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63화
“아공간 역장!”
메탈 재킷의 엘리마이트 빔조차도 잡을 수 있는 반격 기술이었다. 총탄이 잡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백여 개의 탄환은 지크가 자신의 몸 앞에 만들어낸 장력에 의해 공중에 정지했고 지크는 그것들을 아래로 털어낸 후 몸을 웅크린 채 메탈 재킷의 머리 위로 강하했다.
“육백 칠이식-일광!”
음속을 뛰어넘은 무명도의 날이 햇빛을 반사하며 메탈 재킷의 동체를 수십 번 갈랐다. 역시 맨손과 무기는 달랐다.
메탈 재킷의 사이로 착지하며 그들을 베어버린 지크는 다시 한번 뛰어 폭발 시의 폭풍으로부터 몸을 피하였다. 메탈 재킷들은 저주받은 탑승자들과 함께 폭발하여 사라져갔다.
지크는 무명도를 집어넣으며 한 손을 펴 얼굴 중앙에 가져갔다. 명복을 비는 것이었다.
“사람은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특히 군인은.”
측은한 표정으로 불타는 메탈 재킷을 바라보는 지크의 뒤로, 동굴을 막고 있던 돌들을 부순 리오가 뛰어나오고 있었다.
“쳇, 역시…! 지크, 녀석들의 목적을 알 것 같아!”
지크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리오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냐는 뜻이었다.
“이 고원에 존재한다는 공간의 약점은 녀석들의 목표가 아니야! 저항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이야!”
리오는 말을 마치자마자 휘파람으로 페가수스들을 불렀다.
지크는 북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가이라스 왕국의 수도가 있는 곳이었다. 거대한 대륙을 한 왕국이 지배하는 한 수도만 부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제국이 별동대를 보낸 목적은 차후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가이라스 왕국이란 싹을 밟아두는 것이었다.
“… 어서 가자 리오!”
지크는 몸을 날리며 페가수스에 올라탔다. 리오도 역시 천마에 올라탔고 그들은 급히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때, 한 노인의 애타는 음성이 지상에서 들려왔다.
“리오님! 리오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리오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드워프족 족장이었다.
“뭐지…? 할 수 없지. 지크, 너 먼저 가라!”
그 말을 들은 지크는 대답도 없이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았고 리오는 다시 지상 가까이 내려갔다.
그가 내려오자 족장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헝겊에 쌓인 무엇인가를 리오에게 내밀었다.
“이, 이게 뭔가?”
“풀어 보십시오. 100년 전부터 제가 리오님에게 꼭 드리고 싶은 물건입니다.”
리오는 급히 헝겊을 풀었다. 그것은 긴 레이피어(소검)였다.
“아, 아니… 이것은 레나 공주님이 왕국의 보물이라며 지니고 계시던…? 하지만 소검은 나에게 쓸모가 없는데?”
족장은 고개를 저으며 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 검을 잘 보십시오. 보통의 소검과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리오는 찬찬히 그 소검을 살펴보았다. 차이점이란 단 하나, 대검인 디바이너만큼이나 자루가 길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이것이 무슨?”
“사용해 보십시오. 디바이너를 쓰실 때처럼 기를 넣으셔서요. 아마 디바이너만큼이나 유용한 검이 될 거라고 전 확신합니다.”
리오는 약간 미덥지 못하였지만 무기에 관하여선 입신의 경지일 족장이었기에 아무 말 않고 그 소검을 허리에 장비하였다.
“어쨌든 고맙네. 그런데, 이 검의 이름은 뭔가?”
족장은 기다렸다는 듯, 자랑스럽게 그 검의 이름을 말하였다. 천천히, 또박또박….
“패검, <파라그레이드>입니다.”
죽은 가이라스 왕을 이어 여왕에 즉위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바이나는 침통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제국의 공중 요새들이 가이라스 수도를 메우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모두 말스 왕국에 지원차 가 있는 형편이라 지금 싸운다는 건 달걀로 성벽을 치는 것과 다를 바는 없었다. 요새가 떠있는 고도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기도 없을뿐더러 적들이 지상에 내려오지 않으니 승산은 없었다.
“… 100년 만에 무너지는 건가… 이 가이라스 왕국이…!”
바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옥좌 위에 놓여있는 그녀의 검, 드래곤 킬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각 기사단의 단장들을 바라보았다.
“… 미안하다는 말 외엔 해드릴 수가 없군요 여러분. 우리에겐 분명 승산이 없습니다. 마법사들도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그 말을 들은 각 기사단장들은 분함에 못 이긴 듯 몸을 떨었다. 그중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바이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왕인 만큼, 근엄함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린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왕국을 만들기 위해 힘을 쓰시다가 사라져가신 우리의 선조들의 정신을요. 온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어간다면 그분들도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겁니다….”
바이나는 거기에서 말을 끊었다. 더 이상 말하면 목이 멜 것 같아서였다. 말을 끊은 덕분에 그녀는 가까스로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 저희도 여왕님과 운명을 같이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가이라스 왕국 나이트 마스터, 조나단 블레이크는 몸을 일으키고 검을 뽑아 세우며 자신의 왕에게 맹세하였다. 그를 따라 다른 기사단장들도 몸을 일으켜 맹세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바이나는 그들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감명을 받은 듯 눈시울을 붉혔다. 기사단장들은 곧 회의실을 나섰고 회의실 안엔 조나단과 바이나만이 남게 되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여왕님,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조나단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자 바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조나단. 공중 요새가 한대여도 전멸할 게 뻔한데 10여 대를 어떻게 상대하겠어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후훗.”
조나단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 전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조나단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단을 위해 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바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잡은 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바이나는 흠칫 놀라며 조나단을 보았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만났던… 그 말도 안 되는 사나이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말이지요. 후훗… 그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