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98화
성 밖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태라트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이 스켈레톤들을 물리쳐야만 했다. 그들의 공세가 상상 외로 엄청났으며 아군 측의 피해도 꽤나 커서였다.
“으윽…! 두려워하지 마라!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전투에 임하라!”
그때, 태라트는 자신의 뒤에서 뼈가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가 소리지를 때 스켈레톤 한 마리가 태라트의 말에 올라탄 것이었다. 태라트는 그 스켈레톤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좀처럼 되지 않았다. 스켈레톤은 허리춤에 꽂혀있던 단검을 빼어들며 태라트의 목을 감쌌다.
“으으윽…! 이대로는!!!”
파작!
뼈가 부러지는 음산한 소리와 함께 태라트의 목숨을 노리던 스켈레톤의 팔이 박살 나며 바닥에 굴렀다. 스켈레톤은 다시 한번 뒤에서 공격을 받고는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태라트는 자신의 뒤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아마색의 단발을 한 미인이 그를 향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슈!”
“때맞춰 도착했군요 태라트님, 스켈레톤들은 저에게 맡기시고 계속 지휘를 해주세요!”
슈는 가볍게 태라트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향해 달려드는 스켈레톤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 좋아!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 이 녀석들을 지배하는 네크로맨서가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엇?!”
태라트는 갑자기 왕궁의 한쪽에서 강력한 불꽃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꽃은 마법의 불꽃이어서 그런지 왕궁에 불이 옮겨붙지는 않았다.
“… 잘 싸우고 있는가…?”
키메라가 있던 왕궁의 벽은 리오의 마법에 의해 구멍이 뚫려 있었고 키메라의 몸은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리오는 디바이너를 허공에 몇 번 휘둘러 검에 묻어있는 피를 털어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더 데리고 놀아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미안하군 친구.”
뚫린 구멍을 향해 중얼거린 리오는 다시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전투를 즐기는 가즈 나이트의 피가 끓어오르는 탓일지도 모른다.
중앙 계단 쪽에선 이미 지크와 바이나를 막아선 두 명이 있었다. 예전에 싸운 적이 있던 이블 셔먼과 원래 무도가대 대장을 몰아내고 자신이 대장으로 올라선 바그라였다. 이블 셔먼은 공중에 몸을 띄운 채 바이나와 지크를 요기가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만났구나 마른 녀석… 호호홋….”
지크는 장난기가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블 셔먼에게 말했다.
“오∼오. 이제 보니 저번에 만났던 아주머니 아니신가? 못 본 동안에 기미가 늘었군, 헤헷…. 그리고 대머리도 있고… 오늘은 머리를 감았나 보지? 광이 번뜩이는데….”
바이나는 지크의 등을 살짝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이 바보야, 전투 전에 저들을 흥분시키면 어떻게 해!”
지크는 맞은 곳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오른손 손가락으로 바이나의 미간을 살짝 짚었다. 그러자 바이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프잖아… 어쨌든 빨간 공주님이 나설 곳은 아니야. 내가 다 처리할 테니 염려 말고 여기서 기다려.”
지크는 그 말을 남기고 두 명의 친위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바그라는 웃으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푸훗! 우리 두 명을 다 상대하겠다고? 한 명을 상대하기도 벅찰 텐데? 그리고 싸우는 동안에 한 명이 저 바이나 공주를 죽인다면 만사가 다 끝장일 텐데?”
지크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두 명은 움찔했다. 여태껏 그들이 느껴보지 못했던 살기가 담겨있는 미소였다.
“너희들은 저번에도 날 넘어가지 못했다… 그땐 데리고 놀아줬지만 오늘은 유감이지만 놀아줄 시간이 없어. 빨리 덤벼라… 머저리들!”
지크는 손을 꺾으며 둘에게 차츰 다가왔다. 살기에 몸을 짓눌려 몸을 떨고 있던 바그라가 기합을 넣으며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냐 이 녀서어억―!!!”
바그라는 지크의 안면을 향해 기공이 실린 주먹을 날렸다. 지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정면으로 그 공격을 받아넘겼다. 왼손으로 바그라의 주먹을 옆쪽으로 치고 오른손으로 카운터 공격을 날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마디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크윽―!!”
바그라의 얼굴은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몸을 다시 일으켜 자세를 취하며 지크에게 다음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그때, 바그라는 자신의 오른팔 손목을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까 지크가 왼손으로 자신의 주먹을 쳤을 때 손목이 부서진 것이었다.
“우, 우우우욱…!!!”
지크는 바그라의 코 앞까지 다가와 그에게 중얼거렸다.
“시간이 없으니 방어도 공격형으로 해야겠지… 안 그래?”
지크는 바그라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감싸며 이블 셔먼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지크의 살기에 눌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좋게 말할 때 비켜라. 안 그러면 진짜 화낼 거야.”
바그라의 머리를 잡은 상태로 몸을 들어 올려 이블 셔먼의 발밑에 내동댕이친 지크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둘의 정황을 보았다. 이블 셔먼은 안되겠다는 표정으로 바그라를 바라보았다.
“바, 바그라? 잠시 뒤로 돌아주겠나?”
바그라는 뭔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명령대로 뒤로 돌아섰다.
“네가 필요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나에게 필요 없어!!!”
