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66화
“…어딜 갔다 온 거죠 케이….”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무거운 것이 깔린 리오의 목소리와 머리가 잘린 가브, 쓰러진 테크를 번갈아 바라보던 케이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 전 전방을….”
“똑바로 말해!! 저 샐러드에게 가브가 파헤쳐짐을 당했는데 전방 어쩌고 할 자격이 있나!! 내가 왜 당신을 테크, 가브와 함께 조를 편성했는지 알아!! 가브와 테크 둘의 단점을 당신이 완벽히 보완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전방을 맡겠다고 멀리 떨어져 버리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지금 이 일이 장난인 줄 아나!!!”
리오의 그런 표정과 말투를 처음 대한 케이는 눈물을 머금으며 리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리오는 안색을 바꾸지 않고 테크의 후두부를 손가락으로 찔러 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한 후 옆에 온 케이를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 이 녀석에겐 가브는 이파리에게 죽었고, 당신은 많은 숫자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하지, 이 녀석의 분노의 대상은 하나면 족하니까… 그리고 당신 문제는 내일 처리하겠어.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 이 녀석들의 뒤처리가 끝나면 잠자코 날 따라오기나 해.”
“미, 미안해요 리오씨! 정말 미안해요!!”
케이가 리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의 말을 크게 했어도, 리오는 말없이 테크를 안아 올려 한 가옥의 굴뚝 옆에 눕혀 놓은 뒤 그 위에 결계를 쳐놓았다.
“… 거지들이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지요. 가옥의 굴뚝은 항상 열을 받아 따뜻하기 때문에 바람만 잘 막으면 하룻밤은 편히 보낼 수 있어요. 결계까지 쳤으니 걱정은 없겠죠.”
리오는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케이의 앞에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없었던 상황을 테크에게 말하지 말라고 가브가 말했답니다. 저 녀석이 당신을 용서했으니 저도 용서해야 하겠지요. 자, 일어나요.”
그러나 케이는 리오의 손을 쉽게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리오는 미소를 지으며 케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케이의 눈에 흐르지 않고 맺혀 있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낮게 말했다.
“자자, 이럴 상황이 아니에요. 아마 가브도 당신이 자신 대신에 이파리들을 없애고 이 도시 사람들을 지켜주길 원하고 있을 겁니다. 케이 씬 이렇게 약한 여자가 아니잖아요, 케이양이 계속 이러고 있으면 동생 레이양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이 서방 대륙에서 제일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혈육일 텐데요. 어서 일어나요.”
리오가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케이도 역시 일어섰다. 리오는 곧 아무 말 없이 가옥의 지붕으로 올라섰고 케이도 따라 지붕 위로 치솟아 올랐다.
“아직 몇 마리 남은 것 같아요, 제가 좀 빨리 이동한다 싶어도 가능한 최대로 좁혀서 따라와 주길 바랍니다.”
“자, 잠깐만요 리오씨….”
케이가 말을 막 걸려던 차에, 리오는 바람같이 다른 가옥의 지붕으로 몸을 날렸고 케이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접어 둔 채 리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곧 리오의 옆에 다가온 케이는 예전과 같은 말투로 리오에게 물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느끼실 수 있나요 리오씨?”
“예, 약간 범위가 좁은 게 흠이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있습니다. 미미하지만 약간의 요기가 그들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이죠. 예전에 제 동생에게 들어둔 것이 도움이 되는군요.”
리오의 말하는 표정을 본 케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리오씨…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이시죠?”
그 말에 리오의 표정은 잠시 굳어졌으나 그는 곧 빙긋 웃으며 대답을 했다.
“스물넷이요. 근데 왜 이런 질문을 하시죠?”
“아뇨…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세상을 훨씬 더 오래 사신 것 같아서요. 게다가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리오 씬 잘 대처하시잖아요. 여자를 다루시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신 것 같고….”
리오는 케이의 마지막 말에 얼굴을 약간 붉혔으나 그의 감지 범위에 이파리가 들어오자 표정을 굳히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저기… 잘 보이진 않겠지만 두 마리가 있어요. 맨손으론 지크가 아니면 처리하기 힘들 테니 무기를 사용하는 게 나을 겁니다.”
케이는 리오의 입에서 <지크>란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또 한 번 물었다.
“예? 지크씨가 누구신데요?”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적당히 설명하기로 생각하고 대답을 했다.
“아… 제 의형제 중 하나인데요, 일명 ‘감전된 너구리’라 불리는 녀석이죠. 별명이 맞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저조차도 그 녀석과 맨손 대결을 하면 거의 이길 수 없을걸요? 무기를 든 상황이라면 모를까.”
“…!”
케이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겨우 참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리오 정도의 사내를 맨손으로라도 능가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제 형제들 중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녀석이죠… 후훗, 그러나 머리가 약간 나쁜 편이어서 만나긴 힘들겠지만 만약 만나실 수 있다면 좀 어리둥절하실 거예요. 그렇지만 맨몸의 격투에서 그 녀석을 능가한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요. 무기 공격도 그리 나쁘진 않고… 균형으로 따지자면 가장 탁월한 녀석입니다. 아, 얘기가 길어졌군요. 저기 보이지요? 제가 왼쪽을 맡을 테니 오른쪽을 맡아주세요. 아, 무기는 있어요?”
케이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등 뒤에 손을 가져가 무언가를 꺼내는 행동을 하였고 리오는 처음에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달빛에 약 1m가량의 막대기 그림자가 나타나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아신도(阿神刀)>군요. 생각 외로 대단한 무기를 가지고 계신데요?”
케이는 리오가 아신도에 대해 알고 있자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 물으려 했으나 리오가 어느새 몸을 왼쪽 이파리에게 날리고 있자 자신도 그 보이지 않는 검을 뽑아 들며 몸을 날렸다.
“먹어라, 소나기–!!”
리오가 휘두른 디바이너는 수십여 개의 검광으로 바뀌어 이파리의 육체를 소나기처럼 덮쳐왔고 이파리는 저항할 틈도 없이 리오의 공격을 받고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었다. 케이의 공격도 숨 쉴 틈 없이 전개되었다.
“절극류 외류, <굉부 나찰참(肱斧羅刹斬)>!!”
순간, 케이의 손에 들려있던 아신도가 빛을 발하며 본모습을 나타내었고 흰색의 날이 만들어낸 거대한 검광은 이파리의 몸을 단숨에 두 동강 내었다.
“휘익~ 대단한데요?”
옆에서 잠깐 지켜보던 리오의 감탄을 들은 케이는 아신도를 다시 칼집에 넣고서 리오의 앞에 다가와 그에게 아까 묻지 못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도대체 어떻게 이 칼이 아신도인지 아는 거죠? 이 칼은 동방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거의 없다고요! 그런데…?”
그러나 리오는 어깨만을 으쓱일 뿐이었다. 케이는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오늘은 신세를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졌으니 그만 물어볼게요. 하지만… 꼭 알게 될 날이 올 거라 믿을게요.”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자신의 실수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후우… 다음부터 아는 체하지 말아야 하겠군. 큰일나겠는걸….’
“자아, 다른 곳으로 가 보자구요.”
리오와 케이는 다시 몸을 날리며 다른 이파리들이 있을 만한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