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39화
일행은 공중에서 갑자기 후두둑 떨어진 10여 대의 메탈재킷을 보고 기겁을 하며 전투에 들어갔다. 확실히 리오나 지크가 없어서 불리하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약간의 자신이 있었다. 세레나는 정신을 집중한 후 5급의 방호망을 일행에게 걸어주었다. 클루토와 메이린 역시 마법력을 끌어올리며 공격을 준비했다. 히렌과 리카는 아무 할 일 없이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메이린! 5급 라이트닝의 더블 스펠을!”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렌의 손에 맞추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주문을 두 배로 늘려서 쓰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지만 두 사람이 한 가지 주문을 합쳐서 쓰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둘의 마법진이 교차하자, 4급의 뇌력 주문에 가까운 뇌격이 목표가 된 메탈재킷에게 뿜어져 나갔다.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세 대의 메탈재킷을 문제없이 재로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조, 좋아! 계속해서…!”
메탈재킷들은 예기치 못했던 강공에 잠시 주춤했으나 왼손에 장착된 매직 배리어를 꺼내어 들고 천천히 일행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어, 어쩌지…?”
크리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한번 벨벳 크로스를 꺼낸다면 리오가 없어도 저들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 옛날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 미안해요 리오!”
크리스는 결국 다시 한번 벨벳 크로스를 소환하였다. 그러나 리오에게 한번 부러진 타격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듯, 검광이 많이 사그라들어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그것을 무시한 듯 두 개의 검을 들고 몸의 기를 끌어올렸다. 붉은색의 기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고 그녀는 곧바로 메탈재킷들에게 향했다.
“하아아앗!!”
그녀의 공격 파워는 실로 대단했다. 단단하기로 소문난 메탈재킷의 헤치를 조개껍질을 열 듯 간단히 날려버리고 안에 있던 탑승자의 목숨을 빼앗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서 벗어난 야수와도 같았다. 10여 대의 메탈재킷을 없애는 건 여러 명이 된 일행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메탈재킷은 10여 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있는 숲의 안에서 또 다른 메탈재킷의 부대가 밀려 나오는 것이었다.
“이, 이런…!”
클루토는 다시 한번 리오와 지크의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의 수행을 꽤나 해왔다고 생각했던 자신조차 몇 번의 마법 사용에 쉽게 지쳐버리고 마는데, 그들은 인간 이상의 고난이도 동작을 내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을 내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의 큰 문제는 체력이었다.
“… 하지만, 더 이상 둘에게 의지하고 살 수는 없어!”
클루토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마법력을 끌어올리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메탈재킷을 노려보았다.
“하아, 하아….”
지크는 이미 20대가 넘는 메탈재킷을 박살내고 있었다. 그러나, 메탈재킷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제국군의 지원 부대가 도착해서였다. 그사이 무명도는 다시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다. 두 개의 검을 사용할 만큼의 체력이 지크에겐 남아 있질 않았다.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그의 등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져왔다.
벽이었다.
“하아, 하아… 이러면 등 뒤에서 공격을 받지 않겠지. 자… 시작해볼까?”
지크는 무명도를 바닥에 꽂은 뒤에 자신의 장갑을 벗어 바지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메탈재킷들은 지크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취하자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후우… 오래 기다렸다, 헤헤헷… 필살, 영(零)식 극뢰(極雷)…!”
양 주먹을 불끈 쥔 지크는 온몸의 기를 증폭시켜 기전력으로 변환시키기 시작했다. 근처의 쇳조각들이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기전력에 의해 불꽃을 튀기며 증발해버렸고, 메탈재킷의 탑승자들은 자신들의 전력 계측기가 나타내는 반응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의 전기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였다.
“하아아아아아아앗!!!”
기합성과 함께 손바닥을 편 지크의 몸에는, 여태껏 그가 방출해왔던 기전력을 합쳐 놓은 듯한 거대 기전력이 방출되었다. 절연물체, 즉 장갑을 벗어버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제한되지 않은, 무한의 기전력을 방출하기 위해서인 것이었다. 그의 몸에서 방출된 기전력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전기력 상태를 초월한 플라스마의 상태였다. 기전력의 불꽃은 푸른색의 기체로 변해갔고, 주위의 물체들은 플라스마가 가진 엄청난 열에 의해 분해되기 시작했다. 플라스마에 둘러싸인 지크는 자신의 앞에 꽂혀있는 무명도를 거머쥐었다. 무명도에도 플라스마가 스며들어 더욱 푸른빛을 발하였다.
“헤헷, 멋지지 않나… 나의 최후를 장식하기엔 말이야….”
지크의 모습은 그 말과 함께 잠시 사라져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은 메탈재킷 부대의 중앙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위치한 메탈재킷들은 순식간에 폭염에 휩싸이며 폭발해갔다. 그의 앞에 바로 있던 메탈재킷의 속도 계측기엔 초속 7천여 가론(미터)이라는 믿을 수 없는 수치가 적혀 있었다. 탑승자가 그 숫자를 보고 놀라는 것 역시 그리 오래가진 못하였다. 한 번 지크의 모습이 사라질 때마다 그들의 메탈재킷이 화염에 휩싸여가는 것이었다.
70여 대에 달하는 메탈재킷의 대부대가 이렇게 기록적인 시간 내에 당한 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크를 잡기 위해서 도시 안으로 들어왔던 메탈재킷 부대는 들어온 지 약 5분여 만에 반파 또는 완파를 당하고 전투 불능에 빠지고 말았다. 서 있는 메탈재킷이 한 대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지크는 자신의 몸에서 뿜어지고 있는 플라스마를 거둔 후에 천천히,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어 반짝이고 있었고, 표정 역시 시체에 가까울 정도로 창백했다. 그는 힘겹게,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하아, 하아, 하아… 이제 남은 건….”
