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81화
아침 조회시간.
그날 아침은 여느 때 보다도 훨씬 심각한 분위기의 처크 부장의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올라온 사건은 20세기에서도 흔히 있었던 사건이었기에 지크와 티베 등은 퉁퉁거리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처크는 둘을 보고 피가 끓어오르는지 안건에 대한 얘기를 빨리 끝낸 후 예전처럼 루이에게 브리핑을 맡겼다. 루이는 전자 스크린을 켜며 차분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 올라온 사건은,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실종에 대한 것입니다. 사건은 약 한 달 전부터 진행되었으나, 목격자가 없는 관계로 사건은 언론엔 최소 보도가 된 상태로 경찰측에서 지하 수사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사건은 계속 미궁에 빠져들었고, 그 사이에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실종을 당했습니다. 실종을 당한 여성들의 나이는 15세에서 20세 까지로, 그들의 공통점은 혼혈이나 순수 혈통에 의한, 염색하지 않은 ‘갈색 머리’라는 것입니다.”
“풋–!!”
순간, 지크는 마시고 있던 모닝 커피를 다시 잔에 쏟아버렸고,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대원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지크를 쏘아보았다. 지크는 미안하다는듯 손을 들며 동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잠시 중단되었던 브리핑은 계속되었다.
“‥여러분들 중에선 이 사건이 신출귀몰한 변태나 도착증 환자의 소행이라 생각하는 분이 계시기도 하겠지만‥.”
루이는 그렇게 말하며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묵묵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최근, 몇 건의 사건에서 목격자가 나타남에 따라 이 사건은 BSP에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는 바이오 버그와 비슷한 모습의 인간형 괴 생물이 여성들을 납치해 갔다는 공통점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 버그들의 출몰 횟수가 늘어난 현재 시점에서 전원을 그 사건에 투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국 상부에선 우수한 대원 한 명을 뽑아 그 대원에게 단독 수사를 맡기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브리핑을 마친 루이는 전자 스크린을 끈 후 자기 자리로 돌아왔고, 처크는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들었다시피, 이번 일은 극비로 진행되어야 사회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상부에선 우리 대원들 중 가장 날렵하고‥.”
“‥?”
지크는 그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처크를 바라보았고, 처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상태로 말을 계속 했다.
“잠입술, 은신술이 가장 뛰어나며‥.”
“‥??”
“판단력은 부족하지만 단독 전투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 잠깐!! 그 상부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예요!!”
지크는 몸을 의자에서 벌떡 일으키며 처크에게 큰소리로 물었고, 처크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매만지며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나지. 어쨌든 뽑힌 인물에 대해선 지크 자네가 더 잘 아는 듯 하니 오늘의 조회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수고하도록 지크. 다른 사람들은 저번에 짠 조 그대로 순찰 활동을 해 주도록. 오늘 24시간 순찰을 돌 사람은 헤이그, 케빈, 챠오다. 이상.”
평소에도 BSP 제복을 입지 않은 지크는 뚱한 얼굴로 자신의 오토바이에 기댄 채 근처 페스트 푸드점에서 산 햄버거를 씹고 있었다. 졸지에 비밀 요원이 되어버린 그는 학교와 학원가, 대학로 등을 빙빙 돌며 순찰 활동을 했으나,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쳇, 당연하지. 갈색 머리가 한둘이야? 염색한 여자애들을 제외하고도 이 서울에만 엄청난 숫자일 텐데‥젠장맞을. 그건 그렇고 이상하네, 주위에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기로 위치를 느끼긴 어렵군. 크으‥.”
현재 지크가 있는 지점은 노×진역 근처의 학원가였다. 저녁 시간이 되자, 그곳엔 학원을 떠나는 재수생들과 학원에 오는 중고등 학생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지크는 지나가는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유심히 관찰하며 ‘순수한’갈색 머리를 찾기 시작했다. 염색과 순수는 머릿결과 반사광이 달랐기 때문에 지크의 ‘동물적인’눈으로는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모두 염색한 갈색 머리뿐이어서 지크의 눈도 점차 지치기 시작했다.
