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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95화


“‥후우우‥.”

땀에 흠뻑 젖어버린 리진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2월이 되면 고질적으로 꾸는 악몽‥그 악몽을 다시 꿔 버린 것이었다. 땀에 젖은 이불과 옷들을 침대 아래에 내려놓은 리진은 옷을 새로 갈아입은 후 비틀비틀 방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가 방에서 나오자, 신문을 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가 신문의 다음 장을 넘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잘 잤니 리진?”

“아뇨 아빠.”

리진은 그렇게 말하며 화장실에 들어갔고, 리진의 아버지는 달력을 흘끔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2월 1일이군. 하긴, 저 애가 악몽을 꿀 때가 오긴 왔지.”

리진은 곧 화장실에서 나왔고, 부엌에서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아직도 두근거리는 속을 진정시켰다.

“아, 리진아. 오늘은 할머니 오시는 날인데 일찍 올 수 있겠니?”

“할머니께서요? 웬일로 오신대요?”

리진은 의외라는 얼굴로 물컵을 들고 거실로 나오며 물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웬일은, 할머니께서 손자 보시러 올라오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니. 자자, 여섯시 반이니까 어서 출근 준비 하거라.”

“네에.”


제7화 <유령 공포증>


“헤이, 잘들 가라구.”

오늘은 비번인 지크는 순찰차에 오르는 티베와 마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둘은 이상하게 놀림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인사도 안 하고 즉시 차를 출발시켰다. 지크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고, 그는 소파에 누워있는 바이칼의 무릎에 붕대를 살짝 감아주고 있는 리오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어이, 너 오늘은 뭐할 거야?”

“오늘? 으음‥글쎄. 밖에 나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니까 집에 계속 있어야 하겠지 뭐. 그런데, 넌 오늘 라이아의 경호는 하지 않을 거야?”

그러자, 지크는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손을 저으며 기분 좋게 얘기를 했다.

“오, 오늘 하루는 괜찮겠지 뭐. 설마 오늘 습격하라는 법이 있겠어?”

바이칼의 무릎에 붕대를 다 감아준 리오는 지크의 말을 듣자 웃으며 말했다.

“자, 됐어 바이칼. 음‥그리고 지크, 네가 그런 말 해서 뒤통수를 맞은 게 몇 번인지 알아? 괜히 사건만 눈덩이처럼 불리고 그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잖아. 게다가 라이아의 경우는 특별하단 말이야.”

그러자, 지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릴 뿐이었다.

“헤헷, 그, 그렇긴 하지만‥. 근데 라이아가 아직도 특별해? 그 애는 지금 그런 것에선 완전히 해방된 게 아니야?”

순간, 리오는 움직임이 멎어버렸고, 곧 얼버무리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 그, 그런가? 하하하핫‥.”

지크는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듯 팔짱을 끼며 리오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피하려는 듯 얼른 바이칼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지크는 결국 뭐할까 생각하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띵동– 띵동–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고 지크는 투덜대며 소파에서 몸을 뒹굴거렸다.

“젠장, 눕자마자 띵동은 또 뭐야. 끽해야 신문 배달원 내지는 우유 아줌마겠지 뭐. 지겨워‥.”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내 말을 들었나‥?”

지크는 약간 인상을 쓴 채 약간 구겨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며 현관으로 나섰다.

“예, 누구세요?”

“하아잇–!! 지크 선배, 안녕하세요!!!”

타앙–!!

현관문 밖의 소녀가 생기 있게 인사를 하자마자, 지크는 문을 강하게 닫아 버렸고 어느새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식객을 늘린다면 난 어머니께 죽음을 면치 못해‥!!!”

“아앙–!!! 아파–!!!!”

그때, 문밖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지크는 깜짝 놀라며 문밖을 흘끔 바라보았다. 자신을 찾아온 소녀가 양손으로 코를 감싼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었다.

지크는 결국 문을 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신이시여. 언젠간 복수할 거야‥.’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자, 잠깐만요 부장님!!”

임무 설명과 함께, 마키, 티베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라는 말을 들은 리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고, 리진의 이상 반응에 처크 부장을 비롯한 다른 BSP 대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진의 눈엔 그런 시선이 보이지가 않았다.

“부장님! 저희는 BSP지 ‘고스트 버스터’가 아니란 말이에요!! 왜 그런 임무를 저희가 처리해야 하나요!!!”

“그, 그거야 UN 한국 지부에서 떨어진 명령이니 나도 어쩔 수 없지.(BSP는 UN 산하 특수 무력 기관이기 때문에 UN 지부장의 권한이 BSP 지부장의 권한보다 더 큼: 필자 주) 그런데 자네가 웬일인가? 다른 웬만한 임무는 자신이 처리하지 못해 아쉬워하더니‥? 무슨 이유라도 있나?”

처크가 그렇게 물어오자, 리진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고 다른 부원들도 ‘그러고 보니?’라는 눈으로 리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결국 더 이상의 이견 없이 자리에 다시 앉았고, 그것으로 그날의 조회는 끝이었다.

티베와 마키는 리진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리진에게 계속 이상한 기운이 뿜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다름 아닌 ‘공포감’이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복도를 걷던 리진은 앞에 가는 티베와 마키에게 신음하듯 말했다.

“얘, 얘들아, 좀 천천히 가면 안 되니?”

“음? 그, 그래. 서두를 건 없지. 그런데 리진, 너 오늘 왜 그러니?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야?”

