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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12화


“예…?”

리오는 순간 긴장하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린스의 표정은 자신이 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 있었다. 설마 하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리오는 드러내지 않고 다시 모닥불에 시선을 두었다.

“사랑해 본 적 있냐구….”

린스가 재차 묻자, 리오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 해본 적 없어요, 후훗….”

“진짜? 정말이야?”

린스는 리오의 말을 들은 순간 활짝 웃으며 리오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리오는 속을 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린스는 다리를 모으고 양 팔로 두른 뒤에 나지막이 말했다.

“…난 엄마 한 분뿐이셔. 그런데도 엄마랑 얘기를 한 일은 그리 많지가 않아. 여왕이란 중책을 맡고 계시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지. 그런데 난 한 번도 그런 엄마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적은 없었어.”

리오는 린스가 다행히도 다른 얘기를 하자 약간 관심을 가지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어째서요?”

린스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으음… 엄마가 나와 대화를 못하신 만큼… 그만큼 슬퍼하실 거라 생각해서야. 일부러 안 하신 건 아니잖아. 그 정도로도 충분히 가슴이 아프실 텐데 나마저 엄마를 미워한다면… 정말 끔찍하시겠지. 날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실 텐데 말이야.”

리오는 그 말을 들으며 내심 놀라고 있었다. 생각보다, 지금까지 린스의 행동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예전에 노엘이 자신에게 말한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레프리컨트 여왕 이상의 큰 그릇이 될 것이라는….

“어제 말이야, 아슈탈인가 뭔가 하는 그 녀석이 날 붙잡고 큰소리를 칠 때 난 사실 엄청 무서웠었어. 정말 살기가 느껴지더라구. 그런 녀석을 잡아 집어던진 리오를 봤을 때, 난 순간 이런 걸 느꼈어….”

리오는 다시 한번 긴장하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린스는 계속 하늘을 올려다본 상태로 말을 이었다.

“…'<이 꺽다리, 누군가를 지켜주지 못했었구나>’라는 걸 말이야. 내 말이 틀릴진 모르겠는데, 아마… 그 누군가란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 그러니 케톤이 나서려는 걸 말리면서까지 날 도와줬겠지, 안 그래?”

“…!!”

린스는 말하는 도중 리오의 표정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여유가 흘러넘치는 리오가 이렇게 굳어진 얼굴을 했던 걸 본 적이 없어서였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리오는 순간 린스에게 사과를 하고는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린스는 자신이 말을 너무 대책 없이 한 것 같아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미, 미안해 리오, 설마 그렇게까지… 정말 미안해!”

“아, 아니에요 공주님.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과하실 건 없어요.”

그러나 말이 빨라진 걸로 보아 그렇지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린스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좋은 생각이 난 듯 리오의 옆에 더더욱 붙으며 보통 때의 말투를 쓰기 시작했다.

“뭐야, 그럼 이 린스 공주를 놀렸단 말이야? 이거 안되겠는데…!”

리오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린스를 바라보았고 린스는 인상을 찡그린 채 팔짱을 끼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대로 날 놀리고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노엘에게 부탁해서 널 혼내주겠어!”

리오는 갑자기 변한 린스의 말투에 결국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린스는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나에게 용서받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았지!!”

리오는 양 팔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뭔데요?”

린스는 곧 리오의 근육질 팔을 자신의 가녀린 어깨에 올려놓고 명령조로 말했다.

“자, 내가 잠들 때까지 애인들끼리 하는 것 처럼 해. 그것도 진하게!”

한쪽 팔을 린스의 어깨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리오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린스는 더더욱 눈살을 찌푸려갔다.

“어서 안 해? 빨리하라고!”

린스의 목소리가 커지자, 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린스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그녀의 머리카락과 목덜미에 살며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린스의 귀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아… 이렇게요?”

린스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16세 때부터 왕궁 안에서 거의 친구처럼 지내던 케톤에게선 아무리 가까이 있었어도 느껴지지 않던 야릇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자신도 모르게 몸이 리오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결국 리오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한 린스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그만해!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리오는 곧바로 행동을 멈추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장작을 집어 불 속에 던졌다. 린스는 자신이 하지 말라고 하니 곧바로 멈춘 리오를 황당하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 노엘에게 들은 것하고는 다르네?”

“네?”

린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노엘에게 들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노엘이 그러는데, 남자는 자극을 갑자기 받으면 자제력을 잃어서 나이도 신분이고 가리지 않고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하던데…?”

그 얘기를 들은 리오는 들고 있던 장작개비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핫… 자제력 잃기를 바라셨나요? 죄송하지만 저에겐 그런 감정은 없어요. 그렇다고 불구자(!)로 보시진 마시고요. 후우… 공주님은 아직 어리세요, 앞날이 창창하신데 떠돌이 기사인 제가 어떻게 방해를 놓겠습니까. 자, 어서 주무세요. 제가 옆에 있어 드릴게요.”

린스는 가만히 앉아있는 리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 세상의 업보는 자신이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리오는 짓고 있었다. 린스는 가만히 리오의 옆에 누워 모포를 덮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리오는 씨익 웃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살아있다는 건 좋은 거지… 그러나 그 좋은 것을 너무나도 손쉽게 빼앗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그 힘을 가진 사람도 그리 좋지만은 않아, 이유야 어쨌든… 말이지. 하지만 그걸 선택한 건 나 자신이지.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마음 놓고 나 대신 사랑하며 웃을 수 있기 때문이야…. 난 얼마든지 슬퍼도 좋아, 당신들이 웃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밤은 지나갔고 리오의 중얼거림을 들은 일행은 유감스럽게도 아무도 없었다. 리오는 물론 바라지도 않은 것이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노엘은 모닥불 근처에서 잠을 자고 있는 린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원래 자리에서 자진 않았지만 노엘에겐 린스가 노숙을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 일어나셨어요? 그럼 식사나 해 주세요, 밤새 아무것도 못 먹어서….”

어딜 갔다 왔는지, 숲속에서 나온 리오는 노엘에게 아침 식사를 부탁했고 노엘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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