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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06화


사람들의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악단이 연주하던 음악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천천히 짝을 지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리오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고 린스는 리오의 팔을 붙잡고 일어서며 즐거운 듯 말했다.

“자아, 자아!! 어서 일어나 꺽다리, 실력을 보여주라구!”

리오는 천천히 일어서며 린스에게 물었다.

“‥실력이라뇨?”

린스는 짓궂은 표정을 짓고 의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리오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밀며 말했다.

“그 세이아인가 하는 여자랑 예전에 춤춘 적 있었지? 프로빌리아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구, 춤 솜씨가 상당하다고 말이야.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실력 좀 보여 줘, 알았지?”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린스와 함께 여러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무도회장으로 나갔고 린스가 나오자 멀리 있던 여왕의 시선도 무도회장으로 향하였다.

“아, 린스가 나왔군요. 저 리오란 기사, 춤도 출 줄 아는가 보오?”

옆에서 보좌를 하고 있던 케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리오의 차림이 무도회장과는 어울리지 않은 데다가 리오는 오른쪽 눈에 붕대까지 감고 있었다. 한마디로 어디에서 부랑자가 불쑥 나타나 일국의 공주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고 사람들에겐 생각되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린스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린스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리오를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난‥노엘이나 다른 여자들이 꺽다리를 좋아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어‥.”

리오는 말없이 린스를 바라보았고 린스는 말을 계속했다.

“‥멋지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잖아? 아마 촌동네 여자들도 너와 일주일만 같이 다녀보면 모두랑 같은 반응을 보일 거야. 하지만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바로 너야.”

리오는 린스와 한 바퀴 회전을 하며 물었다.

“그런가요? 음‥들을 수 있을까요?”

린스는 그러자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해주었다.

“몇 번이나 말했잖아! 네가 여자들의 맘을 거부하는 이유를 난 모르겠다고 말이야. 보통 사람 같으면 흑심이라도 품었을 텐데 그런 마음도 없는 것 같고‥도저히 이해가 안 가!”

린스의 투정을 들은 리오는 빙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저 같은 사람도 하나쯤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해서요. 후훗‥.”

리오의 그런 말을 들은 린스는 곧 입을 다물고 리오에게 더욱 가까이 붙어왔다. 리오의 두꺼운 망토 앞자락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했어도 린스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리오와 린스가 능숙히 춤을 추고 있을 무렵, 지크와 미네아는 상당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지크의 자신감에 비해 춤 솜씨는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얏!”

미네아는 살짝 비명을 질렀다. 지크의 발에 채인 것이 벌써 세 번째인가. 지크는 그럴 때마다 사색이 되어 근처에 있는 리오에게 전음을 보내었고 리오는 그때마다 웃을 뿐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마!”

그러나 미네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호홋, 아니에요 지크씨. 처음 하시는 분 치고는 잘 추시는 거예요. 오히려 제가 스텝을 맞추지 못한 것뿐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미네아가 그럴 때마다 지크는 솔직히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자신의 성격상 실수를 하면 욕이라도 먹어야 속이 후련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네아는 거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있었다.


딸랑-

파트너를 바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고 린스는 아쉽다는 듯 리오를 계속 바라보며 다른 사람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리오의 옷차림과 붕대 때문인 듯 웬만한 초대 손님들은 리오와 같이 춤을 추려 하지 않았다. 리오는 할 수 없이 피식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어머, 파트너가 없으신 모양이군요 리오씨?”

리오는 자신을 부른 여자를 바라보았다. 지크와 춤을 추던 미네아였다. 리오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 후 미네아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네아가 린스보다 키가 큰 편이라 리오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으음? 지크씨와는 달리 리오씬 잘 추시네요? 할 줄 아시는 게 많으신가 보군요.”

리오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옷차림으로 볼 때 리오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리오처럼 배척을 받고 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던 지크는 의외로 다른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사실 지크도 지금 손을 잡고 있는 여자와 같이 춤을 추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금 지크와 같이 춤을 추는 여자는 분홍색 머리카락에 흰색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얼굴의 처녀였다. 지크는 그녀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생각했지만 워낙 말을 하지 않는 여자였기에 오히려 실례가 된다 생각했던 듯 아무 말 없이 춤만 추고 있었다.

