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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14화


촌장의 가족들과 케톤은 밤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케톤이 13세 때, 그의 조부는 어린 케톤을 데리고 오랜 친구인 촌장에게 부탁해 이 마을에서 반년간 살았었다. 도시보다는 깨끗한 숲에서 검술 훈련을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러다 목표가 채워지자 그의 조부는 다시 수도로 떠났고 케톤도 어쩔 수 없이 조부를 따라 수도로 돌아간 것이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촌장과 촌장의 며느리인 클로렌스, 그리고 그녀의 자식인 장녀 아일리아를 비롯한 사남매는 케톤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케톤, 너무 늦게 온 것 아니니? 아일리아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클로렌스는 장난기 어린 눈초리로 케톤을 바라보며 말했고 아일리아는 양손으로 자신의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 어머니도 참… 제가 언제요! 신경 쓰지 말아요 케톤.”

케톤도 약간 얼굴을 붉힌 채 머리만 긁을 뿐이었다.

‘살판났군….’

리오는 나무로 된 큰 컵에 담긴 우유를 들이키며 속으로 내뱉었다. 리오뿐만 아니고 케이나 노엘, 린스 역시 약간 좋지 않은 눈초리로 케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환담을 나누던 케톤은 그들의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급히 일어서며 일행을 촌장과 그의 가족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 제가 깜빡 잊었군요. 저와 같이 여행을 하고 계시는 일행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린스 공… 아니 아가씨입니다. 수도에서 가장 큰 가문의 아가씨이시죠. 제가 호위를 맡아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촌장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나타내었으나 곧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일리아는 케톤이 직접 호위한다는 말을 듣고 약간 좋지 않는 눈초리로 린스를 바라보았다.

“이분은 노엘 선생님이십니다. 지식이 나이에 비해 깊으신 분이시지요.”

노엘은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이며 촌장과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케톤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분은 케이…? 레이…? 케이양이시군요. 동방 대륙에서 건너오신 손님이십니다. 노엘 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하십니다.”

케이는 깊이 허리를 굽히며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가족들은 그 정성 어린 인사법에 약간 놀라긴 했지만 다른 대륙의 손님이기에 이해를 하며 넘어갔다.

“자, 그리고….”

“전 리오·스나이퍼라고 합니다. 직업은 떠돌이 기사입니다.”

케톤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리오는 씨익 웃으며 자신을 소개하였다. 케톤과 촌장의 가족들은 멍하니 리오를 바라보다가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일리아를 제외하고.

“허허허헛… 꽤나 괴짜 근성이 있는 젊은이로군, 마음에 들었네. 그런데 여러분은 어디로 가는 중이오?”

촌장의 물음에 노엘이 안경을 매만지며 대답하였다.

“예, 레프리컨트 왕국 수도로 가는 중입니다.”

그 말을 들은 촌장은 약간 인상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일행은 의아해하며 촌장을 바라보았다.

“흐음… 유감스럽게도 왕국 수도는 이 서쪽 길로 가기가 힘드오. 크로플렌에서 사고가 생겨서….”

그쪽이 1차 목표인 일행은 깜짝 놀라며 촌장에게 물었다.

“예?! 무슨 사고가…!?”

촌장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린스를 한번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크로플렌이란 도시는 이제 지도에서 지우는 게 더 좋을 것이오. 나도 이 소식을 듣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며칠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오. 크로플렌엔… 저주가 걸리고 말았지요.”

“저주요!? 도대체 어떤 저주입니까?”

노엘은 촌장에게 바싹 다가서서 묻기 시작했고 촌장은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레프리컨트 왕국이 침공당한 직후… 도시 전체에 알 수 없는 병이 돌더니 이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괴물로 변하여 도시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말합디다.”

촌장의 얘기를 들은 일행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고 노엘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질병들을 기억해 내려고 고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여서 일행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리오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촌장에게 물었다.

“…그 생존자가 사람들이 변한 괴물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 안 하던가요?”

촌장은 무릎을 툭툭 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김새? 글쎄… 아, 마치 곤충처럼 생겼다고 한 것 같소. 사마귀인가…?”

리오는 오른 주먹으로 왼손 바닥을 탁 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나이퍼 씨, 뭔가 아실 것 같나요?”

노엘은 눈을 반짝이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머리를 세차게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촌장님, 이 근처에 허브가 자라는 장소가 있습니까?”

“허브 말이오? 허브라면 숲속 옹달샘 근처에 많이 있던데…? 아마 손녀인 아일리아가 그 장소를 잘 알 거요. 동네 처녀들이랑 자주 따러 가지요.”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저… 죄송하지만 허브가 있는 장소로 절 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부탁입니다.”

그러나 아일리아는 케톤을 보는 시선과는 다른 차가운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투도 꽤나 냉정했다.

“꽤나 단도직입적이시군요. 그러나 당신을 어떻게 믿고 그런 깊은 곳까지 안내해 드리지요? 케톤 씨와 함께라면 몰라도 다른 남자와 단둘이 가는 것은 거절하겠어요. 당신이 아무리 케톤 씨와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라도 떠돌이 기사라면 그런 깊은 곳에서 언제 사고를 치고 도주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요.”

그 말을 들은 리오는 황당한 표정으로 아일리아를 바라보았고 일행뿐만 아닌 아일리아의 가족들까지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머니인 클로렌스는 당황한 듯 아일리아를 타이르려 했다.

“아일리아! 처음 뵙는 손님에게 그런 말버릇이 뭐니! 어서 사과드리려무나!!”

그러나 아일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리오는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사람 믿기를 싫어하는군요 아일리아 양. 내일 아침에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하지요 노엘 선생님, 전 나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리오는 망토를 추스르며 일어섰고 말리는 케이를 뒤로 촌장의 집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케톤도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촌장님, 그리고 아주머니. 전 밤이 늦었으니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케톤은 아일리아를 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일리아는 벌컥 일어서며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의 동생 셋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일리아의 방문을 바라보았고 클로렌스는 슬픈 표정으로 일행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 자식 때문에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었군요. 제발 그 애만은 탓하지 말아주세요….”

노엘은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아일리아란 소녀가 이상하리만치 모르는 남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조금 후, 일행은 오히려 사과를 하며 각자 잘 방으로 들어갔고 촌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며느리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말없이 위로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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