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07화
무도회가 끝나고, 리오 일행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여왕에게 인사를 올린 뒤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크, 루이체, 레이와 함께 여관으로 향하던 리오는 서서히 동쪽에서 뜨기 시작하는 달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지크는 리오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뭔 걱정 있냐? 눈 하나 잃었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리오는 피식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우‥글쎄다. 아, 할 얘기가 있으니 너하고는 잠깐 밖에 있다가 여관에 들어가자. 좀 중요한 일이라서.”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는 슬쩍 자신의 앞에서 가고 있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라세츠와 접촉한 뒤부터 침울한 분위기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루이체와 레이를 먼저 들여보낸 리오는 지크에게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이번 일은 지금 네가 일하고 있던 세계와도 연관이 있어. 그것도 상당히‥말이야. 너와 내가 얼마나 일을 빨리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쪽 세계의 사람들이 연관되지 않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벨로크 공국이란 나라가 다른 나라는 침공하지 않고 군사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이 레프리컨트 왕국을 꼭 침공하려 한다는 것이야. 다른 나라는 건들지도 않고 말이지. 아무래도 이 왕국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 같으니 네가 이 수도에 남아줘야 하겠다.”
지크는 자신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알았어. 하지만 내가 꼭 있지 않아도 이 수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리오는 의아한 눈으로 지크에게 물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지?”
지크는 순간 표정을 굳히며 리오에게 뒤를 바라보라는 눈짓을 했고 리오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지크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여관 지붕의 위엔 누군가의 그림자가 우뚝 서 있었다. 그 그림자의 두 눈동자는 붉게 빛을 내었고 리오는 인상을 구기며 그 그림자 주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바이론‥!? 설마 네가 벨로크 공국의 침공을 단신으로 막아준 그 ‘고마운 기사’는 아니겠지?”
그림자-바이론은 씨익 웃으며 리오의 앞에 순간적으로 내려왔고 그의 앞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크크큭‥좀 착해지기로 했지‥. 물론 농담이야‥크하하하하하‥!”
리오는 팔짱을 끼고 바이론을 쏘아보며 말했다.
“농담도 4년 동안 배운 모양이군, 하지만 재미없어. 목적이 뭐냐 바이론.”
“크큭‥간단해, 인간들을 죽이는 게 싫증이 났거든. 이젠 붉은색이 질렸어, 녹색이나‥푸른색이 좋아. ‥크크‥안심해라, 난 1년간 이 왕국 경비병이 되어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말이야. 이 왕국의 여왕은 생각보다 인심이 좋은 여자더군. 그릇이 커‥크하하하하하하핫-!!!”
바이론의 모습은 자기 자신의 광소에 묻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고 리오는 복잡한 듯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하지만 저 녀석이라니 일단 안심은 할 수 있지. 녀석의 암흑의 힘에서 나오는 공격력만큼은 나보다도 위니까‥.”
지크는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오에게 중얼거렸다.
“‥근데 저 녀석 왜 온 거지? 설마 자기도 있다는 말 한마디 달랑 하러?”
그 말에 리오도 듣고 보니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크는 결국 웃어넘기며 리오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헤헷, 뭐든 간에. 여기 남긴 할 텐데 조건이 하나 있다.”
여관의 문을 막 열던 리오는 생전 조건이라는 것을 잘 걸지 않던 지크가 조건을 걸어오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갈 때 루이체 좀 제발 데려가!”
여관 안으로 들어서면서 리오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군‥이 녀석.’
3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던 지크는 순간 으윽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고, 리오는 또다시 놀라며 지크에게 물었다.
“‥으윽!?”
“응? 또 왜 그래?”
지크는 리오를 밀치고 급히 계단을 내려가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다른 숙박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이런!! 카루펠을 놓고 왔어!!! 갔다 올게!!”
지크는 번개같이 여관 문을 박차며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고 리오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훗‥어쩔 수 없는 녀석‥.”
리오는 하품을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엔 마키가 먼저 와서 세면을 한 듯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침대에 앉아 있었고 이유를 모르는 리오는 아무 생각 없이 마키에게 물었다.
“아, 몸은 괜찮아진 모양이군요. 우리들끼리만 가서 미안하오.”
마키는 자신에게 사과를 하며 망토를 벗는 리오를 한 번 슬쩍 바라본 후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며 그에게 물었다.
“그 녀석은‥같이 안 왔나요?”
리오는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말 찾으러 간다고 다시 성으로 갔어요. 걱정 말고 쉬시길‥.”
리오는 의자에 걸터앉은 후 망토를 덮으며 눈을 감았고 리오가 그렇게 잠을 청하자 마키는 인상을 찡그리며 리오에게 또다시 물었다.
“‥허리 안 아파요?”
리오는 눈을 감은 채 미소를 띄우며 대답해주었다.
“흐음‥숙달 돼서 괜찮아요. 손님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어쩔 수 없잖아요?”
마키는 말없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며 눈을 반짝였다. 이상하게 오늘 저녁은 잠이 안 올 것 같아서였다.
‘‥설마 내가 여자인지 내 스스로 밝힐 줄은‥.’
