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60화
“젠장, 탄환이 다 떨어져 가는군! 선배님은 얼마나 남으셨습니까!!!”
밀려오는 바이오 버그들과 멀리서 원거리 공격을 감행해 오는 가변형 전차 ‘귀골’들을 힘겹게 상대하던 케빈은 다급한 목소리로 헤이그에게 물었고, 이미 백병전용 ‘쇼트 너클’을 웨드의 양손에 장착한 상태인 헤이그는 소리치듯 케빈에게 말했다.
“레이저 게틀링의 에너지는 1분 정도 쏠 수 있고, 메기드 바주카는 한 발 남았어! 자네는 어떤가!”
“탄창 하나 정도 남았습니다! 프로톤 라이플은 여분이 없습니다!”
다른 BSP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이키와 티베는 연속되는 마법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지금 마법을 쓰는 것도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진과 챠오, 마키 등 근접 전투가 능한 사람들이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이었지만, 그들 역시 웨드 자체의 에너지가 거의 다 떨어진 상태여서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헤이그는 설마 자신들에게 이 정도의 병력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원래의 계획은 동룡족의 후방을 ‘적당히’ 공략한 뒤 뒤로 빠지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현재 모스크바에 배치된 바이오 버그들과 귀골들을 전부 상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대하고 있는 바이오 버그와 귀골들이 전체의 ⅔라는 사실을 BSP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에게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녀석들 얼마나 되는 거야!! 끝이 없잖아!!”
리진은 자신에게 덤벼들던 대형 바이오 버그 하나를 적진에 내 던지며 크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투덜거림을 받아줄 여유가 있는 동료는 현재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 마키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모니터로 구경해 왔던 전투가 얼마나 쉬운 것이었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숫자의 병력이 몰려와도 가공할 정도의 파괴력으로 적을 일소하는 리오가 참전한 지금까지의 전투와, 그가 빠진 현재의 전투는 시간적 손실이나, 물자적 손실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마키는 다시금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정신 차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한참 생각을 하고 있던 마키의 귀에, 챠오의 안정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마키는 다시 전의를 다진 뒤 바이오 버그들을 이리저리 쳐 내며 챠오에게 말했다.
“리오 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느끼고 있을 뿐이야. 물론 챠오도 동감하고 있겠지만.”
“…그렇군.”
챠오와 마키의 웨드는 앞에 있는 적들을 적당히 처리한 뒤 동시에 뒤쪽을 돌아보았다. 뒤쪽에 밀려 있던 적들이 자신들에게 몰려와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
순간, 그녀들의 눈앞엔 황색의 거대한 빛 두 줄기가 앞쪽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 보였고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던 바이오 버그와 귀골들은 흔적도 없이 뒤로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자신들의 앞에 갑자기 펼쳐진 엄청난 광경에 넋을 잃고 있던 둘은 머리를 흔들며 아랫쪽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챠오와 마키는 숨을 죽이고 말았다. 어깨까지 살짝 내려오는 빛나는 금발. 흰색과 흑색, 적색이 적절히 조화된 배틀 코트.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차가운 표정. 그리고 몸에서 풍기는 거대한 위압감….
“휀…, 휀·라디언트!?”
마키는 휀이 분명 아군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신계에서조차 ‘휀’이란 이름은 신성 불가침 정도의 단어로 지칭되는 탓이었다.
휀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고, 챠오와 마키의 웨드를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리 재미있진 않았는지 곧바로 뒤로 돌아섰고 품 안에서 한 손에 잡힐 정도의 지름을 가진 원통형 물체를 꺼내었다. 그 원통의 앞쪽에 위치한 삼각뿔 모양의 물체가 반으로 갈라져 옆으로 펴지는가 싶더니, 곧 그 표면에선 흰색의 빛이 검의 날 모양을 갖추며 뻗어 나왔다. 휀은 그것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것이 초절성검 에릭튜드…인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휀의 모습은 챠오와 마키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바이오 버그와 귀골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이후였다. 뜻하지 않은 강력한 지원병에 휀을 모르는 다른 BSP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단 10여 분만에 바이오 버그들과 귀골들을 전멸시킨 휀은 다시 웨드들에게 접근한 뒤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인가.”
그의 목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겨우 들은 챠오와 마키는 급히 웨드와의 트랜스를 푼 뒤 콕핏을 열고 휀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고, 그녀들의 모습을 본 휀은 에릭튜드를 거두며 짧게 한숨을 내 쉬었다.
“…아쉽군.”
………………………. . . . . . .
“뭐라고!!! 바이오 버그들과 귀골들이 전멸당했다고!!! 그것도 단 10여 분만에!!!”
총 사령관 솔런은 부관의 보고를 접한 즉시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전투가 개시된 이후 내내 서서 안절부절 하고 있던 그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고, 그는 힘없이 부관에게 물었다.
“…어째서인가. 확인된 바로는 패왕 리오 녀석도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는데…. 어째서인가!!!!”
솔런의 물음에, 전멸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부관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만을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한 병사가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왔고 그 병사는 경례도 붙이지 않고 다급한 목소리로 솔런에게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큰일입니다 장군님!!! 과, 광황…!! 광황입니다!!!!”
그 순간, 막사 안에 있던 솔런과 부관의 표정은 일순간 얼어붙었고, 솔런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병사에게 물었다.
“…뭐라? 광황…?”
“예!! 광황, 휀·라디언트입니다!!! 현재 본진 안쪽까지 침입한 상황이며….”
퍽–!
그러나, 그 병사는 말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머리와 몸이 따로 떨어지며 막사 안에 쓰러졌고, 뒤이어 막사 안으로 들어온 한 남자를 본 솔런과 부관은 사색이 되며 막사 밖으로 탈출하려 했다. 그러나, 그 남자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퍼진 순간 둘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둘은 공포로 가득 찬 눈으로 막사 안까지 들어온 그 남자를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 휀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병사의 머리가 방해되는 듯 옆으로 쳐 굴려버린 뒤 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죽어.”
