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15화
“–!!”
린 챠오는 순간 숨을 멈추며 자신의 코트 주머니 안에 숨겨진 길이 50cm가량의 대형 나이프를 꺼내었다. <틸·니켈>이란 특수 합금으로 만든 대 바이오 버그 전용 나이프였다. 바이오 버그들 중에선 웬만한 총탄으로는 관통할 수 없는 두꺼운 피부를 가진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접근전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BSP에겐 모두 <틸·니켈> 나이프가 지급되었다. 물론 무명도가 있는 지크에겐 제외였다.
치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BX-03의 긴 조족(鳥足)형 양 다리에 불꽃이 튀겼고 챠오는 벽을 밟고 공중으로 튀어 오르며 BX-03을 뛰어넘어 반대쪽에 착지했다. 챠오를 이미 포착한 상태인 BX-3은 돌아서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고, 그 순간 BX-03의 다리 기동용 유압 파이프에서 기름이 분출되었다. 그 바람에 유압이 떨어진 BX-03의 다리는 힘없이 주저앉았고, 이동 불가능이 되어버린 BX-03은 고철 덩이에 불과했다.
“후우‥.”
챠오는 조심스럽게 호흡을 조절하며 나이프를 다시 코트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너무 이른 행동이었다.
철컥–
무언가 장전되는 소리에 챠오는 반사적으로 뒤를 향해 공중제비를 돌았고, 그녀가 있던 자리엔 무수한 총탄이 퍼부어졌다. 챠오는 몸을 재빨리 움직이며 BX-03의 수를 확인해 보았다. 총 세 대였다. 이동 불가능이 되어버린 것까지 합하면 모두 네 대. 자신이 쓰러뜨린 군인들의 숫자와 같았다.
‘한 명당 하나씩 연결이 되어 있었나‥어쩌지, 셋은 나 혼자서 무리일지도‥.’
챠오는 몸을 피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붉고 둥근 환(丸)을 다섯 개 꺼내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앞 2m 떨어진 지점에 그 약재 구슬들을 던졌고 바닥에 떨어진 구슬들은 사방으로 작열을 하며 폭발했다. 열기를 이용해 BX-03의 적외선 추적 장치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BX-03의 총격은 멈추었고, 챠오는 있는 힘을 다해 거리를 질주했다. 챠오의 100m 비공식 기록은 5.73초, BX-03의 추적 가능 범위를 벗어나기엔 충분한 속력이었다.
파앙–!
“헉–!?”
순간, 챠오는 멀리서 들려온 산탄총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챠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상당한 자신의 다리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작은 납탄이 두 개 정도 박힌 것뿐이었다. 탄이 박힌 반대쪽 피부에 손을 댄 챠오는 기를 강하게 분출해냈고, 그 힘으로 근육에 박힌 납탄 두 개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어떻게 내 위치를‥!!”
챠오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BX-03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만든 열기의 벽을 뚫고 BX-03들이 고속 이동용 호버 제트를 가동하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탄을 빼긴 했지만 근육이 어느 정도 상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까와 같은 움직임은 무리였다. 챠오는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나이프를 빼들고 몸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엿차–!”
그때, 누군가가 기합성과 함께 챠오를 들어 안고 빠르게 골목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챠오는 깜짝 놀라며 자신을 안은 사람을 돌아보았다. 지크가 씁쓸한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널 이렇게 구해주는 게 몇 번째더라‥기억도 안 나네. 근데 몸이 좀 가벼워진 것 같아, 예전엔 좀 무거웠는데‥. 아, 내려줘야 또 잔소리를 안 듣겠군.”
지크는 그녀를 내려주었고, 챠오는 벽에 기대며 인상을 약간 쓴 채 지크에게 물었다.
“‥저 로봇들이 어떻게 적외선 교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지크는 자신의 장갑을 천천히 조이며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아, 그거? 너 BX-02하고 저걸 착각했나 보구나. BX-02는 추적 유닛이 적외선 추적 하나여서 교란탄 두 개면 열 대의 로봇이 무용지물로 변했지만, BX-03은 레이저 추적 장치와 가시적 추적 장치가 붙어 있어서‥.”
지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BX-03 한 대가 빠르게 지크와 챠오가 있는 골목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크는 기다렸다는 듯 순간 파괴력 19톤의 스트레이트를 로봇의 몸체 중앙에 직격시켰다.
