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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77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레베카가 있던 곳은 작은 연옥으로 변해버렸고, 세 명의 데스 발키리는 움찔하며 잠깐 타오르다가 사그라드는 불꽃에 시선을 집중했다. 조금 후, 맨손의 레베카가 연기를 뚫고 뒤로 굴러 나왔고 그녀는 아무 충격도 받지 않았는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으윽! 정말 봐주지 않겠다는 말이군!!”

그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휀 역시 연기를 뚫고 천천히 걸어 나왔고 레베카를 지나쳐 걸어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조금은 봐준다고 했다.”

퍼억–!!!

순간, 주위에 있던 전룡단들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데스 발키리들 역시 알테미스를 제외한 아란과 츄우는 움찔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말았다.

“아, 아아악–!!!!”

팔 다리 모두가 풍선처럼 터져 나가고 몸만이 남은 레베카는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휀은 코트에 묻은 살점들을 털어내며 다시 데스 발키리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너, 너무하잖아요! 어떻게 여자를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츄우는 인상을 찡그린 채 휀에게 소리쳤고, 휀은 곧 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 하긴, 깨끗이 재로 만드는 게 미관상 더 나았겠군. 이제부턴 염두에 두지.”

“아, 아니에요! 염두 안 하셔도 돼요!!”

츄우가 손을 흔들며 말하는 것과는 달리, 아란과 알테미스는 속으로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레베카가 단 일격에 저런 모습이 될 줄은 그들 역시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아란은 디스파이어를 내리며 휀에게 말했다.

“아, 사과하죠 휀. 저희가 아무래도 실수를….”

“나와라. 계단은 평지보다 살점들을 청소하기 힘드니까.”

“…!!”

아란은 움찔하며 다시 디스파이어를 올렸고, 휀의 몸에선 곧 알 수 없는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위압감….

주위에 있던 전룡단을 비롯해, 휀에게 당한 레베카도, 츄우도, 아란도 자신들의 몸이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아란은 휀의 실력만을 보기 위한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몰랐기에 침을 꿀꺽 삼키며 알테미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알테미스도 마찬가지였다. 알테미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본 아란은 이젠 끝이구나 생각하며 휀을 다시 돌아보았다. 휀은 여유 있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아란에게 말했다.

“날 시험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 아무래도 더 피를 뿌리면 이 왕궁의 주인이 또 징징대며 따질 것 같으니 이번만은 여기서 그만하겠다. 물론 더 이상 진행할 가치를 못 느끼긴 했지만.”

휀은 곧바로 뒤로 돌아섰고, 일순간 주위를 뒤덮고 있던 기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직도 사지가 회복되지 않아 바닥에서 몸을 꿈틀대고 있는 레베카를 지나친 휀은 왕궁 호위를 맡은 전룡단 단장 쪽으로 가며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전룡단은 다시 각자 위치로. 난 다섯 시간 후 다시 오겠다.”

“예!”

휀은 플렉시온을 거두며 어디론가 걸어갔고, 그의 모습이 희미해지자마자 데스 발키리들은 무기를 거둔 뒤 쓰러져있는 레베카에게 다가갔다.

“으앙! 레베카, 괜찮아!”

그러나, 츄우의 질문에 레베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출혈로 인한 쇼크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츄우가 레베카에게 회복 주문을 사용하는 동안, 아란은 알테미스에게 아까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 너조차 식은땀을 흘리던데,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휀이란 남자.”

바닥에 흩뿌려진 레베카의 피를 손에 묻혀 바라보던 알테미스는 아란의 질문이 나오자마자 피를 바닥에 다시 털며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리오라는 남자는 평소 땐 진짜 실력을 나타내지 않았어. 10%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라면 10%의 힘만 내지. 일말의 방심을 노릴 수도 있지만 휀이란 남자는 달라. 언제나 100%의 힘을 발휘해. 방심도 없고, 약점도 없어. 현재 우리로선 상대가 안 되지만 그래도 오늘 일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 정도의 위압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지.”

“… 그래.”

아란은 한숨을 쉬며 팔짱을 끼었다. 그 사이, 츄우의 강력한 회복 마법과 레베카 자신의 재생 능력에 의해 레베카의 사지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의식을 되찾은 레베카는 츄우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키며 쓰디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지? 당하는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 정신 차렸으면 토울 해머나 가지고 돌아가자 레베카. 아무래도 전룡단 아저씨들의 눈초리가 안 좋으니까.”

아란은 레베카의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렇게 말했고, 레베카와 츄우는 곧바로 깨끗이 뒷정리를 한 뒤에 다른 둘과 함께 집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토울 해머의 일격이 떨어진 흔적뿐이었다. 제궁 호위단은 문 앞에 크게 파여진 구멍을 어떻게 메울까 고심하며 길게 한숨을 지었다.

※※※

“이봐, 좋은 제궁 놔두고 여긴 또 왜 온 거야?”