메탈재킷에서 탈출한 병사들은 각자의 권총을 뽑아 들고 지크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지크는 무방비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사격을 함부로 하진 못했다.
‘… 눈이… 흐려진다….’
지크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하염없이 걸었다. 결국, 그가 걸음을 멈춘 것은 한 아름 들이 나무에 가까이 갔을 때였다.
“… 헷, 힘든데… 잠시 쉬어갈까…?”
지크는 천천히 나무에 기대었다. 그리고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젠장… 지켜주질… 못했어….”
지크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고개도 곧 푸욱 숙여졌다. 제국 군인들은 그를 둘러싼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들은 지크의 상태를 알아보아야 했지만 장비가 모두 파괴된 상태여서 직접 알아보는 수 외엔 방도가 없었다.
한 군인이 용감히 지크에게 다가갔고, 그는 천천히 지크의 팔목을 잡아 보았다. 지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군인은 환한 표정을 지었고 다시 확인을 해 보려는 듯 지크의 목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군인은 자신들의 동료를 돌아다 보며 엄지손가락을 자랑스럽게 펴 보였다.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숲의 밖으로 내몰려졌고, 곧 십여 대의 메탈재킷에 의해 포위되고 말았다. 크리스는 결국엔 다시 부러진 자신의 벨벳 크로스를 내려다보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그러면 목숨만큼은 살려주마.>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메탈재킷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고, 일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무기를 버리고, 마법력을 거두었다.
“… 어? 이상하다…?”
메이린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람이 멈추었네…?”
그때였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일행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던 메탈재킷들이 장난감 부서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일행은 역시나 하고 환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표정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 죽여버리겠다…!!”
온몸이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는 리오가 분노에 찬 음성으로 메탈재킷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머리채도 기에 의해 공중에 하늘거렸고, 그의 망토 자락 역시 공중에 날렸다. 누가 보아도 질릴 듯한 모습이었고, 그 이상의 살기를 리오는 뿜어내고 있었다. 일행조차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리오는 숲에서 메탈재킷들이 서서히 몰려 나오는 것을 보고 더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양손을 모으고 단숨에 주문을 전개했다.
“꺼져 버려라, 더러운 자식들!!!”
클루토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오의 양손 앞에 그려진 대형 마법진… 분명 일급 마법 프레아가 확실했던 것이다.
“가라앗! 일급 마법, <프레아>!!!”
순간, 강렬한 진홍색의 빛이 숲을 향해 뿜어져 나왔고, 거대한 핵융합 폭발이 메탈재킷이 잠복해 있던 숲을 일순간에 재로 변화시켰다. 그 폭발에 의해 생겨진 폭풍은 강대한 것이어서, 근처에 있던 메탈재킷도 종잇장처럼 날려가 버렸고 일행도 세레나가 급히 친 방호막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날려가 버렸을 것이 확실했다. 곧, 폭발에 의한 빛이 사라지고 숲이 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건 완전히 타버린 벌판뿐이었다. 물론 메탈재킷이 있었던 흔적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숨에 세 대로 줄어버린 메탈재킷 부대는 리오의 강대한 힘에 질린 듯,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노기에 휩싸인 리오에게서 도망치기엔 그들은 너무 느렸다.
“어딜 도망가느냐!!”
그들을 따라잡은 리오는 맨 뒤에 있던 메탈재킷의 백팩을 손으로 잡고 그대로 뜯어버렸다. 전원이 차단된 메탈재킷은 곧 움직임이 멈추었고 리오의 마법 공격에 의해 무참히 박살이 나고 말았고, 나머지 두 대 역시 그리 멀리 도망은 가지 못하고 파괴당했다. 메탈재킷을 모조리 부순 리오는 땅을 내려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 이 정도의 힘을 가졌으면서… 형제 한 명도 구할 수 없단 말인가…!”
안타까움이 실린 그의 목소리는, 바람이 잠시 멈추어 버린 대기를 타고 일행에게 들려왔다. 세레나와 크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오를 바라보았고, 클루토를 비롯한 아이들 역시 심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설마, 지크 씨가…!?”
클루토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리카 역시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리오의 모습과 과민반응을 보아선 자신들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밤이 되어서, 일행은 숲의 타지 않은 부분으로 옮겨가 노숙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리오는 땅을 내려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질 않았다. 저렇게까지 리오가 고민하고 있는 건 본 적이 없는 클루토와 리카였다.
클루토는 태양이 떠오를 무렵, 약간 좋지 않던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피로가 겹쳐서인지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몸은 굳어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클루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리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아직도… 그곳에 있나?”
클루토는 조용히 숲을 빠져나가 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리오는 가만히 정좌를 한 채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클루토는 발소리를 죽여 리오의 곁으로 다가갔다.
“… 클루토니?”
“예에….”
리오의 낮은 음성이 들려오자, 클루토도 역시 낮게 대답했다. 클루토는 다른 마법사처럼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데엔 약간 소질이 없었지만, 지금 들은 리오의 목소리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것이 깃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그의 대답도 낮아진 것이 아니었을까.
“목소리에 기운이 없구나. 그러니까 리카에게 계속 당하는 거야… 후훗.”
웃음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리오의 얼굴은 웃고 있질 않았다. 클루토의 머릿속엔 리오가 어제 말했던 것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면 나에게 알리거라. 방금 생각난 것이 있으니까 말이야.”
리오는 천천히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어… 그곳으로 곧바로 갈 거다.”
“예? ‘그곳’이라니요?”
클루토의 질문을 들은 리오는 뒤로 돌아서며 씨익 웃어 보였다.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제국의 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