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26화
다음 날 아침, 경기가 있는 리오는 지크와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물론 그들의 대기 장소는 린스를 비롯한 왕족만이 쓸 수 있는 특석이었다. 먼저 와 있던 린스는 리오가 자리에 다가오자 웃으며 반가워했으나 지크가 뒤에서 따라 들어오자 다시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지크는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어이, 동생!! 오래간만이구나!!!”
린스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리오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말리자 지크로부터 고개만 휙 돌려버렸다.
경기장에선 현재 1회의 경기가 시작 중이었다. 지크는 5회 경기, 리오는 8회 경기여서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1회의 경기는 밀어내기 장외로 싱겁게 끝나버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관중들이 조금 생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2회 경기는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왼쪽 코너엔 멀쑥하게 생긴 젊은 검사가 올라섰다. 그러나 오른쪽 코너엔 사람이 올라서지 않았다. 얼마간 기다리던 심판은 규정상 어쩔 수 없이 기권으로 하려 했으나 때마침 선수가 올라왔다. 그 선수를 본 리오와 지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바, 바이론!?”
“응? 역시 있었군 바보 녀석들‥크크크크 섬.”
둘의 외침을 들었는지, 바이론은 자신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돌아보았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행동을 하였다. 지크는 순간 화가 치밀었는지 돌로 만들어진 난간을 내리쳤고 그 밑을 받치던 기둥 하나가 간단히 부러져 나가고 말았다. 리오는 팔짱을 끼며 다시 앉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 녀석이‥?”
둘이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는 린스는 눈만 깜박거릴 뿐이었다.
바이론은 자신의 앞에 선 상대를 바라보았다. 199cm, 2미터에 가까운 큰 신장과 거기에 걸맞은 엄청난 근육질을 소유하고 있는 바이론은 서 있는 것 하나만으로 보통 수준의 전사들에겐 충분한 위압감을 주었다. 게다가 피부도 희귀한 회색이어서 효과는 더했다.
‘으, 으윽!? 뭐야 이건‥?’
바이론의 상대는 움찔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우승을 노리고 출전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1회전 탈락만은 하지 않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했던 전사였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엔 이런 단어만이 맴돌고 있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곧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바이론은 자신의 검, 다크 팔시온을 빼들며 젊은 전사를 향해 중얼거렸다.
“살겠느냐, 죽겠느냐‥?”
바이론이 칼만 뽑고 그냥 서서 자신에게 말만 하자 그 전사는 이상한 자신감을 얻은 듯 검을 들고 바이론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본 지크와 리오는 자신들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공주에게 말했다.
“‥끝나면 불러주세요 공주님.”
타악!!
“허억!?”
힘껏 달리던 그 전사는 바이론에게 어느 순간 머리를 잡혀 공중으로 들려졌고 바이론은 사악한 웃음을 띄우며 그 전사를 자기 앞으로 옮긴 후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크크큭‥길거리 같았으면 여기서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을 텐데‥내가 너무 착해진 것 같지 않나? 크크크크큭‥! 기회를 한 번 더 주마, 살겠느냐, 죽겠느냐?”
완전히 겁에 질린 그 전사는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대답했다.
“사, 살겠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바이론은 씨익 웃으며 멀찌감치 자신들을 보고 있는 심판을 돌아보았고 심판은 흰 깃발을 왼손으로 들어 올리며 종을 울렸다. 기권패라는 소리였다. 이유를 모르는 관중들에게선 드디어 야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아, 집에 가거라 얼간이. 크하하하하핫–!!!”
바이론은 잡고 있던 젊은이를 내던지며 소리쳤고 젊은이는 머리를 잡혀 들어 올려지고 내던져진 치욕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치듯 선수 대기실로 뛰어갔다.
경기 끝의 종소리를 들은 리오는 한숨을 쉬며 아직도 눈을 가린 상태로 공주에게 물었다.
“‥그 얼간이 어떻게 됐습니까? 머리가 뽑혔나요, 아니면 곤죽이 되었나요?”
린스는 눈을 가리고 있는 리오의 손을 탁 치며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던져졌을 뿐이라고!! 겁은 많아가지고‥.”
