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60화
“…그 화면에서 떠벌리는 것을 보니 이곳엔 안계시는 모양인데….”
리오는 인상을 가득 쓴 채 화면에 나타난 와카루 박사에게 물었고, 와카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헛, 눈치가 빠른 청년이구려 역시. 지금 난 록키산맥 안에 있는 블랙 프라임의 비밀기지에 있소. 리오군도 위치는 어느정도 파악 했으리라 믿으오. 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기지의 지도도 보내드리리다.」
와카루의 양 어깨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곧 한쪽 화면에 작은 전자 지도가 떠올랐다. 그 지도의 중간 지점엔 붉은 점으로 한 지점이 표시되었고, 와카루는 빙긋 웃으며 계속 말했다.
「자, 어딘지 이제 확실히 알거요. 오늘이 12월 23일이니 빠른 시일 안에 오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산타크로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할테니까. 허허허허헛…. 그리고…세이아양도 되돌려받지 못할 것이오.」
“…!!”
순간, 리오의 눈은 번쩍 떠졌고, 와카루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껄끄러운 수염을 매만지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헛헛…난 인내심이 약해서 빨리 오지 않으면 그녀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지 모르오. 그녀 역시 반신반인이라 실험체로 하기엔 제격이기 때문에…하하하하하하핫…빨리 오구려. 내 기다릴테니….」
화면은 곧 꺼졌고, 리오는 들고 있던 디바이너로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분함을 나타냈다. 휀은 이마에 손을 댄채 예상이 빗나갔다는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바이칼은 팔짱을 낀채 리오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할거지. 다른 차원으로 피할건가, 아니면 그곳으로 갈건가.”
바닥에 검을 박은채 조용히 몸을 굽히고 있던 리오는 잠시후 검을 뽑고 몸을 세우며 씁쓰름한 미소를 지은채 바이칼에게 답했다.
“…그 대머리 박사의 수염을 면도해야지 어쩌겠어. 자, 나가 보자고 모두. 그리고 여긴 완전히 폭파시키는 것이 나을 것같아.”
리오는 디바이너를 거두며 힘없이 뒤로 돌아섰다.
그 때.
파아앙—!!
“음!?”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리오는 다시 뒤로 돌아섰고, 그는 하나 남아있던 실험용 세포질들이 유리관을 깨고 나와 서서히 자신들 쪽으로 밀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쳇…찌꺼기인가?”
리오는 손을 앞으로 내밀며 그 부정형의 괴물체를 없애려고 했다. 그때, 휀이 차가운 목소리로 리오에게 말했다.
“…이곳을 폭파시킬 생각이라면서 괜히 따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무시하고 그냥 가는게 좋을거다.”
“…흐음.”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두었고, 곧 셋은 밖으로 급히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부정형의 괴물은 천천히 리오들을 향해 밀려올 따름이었다. 그 이외의 목적은 없다는 듯….
※
“험…이것으로 됐나? 헛헛헛….”
붉은 옷의 풍체 좋은 노인은 자신의 옷 색과 같은 붉은색의 큰 자루를 보며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자신의 집을 나와 가축 사육장으로 향했고, 은색의 빛이 나는 사료를 듬뿍 꺼내어 사육장 안의 사슴들에게 나누어주며 행복한 얼굴로 사슴들에게 말했다.
“자아, 내일 모레 자정부터 여섯시간을 풀로 뛰어야 하니 많이 먹어두거라 얘들아. 으음…남부지구 산타는 선물들을 잘 챙겼는지 모르겠구먼.”
그러자, 턱에 흰 수염이 난 늙은 사슴이 고개를 저으며 그 노인에게 말했다.
“그분은 아르바이트 학생을 많이 두니 잘 챙길겁니다. 주인님도 아르바이트를 쓰시는게 어때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자신의 구불구불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글쎄다, 난 별로…. 아르바이트를 두면 심심하진 않겠다만 그만큼 선물의 양이 줄어들지 않겠니.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줘야 하는데 말이야. 자, 루돌프야. 넌 나랑 장기나 두자꾸나.”
“음…난 블랙잭이 더 재미있는데…그럼 오늘도 상대해 드리지요.”
노인은 그 사슴을 사육장에서 꺼내준 후 자신의 집으로 천천히 데리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
제네럴 블릭의 건물에서 막 나온 리오들은 지크 일행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오는 바리케이트 위에 걸터앉은채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바이칼은 날씨가 약간 추운듯 팔짱을 꼭 낀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처 가게에서 산 슬립형 담배를 입에 물고 상념에 잠긴 휀은 주위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아니, 그런 잡다한 것에 신경을 쓸 공간이 머리에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무렵, 지크 일행은 1층 로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지크는 건물 밖에 리오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 쉬었다.