마키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그녀는 자신이 암살자로서는 실격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장래 희망은 다음날 아침 바로 부활하게 되었다. 눈을 잠깐 감았다고 생각하고 떴을 무렵, 이미 정신은 흐릿해진 상태였고 별빛을 반짝이던 하늘은 어느새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깜짝 놀라 일어섰을 때 지크와 형제라는 리오란 사나이는 벌써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고 지크는 밤사이에 들어온 듯 의자에 한 팔로 물구나무를 선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마키가 깨어난 것을 눈치챈 지크는 평소처럼 아침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요오-잘 잤냐 검둥이? 어젯밤엔 나 들어온 것도 모를 정도로 푹 자더라. 그렇게 자면 몸이 부어요 이 사람아, 헤헷.”
마키의 반응도 평상시와 같았다.
“흥, 상관하지 마.”
지크는 씨익 웃은 뒤 의자에서 내려와 땀을 닦으며 슬쩍 말했다.
“아, 어제 만찬에서 말이야‥.”
지크의 말을 거기까지 들은 마키는 아차 하며 얼굴을 붉혔다. 지크의 말은 계속되었다.
“‥너하고 피부만 다르지 이름까지 똑같은 여자 봤다? 신기하지??”
마키는 깜짝 놀라며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계속 말했다.
“날 언제 봤는지 한 번이라도 나랑 이렇게 있어 보고 싶었다고 그러지 뭐야? 하지만 기분이 굉장히 나빴지. 꼭 남자랑 손잡고 춤추는 것 같아서 말이야‥헤헤헷.”
마키는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너, 너 말 다 했어!”
지크는 얼굴을 닦던 수건을 왼손에 휘릭 감으며 일어서 마키에게 다가와 수건이 감긴 주먹으로 마키의 이마를 살짝 치며 중얼거렸다.
‘헤헷, 난 이런 녀석이라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네, 신데렐라씨‥.’
순간 지크의 의도를 알아차린 마키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고 지크는 휘파람을 불며 방 밖으로 나섰다.
“난 거리나 한 바퀴 돌고 온다. 아직 아침 먹으려면 한참 있어야 하니까.”
지크가 문을 닫은 지 얼마 뒤에, 마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크의 말을 되뇌어보았다.
“‥그런데 신데렐라가 누구지?”
그 무렵, 리오는 거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여관 안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건물들이 밀집한 수도라 아침 명상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산책으로 대신한 것이었다. 들어가는 길에 밖에 매여있는 거마를 본 리오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에 가까이 다가갔고 말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속으로 감탄하며 생각했다.
‘호오‥명마인데? 머리가 상당히 좋은 말이야.’
리오는 카루펠의 턱을 주먹으로 살짝 치며 말했다. 사람에게 하는 투로.
“네가 지크의 말이냐? 후훗, 난 리오라고 한다. 며칠간이긴 하지만 사이좋게 지내보자구.”
카루펠은 콧김을 한 번 뿜었고 리오는 웃으며 여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여관에서 나오고 있는 지크를 볼 수 있었고 지크는 지나치면서 리오에게 말했다.
“어이, 그 까만 머리 아가씨 1층 로비에서 얼쩡거리던데? 그건 그렇고 나 잠깐 뛰고 올 테니 그렇게 알어.”
“음? 아아‥.”
지크가 달려가는 모습을 돌아보던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관 안으로 들어갔고 지크의 말대로 레이가 양손을 모으고 몸을 약간 움츠린 채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고 공기도 차가워서 추울 텐데‥.”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레이의 옆에 앉았고 리오가 옆에 앉는 순간까지 정신이 멍해있던 레이는 깜짝 놀라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춥지 않아요? 저라면 몰라도 레이씨 같은 여자분에게는 날씨가 차가울 텐데요. 근데‥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요?”
레이는 사실 리오에게 오늘 헤어지자는 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었다. 케이가 극구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는 더 이상 리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레이는 일찍 말하게 되어서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 듯, 얘기를 시작하려 했으나 리오의 말이 훨씬 더 빨랐다.
“‥어제 레이씨에게 상당히 죄송했어요. 저도 섭섭했고‥.”
선수를 빼앗긴 레이는 눈을 깜박이며 리오에게 물었다.
“네? 무슨 소리십니까?”
“으음‥레이씨하고만 춤을 못 췄잖아요. 이것도 서방의 문물이라 레이씨께서 배우고 싶어 하신다는 걸 깜박 잊었지 뭡니까. 그리고 어제 그 라세츠란 녀석이 레이씨에게 달라붙었을 때도 그냥 말만 하고 있었고‥정말 사과드립니다.”
레이는 리오가 그렇게 나오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리오씨. 저에게 그렇게 관심 가지지 마세요.”
그러자 리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리오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그런가요‥하지만 이상하게도 레이씬 주위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시기 때문에요‥. 이상하게도 저마저 레이씨의 그런 분위기에선 제외될 수 없군요. 아, 제게 얘기하실 것 있으신 표정이셨는데, 말씀하세요.”
레이는 곧 말을 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케이가 막은 것도 아니었다. 망설임이었다.
“저어‥아, 아닙니다. 그럼 전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레이가 급히 윗층으로 올라가자,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즘따라 이상하다 생각을 한 후 자신도 천천히 윗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