갑을 살짝 죄면서 몸의 기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아, 크리스는 괜찮겠어요?”

검을 사용하던 크리스여서 전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리오였지만 크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괜히 오마 장군이었는 줄 알아요? 걱정 말아요.”

리오는 씨익 웃으며 자신들을 향해 총을 조준하고 있는 제국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좋아, 저 장난감부터 처리해 볼까나? 후방을 맡아줘 모두들, 가자 지크!!”

리오의 신호를 시작으로 둘은 제국군 병사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둘의 그런 모습을 본 병사들은 이상한 녀석들이라 생각하며 라이플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한결같던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뒤바뀐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던 두 청년의 모습은 어느새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타아아아아앗!!!”

병사들이 있는 장소의 중앙에 리오가 검을 내리꽂자, 근처의 지면을 덮고 있던 블록들이 모조리 위로 튀어 올랐다. 블록에 얻어맞은 병사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블록에 맞지 않은 병사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장면에 잠시 동안 멍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정리한 것은 클루토와 메이린의 마법이었다.

“7급, <스파크>!!”

강렬한 전기적 충격이 병사들의 몸을 휘감았고, 마법에 의한 타격을 처음 받아본 병사들은 근육의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병사들을 처리한 리오는 지크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메탈재킷 하나를 부수고 다른 하나를 노리고 있었다. 맨주먹인 상태에서도 메탈재킷을 가지고 노는 지크였다. 게다가 지금은 무명도까지 들고 있으므로 그의 파괴력이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육백 칠이식, 일광!!!”

수십 개의 검광이 메탈재킷의 정면에서 번뜩였고, 곧바로 메탈재킷의 겉을 감싸고 있던 장갑판이 모두 허공에 떠올랐다. 조종석이 드러났고 탑승자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옆에 다가온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그의 얼굴을 한 방 갈긴 후 다른 메탈재킷에게 향했다. 메탈재킷의 탑승자들은 자동 조준 장치가 지크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자 짜증을 내며 기판을 후려쳤다.

“젠장! 뭔데 저렇게 빠른 거야!!”

자동 조준 장치의 약점을 알고 있는 지크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메탈재킷의 굵은 다리를 무명도로 말끔히 잘라나갔다. 다리가 잘린 메탈재킷들은 모두 허공이나 땅바닥을 바라보며 쓰러졌고, 그들은 곧바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의외로 간단한 약점이었다.

“좋아! 문은 내가 부순다!!”

리오는 기계장치로 굳게 닫힌, 철재의 두꺼운 외곽 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는 디바이너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자세를 낮춘 뒤에 몸 안의 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부숴버릴 생각인 듯했다. 그의 몸에서 푸른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간다! 지뢰 자르기!!!”

리오는 자신의 몸에 축적된 기를 단숨에 디바이너에 집중시켜 그대로 땅을 후려쳤다. 푸른색의 거대한 충격파가 어떠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것 같던 장철문을 향해 지면을 달렸고, 곧 굉음과 함께 강철문은 산산조각이 났다.

“좋아! 모두 이쪽으로!!”

일행이 부서진 문에 가까이 다가갔을 순간, 어디선가 형형색색의 엘리마이트 빔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세레나가 미리 걸어놨던 방호망에 충돌한 광선들은 폭발을 일으키며 방호망을 밀어내었고, 세레나는 몸에 약간 충격을 입은 듯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옆에서 나타난 메탈재킷에게 눈을 돌렸으나, 지크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뒤로 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저 녀석들은 내가 맡겠다. 넌 짐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

“뭐? 무슨 소리야, 너 혼자서만 저 녀석들과 싸우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엇?”

리오는 지크에게 타이르듯 말하다가 지크의 몸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온 살기에 흠칫 놀라며 말끝을 흐렸다.

“… 미안하다 리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맘이 편하질 않아…! 제발 먼저 가줘….”

리오는 잠시 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 빨리 와라.”

말을 마친 리오는 곧바로 일행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지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장갑을 죄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그리 보기가 쉽지 않은 그의 노기가 어린 표정이었다.

“오너라…!”

그의 몸에서 기전력이 강렬히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을 본 메탈재킷 20여 대의 탑승자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불안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생각도 잠깐, 중대장의 무전기 목소리가 다시금 그들을 전투에 내몰았다.

그사이, 지크는 무명도를 자신의 앞에 꽂아놓고 양손을 합장한 채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 자, 네 친구를 꺼내는 거다, 베이비!”

지크의 진언이 끝나자, 무명도에선 검푸른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고, 눈의 착각인지 무명도의 모습이 두 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두 개로 분열된 무명도는 허상이 아니었다. ‘진짜’ 두 개였다.

무명도를 양손에 거머쥔 지크는 눈을 감고서 천천히 자세를 낮추었다. 메탈재킷들은 충전된 엘리마이트 빔포를 지크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도류, 구백 오십식….”

순간, 지크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를 보고서 말끝을 흐렸다. 검은색의 큰 모자를 쓰고 있는 사나이….

“너, 너는!?”


리오와 일행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숲속이어서 일행은 지크도 기다릴 겸 잠시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저어… 클루토 씨….”

클루토 ‘씨’? 청력이 좋은 리오는 듣고서 살며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메이린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클루토는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는 귀여운 소녀를 보고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리카가 팔을 약간 긁힌 것 때문에 세레나에게 가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저, 저를 부르셨어요? 이, 이름이….”

여성 앞에선 잔인하다 생각될 정도로 약한 클루토였다. 어제 분명히 이 아이의 이름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내가 정말 밉다….’

“메이린이라고 해요, 아까 보니까 저보다 마법을 훨씬 빨리 하시던데요? 방법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클루토는 자신의 마법사 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건 제가 리오에게서 배운 전음 주문법이라는 건데요….”

그때, 리오가 지나가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전음 주문법은 위험하다구. 한 번에 엄청난 마법력이 소모되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나이 차이가 한 살인가 나는데 그런 말투를 쓰는 건 좀 그렇지 않니?”

메이린과 클루토는 그건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둘의 밝은 미소를 내려다본 리오 역시 미소를 지으며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아직 멀었나…?”

쿠우우웅!!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도시의 외곽 성벽이 터져 나가는 것을 보고 리오는 미소를 지웠다. 분명 메탈재킷 20여 대에게 쏟을 지크의 힘이 아니어서였다.

“… 설마!?”

리오는 다시 도시를 향해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그의 머릿속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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