막사의 바깥쪽을 향해 뿜어져 나간 한 줄기의 빛은, 어떻게 해서든지 모스크바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 동룡족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 솔런의 허무한 최후를 일시적이나마 전 군에게 알리고 있었다. 본진까지 순식간에 당해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란바랄은 또다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대로 혼자 도망친다면 분명 쥬빌란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는 자신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상대가 휀인 이상 싸워 봤자 허무한 죽음뿐인 탓이었다. 결국, 란바랄은 자신이 충성을 바친 남자의 칼에 죽겠다는 마음으로 후퇴 명령을 내렸고, 서쪽에 있었던 탓에 피해를 받지 않았던 그의 부대는 여유 있게 후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방을 맡았던 부대들은 후퇴할 가망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방, 후방 모두 가즈 나이트들에게 저지당한 상태였고, 상당수의 장군들이 지크와 데스 발키리들에 의해 핏방울로 변해버린 탓에 병사들이 의지할 지휘자는 오직 플루소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플루소조차 슈렌과의 일기토에 정신을 집중한 상태여서 병사들에게 남은 길은 투항 아니면 자결뿐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플루소는 여전히 슈렌과 무기를 맞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슈렌에게 전수받은 기술을 자신이 직접 발전시킨 플루소의 실력은 슈렌과 거의 대등할 정도였고, 그것을 증명하듯 슈렌 역시 그녀와의 대결만큼은 여유 없이 치르고 있었다. 한때는 봉을, 한때는 삼절곤을 이용한 변화무쌍한 플루소의 공격은 슈렌을 몰아붙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의 약혼자를… 내 사랑을, 내 미래를!!! 난 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슈렌·스나이퍼!!! 여기서 네 목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난 저승에게 그에게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슈렌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기도 했다. 수라도를 사용한 탓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일순간 이성을 잃은 대가가 이 정도로 참혹한 것인지 슈렌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그때, 한참 대결을 벌이고 있는 둘에게 레소드와 릭이 접근해 왔고, 레소드는 큰 목소리로 슈렌과 플루소에게 소리쳤다.
“슈렌님! 전투가 끝났습니다!! 동룡족 장군들은 플루소를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고, 동룡족 병사들의 상당수는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승리입니다!!!”
“멈춰라 플루소!! 귀공의 부대 역시 모두 투항한 상태다!! 쓸데없는 전투를 멈추고 투항하라!!! 반복한다, 투항하라!!!”
릭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플루소는 계속 슈렌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에겐 자신의 종족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전투였기 때문에 릭의 말이 그녀에게 통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플루소를 멈추게 하는 것은 슈렌에게 달린 일이었다.
“…플루소. 넌 아직 죽을 때가 아니야.”
“…?!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슈렌!!! 날 이긴 다음에나 그런 말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슈렌의 말에 더욱 흥분한 플루소는 무기를 봉의 형태로 바꾼 뒤 슈렌에게 돌진하기 시작했고, 슈렌은 그룬가르드의 끝으로 플루소의 봉 끝을 정확히 맞받아 쳐 그녀를 멀리 밀쳐낸 뒤 자신의 기염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결과가 확실한 일의 순서는 틀릴 수도 있는 법….”
“…쳇!!”
멀리 나가떨어진 플루소는 재차 슈렌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그때를 기다린 슈렌은 곧 준비했던 기술을 전개해 나갔다.
“헬·그랜드 노바…!”
온몸에서 기염을 뿜어내고 있는 슈렌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플루소를 향해 손을 휘둘렀고, 플루소의 밑쪽 지면에선 일순간 강력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 화염과 정면으로 충돌한 플루소는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의 공격에 크게 흔들리며 몸을 주춤했고, 기회를 잡은 슈렌은 플루소의 몸이 가는 방향에 맞춰 연속으로 화염의 기둥을 지면에서 뿜어 올렸고, 수차례에 걸친 그 공격에 플루소도 어쩔 수 없이 의식을 잃고 말았다. 원래, 핼·그랜드 노바는 마지막 일격을 그룬가르드 응용기, 그랜드 노바로 끝내야 하지만, 슈렌은 플루소가 의식을 잃자마자 기술을 중단시켰다. 그녀를 죽일 생각도 없었고, 또한 그랜드 노바를 쓸 정도의 체력이 슈렌에겐 남아있지 않은 탓이었다. 플루소가 힘없이 지면에 떨어지자마자, 슈렌은 지친 듯 머리를 감싸며 레소드에게 말했다.
“…플루소는 동룡족 장군들 중에서도 꽤 서열이 높으니 잘 대해 주도록.”
“걱정하지 마십시오 슈렌님. 양 종족 간의 포로 협정엔 장성급의 예우에 대한 항목도 있으니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지금은 우선 슈렌님께서 쉬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그렇겠군.”
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뒤로 돌아섰고, 릭이 곧 그를 부축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기함으로 향했다.
그렇게, 모스크바 탈환 작전도 서룡족의 승리로 마무리 지어졌다. 전투 이후, 뛰어난 성능과 파괴력을 보인 웨드의 양산기 보급은 문제없이 가속화되었고 서룡족은 러시아 전체를 탈환하여 이후 유럽을 점령하고 있는 동룡족들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에서 더 이상 탈환 작전을 실행할 수는 없었다. 최초로 온 드래고니스 호위 함대와 기동 함대로는 숫적으로 더 이상 세력 확장을 할 수 없는 탓이었다. 결국, 그 이후의 대형 탈환 작전은 4대 용왕의 함대가 올 때까지 잠정 지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