리오와 지크는 동시에 눈을 뜨며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엔 혈흔조차 있지 않았다. 지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기적이야!! 아까 붙잡힌 얼간이는 정말 신의 가호를 받은 녀석일 거야!!”
리오조차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들의 고민이 심해져 갈 무렵 다음 경기가 시작되었다. 루카라는 이름의 검사와 한 야만족 전사의 대결이었는데, 생각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여서 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저놈이다.”
리오는 야릇한 미소를 띄우며 지크를 향해 중얼거렸고 지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같군. 만만한 대결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 뚱보를 가지고 놀고 있어.”
둘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누기 시작하자 린스는 이상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봐! 사람 뒤에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리오는 조용히 린스를 돌아보았고 린스는 순간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리오의 표정이 굳어져 있어 그런 것이었지만 리오는 곧 한숨을 쉬며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공주님이시니까 기밀 사항은 알고 계셔야겠죠. 지금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저 검사 말입니다, 웃옷 벗은 야만족 전사 말고요. 사실은 인간으로 변장한 12 신장, 천공의 루카입니다.”
린스는 순간 경악을 했고 리오는 린스가 소리치기 전에 미리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 녀석 한 명만 온 게 아닙니다. 열두 명 모두 왔죠. 하지만 저와 지크가,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바이론 녀석까지 함께 이 대회에 참가했으니 어찌 보면 이 왕국 사람들에겐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공주님께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구경만 하십시오. 1대 1의 전투에서는 거의 지지 않으니까요.”
“하긴 그렇지‥크크크크큭.”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들려오자, 리오를 비롯한 셋은 모두 문쪽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누군가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회색의 피부, 바로 바이론이었다.
“‥여기까진 뭐하러 올라왔지?”
리오는 바이론을 쏘아보며 물었고, 바이론은 린스의 옆 의자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크큭‥별거 아니야. 나와 협상을 하지 않겠나, 리오?”
리오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협상? 후‥네놈도 그런 단어를 알고 있었는가? 하긴, 계약에 따라 움직이는 녀석이니 계약 기간 동안은 배반당할 염려는 없어 신용은 있겠지. 그래, 무슨 협상이냐 바이론?”
둘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린스는 자신의 옆에 앉은 바이론을 피해 멀찌감치 도망치듯 자리를 옮겼다. 지크는 바이론의 모습은 보고 있지 않았으나 얘기는 듣고 있었다.
“‥이 경기에 너희들 말고 참 재미있는 녀석들이 참가했더군. 12 신장인가‥? 크큭, 어차피 여왕과의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으니 서비스로 그 녀석들을 청소해 주려고 여왕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참가했다. 아마 여왕도 알고는 있을 거야, 공주 마마가 가서 떠벌릴 필요는 없어, 크하하하하하핫‥.”
‘으윽‥!’
린스는 바이론의 웃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바이론은 얘기를 계속했다.
“크큭‥없애는 건 네가 말한 대로 1대 1의 상황이니 그리 어렵진 않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난 준준결승전에 지크 녀석과 붙어야만 하지. 그것 때문에 협상하려고 온 것이다.”
지크는 여전히 경기장에 시선을 둔 채 바이론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빈혈 남자.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자고?”
바이론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크큭, 비슷하다‥. 어차피 그때 우리가 싸워봤자 좋을 건 12 신장 녀석들뿐이야. 그러니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는 것도 괜찮겠지.”
리오는 가만히 바이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건은 뭐냐?”
바이론은 돌아보고 있는 리오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나지막이 말했다.
“간단하다. 크크크크큭‥아쉽지만 무료다. 대회 기간 동안 우리가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크크크크큭‥.”
리오는 솔직히 놀랬다. 철저히 계약에 의해 움직이는 바이론이 그런 간단한 조건을 내걸 줄은 상상도 못한 탓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리오는 피식 웃으며 바이론에게 말했다.
“후, 그럼 내가 조건을 걸어도 될까?”
바이론은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크후‥뭐든지, 죽으라는 것 빼고는 다 들어주지.”
지크와 린스는 조건을 내건 리오를 슬며시 돌아보았고 리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