지크는 자신의 앞에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눕는 휀에게 따지듯 물었고, 휀은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제궁이란 곳은 사적인 곳. 그곳에 있으면 난 한시라도 쉬지 못해. 정확히 네 시간 반 있다가 날 깨우도록.”

휀이 그렇게 말하자, 지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2층으로 올라갔고, 휀은 한숨을 길게 쉬며 잠을 자기 위해 애를 썼다. 오늘은 그에게 있어서 어느 때보다 힘든 하루였다. 호주에 있는 드래고니스를 찾기 위해 온종일 지구를 날아다녀야만 했고, 또 오자마자 바이칼의 위치를 대신해 드래고니스의 일과 이후의 일을 처리하고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휀은 몸도 마음도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다. 하지만, 휀은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쓰러진다면 드래고니스도, 그리고 이 세계도 쓰러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한 탓이었다.

“자, 이거나 덮으시지.”

“…?”

휀은 갑자기 자신의 가슴에 푹신한 무언가가 던져지는 것을 느꼈고, 눈을 살짝 떠서 자신의 가슴을 덮은 것을 바라보았다. 분홍색 바탕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작은 이불이었다. 휀에게 이불을 던져준 지크는 자신을 흘끔 바라보는 휀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약간 멋쩍은 듯이 윙크를 한 채 말했다.

“제궁엔 여섯 시간 후에 도착한다고 말할 테니 편히 쉬라구 ‘대장’. 헤헷….”

“….”

휀은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고, 지크는 거실의 불을 미등으로 바꾼 뒤 TV를 틀어 보았다. 물론 야밤이어서 나오는 것은 변변치 않은 재방송뿐이었지만, 한 달간 재방송조차 보지 못한 지크에겐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 지크.”

“음? 왠일로 말을 거시나?”

한참 TV를 보던 지크는 휀이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휀이 누워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휀은 누운 상태로 조용히 지크에게 물었다.

“얼마만큼 바람이 되어 있나.”

“… 잉?”

지크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조금 뒤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모르겠어.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이 될 정도로 강해진 건지, 아니면 그냥 밥 벌레 정도일 뿐인지 잘 모르겠어. 진정한 바람의 힘을 깨우치긴 했지만….”

“웃기는군.”

휀의 말이 나온 순간 지크는 말을 멈추었다. 휀은 그 상태로 계속 말을 이었다.

“진정한 바람의 힘? 몸에 회오리 감고 날아다니는 것이 진정한 바람의 힘이라고 생각되나. 진정한 바람의 가즈 나이트는, 천공을 뒤흔들고 대기를 찢을 수 있어야 한다. 넌 바람의 힘을 깨우친 게 아니라 바람에 속해 있을 뿐이다. 네가 처음 가지고 있는 ‘뇌력’은 가즈 나이트의 힘이 아닌 네 스스로의 힘이었다. 지금 깨우친 바람의 힘은 아기가 ‘엄마’라는, ‘마마’라는 원초적인 단어를 깨우친 것에 불과하다.”

“… 젠장, 그럼 어떻게 하라구. 어떻게 하면 속이 시원하겠어?”

지크가 양 팔을 벌리며 투덜대자, 휀은 몸을 뒤척이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 어쨌거나 넌 잘하고 있다. 내가 놀랄 정도로. 이제 너에게 남은 것은 네가 바람이 되는 게 아니라, 바람이 네가 되는 것이다.”

“…!”

지크는 멍하니 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휀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잠시 후, 더 이상 휀이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 느낀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TV에 시선을 돌렸다.

“제기랄, 맨날 나만 보면 넌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얼굴은 똥 씹은 사람처럼 해 가지고…. 칭찬해주면 어디 덧나나? 바이론 녀석하고 둘이서 똑같이 나한테 수수께끼를 내니 원….”

“… 이불 고맙다.”

“… 음?”

휀의 갑작스러운 감사를 받은 지크는 다시금 멍한 표정을 지었고, 곧바로 TV에 시선을 돌리며 자신의 볼을 양손으로 치기 시작했다.

“이젠 환청이 들리는구나…! 우우우우욱…!!”

“….”

휀은 그 후로 다섯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

“이봐, 지크!! 바람의 얼간이, 빨리 나와봐!!!”

“… 음?! 뭐야 땅강아지…. 에구, TV를 켜놨네….”

다음 날 이른 아침,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든 지크는 사바신이 깨우는 소리에 단잠을 깼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대충 매만지며 사바신과 함께 제궁 앞 광장으로 간 지크는 광장에 전룡단들이 수두룩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움찔하며 정신을 차렸고, 전룡단 사이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간 지크는 순간 자신의 숨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말았다.

“… 저 녀석, 백야 녀석하고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근데 왜 저렇게 작아졌지?”

지크의 눈에 비친 것은, 인간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줄어있는 화이트 나이트, 백야의 모습이었다. 화이트 나이트는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며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용제를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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