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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87화


식사를 일찌감치 마친 휀은 혼자서 자신의 코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고, 그가 나가자마자 린스는 인상을 팍 쓴 채 슈렌을 팔꿈치로 툭툭 건들며 그에게 물었다.

“이봐, 저 녀석 도대체 어떤 인간이야? 그 검은 머리 난폭자가 꼼짝도 못하는 걸 보니 강하긴 한 것 같은데‥.”

그러자, 슈렌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은 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천천히 말해주기 시작했다.

“‥리오는 가즈 나이트 중 힘만으로 최강입니다. 하지만‥휀은 모든 세계에서 싸운 이래 그를 이긴 자가 신 외엔‥그것도 고급 신 외엔 없었던 ‘불패’의 가즈 나이트입니다. 리오와 정식으로 만난 일은 4년 전‥.”

그때, 슈렌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린스가 빨리 말하라는 듯 눈빛으로 재촉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4년 전입니다. 강하긴 리오가 더 강할지 모르지만 경험에서의 차이로 인해 리오가 휀을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꼭 비유를 하자면‥다이아몬드 원석과 고도로 숙련된 세공사에 의해 다듬어진 루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신이 아니면서 그와 무승부를 낸 존재는 단 한 명, 어둠의 가즈 나이트 바이론 뿐입니다. 제가 처음 가즈 나이트가 되어 신계로 갔을 때‥그때 휀은 선신 계열 대 천사장 벨제뷰트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악마 벨제뷰트와 이름만 같은 천사지요. 그냥 친선 대결이었지만‥휀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그때, 마법서 등으로 천사장이라는 존재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던 노엘과 로드 덕은 눈썹을 움찔거렸고, 슈렌은 그때의 상황을 얘기해 주기 시작했다.


…………

벨제뷰트는 손에 묻은 자신의 광혈(光血)을 손으로 매만지며 자신의 앞에 플랙시온을 들고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서 있는 휀을 바라보며 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네 녀석‥!!!”

중성적 존재라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 못하게 생긴 선신 천사들의 흰 얼굴들은 더욱 희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자신들 중 최강이자 신계 내에서 공포의 존재라 불리우던 벨제뷰트가 단 세 번의 공격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곧 휀의 승리를 알리는 호른 소리가 들려왔고, 휀은 주신이 있는 쪽으로 빙글 돌아서며 뒤에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벨제뷰트를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약하군. 불쾌할 정도로‥.”

그 말까지 들은 벨제뷰트는 결국 힘없이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

“‥하지만 휀은 신계에서도 표면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그냥 ‘강하다’라고만 기억되어 있습니다.”

슈렌의 그 설명에, 노엘과 로드 덕은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의 강함을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으실지도‥.”

슈렌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마마, 적의 침입이옵니다!! 야만족들이 마귀들과 연합해 도성의 북쪽으로 진군해 오고 있사옵니다!!!”

대신들과 조회(朝會: 아침 회의)를 하던 중이던 청성제는 근심 어린 한숨을 내쉬었고, 소식을 전해온 궁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적의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그, 그것이‥병사에 의하면 분명 쳐들어오고 있는 것이 맞긴 하나 숲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눈으로만 봐서는 대략 6천 명 정도라 하고, 마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에 보통의 병사들로는 방어하는 것이 고작일 수 있다고 북문 수비 대장이 말했사옵니다.”

그러자, 청성제는 알겠다는 듯 자신의 왼쪽에 열을 지어 앉은 무관 대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으시오, 성 내에 있는 군사들로 팔봉진(八鳳陣)을 쳐 우선은 방어에 주력하도록 하고, 선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연합한 마귀들을 소탕할 수 있게 하시오. 사건 정중과 적사자대 등의 특수 부대는 본성 방어에 주력하도록!”

“예!!”

성 안에서, 밖에서 한참 소란이 일어나는 동안, 휀은 조용히 성의 광장 중앙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서 병사들이 뛰어다녀도, 집합을 해도 소리를 질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겐 오직 하늘 뿐이었다.

“큰일 났다!!! 마귀들이 북쪽 성문을 갉아먹고 있다!!!!”

그때, 한 병사가 땀에 흠뻑 젖은 채 뛰어오며 소리쳤고, 집합한 병사들은 불안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휀은 하늘에서 움직이는 구름만을 감상할 뿐이었다.

“보세요 휀·라디언트님!! 당신 가즈 나이트가 아니십니까?”

휀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몸을 움직여 자신에게 소리친 사람을 돌아보았다. 휀의 기억으로는 가희라는 이름의 공주 또는 케이로 되어 있는 여자였다. 케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휀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시당한 것과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화가 폭발한 케이는 휀의 앞으로 돌아가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바이론님이 분명 당신에게 이쪽의 일을 맡기셨지 않습니까!! 이오스 신께서 바이론님에게 부탁하신 일이지만 그것을 맡으신 이상 어떤 행동이라도 취해주셔야지요! 그러고도 당신이 기사입니까!!!”

그러자, 휀은 케이를 흘끔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건가.”

“‥!!!!”

그러자, 케이는 허망한 얼굴로 휀을 바라보았고, 휀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케이의 옆으로 슬쩍 돌아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백색 배틀 코트를 입으며 북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뭐, 좋을 대로‥. 살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니까‥.”

케이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중얼거리며 북문 쪽으로 걸어가는 휀의 모습을 무서운 눈으로 쏘아볼 뿐이었다.


「키카카카카카캇‥!!! 어서 녹여라!! 침을 더 발라!!! 이까짓 나무 문으로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간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키카카캇!!!」

마물 부대 대장의 지시에 따라, 문에 개미 떼처럼 달라붙은 마물들은 열심히 자신들의 산성액을 문에 발라갔고, 두껍고 강하기로 소문난 도성의 문은 빠르게 녹으며 무력할 정도로 얇아져 갔다.

「‥대장!! 구멍이 뚫렸습니다!!!」

「여기도 뚫렸습니다!!!」

그렇게 문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알면서도 성안의 병사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마물들을 없애자니 문이 부서질 것 같고, 가만히 놔두려니 문이 점점 녹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병기를 들고 대기하던 병사들의 열 사이로 한 청년이 성문을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금발에, 붉은색 무늬가 있는 순백색의 배틀 코트를 입은, 알 수 없는 분위기의 청년‥.

「좋아 좋아!!! 다 뚫렸구나!!! 자아, 안이 어떤지 들여다볼까? 키카카카카!!!」

마물들의 대장은 신이 난 듯 문에 달라붙으며 제일 아래쪽에 뚫린 구멍에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는 또다시 웃으며 소리쳤다.

「쿠히히히히히히!!!! 얼어붙은 인간들의 표정을 봐라!!! 새파랗구나 새파래!! ‥음!? 저놈은 또 뭐야!!!」

마물의 대장은 구멍을 통해서 문 가까이 다가온 한 청년을 볼 수 있었고, 그 청년 역시 뚫린 구멍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물을 볼 수 있었다. 청년–휀은 그 구멍의 앞에 왼쪽 손바닥을 펴 보였고, 마물의 대장은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곧이어, 휀의 짧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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