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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91화


“자아자아, 돌아가라고 고블린 친구들. 서로 피해 입히지 말자구.”

“키킷…!”

고블린들은 동료들의 머리를 도끼로 날려버린 그 장신의 사나이를 바라본 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동료의 시신을 남겨두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후훗, 말을 잘 듣는군.”

수수께끼의 사나이는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린스에게 다가와 그녀를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사나이의 도움으로 안전히 땅에 내려온 린스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사나이에게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봐! 도와주려면 일찍 도와줘야 할 거 아니야!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으음?”

그 사나이는 황당한 듯 린스를 바라보고 있다가 껄껄 웃으며 자신의 윗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하핫… 그럼 죄송하게 되었군요. 비명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온 것이 조금 늦은 모양입니다. 하하하핫!”

린스는 그 사나이의 태연함에 인상을 찌푸리며 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빈혈 증상이 온 듯 다시 나무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쌌다.

“아야야….”

사나이는 약간 놀란 듯 린스의 등에 손을 올려놓고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처방을 말했다.

“음? 거꾸로 매달린 게 처음인 모양이군요. 그럼 자세를 낮추고 숨을 깊게, 천천히 해보세요.”

린스는 그 사나이의 말대로 행동했다. 꽤 진정이 되는 듯싶었다.

그때, 또다시 부스럭 소리가 린스에게 들려왔고 린스는 엉겁결에 그 사나이의 품에 달려들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앗!”

“이, 이것 봐요!”

당황한 사나이는 린스에게 안김을 당한 채 소리가 난 숲을 바라보았다. 온몸에 고블린의 피를 뒤집어쓴 한 미소년이 풀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청년은 린스가 사나이를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네, 네 녀석이 린스님을 감히!”

그 청년은 검을 양손에 부여잡고 그대로 돌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린스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그 청년을 향해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케, 케톤! 그만해!”

그러나 상당한 고블린에 의해 정신적 충격을 입은 케톤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훗, 어쩔 수 없군….”

그 사나이는 린스를 옆에 앉힌 후에 케톤에게 다가갔다. 린스는 깜짝 놀라며 다시 사나이에게 소리쳤다.

“자살 행위야! 케톤은 우리 왕국에서 두 번째로!”

파팍!

린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케톤의 검과 몸은 따로따로 공중에 치솟았고 케톤은 기절한 채 지면에 처박혔다. 린스는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그 상황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너, 너어!?”

아무리 정신이 없던 케톤이라 해도 왕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기사였다. 그러나 이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순간의 일격을 맞고 기절해 버린 것이었다.

사나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케톤을 자신의 넓은 어깨에 메고 나무에 박힌 자신의 도끼를 뽑으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으로 가요. 나쁜 짓은 안 할 테니까.”

“자, 잠깐!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딜 가자고!?”

린스의 불안감이 섞인 말을 들은 사나이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맘대로, 여기서 고블린들과 다시 놀고 싶다면 말이에요. 하하핫….”

웃음소리와 함께 사나이는 숲속 깊숙이 사라졌고, 린스는 갑자기 느껴지는 적막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봐! 같이 가지 못해!”


사나이의 집은 작은 오두막이었다.

고블린들의 피는 털어낸 듯, 사나이가 오두막 밖에 세워둔 도끼는 짙은 청색을 띠고 있었고 그 근처엔 패다 남은 통나무들이 약간 널려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고독을 즐기는 한 괴짜 귀족의 별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관계길래 이렇게 위험한 산지를 여행하고 있는 거요?”

사나이는 자신의 텁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린스에게 물었다. 린스는 타는 듯한 붉은색 수염을 잠시 바라보다가 약간 오만함이 깃든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비밀이야.”

사나이는 또다시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직분이 뭐길래 나에게 반말을 쓰는 겁니까, 궁금한데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린스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난 레프리컨트 왕국의 하나뿐인 린스 공주님이니까. 귀족이나 왕실 사람들 내지는 어마마마만이 내 존칭어를 들을 수 있….”

린스는 순간 당황하며 자신의 입을 막았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사나이는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린스를 여태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린스는 고개를 사나이로부터 휙 돌린 후에 입을 열었다.

“쳇, 그건 그렇고 넌 누구지?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산지에서 혼자 살고 있는 거야. 설마 산적?”

린스의 맹랑한 질문에 그 사나이는 피식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후훗… 그냥 떠돌이 기사일 뿐입니다. 할 일이 있긴 하지만 그만 지쳐서 좀 쉬려고 이곳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겁니다.”

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나무꾼이 왕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젊은 기사를 일격에 눕히는 장면은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떠돌이 기사들은 실전에 강하다고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쳐준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호오… 그랬었군. 이름이 뭐지?”

그 사나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나무 침대 위에 누워있던 케톤이 몸을 움직이자 대답은 제쳐두고 케톤에게 다가갔다.

“아, 나중에요 공주님. 이 녀석부터 치료해주겠습니다.”

사나이의 약간 거친 말투에 린스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 녀석이라니! 레프리컨트 왕국의 기사인 케톤 프라밍이야! 정식 지위가 있으니 너보다 높다구!”

사나이는 케톤의 상반신을 일으키고 어깨를 주물러주며 피식 웃었다.

“훗, 같은 기사라면 그런 건 상관없는 겁니다.”

린스는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머리만을 긁적일 뿐이었다.

“크읏! … 후우.”

케톤은 순간 정신을 차린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사나이는 몸을 다시 일으킨 뒤 의자에 앉았다.

“자아, 빨리 이름을 대.”

린스는 집요했다. 사나이는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흐음… 리오, 리오 스나이퍼라고 합니다.”


다음 날, 케톤은 완전히 몸을 회복하였고 둘은 다시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둘의 마음속엔 어제 성을 출발할 때와는 다른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출발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둘은 고작 고블린들에게 포위되어 위기를 맞은 것이었다. 자신들이 공부한 바로는 고블린이 가장 만만한 적이라고 들었기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리오는 떠나는 그들에게 미소와 함께 손만 흔들어주고 있었다.

린스와 케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조그맣게 주고받았다.

“이봐, 아무래도 저 녀석을 끌어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예, 확실히 저보다 많은 경험을 쌓은 것 같고 굉장히 강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같이 데리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의견이 일치된 둘은 이리저리 머리를 짜다가 다시 뒤를 돌아 리오의 오두막으로 뛰어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봐! 어서 문 열어!”

리오는 곧바로 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았고, 다시 찾아온 둘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음? 무슨 일입니까 또?”

“널 체포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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