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89화
“언니… 제발 정신 차려… 응?”
라이아는 울상을 지은 채 세이아에게 말했으나 세이아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서 리오의 눈이, 리오의 몸이 마녀의 창에 의해 관통을 당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라이아… 이제 자야지? 언니랑 오렴.”
버크 부인 역시 걱정 어린 표정으로 세이아를 보며 라이아에게 말했고 라이아는 세이아를 이끌고 촌장이 마련해 준 방으로 향했다. 그들이 방으로 들어가자 버크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침실로 향하였다.
다음날 아침, 세이아는 라이아보다 일찍 일어나 버크 부인 대신 아침을 하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어제까지 보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나아진 듯한 세이아였다. 버크 부인이 젊었을 때 입었던 옷이 세이아에게 이상할 정도로 잘 맞아 버크 부인은 이젠 필요없는 자신의 젊었을 적 옷을 모두 세이아에게 주었다. 자신의 딸이 수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준다고 했던 옷이었지만 집을 잃어버린 세이아에게 옷이라도 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던 모양이었다.
“하아… 빵부터 구워야지….”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선 세이아는 거실에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앞으로 넘어질 뻔한 것을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거실의 의자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본 직후였다.
“리, 리오씨…?”
“…어, 세이아씨? 일찍 일어나셨네요?”
세이아의 목소리에 반응한 그는 막 트는 동을 등진 채 빙긋 웃어 보였다. 그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오른쪽 눈을 가린 붕대를 제외하고.
세이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리오가 오른쪽 눈을 다친 것이 자신 때문이라 질책하는 그녀였다.
리오는 닦고 있던 디바이너를 마저 닦으며 세이아에게 물었다.
“아침 하시게요? 빨리 해주세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어 배가 고프거든요.”
세이아는 리오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리오는 디바이너를 다 닦은 듯 다시 갈색 가죽질 칼집에 집어넣으며 세이아를 바라보았다.
“상처는… 괜찮으세요?”
리오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주문 덕택인지 빨리 나았군요. 후훗….”
세이아는 리오의 손을 살짝 잡으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리오는 아무 말 없이 세이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은… 역시….”
세이아가 울먹이며 리오의 눈에 감긴 붕대에 손을 가져가자 리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대보다는 붕대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냥… 이렇게 지내기로 했답니다.”
세이아는 결국 리오의 무릎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리오씨…! 제가 그때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리오씨가… 눈을 잃진 않으셨을 텐데…!!”
리오는 이럴 때 상당히 난감해한다. 여자를 위로하는 건 그리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다른 사람이 하던 대로, 세이아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사과를 해야 할 것은 저랍니다. 세이아씨의 마음을 알면서도 떠난다는 말을 했으니… 벌을 받은 거라 생각해야죠. 전 사실 이 레프리컨트 왕국의 공주이신 린스님과 함께 왕국 수도로 향하는 중이랍니다. 그분을 데려다 드리면 제 일차적인 임무는 끝이 나죠. 하루라도 더 빨리 그분을 모셔 드린다는 생각에 세이아씨에게 그만 그런 말까지 하고 말았답니다. 이제 절 이해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세이아는 얼굴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리오씨에게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리오는 속으로 욱하며 다음에 나올 말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신을…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요… 수십 년이 지나도….”
리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의 말 자체는 지금 리오를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만약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요…?”
리오의 말을 들은 세이아는 눈물 자국을 지우며 빙긋 웃은 뒤 대답했다.
“그러신다면… 저승에서라도 기다릴 거예요. 그곳에선 만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리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저 쓸쓸히 웃을 뿐이었다.
“…그전에 식사 준비부터 해주실래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전 이틀 굶었다고요….”
리오의 탄식 아닌 탄식을 들은 세이아는 아차 하며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고 리오는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위기는 벗어났는데… 이거 정말 큰일인 걸…?’
한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린스는 리오가 아무 탈 없이 빵을 삼키고 있자 자신이 먹는 것도 잊은 채 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양의 빵을 먹어 삼킨 리오는 린스의 시선을 느끼고서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살 빼시나요 공주님?”
리오가 자신을 바라보자 린스는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너… 아픈 데 참는 거지? 우리 걱정 안 시키려고.”
린스가 그런 말을 하자 노엘이나 케톤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리오를 바라보았고 빵을 계속 굽던 세이아도 흠칫 놀라며 리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걱정이 담긴 시선을 느낀 리오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되시면 직접 보여드릴까요? 그럼 옷을 벗어야….”
리오가 자리에서 일어서 상의를 벗으려 하자 린스는 깜짝 놀라며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알았어! 알았다구!! 믿을 테니까 어서 앉아!!”
리오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 앉아 식사를 다시 하기 시작했고 일행 역시 각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식사를 재개했다.
“…케톤, 여기서부터 수도까지 얼마나 걸리지?”
리오의 물음에 케톤은 입안의 음식을 다 삼킨 뒤 천천히 대답하였다.
“아주 가깝습니다. 2~3일이면 충분합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빵을 씹었고 가만히 식사를 하던 린스는 리오를 힐끗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협박에 가까운 말투로….
“…수도 정문에서 도망칠 생각하진 마. 알았지?”
그러나 린스의 진지함과는 달리 리오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노엘은 린스가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잘 먹었습니다 세이아씨. 솜씨는 변하지 않으셨네요?”
세이아는 자신을 칭찬해준 리오를 향해 조용히 웃음을 띄워주었다.
“호홋, 요리라고는 빵 하나밖에 안 했잖아요, 너무 칭찬하진 말아주세요 리오씨.”
그렇게 대화하며 웃는 둘의 모습을 보는 린스의 눈초리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물론 레이 역시 속으로 그랬지만.
<14장 [질풍노도]>
지크는 오래간만에 정오에 일어난다 생각하며 감느라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말리기 시작했다.
“후우… 잠이 늘면 큰일인데. 그건 그렇고 저 검둥이도 오늘은 엄청 자네? 평상시에 잘 땐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녀석인데?”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세면실을 나선 지크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마키가 꽁꽁 두르고 있는 이불에 손을 가져갔다.
“이봐 껌둥이, 잠만 자지 말고 일어나 보라고… 응?”
지크가 이불을 걷으려 하자 마키는 강하게 이불을 다시 끌어당겼고 더더욱 의심을 하게 된 지크는 이불 겉으로 마키의 머리를 짚어 보았다.
“…어이구, 이 녀석 자는 게 아니었잖아? 이봐! 이불 걷어봐!”
지크는 강하게 이불을 걷어젖혔고 지크의 힘에 당할 리 없는 마키는 결국 이불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불이 없어지자 마키는 결사적으로 얼굴을 침대에 묻어 버렸고 지크는 마키를 억지로 돌려 마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키는 열에 의해 얼굴이 붉어진 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 녀석 미쳤잖아!! 너 내가 암살자 되는 거 포기하라고 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암살자가 되고 싶으면 자기 몸부터 간수해야 할 것 아니야 멍청한 자식!!”
지크는 재빨리 방문을 박차고 나와 루이체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