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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56화


지크는 성당 안에 마련되어 있던 신부 대기실을 향해 뛰었다. 복도를 거닐던 사람들은 지크가 갑자기 뛰어 들어오자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크에겐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신부 대기실은 그리 멀지 않았다. 지크는 방문을 부술 듯이 거칠게 열어젖히고 프시케를 찾기 시작했다.

“프시케! 이런 젠장!!”

신부 대기실 안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모두 결혼식에 참석하러 간 것 같았다. 지크는 볼 것 없이 성당의 예배당으로 뛰었다.

예배당 쪽은 지크를 내쫓았던 거구가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 거한은 지크가 예배당을 향해 뛰어오자 엉겁결에 막으려고 앞으로 전진했다.

“비키지 못해!”

지크는 그 거한의 위로 뛰어올라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공중에서 그대로 던져 내동댕이쳤다. 거한은 신음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성당 구석에 쓰러져 기절했다.

“잠깐!!”

결혼식이 진행 중인 예배당의 문을 열며 소리친 지크는 마악 예물을 주고받는 중인 신랑과 신부를 볼 수가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고함에 놀란 사람들은 모두 지크를 바라보았고 더더욱 놀란 건 신랑과 신부인 프시케였다.

“지, 지크 씨!?”

지크는 신랑 커드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크 쪽이 훨씬 더 키가 컸기 때문에 커드는 자신의 앞에서 멈춘 지크를 올려다보아야만 했다.

“다, 당신은 누구야! 왜 남의 결혼식을 방해하는 거지?”

지크는 커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혼식…? 좋아, 한 가지만 묻지. 넌 너와 결혼한다는 여자를 사랑하나?”

“뭣…?”

프시케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지크의 팔에 매달려 소리쳤다.

“제발 돌아가 주세요 지크 씨! 저를 위해주신다면 제발요!!”

그러나 지크는 프시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직 커드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커드는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머뭇머뭇거리며 결국엔 대답하였다.


슈렌은 자신의 기염력을 한계점 가까이까지 끌어올렸다. 추운 날씨로 얼음장보다 차갑게 되어있던 주위의 돌들이 기염력의 열에 의해서 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나갔다.

“오너라 조무래기 녀석…!”

슈렌은 자신의 앞에 거대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화염계 고위 정령 이프리트에게 손짓을 하였다. 이프리트는 다시 고함을 지르며 슈렌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슈렌의 창 그룬가르드는 불꽃을 뿜어대며 주인의 손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염살(炎殺)! 블라인드 하켄!!!”

계속 돌진하던 이프리트는 그룬가르드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자 뒤로 물러서기 위하여 멈추어 섰다. 그러나 이프리트는 물러서지 못하였다. 그룬가르드가 만들어낸 진공의 공간 안에 들어오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이프리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도망치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그룬가르드의 회전 반경에 걸려든 이프리트는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염력과 함께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

그 광경을 본 바만다라는 놀라움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상상 외로 슈렌이 강해서였다.

그 사이, 이프리트의 건장한 체구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정령이라도 초진공 상태를 견딜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슈렌은 이프리트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창을 회전시켰고 이윽고 소환된 이프리트는 완전히 물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슈렌은 곧바로 창의 회전을 멈춘 뒤에 바만다라를 쏘아보았다.

“다른 걸 불러 보시지. 그리 시간을 끌지는 못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바만다라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을 좌우로 저었다.

“아니요, 이젠 시간을 끌 필요가 없습니다. 느껴지지 않나요 슈렌 씨?”

“뭣?”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것 아닌가!”

꽤나 고심해서 말한 커드의 대답이었다.

“…!”

지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인 뒤에 미소를 지으며 뒤로 돌아섰다.

“… 그래 좋아. 그러나 한 가지만 말해두지….”

프시케는 그리 오랫동안 지크와 생활한 것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화가 났을 때 지크의 행동은 알고 있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팔을 부르르 떠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지크는 팔을 떨고 있었다.

“… 프시케의 머리카락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그땐 박살을 내줄 거다. 언제 어디서고 말이야…!”

커드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지크의 뒷모습을 보고 치를 떨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공포감을 안겨준 상대는 없어서일 것이다.

그때였다.

구우우우우.

성당의 창문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커드의 눈은 아까 전과는 다른 살기를 띠었다.

“후훗… 후하하하핫!! 괜찮은 타이밍이군!!”

갑자기 변한 커드의 태도에 프시케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커드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예배당 안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저 녀석을 없애 버려라 친위대여!!”

