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76화
바이칼이 용제라는 것을 안 아크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엇, 그럼 네가 용제란 말이야? 호오… 바뀌었나 보군. 예전에 우리를 아공간으로 밀어 넣는 데 공헌한 주신의 꼭두각시… 후후훗.”
바이칼의 눈은 크게 떠졌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굉장했어. 웬만한 하급의 신들은 압도할 정도의 공격력으로 우리들을 쓰러뜨렸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너무 멍청했어. 드래곤 주제에 신과 사랑을 나누다니 말이야….”
순간, 아크로는 말끝을 흐리고 멀찌감치 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바이칼의 몸에서 뿜어지기 시작한 엄청난 투기 때문이었다.
“감히… 내 어머니까지 입에 올리다니!”
아크로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바이칼의 아버지, 선대 용제를 능가하는 파워가 바이칼의 몸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아크로는 빙긋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후훗, 화가 났나 보지? 그럼 내려와 봐, 지상에서 당당히 붙어보자구.”
그 말을 남긴 아크로는 아까 자신이 있었던 위치로 돌아갔고 바이칼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냉정을 되찾으려 애를 썼다.
“… 젠장….”
휀과 슈렌은 바로 말스 왕성에 돌아와 성문 앞에 섰다. 프시케는 가만히 그들의 뒤에 섰다. 긴장감을 고조 시키려는 듯, 차가운 바람이 고신들과 일행의 사이를 지나갔다.
“저들이… 고신들인가?”
슈렌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것 같아. 저들의 몸에 있는 파워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말이야.”
고신들도 휀과 슈렌을 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라기사크는 턱에 손을 가져가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큰 몸집의 고신, <우라누브>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봐, 저기 흰 옷을 입고 있는 녀석 보이지? 나와 저 녀석 중 누가 더 강할 것 같아? 솔직히 말해봐.”
그 질문에 우라누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파란 장발의 녀석과 네가 대결한다면 모르겠는데, 저 흰 코트의 녀석과는 힘들 것 같아.”
그 말에 라기사크는 자존심이 상한 듯 버럭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뭐야! 내가 쓰레기 같은 인간보다 못할 것 같아!”
“우라누브의 말이 맞아, 저 흰 코트 녀석이 강하다는 건 나도 느끼고 있어.”
보라색 피부의 신, <보르크라>의 말이었다. 그까지 동조하자 라기사크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만약 싸운다면 내가 저 흰 코트와 대결하고 싶군. 후후훗….”
보르크라는 자신의 검을 쓰다듬으며 휀을 바라보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승부 근성이 깨어나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장발 녀석과 싸우지.”
갈색 갑옷에 붉은 피부를 한 <가르마자>였다. 그 역시 창을 무기로 하기 때문이었다.
마침 바이칼과 얘기를 마치고 돌아온 아크로가 그 말을 얼핏 들었는지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
“어머? 그럼 두 명이 놀게 되잖아? 저쪽은 우리와 싸울 만한 녀석들이 셋밖에 안 된다구. 이렇게 되면 재미가 없잖아.”
“아니, 그렇지 않아. 저쪽은 다섯이다.”
우라누브는 빙긋 웃으며 그의 거대한 턱을 위로 올려 보였다. 아크로를 비롯한 고신들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점이 말스 왕성을 향해 고속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여졌다.
“치잇! 늦었군!”
리오는 페가수스가 아래로 내려오는 시간이 너무 늦다고 생각한 듯, 말에서 뛰어내려 지상으로 향했고 지크 역시 말의 등에서 도약해 지상으로 향했다. 둘은 슈렌과 휀이 있는 장소에 정확히 착지하였고 임무를 마친 페가수스들은 곧 환수계로 돌아갔다.
휀은 자신의 앞에 착지한 두 명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다는 표시였다.
“이런이런… 큰일이 터졌다고. 지금 오면 어떻게 이 친구야.”
지크는 말을 너무 오래 탄 탓에 몸이 굳은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흥, 이쪽도 큰일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라구. 너무 그러지 말아.”
동감한다는 듯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 요새를 열 대나 부수고 왔어. 그건 그렇고 저기 있는 잡동사니들은 뭐지? 저것들이 고신들인가?”
휀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의 준비였다.
“그래, 유감이지만 그렇더군.”
“헤에… 아가씨들도 있는데? 하지만 둘 다 내 타입은 아니야. 헤헤헷….”
지크의 상황 판단을 무시한 발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슈렌은 고개를 슬쩍 저어 보였다.
“저 녀석들과 싸울 건가.”
전룡대 단장들을 다시 드래고니스로 돌려보낸 바이칼 역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보통 때보다 더욱 싸늘한 분위기의 어투여서 리오가 그를 돌아볼 정도였다.
“… 어쩔 수 없잖아. 안 싸우면 이 세계뿐만 아니고 다른 세계까지 영향이 미칠 테니. 그건 그렇고 레나님은 무사하시지?”
리오의 질문에 바이칼은 조용히 대답했다. 몸짓은 전혀 없었다.
“드래고니스에서 귀빈 대우를 받았다. 이 정도면 되겠나.”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좋아좋아… 자아, 이제 다 모인 거지?”
리오, 지크, 슈렌, 휀의 가즈 나이트 네 명과 용제 바이칼까지, 다섯 명은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다섯은 리오를 중심에 두고 일렬로 정렬하였다. 고신 쪽에서도 우라누브를 중심으로 열을 지었다.
“… 이제 피곤한 싸움의 끝이다. 난 이제 후회 없어. 너희들은…?”
리오는 디바이너와 파라그레이드를 양손에 뽑아 들며 일행에게 물었다.
“글쎄? 헤헤헷….”
지크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장갑을 조였다. 언제나처럼….
“없어.”
간단히 대답한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몇 번 돌려보며 고신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후회가 있다면 재미없겠지. 안 그래?”
휀은 자신의 검 플랙시온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되물었다.
“… 흥.”
바이칼은 팔짱만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 이제 가볼까?”
그때, 왕성의 문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를 부르는 것이었다.
“리오!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