바그라는 그 소리를 들은 후 뒤로 돌아섰으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바그라의 정수리를 찌르고 있었다. 바그라는 눈을 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바이나는 그 장면을 보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이블 셔먼은 주문을 바그라의 시체에 뿌리기 시작했다.
“저번에 만든 데스 버서커는 완전하지 못했어, 방어력이 별로였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경화의 주문까지 같이 걸어놓는 것이니까 말이야! 호호호…!!!”
그녀의 말과 같이 바그라의 시체는 군청색으로 변해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주문이 끝나자 바그라는 천천히 일어섰다.
“자, 바그라! 더욱 강해진 너의 힘으로 나와 왕비님을 지키는 거다! 가라!!!”
이블 셔먼의 명령에 따라 바그라는 엄청난 힘으로 지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지크는 콧 밑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피식 웃었다.
“저번처럼 냄새가 안 나니 싸우긴 좋겠군, 푸후후훗.”
바그라는 살아있을 때와 비교해 몇 배나 더 빠른 스피드로 지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크는 가볍게 바그라를 벽으로 날려 보내며 자세를 취했다. 기전력의 개방 자세였다.
“아까 전에 내 말을 듣지 않은 벌이라고 생각해라… 헤헷….”
지크의 양팔을 시작으로 온몸에 기전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위의 쇳조각들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 모습을 본 이블 셔먼은 도망치기 위해서 입을 움직이려 했으나 지크와 눈이 마주친 동시에 입이 봉쇄되고 만 그녀였다. 바그라는 그 모습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지크에게 다시금 달려들었다.
“간다, 좀비 녀석!!!”
지크는 달려오는 바그라에게 수십 차례의 펀치 공격을 가했다. 경화가 된 바그라의 몸일지라도 그 공격에 이겨낼 수는 없었다. 갈비뼈들이 몸 밖으로 튀어나왔고 다른 부분의 뼈들도 몸에서 부러진 채 튀어나왔다. 지크는 무력해진 바그라의 어깨를 양손으로 쥐고서 중얼거렸다.
“… 번개의 온도는 웬만한 불보다도 뜨겁지, 3만도는 족히 될 거다. 경화가 된 너의 몸을 태우는 데 그 정도의 온도는 필요하겠지… 아마도.”
지크는 천천히 기전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양손 사이에서 거대한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놓인 바그라의 육체는 검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기전력이 최대가 되자, 바그라의 육체는 서서히 분해되어 결국은 재로 변하였다. 그의 육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지크는 기전력을 거두고 기를 정상적으로 돌렸다.
“자아, 네 차례다 이번엔… 음? 왜 그러나 아주머니, 동료를 좀비로 만드는 그 기세는 어디로 간 거지?”
지크는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이블 셔먼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지크는 싱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목을 수도로 쳐서 기절시키며 중얼거렸다.
“풋, 자기 자신은 강해지고 싶지 않았나 보지? 어쨌든 넌 법인가 뭔가가 처리해야 할 것 같군. 그때까지 잠이나 자라구.”
이블 셔먼까지 처리한 지크는 바이나의 혈도를 다시 풀어준 뒤 다시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이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지크에게 말했다.
“너… 사람을 그렇게 치고 자르면서 기분이 이상하지 않아?”
지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조금 후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다른 때와 비교해서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무 죄 없는 동물들을 죽이는 도살자들에게 그 질문을 바꿔서 해봐, 그들도 절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고 할걸…? 자,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올라가지.”
바이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지크의 뒤에 가까이 붙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지크의 넓은 어깨가 아까의 말을 들은 뒤부터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진정으로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게 보이도록 노력한다는 옛날 스승의 말이 잠시 떠오른 바이나였다.
“… 내가 제일 늦은 건가….”
바이칼은 벽을 향해서 피에 젖은 드래곤 슬레이어를 휘둘렀다. 검에 묻은 피가 벽에 뿌려졌다. 바이칼은 언제나처럼 굳은 표정으로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암살자들이 자신의 피로 몸을 적신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암살자 부대 수령의 목도 뒹굴고 있었다.
‘적당히’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냉혹함이라고나 할까….
태라트의 본군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싸우고 있는 세 기사단에겐 스켈레톤들이 접근도 하지 않고 오직 본군만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크, 크아악―!!”
태라트의 근처까지 저항군 병사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태라트는 그곳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군사 작센까지도 팔에 부상을 입은 채로 태라트에게 달려와 후퇴를 건의했을 정도였다.
“적들의 공격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후퇴하셔서 후열의 병사들을 모아 다시 한번 공격하는 게 옳을지도 모릅니다!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작센의 외침에 태라트는 심한 갈등을 느껴야만 했다. 지금 후퇴하면 병사들의 피해를 불릴 수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성 안에서 싸우고 있는 바이나와 그밖의 사람들은 어떻게한단 말인가.
“바이나님은 리오님이 지켜주고 계십니다! 걱정 마시고 어서 후퇴 명령을…!!!”
태라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의 안장에 매달려있는 신호용 뿔피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입에 가까이 대었다.
‘미안하다… 리오, 바이나, 그리고 모두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때, 후열 쪽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사람의 우렁찬 외침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마법이나 내공의 힘이 담겨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태라트와 작센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물러서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