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13화
크립톤을 떠난 지 3일, 일행은 날카로운 돌들이 비죽비죽 솟아난 산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길이 그리 좋지도 않았고 길도 비탈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행은 표정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자아,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올 거예요. 오늘은 노숙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며 걷던 노엘은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일행은 각자 고개를 끄덕였고 계속해서 발을 내디뎠다. 3일 동안 연속으로 노숙을 한 탓인지 일행의 얼굴은 꽤나 칙칙해져 있었다.
“으… 다행이군요 리오. 그 마을은 어렸을 때 조부님과 함께 검술 훈련을 하기 위해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에요. 인심이 좋아서 꽤 정이 들었던 마을인데… 후우-.”
리오는 자신의 뒤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케톤을 돌아보았다. 꽤나 단련된 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열악한 환경엔 적응을 잘 못하는 모양이었다. 리오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길게 쉬어 보이며 다시 앞을 돌아보았고 케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소연하듯 리오에게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전 검술 훈련만 받았을 뿐, 이런 숲속이나 산간 지방을 오랫동안 여행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단 말이에요.”
리오는 혀를 차며 다시 케톤을 바라보았다.
“쯧, 그럼 지금부터라도 배워. 난 그렇다 쳐도 케이양을 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잖아.”
케톤은 힘겹게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 역시 케톤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며 힘내라는 포즈를 취해 보였고 케톤은 더욱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게 길을 걸은 지 약 한 시간, 일행의 눈에는 산을 등지고 입지해 있는 조그마한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노엘은 자신의 안경을 닦아 보인 후에 일행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곳이 바로 여러분이 쉴 곳인 개척촌 <프로텍스>예요. 물론 레프리컨트 왕국 소속이지요.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어요. 마을 남자들은 그동안 개척 활동을 하느라 매우 성격이 거칠죠. 그러니 사소한 일을 가지고 싸우는 일이 없도록… 어머?”
눈을 감고 설명하던 노엘은 주위에 인기척이 없자 슬며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행은 벌써 그녀를 앞질러 마을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노엘은 황급히 일행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여러분!”
그 무렵, 프로텍스 마을 주민들은 두 가지에 놀라고 있었다. 하나는 개척촌만을 털어 불을 지른다는 악명 높은 도적단 <이블>이 기회를 노려 프로텍스를 기습해 왔다는 것. 또 한 가지는 그 도적단의 두목이 어디선가 나타난 괴 청년의 발 밑에서 머리를 땅에 박은 채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웃옷, 그 안에 흰색 옷을 입고 있는 괴 청년은 도적 두목의 머리를 발로 짓이기며 한껏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와하하하하핫–! 이 <사바신>님에게 걸린 것을 운 좋게 생각해라!! 알겠냐, 이 우매한 도적 녀석아!! 그리고 촌사람들! 나에게 구원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시오! 하하하하하핫–!!!”
굉장히 건방진 녀석이다-라고 프로텍스의 촌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줄 뿐이었다. 청년은 두목의 머리에서 발을 떼고 두목의 옆구리를 걷어차 저만치 굴린 뒤에 촌사람들에게 걸어갔다. 그것도 부녀자들이 있는 곳으로….
“요오- 이 아가씨 맘에 드는데? 구해준 보답은 해야지 않겠어? 후후후후….”
청년은 프로텍스뿐만 아닌, 근처의 개척촌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처녀, 아일리아의 가는 허리를 안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러나, 아일리아는 가만히 청년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부러 이런 행동을 할 필요는 없어요 사바신 씨. 하지만 당신이 보답으로 절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본 주민들은 크게 놀라며 말리려 했으나 방금 전에 청년이 수십 명의 도적들을 긴 목도 하나로 눕혀버린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놀란 것은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이, 이러면 재미 없잖아 아가씨! 반항이라도 해야…?”
사바신은 아일리아를 놓아주며 멋쩍은 듯 양쪽으로 가른 자신의 단발 머리를 긁었다. 아일리아는 주민들 사이로 다시 들어가며 사바신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와 마을 주민 여러분에겐 재미가 없었어요. 볼일이 끝났으면 이제 이 마을에서 떠나가 주세요 사바신 씨.”
그녀의 냉소적이며 단호한 말에 사바신은 대꾸할 무엇이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무기인 길이 170센티 가량의 거대 목도를 어깨에 걸치며 쓸쓸히 마을의 밖으로 향했다.
“치잇,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너무하잖아 아가씨. 그럼 저 녀석들은 당신들이 알아서 해요. 이 사바신의 역사에서 이렇게 쫓겨나 보긴 처음이네, 젠장….”
투덜대며 마을의 문에 다다른 사바신은 마을 쪽으로 다가오는 몇 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붉은 장발을 위로 묶어 내린 큰 키의 사나이는 이상하리만치 사바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뭐야 저 녀석은…?”
그것은 붉은 머리의 사나이-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막 나오고 있는 검은 복장의 사바신이 괴상할 정도로 시야에 잡히는 것이었다.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목도… 자신의 디바이너나 파라그레이드 만큼 굉장한 무기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뭐하는 녀석이지…?”
그러나 그렇게 궁금증을 서로 가진 둘은 정작 가까이 스쳐 지나갈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 명과 한 일행은 교차해 지나갔고 케톤은 리오를 쿡쿡 찌르며 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뭐 하는 사람 같아요? 분위기를 보니 꽤 강할 것 같은데요?”
리오는 케톤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냥 지나갔으니 상관할 바는 아니지. 어서 가자구.”
일행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절한 표정으로 마을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는 도적 수십 명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린스 일행이 마을에 우르르 몰려오자 긴장된 표정으로 일행을 보다가 일행 중 케톤이 있자 환성을 지르며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뜻밖의 환영에 리오를 비롯한 일행은 의아해했으나 케톤은 빙긋 웃어 보이며 일행의 앞으로 나섰다.
“촌장님! 클로렌스 아주머니!!”
케톤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큰 덩치의 아주머니와 촌장에게 인사를 올렸고 촌장과 아주머니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케톤의 손을 잡고, 안아보기도 하였다.
“케톤, 이게 얼마 만이냐! 잘 왔다, 때마침 잘 와주었어!!”
케톤은 마을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동안 못 했던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며 촌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멍하니 케톤의 뒷모습을 볼 뿐이었다.
“…꽤 발이 넓은 녀석이군요.”
리오는 씁쓸히 웃으며 노엘에게 말했고 노엘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클로렌스 아주머니란 부인이 일행에게 촌장 집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이봐요–! 거기 키 큰 젊은이하고 아가씨들, 안 들어오고 뭐해요! 어서 들어와요!”
일행은 그 아주머니의 큰 목소리에 빙긋 웃으며 촌장의 집으로 향하였다. 오래간만에 노숙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이 리오를 제외한 일행의 머릿속을 지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