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13화
처음으로 보인 것은 붉은 고동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나는 뒤늦게, 내가 어딘가에 부딪혔다는 걸 깨달았다.
철퍽.
짧고 굵은 소리와 함께 몸이 질퍽거리는 무언가 위에 떨어졌다.
고약한 냄새.
다음 순간, 나는 그것이 썩어들어가는 단백질의 악취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주변에 널린 살점들이 덕지덕지 내 몸에 붙어서.
붉게 맥동한다.
휘이이익!
바람이 불었다.
내가 타고 있던 고속열차가 나를 지나쳐가며 굉음과 풍압을 남겼다.
기차는 순식간에 터널 저 끝, 빛이 반짝이는 곳으로 사라진다….
“…….”
솔직히 많이 더럽고 좀 무섭긴 했으나, 고통이나 심각한 패닉에 빠지진 않는다.
그냥 야밤에 나홀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 앞에 서 있는 정도의 느낌.
-맙소사,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이라니! 괜찮습니까, 친구?
“그래. 괜찮아.”
‘…해피메이커가 정말 제대로 일하는데.’
마치 청심환을 먹으면 심장이 서늘하게 굳으며 덜 긴장되는 것처럼, 반대로 머리가 따스하게 굳은 느낌이다.
나는 제법 평온하고 안정적인 정신 상태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맨손으로 썩은 살점들을 털어내는 순간.
네 삿됨을 뜯어 먹어라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린다.
“…….”
그러니까, 음. 대충 제물로 공양되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현 상황을 맞춰보자면…….
‘이쯤에서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그걸 못 이겨서 피부와 살점을 막 뜯어내는 건가….’
그리고 그걸 씹어먹고 흘리면서, 이 더럽고 음습한 통로 끝에 있는 빛을 향해 걸어서 전진해야 하는, 그런 미친 상황 같았다.
이 통로 자체가 그 끔찍함의 흔적이고 말이다.
다행히 나는 모든 고통이 마비된 상태에 정신 저항력을 높여주는 은반지까지 착용해서 그런 미친 충동을 느낄 일이 없었지만.
“후우.”
나는 완전히 서서, 살짝 몸을 털었다.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오물과 썩은 살점이 남긴 흔적이 적나라했다.
이 살점의 출처에 대해선… 되도록 생각하지 말자….
해피메이커 덕에 동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찝찝했다.
아, 잠깐.
“브라운, 너는 괜찮아?”
-아, 이 반복 재생 라디오테이프 같은 소리 말입니까? 의미 없는 소음 공해 같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군요!
“…작열통은?”
-하하!
-이 몸에는 피부도 살점도 없어서 말입니다! 천과 솜, 그리고 눈과 코뿐이지요….
그, 그렇군.
‘제물의 조건은 인간만 해당하는 게 맞았나.’
혹시라도 브라운이 못 참고 작두를 타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내 친구는 이 지저분한 장소에 더 볼일이 있는 걸까요?
“…아니.”
-그렇다면 얼른 나가봅시다.
그러게 말이다.
‘탈출하려면 그 열차 안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통로의 끝까지.
철퍽, 철퍽.
발밑에서 오물의 체액이 튀어서 신발 안에 들어오고, 양말이 붉게 젖는다.
죄를 버려라
죄만큼 뜯어 버려라
네 죄를 먹어라
“…….”
혹시 죄를 많이 저지른 사람일수록 작열통이 강해지는 건가?
‘그럼 이론적으로는, 선한 사람은 창문에서 여기로 떨어져도 최소한의 고통만 느낀다는 건데….’
루프가 반복될수록 처절하고 끔찍한 비인간적 아비규환이 되어가는 열차 내 집단에 집중하는 괴담이다 보니, 이런 디테일은 겪어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통로는 생각보다 멀었고, 나는 끈질기게 걸었다.
‘해피메이커를 하나 더 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죄를 버려라
죄를 버려라
죄를 버려라
목소리를 무시하며 계속 걷는다.
점점 발이 묵직해지는 듯했지만, 빛은 착실히 가까워졌다.
터벅, 터벅. 터널의 출구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은 거의 시야를 가리고 앞을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아.’