“휘이, 역시! 저 녀석들이 더 빨랐군. 자자, 모두 밖으로 나가자구,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니까 말이야.”
지크는 뒤를 돌아보며 내려오는 일행들에게 손짓을 했다.
우르륵
순간, 지크는 뒤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자마자 굳은 표정을 지었고, 뒤에서 내려오던 일행들의 얼굴 역시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지크의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루이체는 지크의 뒤를 가리키며 그에게 소리쳤다.
“지, 지크 오빠!! 뒤를 봐 뒤를!! 위험해!!!”
“젠장, 알고 있어!!!”
지크는 한순간 뒤로 몸을 날리며 무명도를 휘둘렀고, 청색의 섬광은 지크의 뒤를 치려던 끈끈한 세포질을 깨끗이 잘라냈다. 로비 천정에 장치된 샹들리에에 매달려 아래쪽을 바라본 지크는 이를 갈며 거칠게 내뱉었다.
“쳇, 저 빌어먹을 덩어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야!!”
지크의 말 그대로, 리오들을 쫓아 윗층까지 올라온 세포질은 언제 기계장치들을 흡수했는지 기계덩어리들을 몸의 군데군데에 박은채 로비 중앙에서 커다랗게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지크가 잘라낸 세포질은 자신의 본체쪽으로 기어가 언제 잘렸냐는듯 깨끗이 달라붙어 본체와 함께 꿈틀대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온 일행중 챠오와 마키는 물리적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곧장 계단 옆으로 몸을 돌렸고, 넬 역시 그녀들과 함께 옆으로 몸을 피했다. 프시케와 루이체는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와라 지크.”
그때, 로비의 문에 잠시 들어온 휀이 지크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고, 지크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듯 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 이자식, 내가 나가면 동료들은 어떻게 하라는거야!! 내가 저 괴물 팥죽을 막을테니 모두 저 얼음덩이를 따라 밖으로 나가!!”
지크는 자신의 일행들에게 그렇게 소리쳤고, 주문을 외우던 프시케와 루이체는 움찔 하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나오지 않으면 죽이겠다.”
그러나, 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차디찬 그 말 뿐이었다. 지크는 그 말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듯 휀을 쏘아보며 강하게 소리쳤다.
“무슨 빌어먹을 소리야! 그렇게 내가 나가는것이 소원이면 네가 빨리 끝내버리란 말이야!! 난 저 녀석들을 위험하게 놔두고 나갈 수는 없어!!!”
“말싸움할 시간이 없다는건 너도 잘 알텐데…. 저 여자들에게 상관할 시간 역시 없다는 것도….”
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그렇게 말했고, 지크는 결국 휀에게 몸을 날리며 무명도를 휘둘렀다.
“이 더러운 자식, 너부터 죽여주겠다!!!”
파악—!!
“헉!?”
순간, 지크의 무명도를 가볍게 피한 휀은 팔꿈치로 지크의 뒷머리를 찍어 내렸고, 지크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으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휀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에 대한 도전은 너에겐 이르다. …500년 후라면 모를까.”
휀은 프시케를 흘끔 본 후 가볍게 목례를 한 다음 지크의 옷자락을 잡고 그를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버렸고, 프시케는 옅은 미소를 지은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녀는 곧 루이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들이 저 부정형 생물체를 쓰러뜨려야 할 것 같군요. 휀 님의 말씀대로 저분들에겐 시간이 없으니까요. 자, 루이체님은 냉기계열 마법을 어서 준비해 주세요. 전 화염계 마법을 준비할테니까요.”
루이체는 프시케의 생각을 알겠다는듯 자신있는 표정을 지으며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목표를 잃어버린 괴물은 서서히 프시케와 루이체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갔다. ‘마법’이라는 것을 쓸땐 사용자가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챠오는 말 없이 권총을 뽑으며 괴물을 향해 지원 사격을 펼치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마키와 넬 역시 챠오와 함께 사격을 개시했다.
70구경 블래스터의 보통탄이 그 부정형 괴물게에 통할리는 만무했지만, 그래도 탄환의 위력에서 나오는 압력 덕분에 프시케와 루이체에게 향하는 공격을 어느정도 막는 것은 가능했다.
기절한 지크를 끌고 나오던 휀은 지크를 리오에게 던져준 후 곧바로 로비 앞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 휀을 보며, 리오는 옆에 있는 바이칼에게 힘없이 중얼거렸다.
“…훗, 이번 만큼은 나도 차갑게 있을 수 밖에 없군…. 넌 어때 바이칼.”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