그와 동시에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남녀노소가 모조리 살기를 뿜어내며 손에서 번쩍이는 암기를 돌아 서있는 지크에게 던졌다. 수십 개의 암기는 정확히 지크의 재킷 등에 박혔고 지크는 앞으로 쓰러졌다.

“지, 지크 씨!!”

프시케는 지크가 쓰러진 것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고 커드는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프시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조용히 해 주시지요 여신님. 제발 이 최고 신도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당신은 함부로 대해드리기 싫으니까요.”

프시케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고 커드는 프시케를 옆에 있는 신도에게 맡긴 후 교단 위로 올라섰다.

“자, 모두 나가자 여신교의 신도들아. 우리를 구원해주실 새로운 신의 강림을 찬양하는 것이다…!”

“오우, 교황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커드는 순간 움찔하며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프시케를 맡고있는 신도-바로 온몸에 암기를 맞았어야 할 지크가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비웃으며 서있는 것이었다.

“너, 너는…!? 그렇다면 쓰러진 건!”

커드만이 놀란 것은 아니었다. 암기를 던진 신도들이 쓰러진 ‘지크’를 돌려보았다. 그것은 먼지떨이개가 꼭대기에 달려있는 큰 촛대에 불과했다.

“나라고 사람 보는 눈이 없을 줄 알았나? 이런 얘기할 틈이 없지, 난 나간다 친구.”

지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프시케의 팔을 끌었다. 약간 저항하는 힘이 있자 그는 프시케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뭐야, 안 갈 거야?”

예전과 변함없는 미소와 말투로 지크가 자신을 부르자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울고 말았다. 지크는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안아 올렸다.

“미안하지만 분위기 낼 때가 아니라구!”

그와 동시에 지크는 예배당 출입구 쪽으로 비호같이 날아올랐고 그가 있던 자리의 주변엔 수십 개의 암기가 박혔다.

“타아아앗!”

프시케를 양손으로 안은 상태여서 지크는 팔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어깨를 이용해 두꺼운 출입구를 부수고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벌써 많은 수의 교황 친위대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쳇! 잠깐!!”

지크는 프시케를 내려놓자마자 앞길을 막고 있는 그들을 향해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수십 개의 도광이 약간 어두운 성당 복도를 장식했고 수명의 친위대는 급소를 베인 채 쓰러져갔다.

“거기서 멈춰라! 여자는 내가 데리고 있다!!”

지크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한 명의 친위대원이 프시케의 목에 검을 가져간 채 지크를 협박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순간, 친위대원은 자신의 감각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의 등 뒤에서 침입자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그의 등 뒤로 돌아간 지크는 친위대원의 팔 근육이 반응하기 전에 그의 숨골에 일격을 가하였다.

파각!

후두부에서 난 음산한 소리와 함께 친위대원은 보람없이 쓰러졌고 프시케는 다시 지크의 팔에 안겼다.

“아직은 아무 말 하지 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간닷!!”

프시케는 지크의 외침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란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째서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그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둘은 어느새 성당을 빠져나갔고 밖에는 공중에 떠있는 요새를 바라보고 있는 푸른 장발의 사나이가 맨 처음 들어왔다.


“슈렌! 어떻게 된 거야!!”

슈렌은 지크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가 처음 보는 여자를 안고 나왔다는 것을 알자마자 더더욱 근심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어쨌든 잘 나왔어 지크. 하늘 위를 보아라….”

슈렌의 옆에 프시케를 내려놓은 지크는 그의 말에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도시보다도 훨씬 큰, 거대한 강철의 구체가 공중을 뒤덮고 있었다.

“젠장… 저건 공중 요새잖아! 하지만 저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바만다라는 여전히 웃음을 띄운 채 지크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것은 제국의 수도입니다 지크. 아니, 대 공중요새 ‘우르즈 로하가스’라는 설명이 더 옳겠지요. 아, 그리고 여신님이 당신의 손에 계시군요. 유감입니다, 호호호홋….”

지크는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만다라를 바라보았다. 바만다라는 손을 휘휘 저은 뒤에 계속 말을 했다.

“어머, 실례…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군요. 원래는 여신님이 가지고 있는 아공간력이 이 계획에 절대적으로 필요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필요가 없어요. 제 친구의 힘이 의외의 변수로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호호호호홋!!”

도시의 시민들은 하늘을 뒤덮고 있는 우르즈 로하가스를 바라보며 희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른 아이 할 것이 없었다.

“폐하시여… 어째서…?”

30세 이상의 중년층은 20년 전 젊은 황제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떠올린 후, 괴이할 정도로 군사력을 증강시킨 황제의 모습을 떠올렸다.

안타까울 정도로…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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