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705화


“‥재미있군요. 그럼,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불타는 듯 한 뜨거운 마음도 식혀드리지요. 영원히‥!”

순간, 넬슨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고 그와 동시에 슈렌의 푸른 장발은 크게 넘실거렸다. 그의 깨끗한 오른쪽 볼엔 긴 상처가, 그리고 양 팔과 두 다리 역시 면도날에 베인 듯 한 상처가 나고 말았다. 동맥을 다친 것인지, 슈렌의 양 팔과 두 다리에 난 상처에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그것을 본 레디는 깜짝 놀라며 치유 주문을 쓰려 했다. 그러나, 슈렌은 껍데기가 된 그룬가르드를 든 왼손으로 레디를 제지했고 레디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문을 멈추었다. 약간 몸을 숙이고 있던 슈렌은 곧 몸을 추스렀고, 넬슨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인조 단백질 덩어리에게 식혀질 마음이라면 700여 년 이상 타오르지도 않았다. 천천히 느껴보도록. 지옥의 업화를‥.”

“호오, 절 인조 단백질 덩어리라 하셨습니까? 미안하지만 전 당신의 형제인 지크와 같은 부류입니다. 절 인조 단백질 덩어리라 하심은 지크 역시 그렇다는 말과 같다고 들어야 하겠죠?”

넬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슈렌을 비웃듯 말했다. 그때, 레디는 보았다. 천천히 걸어가던 슈렌의 몸이 마치 섬광처럼 순식간에 넬슨의 가까이까지 움직인 것을. 레디는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는 한 번 더 놀라야만 했다. 수라도의 일자형 날이 어느 틈에 넬슨의 몸을 두 동강 내고 있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해버린 넬슨은 흠칫 놀라며 조직을 재생시켜 몸을 붙이려 했으나 수라도의 날은 그 순간을 봐주진 않았다. 넬슨의 한쪽 몸은 이미 불덩이로 변해 고약한 냄새를 내며 타 들어가는 상태였고, 넬슨은 결국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은 몸을 추스려 도망치려 했다. 물론 그것도 봐줄 슈렌은 아니었다. 수라도로 하나 남은 다리와 팔을 자른 슈렌은 곧 넬슨의 머리에 발을 가져갔고, 기동력을 잃어버린 넬슨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 억울한지 몸을 뒤틀며 슈렌의 발 밑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분노에 휩싸인 슈렌은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네가 지크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도 넌 나와 조금 더 오래 싸울 수 있었다. 전적으로 네 실수니 억울해 하지 않아도 돼. 그럼 자라.”

“시, 싫어!!! 난 너희들에 대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 FATHER에게 수개월 동안 강화 수술을 받았어!!!! 머리에 칩까지 박아 넣었단 말이야!!!! 내 시간을 돌려줘!!!!!”

넬슨은 갑자기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생명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하지만 슈렌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그의 발악은 너무나도 무의미했다. 넬슨의 머리는 곧 슈렌의 부츠 바닥 밑에 으깨졌고, 슈렌은 기염력으로 넬슨의 사체를 모조리 태워버리며 레디에게 돌아왔다.

“‥회복을 부탁해.”

순간, 슈렌은 수라도를 땅에 박으며 힘없이 무릎을 꿇었고, 그것이 과다 출혈에 의한 증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레디는 곧바로 치유 주문으로 슈렌의 몸에 특별한 액체를 공급하며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를 치료하며, 레디는 슈렌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저어, 슈렌. 아까 그 스피드를 낸 건 어떻게 한 거야? 보니까 지크보다도 훨씬 빠른 것 같던데‥.”

“‥아드레날린 성분은 육체를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들지. 물론 그만큼 육체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수라도는 누구를 막론하지 않고 사용자가 다량의 아드레날린을 생산하도록 촉진한다. 그 때문에 수라도의 주인들은 말 그대로 싸우는 귀신이 되어버리고 말아. 과다 출혈 상태라 해도 아드레날린의 힘을 빌어 잠깐 동안 그 정도의 속도는 낼 수 있어. ‥마비 증상까지 오는군. 어서 치료를‥.”

“아, 알았어!!”

레디의 몸은 곧 아쿠아 블루의 색을 발하기 시작했고 그 빛은 양 손에 집중되어 슈렌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즈 나이트 중에선 유일하게 자체 능력으로 다른 대상을 치료할 수 있는 레디의 능력에 의해 슈렌의 상처는 급속도로 회복되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렌의 상처는 깨끗이 회복되었다. 상처가 회복된 슈렌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고, 수라도를 다시 그룬가르드 안에 넣은 뒤 레디와 함께 차원 결계가 깨지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제발 다른 바이오 로이드를 만나지 말아라‥지크. 널 위한 부탁이다.’

