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70화
“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나중에 승부를 내야지.”
지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고, 리오와 슈렌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크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자자, 휴식 시간은 끝이니까 어서 가자. 그건 그렇고 바이칼 녀석 고역이겠군.”
리오가 밖으로 나서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지크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음, 그렇겠군. 자신보다 잘난 사람과 같이 있다는 건 그 녀석의 자존심이 허락 안 할 테니까. 녀석은 자존심이 세잖아.”
지크의 진지한 말을 들은 리오는 머리를 긁적일 따름이었다.
“…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
바이칼과 쥬빌란은 석상에 나란히 앉아 자신들의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축하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둘 다 축하 행사에 그리 관심이 없는 눈치였기에 서룡족과 동룡족의 행사 관계자들은 곤란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가까스로 졸음을 참아가며 의자에 앉아있는 바이칼이 정신을 번쩍 차린 것은 쥬빌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 직후였다.
“… 어머니께서 몇 개월 전 돌아가셨습니다.”
“… ? ‘이베린’… 말인가.”
바이칼은 그렇게 물으며 쥬빌란이 있는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한편, 바이칼의 뒤에 앉아있던 장로는 경악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고, 쥬빌란의 뒤에 앉아있던 올파드는 묵묵히 눈을 감았다. 쥬빌란은 행사장 위쪽으로 보이는 하늘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예, 그렇습니다. 그 직후 리디아가 실종되었습니다. 물론 저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이유도 있습니다. … 그땐 저 역시 모친의 일 때문에 힘겨웠던 상태인 탓이었지요. 그런데 설마 리디아가 당신에게 보호를 받고 있을 줄은… 후훗….”
쥬빌란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바이칼은 속으로 왠일인가 생각하면서도 퉁명스럽게 그의 말을 쏘아붙였다.
“… 그런 말을 한다 해서 내가 리디아를 돌려줄 거라 생각하나.”
그러자, 쥬빌란은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고, 잠시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용제님.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
“… 전 당신께 단 하나 빼고는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리디아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은, 저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는 사실과 일맥상통 한답니다.”
바이칼의 눈은 가늘게 변했고, 쥬빌란은 그런 바이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
“… 당신은 좋은 친구분들을 두고 계십니다. 가즈 나이트 분들을 비롯해, 그 밖에 많은 분들이 당신의 곁에 계시지요. 반면,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 곁엔 어머님과 리디아 단둘만이 절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리디아는 당신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대신 또 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되었습니다. 너무 불공평하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풋.”
쥬빌란의 말을 들은 바이칼은 곧 비웃듯 미소를 지었고, 이번엔 쥬빌란이 말없이 바이칼을 바라보게 되었다. 바이칼은 낮은 목소리로 쥬빌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 그것이 나와 귀하의 차이점이다. 심복이라면 모를까, 그런 친구 한 명조차 가지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최고 권력자의 이름을 가질 수 있겠나.”
“…!!”
“그리고, 한 가지 말해 두겠지만 가즈 나이트 녀석들은 주신이 맘대로 날 협박해 붙여놓은 녀석들이다. 난 귀찮은데 그 녀석들이 나에게 추근대는 것뿐이지. 징그럽게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동룡족은 600년 전 서룡족을 가지고 놀듯 리디아를 빼앗아갔다. 하지만 지금 난 제 발로 나에게 온 리디아를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리디아의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말아주길 부탁한다. 정 모셔두고 싶으면 실력으로 빼앗아 보도록.”
바이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쥬빌란은 곧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고, 다시 눈을 뜨고 행사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충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두 권력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로는 이젠 정말 큰일이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바이칼의 말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고, 쥬빌란의 대답 역시 선전포고를 받아들이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고민에 휩싸여 있는 장로의 귀에, 올파드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장로님. 저도 왔는데 오늘은 즐겁게 보내시지요. 그렇게 고민만 하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하하하핫….”
“… 아, 죄송합니다 올파드님.”
올파드는 미소를 지은 채 행사를 지켜보았고, 올파드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장로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 그래, 올파드를 비롯해 동룡족의 실질적인 주 전력들인 군주들이 등장한 이상, 이제 간단한 전투는 더 이상 없다. 그건 그렇고 올파드… 여전히 두려운 남자군. 선왕 때부터 지금까지….’