투웅–!!!
지크의 스트레이트에 BX-03가 뒤따라오던 다른 두 대와 충돌하며 간단히 나뒹굴었고, 세 대를 한꺼번에 처리한 지크는 다시 챠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부수거나 완전히 분리되는 은폐물이 있지 않는 한 계속 따라다닌다구. 무기 정보엔 변하지 않고 약하구나 넌.”
“‥흥.”
챠오는 상처를 지혈하며 별 표정 없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조금 후, 넬이 헐레벌떡 지크와 챠오가 있는 골목으로 뛰어왔다.
“선배님들, 괜찮아요? 앗, 챠오 선배님 부상!!”
그러자, 지크는 피식 웃은 뒤 넬의 짧은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괜찮아, BSP 한국 지부 ‘미스터 우먼’이 다름 아닌 바로 쟤니까. 안 그래 챠오? 헤헤헷‥그럼 천천히 우리를 따라와. 납탄에 당한 상처는 꼭 치료해야 하니까 말이야. 자, 가자 넬.”
지크가 별다른 행동 없이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꼽고 길을 걸어가자, 넬이 순간 지크의 벨트 뒤를 잡고 양손으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욱–!! 왜 그래 꼬마!!”
지크는 순간 조여지는 바람에 충격을 받은 복부를 매만지며 넬을 바라보았고, 넬은 실망했다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아무리 챠오 선배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부상을 당했잖아요!! 게다가 여자구요! 어떻게 손 한 번 내밀지도 않고 갈 수가 있어요!!!”
그러자, 지크는 검지 손가락으로 넬의 머리 꼭대기를 짚으며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다음에 나올 반응이 뻔하다는 것을 알거든. 해 볼까? 어이 챠오, 내가 부축해 줄게.”
그러자, 벽을 짚은 채 천천히 걷고 있던 챠오는 눈썹을 찡그리며 지크에게 말했다.
“도움은 필요 없어.”
그 말이 나오자,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넬을 바라보았다.
“거 봐. 내가 쟤하고 1년 가까이 같이 일한 사람인데 왜 이 반응을 모르겠니.”
“어머머머머? 그래도 그렇지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지크 선배가 챠오 선배를 부축 안 해주면 전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넬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렇게 선언하자, 지크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지크는 우연히 챠오가 다리의 지혈을 위해 묶은 손수건을 볼 수 있었다.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상처가 깊은 모양이었다. 지크는 결국 한숨을 푸욱 쉬며 챠오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귀여운 후배를 위해 오늘만은 좀 강제적으로 행동해야 하겠어.”
챠오는 아무 말 없었다. 지크는 곧 챠오를 안아 올렸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벼워졌다는 말은 취소야.”
“바라지도 않았어 바보.”
“쳇, 입은 살았군.”
“너야말로 시끄러워.”
계속 서로 투덜대며 가는 지크와 챠오의 살짝 찡그려진 표정과는 반대로, 그들을 바라보는 넬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거 봐 언니!! 저 사람 또 누구를 데리고 들어왔잖아!!!”
티베가 챠오를 데리고 들어온 자신을 보고 또 소리를 지르자, 지크는 인상을 찡그린 채 뒤따라오던 넬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넬, 그거 드려.”
“예!”
티베는 인상을 찡그린 채 넬이 자신에게 주는 물건을 받아들었다. 저칼로리의 레몬 아이스크림 한 통이었다. 티베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이기도 해서 티베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며 지크에게 말했다.
“‥뇌물이 통할 것 같아요?”
그러자 지크는 챠오를 내려놓으며 그럴 리가 있냐는 얼굴로 말했다.
“어허‥그거 드시고 머리 좀 식히시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답니다. 나중에 시집 잘가려면 자제할 줄도 아셔야죠.”
그러자, 티베는 발끈하며 아이스크림 통을 옆에 낀 채 다시금 지크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봐요! 내가 언제 당신에게 내 장래 문제 생각해 달라고 그랬어요!”
“‥그래도 아이스크림 통을 내던지지 않는 걸 보면 먹고는 싶었군요. 나중에 천천히 얘기합시다. 제발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티베는 별말 없이 지크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때, 다리를 절며 바이칼이 예전에 쓴 방으로 가던 챠오가 묵묵히 중얼거렸다.
“‥기세만으론 BSP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