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23화
「아직인가!」
급속으로 날고 있는 상태인 바이칼은 자신의 등에 타고 있는 바이칼에게 소리치듯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기 학교 앞에 보이는 노란 간판의 가게에요!”
바이칼은 힘껏 날개를 펄럭이며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향했다. 그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주위의 하늘마다 하얀 연기를 달고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음!?」
순간, 바이칼은 아래쪽에서 솟아오르는 이상한 느낌에 역동작을 취했고, 갑자기 그가 멈추자 등에 있던 바이칼은 깜짝 놀라며 자세를 낮추었다. 두 바이칼의 앞엔 고풍스러운 옷에,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에 비녀를 꽂은 한 남자가 섰고, 그는 용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바이칼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용제. 300년 전 용족 전쟁 이후 처음이지요?”
바이칼은 자신 이상의 묘한,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는 그 남자를 그리 좋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동룡족의 우두머리가 여긴 왠일이지.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바이칼의 물음에, 그 남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여동생을 찾으러 왔습니다. 당신에게 납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누가 네 동생이야! 갑자기 나타나서는‥!! 쓸데없는 소리 접고 어서 꺼져!!」
바이칼은 노기를 뿜으며 그 남자에게 소리쳤고,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바이칼에게 다가갔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이칼의 등에 탄 바이칼에게 가는 것이었다.
“‥자, 그동안 무서웠지 리디아? 어서 오라버니와 함께 돌아가자꾸나. 예전에 화를 낸 것은 용서해 주려무나.”
순간, 바이칼의 눈엔 더 이상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는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바이칼은 그 남자를 향해 입에서 푸른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꺼지라고 말했다 ‘주룡’!! 더 이상 내 동생에게 손을 대면 용서하지 않겠다!!」
바이칼의 브레스를 가벼운 몸짓으로 피한 그 남자–동룡족의 주룡(主龍) ‘쥬빌란’은 이윽고 바이칼과 시선을 맞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리디아는 어마마마께서 낳으신 이 몸의 동생입니다. 저 아이의 몸에 흐르는 피와 내 몸에 흐르는 피는 같습니다. 당신이 어째서 내 동생을 당신의 동생이라고 억지를 쓰시는진 모르겠지만, 이제 그런 추태는 그만 하시지요. 지금 이 근처의 상황도 그리 좋진 않으니 협조를 해 주시겠습니까.”
「시끄럽다!!」
결국, 바이칼은 분노를 터뜨리며 몸의 크기를 원래대로 거대화시켰고, 그의 분위기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쥬빌란 역시 자신의 몸을 용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적색의 비늘로 뒤덮인 긴 몸, 머리에 난 여섯 개의 뿔, 흰색의 수염들, 그리고 손에 쥔–일명 ‘여의주’라 불리는–거대한 소울 스톤‥. 규모로 따져선 결코 지지 않은 둘의 거대한 모습은 상공을 뒤덮었고, 아직도 바이칼의 등에 매달린 상태인 바이칼은 울며불며 둘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그만하세요 두 분 다! 더 급한 일이 있잖아요!!”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지면과 충돌하여 대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위성들의 소리에 가려져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바이칼과 쥬빌란은 밀려오는 폭발의 섬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각자 결계를 쳤고, 주위의 가옥과 학교, 그리고 지크의 어머니 레니가 운영하고 있는 노란색 간판의 문방구는 힘없이 빛에 휘말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전 세계의 일부는 하늘에서 떨어진 위성들의 핵융합 폭발에 휘말려 잿더미로 변해갔다. 단 하나 다른 곳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 부분에서 붉은색의 거대한 빛줄기가 위성 하나를 휘감은 채 대기권을 뚫고 솟구치는 것이었다.
전 세계의 일부라고는 했지만, 폭발의 부위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주요 도시나 수도여서 사상자의 수는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정보를 입수할 수 없었다. 30여 년간의 노력에 의해 겨우 깨끗해진 지구의 공기는 솟구친 재에 의해 더러워졌고, 바다 역시 짙게 깔린 구름에 의해 검게 변해갔다.
복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구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집 밖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바이오 버그들과 검고 붉은 장갑을 가진 두 종류의 로봇들에 의해 거리는 계속 파괴되었고 사람들이 계속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2037년 3월 31일.
사람들은 그날을 암흑의 날이라 불렀다.
※※※
폭발의 여파가 사라진 후, 바이칼과 쥬빌란은 자신들의 몸에 치고 있던 결계를 걷은 후 서로를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쥬빌란은 폐허가 되어 버린 근처의 지형을 둘러보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주위가 대충 정리되었으니 실력 행사를 해 볼까요. 그리 내키진 않지만‥.」
「원하던 바다 주룡. 네 녀석의 입을 완전히 봉해주지‥!」
그때였다. 둘의 귀를 가르는 누군가의 절규가 들린 것이.
“아줌마!! 레니 아줌마–!!!! 시에–!!!!”
등에 있던 바이칼은 재로 변해버린 노란 간판의 문방구를 바라보며 절규했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바이칼은 아차 하며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바이칼의 등에 얼굴을 대고 울던 그녀는 잠시 후 분노에 찬 얼굴로 바이칼과 쥬빌란을 향해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당신들‥당신들이 서로 싸우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사람을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었을 것 아니에요!! 제가 리디아든 바이칼이든 그게 중요한가요, 아니면 사람들의 목숨이 중요한가요!!!”