슈렌은 평상시와 같은 눈을 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크가 자신의 진짜 존재 이유를 알게 된다면 분명 큰 상처를 받거나 완전히 이성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

사바신은 미리 챙겨왔던 손수건을 코트 안에서 꺼내 보았다. 그러나, 그 손수건 역시 바이오 버그의 체액에 흠뻑 젖어 손수건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결국 사바신은 힘껏 손수건에 묻은 체액을 짜내기 시작했고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그는 얼굴에 묻은 체액을 닦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이렇게 많은 녀석들을 상대해 보기도 처음이고, 이렇게 많은 체액을 뒤집어써 보기도 처음이야. 넌 어때.”

그러나, 지크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쳇, 허약한 녀석. 근데‥.”

사바신은 말끝을 흐리며 이곳으로 오기 전 바이론이 자신에게 당부한 말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을 바이오 로이드라 하는 녀석이 나타난다면 말도 꺼내기 전에 무조건 쳐 죽이도록 해라. 만약 입을 뻥긋하게 만든다면 내가 널 쳐 죽이겠다.’

“‥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네. 괜히 또 죽는 거 아니야.”

사바신은 자신의 솟구친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바이론의 성격을 알고 있는 사바신으로선 제발 그 바이오 로이드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담배나 피울까. 다행히 담배는 비닐봉지에 싸 왔지. 쿠하하핫‥.”

사바신은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닐봉지 안에 넣어졌던 열 개의 담배 중 무사한 건 단 두 개뿐이었다. 아쉬울 대로 담배를 입에 문 사바신은 불을 붙인 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휀은 자주 이렇게 하던데‥재미있으려나?”

이유는 단순했다.

“‥후우‥욱?!”

한참 연기를 공중에 날려 보내던 사바신은 순간 움찔하며 발로 자신의 옆에 쓰러져 있는 지크를 깨우기 시작했다. 지크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들며 사바신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젠장, 뭐야 뻗침 머리. 머리에 무스 기운이 빠진 거야.”

“쳇, 난 무스 따윈 안 쓴 오리지널이라구!!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저길 봐!!! 드디어 디너 쇼가 시작되었어!!!”

“‥뭔 쇼? ‥으악!!!!”

지크는 볼 수 있었다. 적 기지 상층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백색의 날개들. 그것은 원·디바인 크루세이더들이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그와 함께 지크는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화이트 나이트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지크는 핸드 스프링으로 몸을 일으킨 뒤 옷을 털며 중얼거렸다.

“‥리오 녀석, 혼자 괜찮을까.”

<※※※>

“제 이름은 헤럴드. 더 이상 당신을 이 안쪽으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바이오 로이드인가.”

온몸에 체액을 뒤집어쓴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던 바이론은 자신의 전방을 막아선 바이오 로이드, 헤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헤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크는 이쪽으로 오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쉽습‥.”

순간, 헤럴드는 말문을 닫았다. 바이론이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스피드는 엄청난 것이어서, 몸을 움직여 피할 순 없다 생각한 헤럴드는 양 팔을 날카로운 칼날로 변형시킨 뒤 바이론의 공격을 방어 또는 되받아칠 생각을 했다.

“크큭‥크하하하하하하하핫–!!!!!! 이제 단 두 명이다–!!!!!! 대머리 늙은이와, 고물 전자계산기 단 둘이란 말이다!!!!! 그럼, 죽는 거닷–!!!!!!!!”

바이론은 광소와 함께 헤럴드의 앞에서 다크 팔시온을 치켜 올렸고, 그 원시적인 자세는 바이오 로이드인 헤럴드에게도 충분히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순간 얼어붙어 방어밖엔 할 수 없게 된 헤럴드의 눈빛을 읽은 바이론은 광소와 더불어 검을 일직선으로 내리 그었다.

“크하핫!!!!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순간, 바이론의 다크 팔시온은 지면에 박혔고 조금 후 연두색의 투명한 액체가 바이론의 몸을 향해 뿜어지기 시작했다. 따뜻하긴 했지만 인간의 피와는 달랐다. 무언가 거부하고 싶은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방어했는데‥!!!!”