거의 다 왔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앞으로 더 나서서….
이윽고 빛에 감싸이는 순간.
탐라로 가라
‘……!’
작고 부드러운 초대.
이상할 정도의 포근함과 해방감이, 감싸는 것 같은 기묘한… 계시 같은 것이 정수리를 꿰뚫고 들어오는 한 그 느낌이….
-어이쿠! 섭외가 너무 공격적이군요. 잠시…….
사라지는 순간.
내 의식이 급경사에서 떨어져 내리는 기차처럼 엄청난 속도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
“…!”
* * *
“허어억!”
“악! 아아악!”
눈을 떴다.
나는 쾌적하고 현대적인 고속열차의 한 칸에 앉아 있었다.
몸은 다시 깨끗해졌고, 정신은….
‘와.’
회상하자 토할 것 같은 감각이 몰려온다.
속이 울렁였다.
‘이걸… 이 느낌을 못 느꼈다고?’
내가 지금 사람들이 산 채로 뜯어내고 먹다가 토해낸 살점들 속에 파묻혔다가, 그 속에서 일어나서는 걸었단 말이야?
‘그, 그만 생각하자.’
어쨌든 중요한 건 성공적으로 다시 이 시점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해피메이커 효과도 시작 시점으로 돌아오면서 완전히 없어졌고.’
나는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고, 가장 먼저 해피메이커의 수량을 체크했다.
…….
사용하기 전 11개.
그대로였다.
-사용했던 소모품이 쓰지 않은 상태로 돌아왔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열차가 출발하는 시점으로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 짐작했던 일이다.
‘좋아.’
준비는 끝났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태연한 얼굴의 진나솔 대리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땠지?”
“끔찍하고 역겨운 곳입니다. 방비 없이 떨어지면 거의 무조건 정신 착란이나 오염 증상을 보일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일어나. 미리 확보….”
“야! 여기 봐! 이분은 멀쩡해!”
“…….”
으아악!
발언이 끊긴 진나솔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민간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에 당장 손속을 쓰진 않았다.
‘빠, 빨리하자.’
나는 내 상태가 멀쩡한 것을 보고 경악하는 사람들을 보며 일부러 흐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세상에!!”
“이분, 이분 자기가 자원해서 떨어지신 분이야! 근데… 그, 괘, 괜찮으시네요?”
“네.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대체 제가 떨어졌던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그, 그게….”
횡설수설 다급히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말을 생략하고 중요한 것만 남겨놓자면, 이랬다.
“떨어지고 나셔서 또 카운트다운이 돌아갔어요…!”
“아, 맞아여! 마치 한 명 더 바치라는 것처럼 다시 쿨타임 돌더라구여.”
역시.
“…! 그랬군요. 그럼 그 시점에서 다시… 기차가 추락한 겁니까?”
“아녀! 그다음에요!”
몰려왔던 승객 중 한 사람이 부연 설명했다.
“좀 이상한 게, 저희가 있던 칸에서는 아무도 안 떨어졌는데, 그, 공양을 받았다면서 갑자기 길이 열렸습니다…….”
“…….”
“앞 칸에서 누가 떨어진 것 같다고 웅성대긴 했는데요, 사람들이 다 흥분해 가지고 싸움이 나서 자세히는….”
“…….”
“아니! 우리더러 미쳤다잖아요! 상황 파악 못 하는 건 자기들이면서!”
“그러니까 말이요!”
“답답해 미치겠어, 진짜.”
“게임에서도 그런 트롤 새끼들 가만두면 안 된다니까요.”
그렇군.
슬슬,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번 회차부터였지.’
3회차 :
열차칸별로 파벌이 나뉘고 싸움이 발생. 서로에게 제물로 공양할 승객을 뽑으라고 종용. 유혈 사태 발생 시작.
그리고….
객실 내 폭력으로 사망자 발생.
…….
일단,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마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인원이 한 명씩 늘어나나 봅니다.”
“뭐… 뭐라고요?”
“첫 번째 제단에서는 1명, 두 번째 제단에서는 2명. 이런 식으로 요구하는 제물이 순차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는 말이죠.”
“아…!”
