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09화
순간, 내가 아직도 무명찬란교의 괴담에 휘말려 있나 했다.
하지만 완전히 잠이 깬 머리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했다.
‘그거랑 달라.’
눈앞의 은하제 대리는 더 이상 내 기억 속에 있던 정장 차림의 깔끔한 직장인 상사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잠복근무를 3일쯤 한 형사나… 그래, 기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현실감이 번뜩 돌아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당장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대리님.”
“그래.”
은하제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갑자기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미안하다. 내가 지금 눈에 띄면 안 되는데, 너한테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어서.”
2개월 잠적했다가 갑자기 남의 방에 강도처럼 나타난 사람은 창밖을 경계하듯 힐끔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추적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에 띄시면 안 된다는 말씀은?”
“그런 게 좀 있어. 일단 내 말부터 들어라.”
은하제 대리는 얼버무리듯 말하더니 심호흡했다.
“너, 모레. 그러니까 1월 2일에 회사에 출근하면 어둠이 하나 할당될 거다. …듣기엔 평범할 거야. C등급인데 매뉴얼도 완비됐고,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가고. 하지만….”
하지만.
“거기 들어가지 마라.”
“…….”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 아니, 차라리 퇴사하거나 휴직계를 내버려. 왜냐하면….”
대리가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거기 들어가면 넌 죽어.”
“……!”
“어떻게 알았는지는 물어보지 마라. 그냥 내 말대로….”
“곽제강입니까?”
“…!”
은하제 대리의 표정을 보니 맞나보다.
‘아니, 일어나자마자 사망 예고라니….’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이마를 눌렀다.
“대체 그 과장님은 절 왜….”
“그 새끼 사이코패스인 건 우리 모두 알았잖냐.”
반박할 수 없군.
은하제 대리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런데 네가 워낙 유능한 데다가 기발한 짓을 많이 해내니까, 이번엔 아예 죽을 자리에 집어넣어 보고 싶은 거겠지. 어떻게 헤쳐나오는지 보려고.”
MZ력을 뽐낸 게 역효과로 작용한 것 같다는 뜻이다.
‘망할.’
그래. 그 인간이라면 특이한 표본이라고 신나서 날 이상한 괴담에 이상한 조건으로 처넣기 딱 좋았다.
하지만….
“대리님, 그래도 제가 죽지 않고 살아나올 확률도… 있지 않습니까?”
“…….”
“게다가 제가 어떻게 ‘헤쳐나올지’ 보고 싶은 거라면, 무조건 죽는 조건보다는 살아날 방법이 있는 어둠에 투입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말 뭐하지만, 나는 급속 승진 중인 엘리트다.
높으신 분들 줄도 잘 타서 청 이사와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 이사가 나를 좋게 봐주는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연구팀 과장 혼자 재밌겠다고 날 죽을 자리에 무작정 꽂는 프로젝트가 통과될 것 같진 않은데.’
위험한 곳에 투입될 수야 있겠다만, 애초에 괴담이라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심지어 은하제 대리 본인도 C등급에 매뉴얼이 완비된 괴담이라고 말했잖아.’
논리적으로 이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제가 죽을 거라고.”
나는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은하제 대리를 보았고, 대리는 한숨을 참는 듯 미간을 눌렀다.
“내가 아는 건 딱 하나야.”
대리의 손이 나를 가리킨다.
“넌 1월 2일에 사망 처리된다.”
“…….”
“그걸… 미래를 보는 어둠에서 확인했어.”
“…!”
맙소사.
미래를 엿보는 괴담? 몇 가지 생각나는 위키 항목까지 있다.
다만, 대체 휴직까지 한 은하제 대리가 어떻게 그런 어둠에 접근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이상한데.’
“그래서 방금 네가 2일에 무슨 어둠에 투입되는지 확인하고 왔다. 넌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까 이 정도는….”
“잠깐만요. 대리님, 그래도 이상합니다.”
“뭐?”
“저도 미래를 봤거든요. 제가 관리하던 괴담 기억나시죠? 타로 카드 말입니다.”
“…그래.”
“최근에 거기서 아주 좋은 카드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나는 내가 뽑은 태양 카드를 떠올렸다.
정방향. 무조건 행복해지는 카드.
“죽은 이후에 행복해질 수는 없잖습니까.”
“행복한 후에 죽을 수도 있지.”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하지만 은하제 대리가 워낙 초조해 보였던 데다가, 굳이 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책을 세워볼게요.”
“젠장, 그래.”
은하제 대리는 긴장이 풀린 듯 하늘을 잠깐 보더니, 곧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노루야, 원래는 내가 이렇게 자택 침입하면서 나타날 계획은 없었는데, 급해서 실례 좀 했다. 미안하다. 팀 나간 사람 보면 괜히 심란해지기만 하지.”