“어머? 지크 아니야?”
그때, 지크의 옆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지크는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며 자신을 알아본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엇? 엘렌?”
지크의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틀어올린 금발머리의 여성은 헤이그의 외동딸인 엘렌. 헤이그(헤이그의 본명은 그랜·헤이그)이었다. 일류 공대의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의 나이는 지크의 겉나이와 동갑인 25세였다. 화장을 짙게 한 그녀는 지크와 함께 오토바이에 기대 앉으며 반갑다는 얼굴로 지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본 이후로 정말 오래간만이네? 아빠께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그건 그렇고 지나가는 여자애들한테 왜 그렇게 집중을 하고 있어? 설마 헌팅이라도?”
지크는 엘렌의 말을 들으며 다시 고글을 쓴 후 아까와 같이 지나가는 여성들의 머리에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으음‥그랬으면 좋겠지만, 이것도 임무 중에 하나라서 말이야. 내일 헤이그 선배님 들어오시면 여쭤봐.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러니까. 그런데, 여기서 뭐해? 넌 직장이 여×도 아냐?”
엘렌은 왼쪽으로 살짝 늘어뜨린 자신의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지. 오늘은 설계 의뢰 때문에 잠깐 이곳에 온 거야. 흐흠‥그런데 지크도 올해로 나이가 적당히 찬 것 같은데‥아직 생각 없어?”
“생각? 무슨 생각?”
“‥여자 나이 25세면 아마 사람들이 그러지? 결혼 적령기라고‥.”
순간, 지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을 했다. 엘렌은 지크와 팔을 낀 후 그에게 더욱 가까이 붙으며 야릇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후훗‥재작년 일 기억해? 내가 대학 다닐 때 일‥. 그때 아빠께서 날 지크한테 맡긴다고 하셨는데‥.”
지크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겨우겨우 대답을 했다.
“그,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땐 임무 중이었고 선배님께선 부상이 심각하셔서‥.”
그러나, 엘렌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 지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하며 계속 속삭였다.
“아빠께선 언제나 진실만을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는데‥지크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 그러니까 그건‥.”
“이봐!!! 저녁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때, 그리 멀지 않은 도로변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지크에게 붙어있던 엘렌은 그쪽에 시선을 돌린 후 빙긋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머? 저 꼬마 아가씨 또 나타났네?”
지크는 이게 웬일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곧, 지크와 엘렌의 앞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고, 그녀는 지크의 재킷 옷깃을 강하게 잡아 올리며 계속 소리치기 시작했다.
“임무 중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침에 부장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신 일이라는 것을 벌써 잊어버린 거야!!”
지크는 속으로 차라리 다행이다 생각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강조하신 것 까지는 모르겠는데‥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리진‥.”
“‥핫‥!”
지크의 옷깃을 움켜쥔 채 눈을 부릅뜨고 있던 리진은 지크의 말을 듣자마자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크의 말 대로, 지나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리진과 지크, 엘렌을 바라보고 있었고, 리진은 순간 얼굴이 붉게 변하며 지크의 재킷을 잡은 손을 풀었다. 엘렌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보다 키가 작은 리진의 어깨를 팔로 두르며 그녀의 귀에 대고 살며시 속삭였다.
“후훗, 그러고 보니 너도 질투할 나이가 됐네? 그럼 언니가 어른답게 될 수 있도록 일대일로 코치해줄까‥?”
“귀, 귀에 대고 속삭이지 말아요!!! 집에 데려다 줄 테니 빨리 떨어져 줘요!!!”
리진은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듯 지크를 강하게 쏘아보았고, 엘렌은 지크에게 손으로 키스를 보내며 리진과 함께 순찰차로 향했다. 주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중얼대며 다시 갈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고, 지크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 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왠지 리오 녀석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군‥. 음?”