바이칼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동룡족 사이에선 리오가 차지하는 위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유일한 남자 올파드. 그에 의해 드래고니스마저 여러 차례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장로는 지금부터가 진짜 전투라 생각하며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용신제의 첫날도 무사히 지나갔다.
※※※
정오에 있을 마지막 행사를 앞두고, 바이칼은 리오를 불러 어제 쥬빌란과 나누었던 내용을 얘기했고 그 얘기를 들은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서 리디아가 그때 만취한 상태로 도시를 거닐고 있었던 것이군. 근데 왜 하필 이 차원의, 이 나라의 이 도시였을까?”
“… 그건 ‘왜 하필이면 네가 가즈 나이트가 됐을까’라는 질문과 같아. 우연성 치고는 이상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지.”
“… 흐음….”
리오는 한숨과 함께 팔짱을 꼈다. 그러다가, 다시 바이칼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 너나 쥬빌란이나, 최고 권력자라는 것은 참 힘들겠구나. 너야 뭐 자주 놀러 나간다고는 치지만 쥬빌란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으니…. 나라도 내 동생 돌려달라고 체면 무릅쓰고 얘기할 수도 있겠어. 물론 너도 600여 년 만에 동생을 다시 만나긴 했지만 말이야.”
“….”
바이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던 그는 곧바로 리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 나와 쥬빌란, 둘 중 누가 더 불행한 것 같나.”
“… 뭐?”
바이칼의 의외의 질문을 들은 리오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곧이어 웃음과 함께 바이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하핫…. 좋아, 그럼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너, 날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
한참 동안 고민하던 바이칼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곧바로 바이칼에게 말했다.
“이런 고민 사항이나 중요한 얘깃거리를 털어놓을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을 네가 당연히 더 행복하지. 쥬빌란은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친구를 못 사귄 듯하지만, 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사귀고 있잖아. 넌 훨씬 나은 거지.”
“….”
“음… 근데,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뭐야? 갑자기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되어졌어?”
“….”
바이칼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리오는 그의 어깨에 자신의 두꺼운 팔을 걸치며 말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난 죽으면 한 송이 백합이 될 거예요’라고 헛소리를 하는 철없는 애들로 족해. 물론 그 애들이 죽으면 백합이 되긴 하겠지. 하지만, 자신의 관 위에 백합을 올려놓을 사람이 흘릴 눈물은 생각하지 않는 바보일 뿐이야. 뭐, 너야 ‘백합 사상’ 따윈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한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 그걸 듣는 내 마음은 어떻겠어.”
“….”
바이칼은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리오는 곧 손으로 바이칼의 볼을 살짝 토닥거리며 말했다.
“자자, 이제 곧 행사가 시작될 테니 또 얘기할 것이 있으면 나중에 하자. 지금부터는 사춘기 청년이 아닌 용제 바이칼님이 되셔야 하니까. 후훗….”
“… 흠.”
바이칼은 곧바로 휙 돌아서서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때, 우연찮게도 가로등에 기대어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아란과 눈이 마주쳤고 리오는 그리 달갑지 않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 흠, 그렇게 관람하는 게 취미인가.”
“… 후훗, 당신 덕분에 취미가 한두 개씩 늘어가는군요. 그건 그렇고, 용제님과 상당히 친하신데요? 너무 친해서 ‘연인’처럼 보일 정도로… 후후훗….”
그러자,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씁쓸히 웃어보였다.
“… 뭐, 연인이란 말은 용서해 주지. 그 정도로 친하게 보인다는 말일 테니까. 그런데, 오늘은 또 용건이 뭐지? 용건 없으면 잘 나타나지도 않는 아가씨가 오늘은 왠일인가.”
리오가 말하는 동안 천천히 그에게 접근한 아란은 리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와 팔짱을 꼈고, 리오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 그냥,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어서죠. 후훗…. 추가로 정보도 있어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오는 ‘정보’라는 말에 곧 승낙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란에게 말했다.
“… 좋아. 대신, 정보는 확실해야 해.”
“마음대로….”
리오와 아란은 천천히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