아마 다들 짐작은 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인 듯, 여기저기서 침음과 공포에 찬 신음이 나오긴 했어도 격렬한 반박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무서워할 뿐.
“어떡해? 어쩌지? 아니…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구. 흐흑….”
“호, 혹시 우리가 다 창문에서 뛰어내려야 끝나는 겁니까?? 그런 거냐고요?!”
상당히 그럴싸한 추측이었으나, 나는 그 사람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분명 끝낼 방법이 있을 겁니다.”
“흐으윽.”
“절 보세요. 전 떨어졌어도 괜찮잖아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아…….”
조금 진정된 분위기를 타고 부드럽게 말했다.
“창문에서 떨어진 다른 분 상태가 안 좋다고 하셨죠? 괜찮다면 안내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아, 예!”
“이쪽이요!”
나는 허둥지둥 안내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객석을 돌아보았다.
“오옹. 저도 같이!”
즉각 나를 따라오는 돌고래 주임 너머.
진나솔 대리가 어디 해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봐준 거야.’
아마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하는 순간 즉각 판을 바꿔서 방해되는 사람들을 다 잡아다가 하나씩 창문 밖에 던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걸로는 클리어가 안 돼.’
그러니까….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고 인도적이었다.
“여기… 앉아 있긴 한데요….”
나는 안내받은 좌석에 앉은 이를 보았다.
안경 쓴 사람이 입을 헤 벌리고 허공을 보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떨어졌던, 2회차 첫 번째 재물.
“선생님?”
“…….”
대답이 없다. 완전히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대, 대체 저 아래에 뭐가 있길래….”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 손을 뻗어서 내 가슴에 얹었다.
“저는 무언가를 깨달았습니다.”
“……예?”
찰랑.
나는 그 손을 그대로 내려서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자연스럽게 넣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그 안에 있던 작은 배지를 달았다.
은심장.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동시에 안경 쓴 직장인에게 다가갔다.
“힉! 힉힉! 힉!”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해피메이커를 주사했다.
‘다음 루프가 오면 성분이 싹 사라지니까.’
미칠 것 같은 패닉과 공포 속에 있느니 저 사람에겐 이게 낫겠지.
그리고 해피메이커는 볼펜이나 다름없는 소형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부축한 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진정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법처럼.
“……허억!”
안경 쓴 사람이 숨을 몰아쉰다.
눈에 이지가 돌아오고, 확실한 평온이 깃든다.
“저, 정말 끔찍한…… 아, 아… 하…… 끝났군요.”
천천히.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다른 승객들과 포옹했다.
사람들은 얼결에 그것을 받아주면서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제, 제정신으로 돌려놓으셨어…….”
“어떻게….”
사기꾼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치 나도 경이롭다는 듯이 내 손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왜 저만 이런 능력을 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저는….”
심호흡 한번 하고.
“이 열차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습니다.”
“…!!”
“지, 진짭니까?”
“예.”
나는 손을 들어서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창밖에 떨어져야 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몇 번이 지나면 이 모든 일이 끝나는지도….”
“마, 맙소사.”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기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이런 류의 사기 방식은 아포칼립스적 사태의 창작물에서 단골 등장하는 거다.
‘일명 사이비 교주…!’
사람들을 선동해서 신의 뜻이니 뭐니 하며 이상한 짓거리 하는 놈.
예전에는 6호차에서 나왔던가? …흠. 맞는 것 같다.
5회차:
열차 칸마다 각종 배타적 집단이 구성됨. 개중에는 루프 현상을 숭배하는 미신적 종교가 다른 칸의 승객을 사로잡아 야만적 고대 제사 방식대로 미리 죽인 다음 창밖에 던지는 사태도 발생.
미안… 아니, 하나도 안 미안하지만,
‘넌 앞으로 없다.’
내가 지금 선수 칠 거니까.
“선량한 7번 칸 여러분. 이제부터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열차 문 앞에 서서 외쳤다.
“우리는 위대한 시험에 선택받은 것입니다!”
-맙소사!!
정장 앞포켓에서 브라운의 기립박수 소리가 들렸다.
괴담 사회자의 극찬 인증 마크를 받은 사기꾼….
지금 출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