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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11화


케이는 그때 휀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케이 자신이 죽기 전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말…사실 휀 보다는 케이가 죽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은 둘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방에 정좌를 하고 앉아 휀의 말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케이의 정신 속에서, 그녀와 육체를 공유하고 있는…아니, 원래 주인인 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마음이 상당히 불안한 것 같아….」

케이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수수께끼같아…. 그래, 그리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잠깐 바람이나 쐬면 괜찮아지겠지.”

케이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자신의 방을 나섰다.


※※※

청성제는 레프리컨트 여왕과 린스 공주, 미네아 세명과 함께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담소는 아니었다. 청성제는 무거운 목소리로 계속 여왕에게 말했다.

“…선대 레프리컨트 왕국의 왕…여왕의 부친과 짐이 상당히 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덕분에 무역등도 별 마찰없이 수십년간 잘 이어졌고, 문화 교류도 활발했었소. 선대 왕이 운명을 달리한 후에도 그 정책은 변함이 없었소. 짐은 왕이기 전에 한사람의 남자이기 때문이었소. 남자로 태어난 이상 친구가 죽었다 하여 그 의를 저버린다 함은 백성과의 의도 쉽게 저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라 생각했기 때문이오….”

말이 거기까지 나오자, 여왕은 청성제의 말 안에 숨겨진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청성제께선 선왕과의 의를 충분히 지켜주셨습니다. 오히려 질타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마저 잃어버린 이 몸입니다. 아,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늦었군요. 저희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그 순간, 린스는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여왕을 바라보았고, 미네아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청성제는 자신이 큰 죄를 저지른 듯, 눈을 감으며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오, 어질지 못한 짐의 탓이오….”

“…말도 안됩니다!!”

그때, 눈을 부릅뜬채 흥분을 참고 있던 린스가 청성제에게 크게 소리를 쳤고, 그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린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채 청성제에게 말했다.

“이건 제 개인적으로 땅바닥에서 자고싶지 않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바보 덕분에 노숙은 실컷 해 봤어요! 같이 다니는 괴물들 덕분에 이 대륙에 출몰한다는 호랑이라는 것에도 물려갈 염려가 없구요! …또 그 대신이라는 할아버지들이 청성제께 상소를 올린 것이죠?”

청성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린스를 말리려던 여왕과 미네아도 이번 만큼은 잠자코 있었다. 린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요, 제가 만약 레프리컨트 왕국에서 그런 상소를 받았다면 충분히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 아예 면박을 주고 쫓아낼 수도 있죠! 하지만, 청성제께선 신 바로 아래에 군주가 있는, 그에 따라 지나가는 백성의 얼굴에 난 점이 보기 싫으면 감옥에 가두거나 목을 날릴 수 있는 극상의 권력을 누리실 수 있는 대륙의 왕이십니다! 그 할아버지들의 헛소리 때문에 저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실 필요가 없는 제왕이란 말입니다!!”

청성제는 말 없이 린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후, 레프리컨트 여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청성제는 눈을 감은 후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닮지 않았군….”

그 순간, 여왕과 미네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버렸고 그녀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린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청성제를 바라보았다. 청성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 친구…레프리컨트의 선왕과도, 현재 레프리컨트 여왕과도…전혀 닮지 않았어. 그 대신…레프리컨트 왕국의 미래가 보이는군. 하하하하핫…. 딸을 잘 두셨소 여왕. 태자인 쾌성조차 이런 기백을 가지지 않았는데, 정말 부럽소…하하하핫….”

그 말에, 여왕과 미네아는 알 수 없는 한숨을 내 쉬었고 린스는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청성제는 한숨을 내 쉬며 여왕 등에게 말했다.

“알겠소, 짐이 괜한 일로 그대들을 부른 것 같소. 짐의 생각이 얕았고, 너무 성급했던것 같소. 별궁에 가셔서 편히들 쉬시오.”

여왕과 린스, 미네아는 청성제가 일어선 후 곧바로 일어섰다.

“…네,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실 필요 없습니다….」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려온 제 3자의 목소리에 잔뜩 긴장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인간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마성이 깃든, 악마의 목소리였다. 조금 후, 섬광과 함께 대화가 오고 가던 흑색 탁자의 위에 거대한 낫을 든 소년이 나타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굴의 반을 가면으로 가린 소년이었다. 소년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얼굴은 사악함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여기서 편히 쉬시게 해 드리지요…. 어제 입은 충격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당신들 정도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 쉬시기 전에 한가지 좋은 소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밖에 제가 모시는 분과 다른 손님들이 많이 와 계십니다. 물론…무슨 뜻인지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키카카카카캇—!!!!」

그때, 린스가 옆에 놓인 물병에 재빨리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 소년—조커 나이트의 낫은 더욱 빨랐다.

차앙—!!!

두가닥의 긴 섬광과 함께, 린스가 잡았던 꽃병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조커 나이트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쉽군요, 물병 따위로 당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더욱 아쉬운건 제가 너무 말이 많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다행이군.”

린스의 코 앞까지 들이닥친 낫을 적갈색의 창으로 막고 있는 사나이, 슈렌은 조커 나이트를 슬쩍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커 나이트는 들고 있는 창에 힘을 가해 보았으나 슈렌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슈렌은 조커 나이트에 정신을 집중한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린스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며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슈렌에게 물었다.

“왜…왜지…?”

슈렌은 린스를 흘끔 보며 대답했다.

“위험하니까요.”

슈렌의 말 대로, 제궁의 밖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데몬 게이트를 통해 들어온 악마들과 나찰, 수라 등의 로봇들에 의해 수비를 하던 병사들은 거의 일시에 전멸상태로 빠져 들었다. 남은 병사들은 수비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자체적인 결계에 의해 저급 악마들로 부터 보호가 되고 있는 제궁의 결계문을 지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주위엔 수백마리의 악마들과 로봇들이 완전 엉망으로 당한채 널려져 있었다. 거대 목도를 가볍게 휘두르며 적들을 뭉개던 그 사나이는 입에 문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자신의 앞에 우물쭈물 서 있는 악마들을 향해 소리쳤다.

“후…이래야 담배맛이 나지. 자아, 어서 사바신님에게 오너라!! 떡으로 만든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지 머리에 확실히 박아주마!!!! 우하하하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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