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55화
그날 밤은 구름이 많이 낀 만월이었다.
다시 옷을 챙겨 입은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들고 방문을 나섰다. 그때, 연습을 한 듯 사바신과 레디도 각자의 방에서 슈렌과 동시에 나왔고, 슈렌은 조용히 바이론의 방문을 돌아보았다. 방문은 벌써 열린 지 오래였다.
“‥바이론은 당연히 북쪽을 맡을 테니 난 남쪽을 맡겠다. 둘은 알아서 정해.”
그 말을 남긴 슈렌은 라이아의 방 쪽으로 간 뒤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라이아는 비단이불을 덮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라이아가 자는 것을 확인한 슈렌은 곧바로 문을 닫은 후 밖으로 나섰고, 그 모습을 본 사바신과 레디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상한 버릇이 있었군‥어쩐지 성인 여자들에겐 눈도 안 돌린다 했어.”
“아니야, 한 번 믿어보자 사바신. 슈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안 나갈 건가.”
그때, 슈렌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둘은 혼비백산하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슈렌은 덤덤히 귀빈관을 나선 후 성의 남쪽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한편, 성의 북쪽 숲.
“이봐라, 선발대는 어떻게 되었나.”
2m가 약간 안 되는 신장을 지닌 야만족의 족장은 노루의 생고기를 씹으며 부하에게 물었고, 그의 오른팔 같은 역할을 하는 부하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소식은 오지 않지만 곧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귀들의 요술에 힘입어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의 병사들에게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족장님.”
족장은 고기를 다 먹은 듯 씹고 있던 노루의 다리를 집어 던지며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의 북쪽 문이 마귀족과 결탁한 야만족의 눈에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근처의 소나무 숲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족장은 굵디굵은 팔을 위로 치켜올리며 야만족 전사들을 멈추게 했고, 그들은 곧 천천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어둠 속에서 뭔가가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달이 구름에 가린 탓에 사람인지 짐승인지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만은 구별할 수 있었다.
“사, 살려줘!!!! 살려줘!!!!!!! 으히아아아아아악–!!!!!!!!”
야만족 언어로 된 끔찍한 비명이 야만족들의 귀를 찡하게 때렸고, 야만족들은 급히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무기를 거머쥔 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소름이 돋을 듯한 광기 어린 목소리가 야만족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크‥사람의 피 냄새를 오래간만에 맡아 보니 즐겁군‥크흐흐흐흐흣‥더 소리를 질러봐, 재미가 없잖아? 너희 동료들도 구경하러 와 줬는데 말이야‥.”
어둠 속에서, 엄청난 키의 사람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 그림자는 붉은색의 안광을 뿜어내며 자신에게 달려온 야만족들을 바라보았다. 곧, 운이 없게도 달을 가렸던 구름이 걷혔고 그와 동시에 앞 열의 야만족 전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뒹굴었다. 달빛과 같은 회색의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괴인이 피부 가죽이 벗겨진 채 쓰러져 있는 야만족의 선발대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괴인의 왼손엔 피부 가죽의 반이 날아가 처참한 몰골이 되어 있는 야만족 젊은이가, 오른손엔 막 벗긴 듯 김이 나는 갈색 피부 가죽이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야만족 족장은 자신도 모르게 소변을 흘리며 뒤로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다른 야만족 전사들 역시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회색 피부의 괴인, 바이론은 손에 든 야만족과 피질을 내 던지며 자신을 보고 있는 야만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크크크‥내가 무서운가? 괜찮아, 솔직히 말하라고‥어차피 결과는 동료들과 똑같을 테니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핫–!!!!!!”
바이론이 웃음 소리와 동시에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대자,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던 야만족들은 지지 않겠다는 듯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 후, 그들은 족장과 함께 숲을 달려 성의 북쪽 문으로부터 멀리 사라져 갔다.
바이론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렸다.
“크팰‥1차 방어는 성공인 것 같군‥크흐흐흐흐흐흐흣‥.”
광기 어린 미소와 함께, 바이론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갔다. 남은 것은 처참히 살해당한 야만족 전사들의 시신뿐이었다.
남쪽 성문에선 일명 마귀라 불리우는 흉측한 몰골의 존재들이 성벽과 성문에 달라붙어 성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병사들은 화살 등을 쏘며 마귀들을 공격했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마귀들에 의해 뒤를 공격당하는 바람에 성벽을 방어하는 병사들은 거의 전멸 직전이었다. 2차 방어를 맡은 수비대 보병 부대는 약간 기세가 질린 상태로 자신들에게 돌격해 오는 마귀들을 바라보았다. 수비 대장 전한곽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아니 어째서‥왜 하필 오늘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마귀들이 침입을 하는 것이지? 다른 때는 성 밖에서만 난동을 부리고 가더니‥허 참‥!! 자, 온다 병사들아!! 모두 온 힘을 다해 싸워주길 바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마귀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고, 수비 대장은 부적들을 꺼내며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발(發)‥! 방령진(防靈陣)–!!!”
수비 대장의 손에 들려 있던 부적들은 곧 굉음을 내며 마귀들에게 날려가기 시작했고, 부적들은 마귀들의 몸에 하나씩 붙어 마귀들의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그사이 병사들은 무기인 짧은 칼 등으로 움직임이 봉해진 마귀들을 손쉽게 처리해 갔다.
하지만 부적술도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마귀들은 거의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기어 올라왔고 결국 제2 수비대도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정신력을 소모하느라 꽤 지친 상태인 수비 대장은 눈을 움찔거리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라!! 제3 수비 진형이 아직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가 완전히 물러서면 남문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의 문들도 위험해진다!!! 죽기 살기로 싸워라!!!!”
그때, 수비 대장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건드렸고, 수비 대장은 순간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말하자면 죽을 각오로 휘두르는 것이었다.
“하아아앗–!!!!”
그러나, 수비 대장이 사력을 다해 휘두른 검은 수비 대장의 어깨를 건드린 남자의 손가락에 간단히 잡히고 말았고, 그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수비 대장에게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뒤로 가서 쉬시오. 여긴 내가 맡겠소.”
그러자, 수비 대장은 검을 즉시 거두며 수비를 맡기라는 그 푸른 장발의 사나이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당신이 아무리 적사자대를 단 2합만에 날려 보냈다고는 하지만 저 녀석들의 수는 농담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자, 사나이–슈렌은 새까맣게 몰려오는 마귀들을 보며 덤덤히 중얼거렸다.
“‥30명 이상은 되겠군요‥.”
“무, 무슨‥!?”
놀라는 수비 대장을 뒤로하며, 슈렌은 병사들보다도 더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곧 염창 그룬가르드와 슈렌의 몸에선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슈렌은 말없이 손에 든 그룬가르드를 놓았고, 그룬가르드는 슈렌의 옆에 붕 떠올랐다. 그 상태에서 그는 양손에 기염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염살진법(炎殺陣法)‥제4식 귀살진(鬼殺陣)‥.”
이윽고 그의 양손에선 엄청난 크기의 염탄(炎彈)이 생성되었고,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마귀들과 뒤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슈렌을 지켜보던 수비대의 눈동자는 사람의 반 정도 지름을 가진 염탄에 정지했다.
“세, 세상에‥!?”
수비 대장 역시 입만 벌린 채 놀라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