그러자, 쥬빌란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등 생물이 죽는 것은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인간들은 어차피 더하지 않니? 자신보다 하등의 생물들을 음식 이외의 용도로 죽이며 즐거워하지. ‘사냥’이라는 명목으로 말이야. 우린 인간들보다 훨씬 나은 거다.」
“그, 그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바이칼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기분도 그리 좋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레니, 그리고 시에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르륵–
순간, 문방구가 있던 지점이 크게 꿈틀거렸고, 셋의 시선은 한꺼번에 그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검게 변해버린 지면을 뚫고 붉은색 털을 가진 거대한 사자가 튀어나왔고, 몸에 희미한 결계를 치고 있는 그 존재는 가만히 바이칼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결계를 걷은 후 반가운 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 사자는 등에 달린 날개를 퍼덕여 바이칼에게 접근해 왔고 그의 목에 매달린 후 혀로 안면을 핥기 시작했다.
바이칼은 지금 자신에게 매달려 기뻐하고 있는 사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베히모스‥! 설마 시에‥?」
‘시에’라는 말이 바이칼의 입에서 들려오자, 그 베히모스는 더욱 기뻐하며 바이칼에게 몸을 부벼댔다. 그런 뒤, 앞발을 자신의 텁수룩한 갈기 속에 넣은 후 무언가를 바이칼의 눈앞에 꺼내 보였고, 바이칼은 순간 다행이라 생각하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레니‥! ‥너도 그럭저럭 쓸 때가 있군.」
바이칼은 베히모스의 모습으로 변한 시에에게 레니를 받아 든 후 쥬빌란을 바라보았다. 시에 역시 쥬빌란에게 시선을 돌린 뒤 으르렁대기 시작했고, 갑자기 커다란 상대가 둘이 되어버린 쥬빌란은 순식간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후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는 수 없군요. 잠시 동안 리디아를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쥬빌란은 차원의 문을 연 후 곧바로 사라져갔고, 바이칼은 지상으로 내려온 뒤 레니와 바이칼을 지상에 내려준 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시에는 인간형으로 변하는 것을 모르는지 하늘에 멍하니 떠 있었고, 바이칼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계속 떠 있어. 넌 내려오면 위험해.”
「크응.」
시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바이칼은 곧 레니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괜찮군. 운 하나는 좋은 인간이야. 자, 리디아. 돌아가자.”
짜악–!!
순간, 바이칼의 얼굴에 여자 바이칼의 손이 날아들었고, 의외의 공격에 당한 바이칼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계속 흘리며 바이칼에게 소리쳤다.
“그만 해요!! 이젠 싫어요‥그 이름, 이젠 그 이름으로 불리기조차 싫다고요!!! 그 이름 때문에 레니 아줌마와 시에가 위험할 뻔했다고요!!! 제가 당신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그렇게 싫으시면 당신이 이름을 바꾸세요!!!”
“뭐라고‥?”
순간, 바이칼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고, 결국 그는 그녀의 뺨을 강하게 치고 말았다.
파악–!!
“아앗!!!”
그녀는 힘없이 땅 위에 쓰러졌고, 그 모습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던 시에는 움찔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이칼은 곧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들어 올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 이름, 바이칼이라는 이름은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고, 리디아라는 네 이름 역시 아버지께서 지으신 이름이다!! 이름 가지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
“‥흐윽‥!! 당신이 뭔데 그러세요!!! 당신이 저에게 뭐가 된다고 이러시냐고요!!”
“네 오빠지 누구긴 누구야!!! 아까도 들었잖아!!!!”
“‥!?”
순간, 그녀는 울음을 잊고 바이칼을 바라보았고, 바이칼은 그녀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푼 뒤 그녀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동생이라고‥내 동생‥여동생‥!! ‥빌어먹을‥!!!”
바이칼은 입에서 거친 소리를 하면서도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빼지 않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는 시에는 지상에 있는 둘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 . . . .
리오는 창문들을 제외하곤 거의 무사한 자신의 집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짓고 있는 리진을 뒤로 한 채 말없이 뿌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기는 아직도 폭발의 여파 때문에 후끈거렸지만, 리오에겐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와카루‥당신인가. 하긴, 이런 장난 아닌 장난을 할 인간은 당신뿐이겠지‥.’
리오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조금 후, 리오는 바닥에 떨어진 거대한 전광판 위에 힘없이 앉아 있는 넬을 바라보았다. 넬은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진이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리오는 천천히 넬에게 다가갔고, 그녀를 뒤에서 안아주며 물었다.
“‥괜찮니‥?”
“‥괘, 괜찮‥아요‥.”
리오는 넬의 뚝뚝 끊기는 말을 들으며 안타까움에 눈을 감았다. 그는 넬의 좁은 어깨에 자신의 턱을 가져가며 나지막히 말했다.
“‥울어도 괜찮아‥. 넌 아직 어리니까‥.”
“아, 아니‥에요. 저, 전‥BSP‥인걸요‥.”
눈물을 최대한 참고 있는 넬의 말을 들은 리오는 곧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내 눈엔 마음속으로 펑펑 울고 있는 보통 소녀로 밖엔 보이지 않는걸.”
“‥그, 그만 하세요‥!! 우, 울어버릴‥거란 말이에요‥흐윽‥!!!!”
넬은 결국 자신을 안고 있는 리오의 아대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리오는 자신의 아대에 넬의 눈물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와카루‥. 언제까지 이 착한 사람들을 괴롭힐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