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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702화


종장 [희망이라는 이름의 광휘]

“아, 플루소 장군님!”

해변의 임시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보병들은(4대 용왕군임. 전룡단은 바이칼 직속의 특수부대) 플루소에게 경례를 붙였고, 플루소는 고개를 끄덕인 뒤 초소의 망루로 올라가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작전 지시가 있을 테니 자네들은 사령부 연병장에 집합하도록. 난 작전 지시를 받았으니 여기 대신 있겠네.”

“예? 하, 하지만 제 2 전룡단 단장께서 보초를 서시다니‥.”

“후, 이것도 명령이야. 어서 가보게.”

“아, 예!”

병사들은 다시 경례를 붙인 뒤 연병장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고, 플루소는 한숨을 길게 내 쉬며 망루 위로 올라갔다. 하와이란 이름의 커다란 섬‥. 그 섬의 달밤은 바다에 반사된 은은한 월광과 함께 아름다움을 더해갔다. 사실 플루소는 높은 망루에서 그 달밤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자청해서 보초를 맡은 것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밤바다를 감상하던 플루소는 문득 멀리 해변가에서 들려오는 모래 소리에 시선을 돌려 보았다.

팔시온 계열의 거대한 대검을 든 거대한 남자가 달빛 아래에서 자신의 기술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플루소 자신도 믿지 못할 정도로 그 남자의 검술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도저히 평상시에 그가 사용하는 파괴적인 검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회색 근육에 반사되는 회색 월광, 그리고 검 표면에 은은히 흐르는 암흑 투기. 파도처럼 휘날리다가도 어느 순간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는 길고 거친 머리채. 그 모든 것의 조화는 남자가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여기 있었군, 플루소.”

“아, 아버님.”

그때, 플루소의 귓가에 슈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망루 위로 가볍게 뛰어 오른 슈렌은 플루소의 뒤에서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무얼 보고 있었을까. ‥아, 바이론이군.”

“예. 그런데, 정말 놀랍습니다. 평상시의 바이론님 같지 않게 보이는군요.”

“‥저것이 바로 바이론의 진짜 모습이야.”

슈렌의 말을 들은 플루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슈렌은 옅은 미소를 띄운 채 플루소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대며 잔잔히 설명해 주었다.

“어둠의 진짜 뜻은 평안함‥. 오직 밤에만 대다수의 생물이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식물마저도‥. 바이론의 넓은 가슴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슬픔이 서려 있어. 물론 바이론은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진 않아. 그가 평상시에 뿜어내는 광기는 그 깊은 슬픔의 일부가 표출되는 것일 뿐이지. 그래서 바이론은 강해. 휀과 더불어 말이야‥. 바이론은 자신이 광기를 뿜어내며 싸워야만 다른 사람들이 편해진다고 생각하지. 그 자신만의 위안일지도 모르지만‥그것은 어디까지나 바이론이 남자인 탓이야. 진정한 남자인 탓이지‥.”

플루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바이론을 바라보았다. 작게 보이긴 했지만, 바이론은 미리 가져온 오크통 안의 깨끗한 술을 몸에 뿌리며 자신의 몸을 식히고 있었다. 바이론은 알고 있었다. 이제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이 세계 최후의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 . . . . . . . .>

사바신은 연병장 구석의 조명등 아래에서 레디와 함께 수련을 하고 있었다. 등에 중력식 바벨을 얹은 채 팔굽혀펴기로 몸을 단련하는 사바신을 보며, 레디는 걱정스런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이봐 사바신. 아무리 네가 힘이 좋다지만 400톤을 등에 지고 팔굽혀펴기를 하면 팔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레디의 걱정대로, 사바신의 손은 지면 깊숙이 파고든 상태였다. 하지만 사바신은 개의치 않고 계속 단련을 했고, 어차피 말을 해 봤자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레디는 어깨를 으쓱이며 정좌를 한 채 몸을 공중에 띄웠다.

“‥후우, 200번‥!”