“아닙니다.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건강하신 모습 보니까 좋습니다.”
“……후. 노루야, 너는 그 인성 가지고 이 회사에서 어떻게 살려고….”
“하하.”
제 인성은 평균이고, 이 회사 직원들 인성이 괴담인 겁니다….
‘아니, 애초에 후배 살리겠다고 찾아온 전 직장 상사한테 이거보다 싸가지 없이 굴면 미친놈 아닐까….’
그리고 내겐 인성보다 더 큰 문제(쫄보)가 있다는 것은 입도 뻥긋하지 말도록 하자.
어쨌든 은하제 대리는 안도한 기색을 드러낸 피로한 표정으로 내게 턱짓했다.
“아무튼 이제 가볼게. 잘 쉬어라.”
“잠시만요.”
“왜.”
“그… 손 말입니다만.”
나는 조심스럽게 상대의 빈 왼손 소매에 시선을 뒀다.
은하제가 대충 팔을 흔들었다.
“뭐? 아직도 이거 신경 쓰냐? 노루야. 재생 물약 안 받는다고 했지. 너나 써라, 너나.”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에 떠오른 방법이 하나 있어서 말이다.
“대리님께서 저한테 통신 장비를 물려주셨잖습니까.”
“어, 그랬지. 근데 그냥 필요가 없어서….”
“그러니까, 저도 대리님께 장비를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 전용 장비, 동전을 튕겼다.
허공에 나타나는 장갑에 500원을 주면 이용할 수 있는….
제3의 손.
다시 말하자면, 손이 하나 더 늘어나는 능력을 가진 장비.
“이걸 부모 장비로 넣어서 대리님도 하나 커스텀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
* * *
그리고 12월 31일 그날 저녁.
나는 별관 앞에서 모자를 눌러쓴 은하제 대리를 만나, 커스텀 장비를 만드는 황혼 등급 어둠 보관소에 접근하게 된다.
[친절한 씨앗 키트 / Qterw-E-99]
가짜 잡초들 사이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녹슨 기계.
현장탐사팀이 거의 전용으로 쓰는, 커스텀 장비 제작용 황혼 어둠이다.
오랜만에 보는걸.
하지만 은하제 대리는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다.
“괜히 너 쉬는 시간 방해한 기분인데….”
“아뇨. 저도 슬슬 새로운 커스텀 장비를 만들려고 했거든요.”
“그래?”
“네. 이걸 사용해서요. 조장님께 받은 게 있습니다….”
나도 준비해 온 것을 꺼냈다. 바로….
-사용 후 반납하십시오. 한도는 1회입니다.
이자헌 과장에게 부모 장비로 받은, 완력이 강해지는 장비!
하지만 은하제 대리는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경악했다.
“너 그거 받았냐?!”
“아, 대리님께서 아시는 물건입니까?”
“어, 퇴직한 양반 물건인데… 아니, 조장님 진짜 웃기는 사람이라니까.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빌려온 건지 모르겠네.”
나는 해당 장비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의 머리카락을 땋아서 만든 것 같은 기묘한 팔찌는, 이미 절반 이상 끊겨서 마치 지푸라기를 엮어놓은 것처럼 삐죽빼죽했다.
“그거 일시적으로 괴력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건데, 쓸수록 머리카락이 끊어진다더라.”
과연.
“소모품인 걸 감안해도 괜찮은 장비지. 조장님 봐라. 역시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을 안 한다의 대표잖냐.”
“…….”
부정할 수 없는 정론이십니다….
어쨌든, 나는 먼저 은하제 대리에게 사용을 양보하려 했으나….
“괜찮아, 너부터 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기계에 부착된 낡은 액정스크린으로 접근했다.
[제게 식물을 주세요 0/2]
녹슨 기계에 이자헌 조장에게 받은 팔찌를 넣었다.
[식물 정보 저장 완료]
[제게 식물을 주세요 1/2]
그다음으로 넣을 물건은….
‘이제 나한테 꽤 쓸만한 아이템이 많지.’
흠.
이자헌 과장이 빌려준 장비의 속성을 고려할 시, 나에겐 괜찮은 옵션이 세 가지 정도였다.
1. 소모품으로서의 내구성 보완.
2. 완력 강화라는 효과의 보존.
3. 서로 다른 기능의 조합.
‘이 정도인가.’
뭐, 식물 유전자 계승은 랜덤이기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옵션이 붙지 않고 망할 가능성도 높지만….
‘좋아.’
나는 고민 끝에,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 중 하나를 넣고 내 유전정보까지 인증해 기계를 돌렸다.
