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39화
드래곤의 모습을 한 채 리오가 두들겨 맞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바이칼은 한숨을 쉬며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변한 후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하긴, 기를 읽을 수 없으니 상대의 수준도 모르겠지. 지금 자신이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모르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에도 리오는 건물 사이를 옮겨가며 계속 충격을 받아갔고, 주위의 빌딩들 역시 엉망으로 변해갔다. 반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리오는 계속 공격당했고, 그 수수께끼의 여성은 여유 있게 리오를 공략해 갔다.
“크아악–!!!”
공중에서 공격을 받고 리오는 도로를 향해 떨어져 버렸고, 리오와 그 수수께끼 여성의 전투로 인해 비상이 걸려 주차해 있던 컨테이너 위에 충돌하며 아스팔트 바닥으로 튕겨져 나갔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리오는 검에 의지하며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리오를 공격한 후 가로등 위에 살며시 앉은 그 여성은 쿡쿡 웃으며 리오에게 말했다.
“자아, 힘은 좀 빠지셨나요? 그 정도면 당신이 안전 주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푼다 해도 저에게 손찌검을 하실 수는 없을 것 같군요. 호호호홋‥. 어쨌든 의외군요. 기만 숨긴 채 당신하고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린라우님의 말이 진짜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후훗‥. 힘이 빠진 최강의 가즈 나이트란 정말 볼만 한데요?”
“‥난 많이 봐서 재미가 없군.”
순간, 그 여성은 자신의 정수리에 느껴진 금속의 감촉에 흠칫 놀라며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엔 군청색 머리의 차가운 표정을 가진 청년, 바이칼이 자신의 검 드래곤 슬레이어의 날을 그 여성의 정수리 위에 살짝 얹어 놓고 있었다. 바이칼은 표정의 변화 없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날 끝으로 그 여성의 윗머리를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을 만큼 살살 쓸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머리가 좀 나빠‥그래서 자신의 힘이 빠진 걸 잠시 잊어 먹을 때가 있지. 그걸 좀 주의해 주려고.”
바이칼이 칼을 거두자, 그 여성은 의외라는 듯 자신의 큰 눈을 반짝이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호오‥그냥 말만 하실 것인가요? 전 상대가 바뀐 줄 알았는데요? 호호홋‥.”
그 여성의 말에 바이칼은 조용히 답했다.
“‥나에게 온 선물이 아니니까 필요 없어. ‥상관해 봤자 너 정도는 지루해.”
바이칼은 그렇게 말을 흘리며 다른 건물 위로 올라갔고, 그 여성은 자신의 윗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은 뒤 다시 리오가 있는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리오는 아직도 검에 의지한 채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아직 바보가 되진 않은 것 같군요, 호홋‥.”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리오는 씨익 웃으며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피가 묻어 조금 엉킨 자신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대충 정리한 리오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기 시작했다.
“‥바보가 된 게 아니고 지금까지 잠깐 바보였었다. 여기서 상대 같은 상대를 늑대 한 마리 밖에 만나보지 못했거든? 그래서 전투 감각이 좀 녹슬었나 봐. 자아, 다시 덤벼봐. 이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끝났으니까.”
슛–
“진짜로요?”
엄청난 스피드로 리오의 후방에 나타난 그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말과 함께 리오에게 공격을 가했다. 리오는 다시 그 공격을 맞고 앞으로 날아가 버렸고, 리오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그 여성은 괜히 놀랐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머?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면 어떡하세요? 전 또 당신께서 갑자기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줄 알았잖아요?”
앞으로 날려가 한 옷가게 안에 처박혔던 리오는 다시금 일어나며 도로로 나왔고, 비틀거리며 희미한 눈으로 그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순간, 다시금 그 여성의 손이 리오의 머리를 잡았고, 그녀는 곧바로 다른 매장 안에 리오를 앞세우고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몇 개의 상가 벽을 뚫고 결국 벽에 처박힌 리오는 팔이 풀린 듯 가지고 있던 엑스칼리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리오의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을 느낀 그 여성은 웃으며 리오의 얼굴을 잡은 손을 놓았고, 리오는 스르륵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여성은 웃으며 리오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후훗, 이제 당신은 적당히 처리가 되었으니 당신의 동료들을 처리해야 하겠네요. 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후면 편안해지실 겁니다. 그때까지 좀 주무시길‥호호호호홋.”
곧 고개를 돌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녀는 거의 꺼져가던 리오의 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리오가 다시금 검을 잡고 일어서며 자신을 희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더더욱 전율케 한 것은 그의 기가 겨우 몸을 움직일 만큼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상상도 못할 만큼 빠르게 증진되기 시작한 직후였다. 리오는 망토를 벗은 후 아대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적당히 날 가지고 놀려 먹으려 했다면 아쉽군 아가씨. 어쨌든, 좀 안마를 당한 덕분인지 옛날 누구 때문에 좀 버렸던 성질이 다시 살아나는군.”
리오는 씨익 웃으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고, 그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엑스칼리버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몇 바퀴 회전을 한 후 리오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검의 자루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좋아, 귀여운 녀석. 이젠 말을 잘 듣는구나. 자, 해볼까?”
그 직후, 리오의 몸에선 붉은색의 싸늘한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고, 그의 어깨는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 역시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리오를 보며 수수께끼의 여성은 이상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호텔 안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던 루이체는 바이칼이 표정 없는 얼굴로 다시 창문에서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매달리며 리오의 소식을 물었다.
“바, 바이칼! 리오 오빠는요, 괜찮은 거예요? 아까 기가 거의 끊기는 것까지 느꼈었는데‥.”
바이칼은 묵묵히 냉장고를 향해 걸어가 안에 들어있는 찬 물을 한 모금 들이킨 후 짧게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루이체에게 대답했다.
“얻어 맞았지. 그 다음 상황은 나도 몰라.”
그러자, 루이체는 그런 대답이 어디 있냐는 듯 바이칼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친구끼리 그래도 되는 거예요?”
500ml 병 안에 든 물을 다 마신 바이칼은 옷을 평상복으로 바꾼 후 침대에 누우며 중얼거렸다.
“관심없어.”
“‥그런‥!! 그럼 내가 나갈 거야! 리오 오빠가 당하는 것을 안 이상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 없어!!!”
루이체가 복장을 바꾸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자, 바이칼은 옆으로 돌아누워 이불을 덮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네가 나왔다고 해서 뽀뽀라도 해줄 것 같나? 동생이라면서 오빠라는 녀석의 성질을 그렇게 모르다니‥. 난 쉴 테니 나중에 숙소를 옮길 시간이 되면 깨워.”
바이칼의 말을 들은 루이체는 가만히 바이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본 프시케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루이체에게 다가와 그녀를 다독거려주며 말했다.
“‥바이칼님의 말씀은, 리오님의 전투는 리오님 스스로 해결해야 가즈 나이트로서의 그분 자존심을 건들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친구분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바이칼님의 마음도 그렇게 편하진 않으셨을 거예요. 그렇죠 바이칼님?”
바이칼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프시케는 빙긋 웃으며 루이체에게 계속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리오님이 그렇게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았어요‥.”
루이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