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07화
자신의 방에 돌아온 휀은 조용히 방 문을 닫았다. 그런 뒤 방 중앙에 정좌를 했다. 그런 후, 휀은 이를 악물며 오른손으로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큭….”
그때, 그의 입에선 붉은색의 피가 밀려 나왔고, 휀은 옆에 놓인 수건으로 자신의 피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낫에 독을 발라두었군. 뭐, 괜찮아…심하면 죽을 뿐이겠지….”
휀은 눈을 감은 후 몸 안에 흐르는 기를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독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휀은 조용히 말했다.
“…너와의 약속은 지켜주지….”
※※※
베란다 벽에 기대어 앉아 홀로 술을 마시는 사나이, 바이론은 하늘에 뜬 초승달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크크크…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군…그녀석….”
멀찌감치 떨어져서 햄버거를 씹고 있던 지크는 무슨 소리냐는 듯 바이론을 돌아보며 물었다.
“응? 누가 뭘 열심히 해?”
“…크크큭…크하하하하하하핫—!!!!!”
바이론의 대답은 광소 뿐이었다. 지크는 인상을 구긴 후 고개를 다른곳으로 돌리며 불만어린 말투로 중얼거렸다.
“…할 말 없으면 가만히 있지…쯧, 꿈자리 사납게 시리….”
3장 [떠나야 하는 사람들]
다음날 아침, 리오는 베란다에서 살고 있는 바이론을 제외한 모두를 거실에 모은 뒤 지크, 바이칼 등과 의견을 나눈 결과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리오는 미소를 지은채 모두에게 말했다.
“…음…집이 좁죠?”
그러자, 모두의 사이에선 한숨이 터져 나왔고, 리오는 미안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아아,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요…. 몇일 전 일어난 전투 때문에 파리가 꽤 파괴가 되었습니다. 이 집이 부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지요.”
‘몇일 전’이라는 말에, 세이아와 라이아 자매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았다. 물론 그 이유는 달랐지만…. 리오는 계속 말을 이었다.
“고로…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이곳에 있는다면 파리뿐이 아니라 프랑스 전역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흠…어디로 간다 해도 그곳이 파괴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갈 곳은 한 곳 뿐이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의 말에, 티베는 팔짱을 끼며 리오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건데요? 아프리카 사막? 남극 대륙? 시베리아? 그런 곳 말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장소가 드물잖아요.”
리오는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음…지크가 건의한 지역과 같은 지역을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그런곳은 인간적으로 너무 덥거나 추우니 좀 그렇겠죠. 하지만, 아주 넓고도, 살기 좋고, 피해다니기 좋은 장소가 있죠. 게다가 적에게 역습도 가할 수 있고…!”
그러자, 모두는 궁금한 눈으로 리오의 말을 기다렸고, 리오는 베란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까요…후훗.”
일행들은 조금 후 천천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챙길것이 없는 지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소파에 누워 이제부터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할 TV를 시청했고, 바이칼은 먼지 따위를 만질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바이론은 여전히 베란다에 앉아 술을 비우고 있었다. 남은 술을 모조리 마실 생각인 듯 했다.
짐을 챙기던 리오는 옆에서 같이 짐을 챙기던 케톤에게 넌지시 물었다.
“…공작님과 가족들은 무사한가?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 예…. 그분들은 아직도 레프리컨트 왕국에 계시답니다. 그것도 아주 안전한 장소에 계시지요.”
그러자, 리오는 의외라는 듯 케톤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음? 그래? 아주 안전한 장소라…비밀 장소라도 만들어 두신 모양이지?”
케톤은 미소를 지은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실은 저도 맨 처음 그 장소를 접했을때 놀랐지요. 하지만 레이필 여사께서는 아시는 장소였습니다. 리오씨에게 은혜를 입은 종족들이지요.”
“…나에게…?”
리오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인간 외에 다른 종족에게 도움을 준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케톤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예, 맨티스 크루저들이 저희들을 도와주었지요. 보통 맨티스 크루저들이 아닌 고대 맨티스 왕국의 후손 말입니다. 기억하시겠나요?”
그 말을 듣고서야 리오는 겨우 기억을 할 수 있었다. 맨티스 퀸과 전투를 하며 자신이 도와준 우호적이면서 높은 지능을 가진 맨티스 크루저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랬었군. 그들이라면 지하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적에게 포착될 확률도 적었을거야. 정말 다행이군. 그럼…왕국 수도는 어떻게 되었지?”
그 질문에, 케톤은 고개를 숙이며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한번 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직 하나…이상하게 생긴 검은색의 거대한 기둥 하나가 왕성이 있던 자리에 솟아나 있었지요. 그 외엔…거의 죽음의 땅이라 불러도 될 정도입니다. 쥐 한마리도 없죠.”
“그래…? 그렇군….”
리오 역시 굳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다 챙긴 리오와 일행들은 포르투갈로 가는 비행선을 타기 위해 파리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파리에 직장까지 있는 티베가 군말 없이 따라오는 것을 본 리오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는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방송국 일은 괜찮아요? 이렇게 저희를 따라오시면….”
그러자, 티베는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호홋, 괜찮아요 괜찮아요. 몇일전에 어쩌구라는 남자가 방송국을 반파시켜서 수리할때까지 몇개의 부서는 수리가 끝날때까지 당분간 쉬게 되었죠. 돈 문제라나 뭐라나…. 덕분에 당분간은 실업자죠. 뭐 생각나는거 없어 어쩌구씨?”
티베는 지크를 바라보며 물었고, 짐을 가득지고 있는 지크는 인상을 쓴 채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시끄러워…으윽…!”
리오는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짐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두명이었다. 앞에서 걷고 있는 바이칼과,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걷고 있는 바이론, 그들이었다. 바이칼은 그답게 자신이 왜 품위가 떨어지는 행동을 해야 하냐는 이유로 짐을 지지 않았고, 바이론은 아무도 그에게 짐을 권하지 않았기에 짐을 지지 않았다.
리오의 뒤에서 라이아와 함께 손을 잡고 조용히 걷고 있던 세이아는 가벼운 짐을 들고 있었기에 주위의 풍경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었다. 호텔용 주차장을 지날때, 세이아는 무언가를 본 듯 급히 리오를 불렀다.
“저어…리오씨, 저것이 무엇인가요?”
짐을 들고 천천히 가던 리오는 세이아의 말을 듣고 주위를 돌아 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야엔 아무것도 없었다.
“글쎄요? 아무것도 없….”
뒤를 돌아보며 말을 하려던 리오는, 라이아가 심각한 얼굴로 주차장쪽을 바라보고 있자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곧바로, 리오는 적외선을 볼 수 있게 시각을 바꾸었고, 온통 붉은색인 그의 시야엔 보통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인 보행전차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들어왔다.
‘…알아챈건가, 아니면…그냥 세워둔건가…!’
자신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지며, 리오는 망토로 둘둘 말아둔 파라그레이드의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