[유전정보 결합 중]
[키트 생성 중….]
[파종 완료]
툭.
기계의 맨 앞 서랍이 열리며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가느다란 철사처럼 보이는, 단순한 팔찌다.
‘흠.’
나는 그 금속 팔찌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관했다. 돌아가는 대로 위력을 확인해 봐야지.
“잘 된 것 같냐?”
“일단은요.”
나는 내가 넣었던 아이템들을 챙겨서 물러났고, 이제 기계 앞에는 은하제 대리가 서서 장비를 커스텀 하기 시작했다.
일단 맨 처음에는 자신의 물건을 넣었다.
은하제 대리의 전용 장비.
보조배터리 모양의 통신기로, 저걸 꽂으면 스마트폰이 괴담에서도 일시적으로 외부와 통신이 됐다.
알고 보니, 나에게 줬던 단추 모양 장비가 이 기계에 넣고 돌려서 나온 물건이라고 한다.
“의외의 업그레이드였지. 뭐, 내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라고 할까.”
쓸데없는 데에 운을 몰아 쓴 것 같다며 은하제 대리는 투덜거렸지만, 보조배터리 모양의 커스텀 장비를 다루는 손은 제법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여기 있습니다.”
나는 내 전용 장비인 동전을 다음 아이템으로 투입했다.
팅.
장갑이 그려진 동전이 서랍 안으로 사라진다.
[유전정보 결합 중]
“…노루야. 이거 보통 첫 시도 만에 딱 맞는 게 나올 확률은 낮다.”
은하제 대리가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실망하지 마라. 시도해 본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니까. 알겠지?”
“…예.”
나는 기계의 화면을 보았다.
[키트 생성 중….]
[파종 완료]
제작이 끝났다.
기계의 맨 앞 서랍이 열리며, 물건이 나타난다. 그건….
“장갑??”
말 그대로 반투명한 장갑이었다.
흐늘흐늘한 재질이 기묘한 느낌을 준다.
“흐음.”
하지만 은하제 대리가 오른손을 뻗어서 잡으려고 하자, 그쪽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
“어쭈. 이거 봐라. …자리 다 찼다 이건가?”
은하제 대리는 씩 웃으며 비어 있는 왼손 자리를 대신 가져다 댔다.
“그럼 빈 자리를 주지.”
그러자 장갑이 마치 피부처럼 빈자리에 달라붙었다.
전기로 만든 손처럼.
“…!!”
그리고… 완전한 손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
은하제 대리의 표정에 약간 감정적인 기색이 스쳤으나, 곧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대신 천천히 그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움직였다.
파지지직.
가느다랗게 전류가 튄다.
“흠. 묘하게 감각도 있고… 전기신호라 그런가? 아주 괜찮아. 외양이야 장갑을 끼면 되고.”
은하제 대리가 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고맙다, 노루야.”
“…….”
“아까 떠든 거 다 헛소리 됐네. 한 방에 나왔잖아? 덕분에…… 필요한 순간에 운이 좋아 보이기도 하네.”
나는 양쪽 손을 다 가진 은하제 대리를 보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씀을요.”
올해의 마지막 날 보기에 썩 괜찮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약간 감동적으로 마무리하려던 순간.
“그리고…… 미안한데, 혹시 복지몰에서 포인트 쓸 일 있냐? 내가 한 1500포인트까지 대신 구매해 줄 테니, 여긴 네가 2번 사용한 걸로 기록 남길 수 있을까 해서.”
음?
-오, 자신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라… 마치 증거인멸 같군요! 친구, 그렇지 않습니까? 과연 어떤 속셈을 감추고 있는지 살살 구슬려서 알아볼까요?
…….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음?
이미 대충 짐작이 가니까.
“…대리님, 혹시 다른 부서에서 근무 중이신 겁니까?”
“…!”
역시.
“이 어둠은 거의 현장탐사팀에서 전용으로 사용하잖습니까. 여기에 사용 내역을 남기기 꺼려 하시는 건… 소속이 달라지셔서 그런 게 아닐까 했습니다.”
“…….”
고민 어린 침묵 후.
“…이거 참. 못 속이겠구만. 노루야. 너 여전히 머리 잘 쓰는구나.”
은하제 대리가 쓰게 웃었다.
“그래. 현장탐사팀 송골매 대리는 휴직 처리해 놓고, 나는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
“…무슨 일을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됩니까? 안 되면 소속이라도요.”
“…….”
은하제 대리가 다시 한번 짧게 고민하는 것 같았으나,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음. 노루야.”
예상치 못한 이름과 함께.
“호 이사의 프로젝트팀. 알고 있지.”
“…!”
“난 지금 거기서 일하고 있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