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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20화


“…….”

바이론은 말 없이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 또한 더이상 말 없이 바이론을 주시했다. 조금 후,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손을 옆으로 돌렸고, 지크에게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음?”

움찔하며 바이론이 집어던진 물건을 받은 지크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바이론이 던져준 것은 술이 가득 든 병이었다.

“크크큭…마셔라. 많이 마시진 말고…반 쯤.”

“…반이 많이 안마시는거냐?”

지크는 결국 병 뚜껑을 딴 후 안에 든 술을 조금 마셔 보았다. 조금 마셨는데도 속에서 술기운이 팍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40도 이상의 독한 술이라는 것을 지크는 알 수 있었다.

“쿠우…이자식, 날 죽이려고 하는군….”

바이론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곧, 그는 자신의 병을 내려놓은 뒤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네 힘은 어쩔 수 없는 것…자연적으로 바람이 일어나는 원리부터 아는게 좋겠지…. 바람은 빛과 어둠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부산물…과학이라는 것을 하는 녀석들은 그걸 대기의 순환이라고도 하지…크크크크…여기까진 쓸데없는 얘기였다. 하여튼…네가 사용하는 기전력은 슈렌이나 다른 가즈 나이트들이 사용하는 이른바 ‘발동능력’과는 다르다.”

“…?”

지크는 이해가 안간다는 얼굴로 바이론을 바라보았다. 바이론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기전력은 네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능력일 뿐이지…슈렌의 기염력, 레디의 기수력 등과는 다르다. 바람과 번개는 속성부터가 달라. 그러나 넌 자신의 힘처럼 뇌력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지. 결과적으로, 넌 가즈 나이트로서 받은 능력이 아닌 네 자신의 능력으로 기전력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

지크는 바이론의 그 말을 듣고 멍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런 지크의 모습을 본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크크크큭…그래, 넌 지금 가즈 나이트로서의 능력을 50%도 발휘한 일이 없다. 덕을 본 때는 상처가 났을때 정도? …난 이해가 가지 않았지…왜 너같은 녀석이 가즈 나이트에 끼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4년 전 너와 한판 시원하게 붙었을때 느꼈다. 넌 다른 가즈 나이트들이 가지지 않은 다른 것을 가지고 있었지.”

지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바이론에게 물었다.

“…다른…것이라니?”

그러나 바이론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시원한 바닷바람이 둘에게 밀려왔고 바이론은 흩날리는 자신의 은빛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시원하지 않나? 크크큭…바람이라는 것, 어쩔때는 무서운 면을 보이지만, 미치광이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식혀주는 면도 보이지…. 불은 물 위에선 타지 않지만, 바람은 물이든, 불이든, 땅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분다. 우주에서는 불지 않는다고 잘난체 하는 녀석들도 있지만…크크크큭…. 결국엔 가리지 않는다는 소리지. 주신께서 널 가즈 나이트로 만든 이유가 바로 그것일지도…. 난 더이상 할 말이 없으니 꺼져라…귀찮게 하지 말고….”

바이론은 다시금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말 없이 바람을 맞으며 바이론을 바라보던 지크는 곧 씨익 웃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지크의 모습을 흘끔 본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중얼거렸다.

“…크크큭…하긴 말은 필요없지…. 사나이는 가슴으로 통하는 법…크크크…크하하핫!!!!”

바이론은 어느때보다 기분이 좋은 듯, 더욱 소리높여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다음날 정오 경, 리오는 레이, 시에와 함께 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트립톤의 시장은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적지 않은 편이었다. 사람들은 리오의 오른쪽 어깨에 매달리다시피 있는 시에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복장도 복장이었지만, 살랑살랑 움직이는 시에의 꼬리가 바로 시선 집중의 이유였다. 그래도 리오와 레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할 일을 계속 해 나갔다.

“아~아, 린스 공주님도 참…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저랑 레이양에게 이런 일을 시키시다니…. 물론 누구 한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네….”

리오는 레이의 대답에 힘이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때와 같은 것이 이상한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시에가 리오의 긴 머리를 살짝 잡아 당기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리오, 리오!! 사과다 사과!!! 시에 사과 좋아해!!!”

“음…그래 그래.”

리오는 시에의 발음이 처음 만났을때 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시장에 진열된 사과에 입맛을 다시는 이 아이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혈투를 벌인 다른 두명의 베히모스가 같은 존재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이 아이 역시 그렇게 된다면…어쩌지…?’

리오는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시에에게 사과를 던져 주었다. 시에는 사과를 덥썩 물으려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듯 사과를 자신의 옷에 열심히 부비기 시작했다. 리오는 시에를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음? 뭐하니 시에?”

그러자, 시에는 씨익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웅, 빠이가 사과 먹는거 봤다. 빠이는 언제나 사과를 옷에 닦아서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나봐.”

“…그래…그럴지도….”

리오는 미소를 지으며 시에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런 그와 시에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레이는 리오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리오님은…자신이 가즈 나이트라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레이의 그런 질문에, 리오는 가만히 레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미소를 띄운 후 계속 걸음을 옮기며 답해 주었다.

“음…그리 추천해주고 싶은 직업은 아니지만…이런때는 가즈 나이트라는 것이 되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죠. 언제나 피를 봐야 하는 직업이긴 하지만…이런 사람들을 끝없이 만난다는 사실이 언제나 절 즐겁게 하죠. 때로는 내가 아는 사람들 때문에 슬프기도 하지만…즐거운 일이 더 많으니 괜찮아요. 언제나 변함없는 녀석들도 있으니 더욱 그렇고요. 엇, 시에 흘리지 마라, 오늘 머리 감았다구.”

“알았다 리오!”

“….”

레이는 더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리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시장에서 돌아온 레이의 눈에 처음 비친 것은 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조용히 앉아 있는 지크와 챠오, 티베, 마키의 모습이었다. 지크는 계속 물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는 마키를 신기하다는듯 바라볼 뿐이었고, 티베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뭐야 뭐, 똑바로 못해 어쩌구씨? 어떻게 쓰레기 하나도 못건져올려?”

“칫, 집중이 안돼잖아 집중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라구!!!”

그러자, 마키의 뒤에 서서 가만히 구경을 하던 챠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신이 제일 시끄럽다는걸 못느끼는군.”

“…시끄러!!”

레이는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넷을 보다가 집 밖으로 목재등을 가지고 나오는 슈렌과 라이아에게 시선을 돌려 보았다. 슈렌은 잘 다듬어진 넓은 나무판을 세워둔 후, 네개의 나무 기둥들을 이리저리 조립해 큰 탁자를 완성했고, 라이아는 슈렌이 만든 탁자 위에 넓은 헝겊을 덮어 마무리를 지었다. 완성된 새로운 식탁을 보며, 라이아는 기분이 좋은듯 박수를 쳤다.

“와아, 됐다 됐다!! 슈렌 오빠 정말 잘 만드시네요? 못하시는게 없어!!”

그러자, 슈렌은 조용히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으음….”

모두가 지금의 심각한 상황을 잊은 모습이었다. 정말로 잊은건지, 잊으려고 하는건지…. 가만히 생각을 하던 레이는 한숨을 후우 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녀도 점심을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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