티베가 그렇게 묻자, 리진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 그렇게 보이니? 아, 아니야‥하하핫‥. 난 아무렇지도 않아.”

리진은 그렇게 말했으나, 티베와 마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중환자 같은 걸‥?’

이윽고, 주차장에 도착한 티베는 리진을 먼저 차에 보낸 뒤, 마키와 함께 고개를 저으며 현재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리진이‥아무래도 오늘 무슨 일 있는 것 같지 않아?”

“‥얼굴만 보면 아픈 것 같지만‥. 그 ‘유령’ 얘기가 나오기 전엔 괜찮았거든.”

마키의 말을 들은 티베는 자신도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어쨌든, 저 애 저런 상태로는 임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어쩌지? 우리 둘 가지고 그 긴 건물을 탐색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러자, 마키는 동감한다는 듯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결국, 그들은 입을 모아 지금의 사태를 처리할 방법을 말했다.

“무적의 지원군을 부르자.”

그렇게 결정한 둘은 곧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티베는 아양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호호홋‥그게 말이죠, 오늘만 저희를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네? 아잉〜♡ 너무 그러지 마세요. 하루만 제발‥. 이건 저희들 때문이 아니고 저희들 동료 때문이거든요. 누구요? 리진 아시죠? 어머, 아시니까 더 잘됐네. 그럼 이따가 열시 반 정도에 남산 타워 앞에서 뵈어요. 어딘지는 물어보시면 되고요, 호호호호홋‥. 거기서 뵈어요? 쪽–♡”

핸드폰에 키스까지 한 티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 덮개를 닫았고, 마키는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보였다. 둘은 곧 순찰차로 향했고, 차 안에서 혼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리진과 함께 조사 목표 지인 ‘남산 타워’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옷, 넬 아니야? 아니, 짐까지 포함해서 웬일이지?”

리오는 상당히 반갑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넬에게 물었고, 넬은 코에 붙인 밴드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씨익 웃어보였다.

“히힛, BSP 사관 생도는 정식 대원이 되기 전에 4년간 실전 견학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실전 경험이 충분해야 한다나? 그래서 전 이왕에 실전 견학을 하게 될 겸 아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에 실전 견학 지원을 한 거죠. 다행히 지원자가 저 혼자뿐이라서 시험도 안 보고 이곳으로 올 수 있었어요. 이렇게 좋으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왜 지원자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목숨이 담보인 실전 견학지니 그럴 수밖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지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서 계속 비관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나갔다. 넬은 계속해서 리오와 담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리오 형을 다시 뵐 줄은 정말 몰랐어요! 다시 뵐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헤헷, 정말 반가워요!!”

“음, 그래 그래. 나도 반갑구나.”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리오는 지크가 도저히 전화를 받을 분위기가 아닌 관계로 직접 자신이 전화를 받았다.

“누구지? 음‥예, 스나이퍼 씨 집입니다. 예? 아니, 갑자기 웬‥. 아, 하지만 전 밖에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걸요. 예? 아, 알고는 있습니다만‥. ‥예, 예. 그럼 그때 그곳에서 뵙죠.”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끊었고, 곧 나갈 준비를 하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때, 마침 위층에서 바이칼이 내려오다가 리오가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았고 바이칼은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리오에게 물었다.

“어, 어디 나가시게요?”

“음? 음‥일이 생긴 것 같아서.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말고 집에 있어.”

둘의 대화 장면을 지켜보던 넬은 어디서 본 여자라 생각하며 옆에 앉은 지크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어‥저 예쁜 여자분 누구세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내 악몽을 더 이상 부풀리지 말거라.”

넬은 지크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저어‥혼자 나가시나요‥?”

바이칼은 조심스럽게 리오에게 물었고, 리오는 현관으로 향하며 피식 웃어보였다.

“흠? 당연히 혼자 나가지. 그럼 다녀올게. 아, 지크, 잠시간만 내 역할은 네가 좀 맡아줘, 알았지? 넬도 이따가 보자.”

“네! 다녀오시길!”

넬의 힘찬 인사를 들으며 리오는 곧 밖으로 나섰고, 리오가 나가는 모습을 보던 바이칼은 선반 위에 리오가 꼭 쓰고 나가던 넓은 선글라스가 놓여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그것을 들고 리오를 쫓아 나갔다.

“리, 리오 씨! 이것 잊고 가시면‥아앗–!!”

순간, 바이칼은 그만 현관에서 발을 헛디디며 중심을 잃어버렸고, 리오는 재빨리 바이칼을 안아 넘어지는 것을 겨우 막아 주었다. 공중으로 튕겨진 선글라스는 안전히 리오의 손에 들어왔고,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바이칼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이런, 계속 조심하라고 그랬잖아. 왜 이렇게 자주 넘어지는 거지?”

리오에 의해 일으켜 세워진 바이칼은 울먹이기 시작했고, 리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리오는 솔직히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으나 꾹 참으며 바이칼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리, 리오 씨‥?”

그때, 누군가의 희미한 목소리가 리오의 옆쪽에서 들려왔고, 리오는 흘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세이아가 눈을 크게 뜬 채 리오와 그에게 안겨 있다시피 한 바이칼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리오는 자신이 생각해도 현재의 상황이 상당히 오해를 살 거라는 느낌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세이아를 불렀다.

“아, 세이아 씨. 지금은‥.”

“죄, 죄송해요!!”

세이아는 그렇게 말을 하며 곧장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 버렸고, 리오는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후, 운명의 장난 같군. 어쩔 수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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