“‥한 번만이라도‥이렇게 있어 보고 싶었어‥.”

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자 지크는 깜짝 놀라며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순간 으윽 소리를 내며 그녀가 겨우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속삭였다.

“세, 세상에 마키 너‥!?”

마키 역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배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미안해‥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 다 알아. 하지만‥이상하게도 밝힐 수가 없었어. 제발‥지금 이 시간만은 절 여자로 생각해 줘. 부탁이야‥.”

마키가 울려는 듯 눈시울을 붉히자 지크는 마키의 허리를 감은 손으로 그녀의 등을 살짝 치며 말했다.

“울지 마! 변장 지워진다구‥!”


어느덧 종이 다시 울렸고 지크의 손을 놓은 마키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크는 한숨을 쉬며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어머? 오빠 왜 돌아왔어, 이젠 잘 추던데.”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신 지크는 피식 웃은 뒤 루이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나가자! 오빠가 한 수 가르쳐 주지!”

지크가 그렇게 말하자 루이체 역시 씨익 웃으며 주먹으로 지크의 가슴을 살짝 치고 그와 함께 무도회장으로 나갔다.


그 무렵 리오는 레이, 베르니카와 함께 가만히 앉아만 있는 노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나가죠 노엘 선생님. 선생님이라면 린스 공주님도 절 용서해주실걸요?”

그러나 노엘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리오씨. 린스 공주님과 한 번 더 추시는 게‥어머?”

리오는 노엘의 손을 잡고 반 억지로 일으키다시피 하며 말했다.

“훗, 계속 그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앉아만 계시면 어쩝니까, 린스 공주님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라도 나오시죠. 춤 못 추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예, 알았습니다.”

노엘은 할 수 없이 나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여튼 이 남자‥여자 구슬리는 말솜씨 하나는 대단하다니까‥.’

리오는 노엘과 손을 잡은 순간 생각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예전에 소경이던 세이아씨보다 더하군‥정말 농담이 아닌데?’

결국 리오는 노엘이 어색하지 않도록 ‘보이기’ 위해 자신의 스텝을 좀 크게 했고 노엘이 리오의 발을 차는 등의 일은 덕분에 사라지게 되었다.

“어머, 춤이라는 거 생각보다 쉬운데요? 호홋‥.”

그 말에 리오는 그저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그런데‥말이 어떻게 돌았길래 제가 노엘 선생님의 애인이 된 것이죠? 그게 좀 궁금한데요.”

“예에!? 제, 제가 어떻게 리오씨와 애인 사이일 수가‥?”

깜짝 놀라는 노엘의 얼굴을 본 리오는 순간 괜한 말을 한 기분이 들었다. 노엘의 어투는 놀람 그 자체였으나 그녀의 얼굴은 기쁨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푸훗, 듣기 싫으시진 않으신 듯하군요 노엘 선생님. 하하핫‥.”

“아‥죄, 죄송합니다 리오씨, 제가 그만 실례를‥.”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노엘과 거리를 좁혔고 곧 둘은 거의 밀착 상태가 되었다. 노엘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려 하자 리오는 그녀의 허리를 두른 팔에 힘을 넣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하루만 애인이 되어 드릴까요‥?”

“네에!?”

리오는 놀라는 노엘의 목에 얼굴을 가까이하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광경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주님 때문에 너무 마음고생하지 마십시오‥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니 말입니다.”

노엘은 아차 하며 생각했다. 자신이 라세츠란 사람에게 겁을 먹는 이유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리오란 사실을 어느덧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노엘 선생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 싶군요. 제가 수도에 있는 이상 신변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때도 말씀드렸습니다. 꼭 지켜드린다고‥.”

‘이, 이 남자 진심인가?’

노엘은 순간 정신이 아찔해왔다. 하지만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 리오에게서 느껴지는 체온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저도 운이 없는 여자군요.”

“예?”

리오는 고개를 들어 노엘을 내려다보며 물었고 노엘은 빙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3년 전에‥라세츠 대신 리오씨를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텐데‥.”

“…….”

리오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노엘을 안아줄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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