한숨을 푹푹 쉬며 중얼거리던 지크는 멀리 보이는 학원차에서 갈색 머리의 여성이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빠르게 학원 벽을 타고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본 그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며 그 학원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D급..아니면 D+이상의 녀석인데‥. 아까부터 느껴지던 이상한 기운이 바로 저 녀석들이었나? 헤헷, 오래간만에 몸 좀 풀어봐야 하겠군.”
학원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워둔 지크는 오토바이의 보안장치를 켠 후 무명도를 허리에 맨 후 학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학원의 젊은 수위가 그를 막긴 했지만 지크는 그 수위의 모자를 푹 눌러 씌우는 것으로 간단히 통과를 했다. 지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학원 안에 들어온 바이오 버그의 기를 쫓기 시작했다. 느낌상으로 바이오 버그들이 천정 위로 이동을 하는 듯했기 때문에 지크는 발걸음을 빨리 할 필요가 있었다.
“자, 교재 183페이지를 펴 주시기 바랍니다.”
남자 학원 강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교실 내의 학생들에게 말했고, 학생들은 분주히 교재를 넘기며 강사가 말한 페이지를 찾기 시작했다. 제일 뒤에 앉은 소녀는 머리핀을 다시 꽂으며 옆에 앉은 갈색 머리의 소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라이아, 오늘은 이번 수학만 하고 그냥 땡땡이 칠래?”
그러자, 옆에 앉은 갈색 머리 소녀는 케이스 안에 넣어 두었던 자신의 안경을 끼며 살짝 인상을 쓴 채 역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역시 같은 장소로?”
“당연하지‥!”
두 소녀는 킥킥 웃으며 책상 위 교재에 시선을 돌렸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학생들이 갑자기 책상 위에 털썩 털썩 쓰러지기 시작했고, 앞에서 열강을 하던 강사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무겁게 말했다.
“조는 사람 깨워주세요.”
재미 없기로 유명한 그 강사의 수업은 맨 뒷자리 학생들에겐 고역이었다. 이번 시간이 지나면 땡땡이라는 기대감에 겨우겨우 잠을 참고 있던 갈색 머리 소녀는 결국 참을 수 없었던지 앞에 앉은 남학생의 거대한 몸집에 기대를 걸며 안경을 벗고 교재 위에 쓰러졌다.
“‥어?”
쓰러진 지 얼마 안 되어, 그 소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강사의 머리 위 천정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소녀는 자신의 친구가 눈을 부릅뜬 채 천정을 바라보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소녀에게 살며시 물었다.
“라이아, 왜 그러니? 쥐라도 있는 거야?”
순간, 소녀는 의자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강사에게 급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선생님!!! 옆으로 피하세요!!!!”
그러자, 교실 안은 잠시 침묵 상황으로 변했고 강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에게 소리친 소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학생, 나가주세요.”
그러나, 그 소녀는 나름대로 절박했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다시 강사에게 소리쳤다.
“피하시지 않으면 큰일 나요!! 어서 피하세요!!!”
“‥알았으니 앉던지 나가던지 해 주세요.”
강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몸을 돌려 칠판에 문제 계산을 계속 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그때, 그 강사의 머리 위 천정이 갑자기 붕괴가 되었고 그와 함께 검은색의 몸을 가진 무언가가 천정에서 그대로 떨어지며 강사를 덮쳤다.
“으, 으아아아아악–!!!!!”
강사를 덮친 바이오 버그는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을 흘끔 바라본 뒤, 체액이 줄줄 흐르는 자신의 입을 벌리며 포효와 함께 자신의 앞에 넘어진 강사를 팔로 잡아 문 쪽으로 강하게 내 던졌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아–!!!!!!!!!」
강사의 몸은 그야말로 장난감처럼 벽에 내 던져졌고,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벽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강사의 몸에 부딪힘과 동시에 산산히 부서졌다.
「크르르르르르르‥!!!!」
바이오 버그는 곧 눈을 부릅뜨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괴물의 시선은 곧 자신의 정면에 있는 갈색 머리 소녀에 고정되었고, 그는 천천히 그 소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