몸이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두 동강 난 헤럴드는 신음과도 같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양쪽으로 나누어져 바닥에 쓰러졌고, 바이론은 곧바로 화염계 주문으로 헤럴드의 몸을 연소시키며 숨을 길게 내 쉬었다. 조금 쉬려는 듯, 바이론은 고개를 숙이며 호흡을 조절해 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휴식을 취했을까. 곧 그의 근육은 다시 불끈거렸고 바이론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왼손으로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바이론의 시선은 공중으로 향했다. 그곳엔 수백에 달하는 디바인·크루세이더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적 기지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바이론은 묵묵히 시선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리오 녀석은 무사한가. 크큭, 잘도 날아다니고 있군. 그건 그렇고 휀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이론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다크 팔시온을 거머쥐었고,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천사들을 바라보며 광기를 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

“….”

휀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난 큰 상처를 손으로 막아 보았다. 그러나, 출혈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휀은 묵묵히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에게 시선을 돌려 보았다.

“‥운이‥없군.”

휀의 그 말에, 메타트론은 고개를 저으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후훗, 아직도 당당하구나 휀·라디언트. 하지만, 속지 않은 것은 칭찬해 주마.”

메타트론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넬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그리 아쉬워할 것은 없다. 미카엘이 너보다 나를 조금 더 생각해 줬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넌 속지 않았어. 미카엘이 어떤 조언을 해 줘도 따르지 않았지. 따랐다면 너희들의 작전은 완전히 부숴지는 것일 텐데 말이야. ‥나 역시 그 항목에 대해선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 에릭튜드를 얻은 것에 만족해야 하겠지.”

메타트론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에 든 에릭튜드를 높이 쳐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휀은 곧 몸을 추스리며 메타트론에게 말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차피 미카엘님이 날 갑자기 사모했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 원래 미카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하는 수 없지. 미카엘님과 함께 없애주겠다. 타천사 메타트론.”

휀은 곧 상처가 난 왼쪽 가슴에서 손을 떼었고, 그의 상처는 놀랍게도 거의 아물어 있었다. 휀의 그 모습을 본 메타트론은 움찔하며 휀에게 물었다.

“‥타천사? 후훗, 웃기는군. 내가 사탄이나 루시펠과 같은 존재라 생각하나? 난 그저 이 세상에 나타날 파괴신을 물리치기 위해 온 것일 뿐이다. 타천사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휀의 얼굴은 상처가 가심에 따라 점점 냉정을 되찾아 갔고, 다시 예전처럼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은 휀은 차가운 눈빛으로 미카엘과 메타트론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미카엘님‥아니, 미카엘에게 듣지도 못한 모양이군. 미안하지만 넌 이미 신계에서 타천사로 지목된 자다. 선신도 네 운명을 알고 있기 때문에 널 선신계와 관여시키지 않도록 타천사로 만든 것이다. 하긴, 태고의 대 천사장이었던 자가 파괴신으로 각성할 테니 관여되면 귀찮아지겠지.”

“‥뭐라고?! 무슨 소리인가!!!!”

메타트론의 얼굴은 순간 일그러졌다. 그의 노호성과도 같은 질문에 휀은 조용히 플렉시온을 빼 들며 말했다.

“‥미카엘도 네 운명을 알고 있었다. 먼 미래의 자신을 없앤다며 이 세계의 강바닥 밑에 잠이 든 네가 불쌍해서 도저히 못 견뎠겠지. 느끼지도 못하는 사랑 타령을 하며 나에게도 접근했다. 일단, 널 죽일 확률이 가장 높은 가즈 나이트는 나였기 때문이지. 에릭튜드를 이용해 날 움직여 보려고도 했고‥.”

“…….”

넬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휀의 말은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미카엘의 속을 찌르고 있었다. 휀은 구멍이 난 자신의 코트를 재생시키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넌 십중팔구 파괴신이 된다. 어떤 이유로 인해 파괴신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예언이 너무나 정확히 맞은 탓에 나도 부정하진 않는다. 내 희망 사항은 단 하나. 파괴신이 되기 전 상태인 널 지금 없애는 것이다.”

그러자, 여태껏 충격에 휩싸여 있던 메타트론은 크게 조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푸훗‥! 하하하하하하핫–!!!! 미친 모양이구나 휀!!! 나와 네 자신의 차이를 아직까지도 느끼지 못한단 말이냐!! 단 한 대도 날 치지 못한 주제에!!!”

“‥알고 있다. 지금 내 상태로는 널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겠지. 하지만 얼마 후의 내 상태로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뭐라고?”

메타트론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메타트론은 현재 이 기지 상공을 덮고 있는 차원 결계의 생성 장치에 바이칼과 쥬빌란이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