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6화
“이럴 수가!”
클루토의 모아진 양손에서 하얀색의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헤리온은 황급히 망토를 넓게 펼쳐서 몸을 감쌌다. 클루토는 어울리지는 않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5급, 알자르만!!”
클루토가 누운 채로 공중을 향해서 외치자 헤리온 주위의 냉기들은 곧바로 얼음의 결정체를 이루었다. 그 크기는 헤리온의 몸을 감싸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그 광경은 잠깐 동안이었지만 관중들의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헤리온, 아니 얼음덩어리는 곧바로 경기장 지면에 곤두박질을 쳤다. 그러나 덩어리는 깨어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클루토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쉰 뒤에 곧바로 일어섰다. 잠시 동안 얼음덩이가 미동도 치지 않자 클루토는 그제서야 이겼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와아! 클루토가 이겼어! 꺽다리, 보란 말이야!”
리카는 마치 자신이 이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를 흔들어댔다. 그러나 리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엉뚱했다. 옆자리의 바이칼도 그리 신통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멍청이.”
그와 동시에 얼음덩어리 가운데에 짜작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클루토는 놀란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전체적인 균열과 함께 얼음덩어리는 박살이 났고 그 안에 있던 헤리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일어났다. 클루토는 헤리온의 붉은 망토에서 약간의 붉은 기운이 솟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아뿔싸! 파이어 맨틀(Fire Mantle)!!’
일명 불의 망토. 냉기에 대한 저항력을 약간 가진 특수 망토였다. 클루토는 헤리온의 망토가 그렇게 특별난 것인 줄 상상도 못했다.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걸지도…
“위험했다, 클루토.”
헤리온은 자신의 창을 고쳐 잡고 다시 자세를 취하였다. 클루토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굉장하시군요 헤리온님. 알자르만을 견디실 줄이야…”
레나는 클루토의 경기를 보면서도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은 애처롭기까지 했으나 할 일은 없었다.
“공주야, 그렇게 걱정하진 말거라. 헤리온이 설마 저 아이의 목숨을 빼앗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나 걱정이 되는걸요. 아이들의 상대로 호장님들은 너무나 강한 것 같아요.”
“하지만 클루토도 그렇게 약하진 않습니다 공주님.”
왕과 레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남색의 모자를 쓰고 있는 허연 수염의 노인이 어느새인가 뒤에 서있었다. 구불구불한 지팡이에 남루한 옷차림. 얼굴에 있는 엄청난 주름은 그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오오, 대 마법사 라가즈 아니신가, 어쩐 일인가?”
“허허허…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지금은 경기를 관전하러 왔답니다.”
레나는 인사를 하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인사를 먼저 한 것은 라가즈였다.
“안녕하십니까, 레나 공주님. 노인이 두 번째로 공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예? 아… 예.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라가즈님.”
왕은 매우 반가운 듯 일어서며까지 그 노 마법사를 반겨주었다. 왕은 시종을 시켜 의자를 가져오게 했다. 라가즈는 의자에 앉으며 클루토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흠… 저 아이가 어떻게 `전음 주문법’을 익혔을까…? 하긴, 그 정도의 잠재력은 있는 아이였으니까.”
“전음 주문법? 그래서 주문을 빨리 외울 수 있었군.”
라가즈는 레나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레나도 마침 물어보려던 참이었지만.
“전음 주문법이란 마음속으로 주문을 생각해서 지정한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방법입니다. 침묵 주문에 의한 마법 봉쇄는 소용이 없지요. 그러나 그에 따른 정신력의 소모가 엄청나답니다. 평상시의 약 두세 배쯤…? 체력의 소모도 심하지요.”
“저 소년의 잠재력도 쓸만한 것 같군. 저 나이에 그런 고난도 주문법을 익히다니 말이야.”
왕은 가신의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15세의 소년에게 관심을 보였다. 인물을 뽑는 데에 관심이 높은 왕의 일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클루토가 어디서 5급 주문과 전음 주문법을 익혔을까요? 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말이죠.”
라가즈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레나는 한 사람밖에 그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설마… 리오가?”
헤리온은 더 이상 방심은 금물이라는 표정으로 확실하게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클루토는 그렇지가 못했다.
`이런… 머리가 빙빙 도는군…’
체력과 정신력의 소모가 대단한 주문법에 5급 주문을 사용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이제 클루토가 사용할 수 있는 정신력은 5급 주문 한 발 뿐이었다. 6, 7, 8급은 사용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파이어 맨틀은 주문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서 5급 미만의 주문은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결판을 내주마. 클루토 맥브라이드.”
클루토는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러든지 저러든지 위험할 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클루토는 양손을 교차시킨 후 앞으로 뻗어낸 다음 눈을 감고 주문에 들어갔다.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손에서 피어올랐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주문은 다 외우지 못할 것이다! 간다!!”
헤리온은 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클루토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아마도 클루토가 눈을 뜨고 있었다면 그 움직임에 입이 굳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화려’ 그 자체였다.
리오는 클루토의 자세를 보고 피식 웃었다. 다시 턱을 괴며 리카에게 말했다.
“저 녀석, 정말 능구렁이 같군.”
“무슨 소리야 꺽다리?”
“바로…”
리오의 말과 동시에 헤리온의 기술이 클루토에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클루토의 남색 옷이 창에 스치지도 않았는데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했다. 클루토의 피부도 약간 긁혀나갔다.
“간다! 연옥수신충(煉獄手神衝)!!”
순간 클루토는 눈을 뜨며 외우던 주문을 중지했다. 그리고 나서 교차시켰던 팔을 풀며 소리쳤다.
“5급, 파이라만!!”
폭음 소리가 경기장의 하늘을 진동시켰고 마법과 기의 충돌로 빚어진 순간적인 폭풍으로 경기장에 쌓여있던 흙먼지들이 모조리 날려서 관중들의 시야와 두 경기자의 모습을 가렸다.
“주문을 다 안 외웠을 텐데?!”
슐턴은 외우지도 않은 주문이 어떻게 나갔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리오는 가볍게 눈을 감으며 리카에게 말했다.
“저 녀석, 파이라만 주문은 미리 외워두고 자세를 취한 후에 엉터리 주문을 외운 거야, 헤리온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지. 일발 역전을 노렸던 것 같군.”
창의 기술이든, 검의 기술이든 기술의 특성상 시작 전에 빈틈이 만들어지는 종류가 있다. 아주 잠깐이긴 하나 그 사이를 노려서 공격을 하면 역으로 강력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클루토가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클루토가 이겼을까?”
“글쎄… 자,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는데? 보면 알겠지 뭐.”
먼지가 서서히 걷혀가고, 희미하게나마 쓰러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바람에 의해서 확실히 보일 정도로 걷히자 쓰러진 사람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저… 저럴 수가!!”
쓰러진 사람은 바로 헤리온이었다. 그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일어나려고 애를 썼으나 마법의 타격뿐만 아니고 기의 역류로 인한 타격도 함께 받았기 때문에 거의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