200번째의 팔굽혀펴기를 마친 사바신은 곧 한 팔로 몸무게를 지탱한 뒤 등에 진 중력식 바벨의 중력 제어기 스위치를 내렸고, 곧 사바신의 등에 가해지던 400톤의 힘은 40Kg으로 낮춰졌다. 가볍게 몸을 일으킨 사바신은 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관절을 풀었고, 무게가 무게였던 만큼 그의 관절에선 수차례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탈골 등의 부상은 전혀 없었다. 수건으로 몸과 얼굴에 묻은 땀을 닦으며, 사바신은 레디를 향해 물었다.

“‥이상하게 긴장되지 않냐? 바이론도 오늘 한마디 안 하고 말이야. 보통 때 같으면 ‘크크큭‥멍청한 녀석들‥.’하며 게으르다고 야단칠 텐데‥.”

그러자, 조용히 명상을 하던 레디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바이론 역시 우리가 가즈 나이트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럴 거야. 큰 전투 전의 긴장감 정도는 우리도 느낄 것이다 믿고 있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뿐이야.”

“‥흐음, 그래.”

사바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무기, 팔봉신 영룡을 들고 무술 수련을 하기 시작했고 레디는 다시 눈을 감으며 명상에 잠겼다.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는 바이론의 믿음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

같은 시각, 영국 상공의 밤. 그리고 드래고니스의 공원. 인공 안개가 자욱히 깔린 그곳의 한 가로등 밑에서 리오는 세이아를 뒤에서 포근히 안은 채 말했고 그 말에 세이아의 얼굴은 약간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리오는 그녀를 더욱 강하게 안으며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은 성계신이시고 전 가즈 나이트입니다.”

“‥하지만, 절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예?”

“‥제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었을 때, 반드시 당신의 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해해 주실지 모르지만, 700여 년간의 상처는 일순간에 지우기엔 너무 크기 때문이랍니다.”

세이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리오는 가로등 빛을 받아 더욱 빛을 내는 세이아의 은발에 입술을 대며 말을 맺었다. 얼마 후, 세이아는 뒤로 돌아서서 리오에게 물었다.

“‥저도 약속을 할 테니, 한 가지 약속을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

세이아의 질문에, 리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세이아는 진지한 얼굴로 리오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리오 씨에게 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전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다릴 수 있다고‥. 하지만, 리오 씨께선 다른 여자분들을 슬프게 하진 말아주세요. 전 알고 있답니다. 저와 리오 씨 곁에 있는 다른 여자들‥특히 챠오는 리오 씨를 저 이상으로 걱정한답니다. 만약 리오 씨께서 저 혼자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사실을 챠오가 안다면 그녀는 분명 슬퍼하게 될 거예요.”

“….”

“챠오는 영원토록 리오 씨를 기다릴 수 없답니다. 하지만, 전 영원히 당신을 기다릴 수 있지요. 먼저 챠오에게 가 주세요. 그녀는 당신을 사랑한 죄밖에 없답니다.”

“‥알겠습니다.”

리오는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세이아는 리오의 두꺼운 목에 팔을 두른 뒤 리오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그와 짧은 키스를 나누었고, 곧 뒤로 물러서며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건투를 빌겠어요 리오 씨. 그럼 안녕히‥.”

세이아는 곧 어디론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세이아가 간 방향을 바라보던 리오는 자신의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의 여신을 위해‥.”

“‥아앗–!!”

그 순간, 세이아가 뛰어간 방향에서 그녀의 비명 소리와 함께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던 리오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그냥 천천히 가시지‥.”

리오는 빠른 걸음으로 세이아가 넘어진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차츰 보이기 시작한 세이아. 그러나, 세이아는 넘어져 있지 않았다.

“….”

묵묵히 세이아를 일으켜 준 휀은 장갑을 벗은 뒤 세이아의 치마를 털어주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무뚝뚝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휀은 몸을 일으킨 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묵묵히 밤길을 걸어가기 시작했고, 세이아는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난 어쩌면 좋지‥?”

<※※※>

같은 시각, 지크는 올파드와 마주 앉아 정신 수련을 하고 있었다. 둘 다 정좌를 한 채 앉아 있었고, 둘 모두 편안한 얼굴로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정신 수련을 하던 올파드는 눈을 살며시 뜨며 지크에게 물었다.

“자, 어떠냐. 이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진정되느냐?”

“….”

“‥이제 이 세계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처절한 전투가 될 것이다. 각오는 되어 있느냐.”

“‥드르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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