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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19화


손이 미끄러졌다.

동강 난 봉제 인형의 하반신 뱃속에서 동전이 흘러나온다.

“…!”

나는 황급히 그것을 틀어막고, 의미 없이 봉제 인형 두 조각을 붙였다.

“브라운?”

하지만 당연히 반응은 없었다.

솜인형의 상반신이 하반신 위에서 미끄러져 내릴 뿐.

“…….”

아니….

아니지. 혹시 내가 계속 보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브라운.”

나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은 채로 인형을 귀 가까이에 댔다.

그러자….

-■■, ■■■■■….

“…!!”

인형에서 진동이 들렸다.

분명히 신호였다.

하지만 아주 희미했고, 마치 어쩌다 스친 라디오 주파수처럼 치직거렸다.

‘남아 있긴 한 거야.’

아직 있었다. 그렇다면….

‘혈욕조!’

달칵, 나는 당장 기차 화장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손목의 문신에서 체크무늬에 금발이 달린 작은 욕조를 끄집어냈다.

일명 젊음의 욕조.

퉁, 바닥에 욕조가 서고, 그 안에 거의 동강 난 인형을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그리고…….

나는 습격에 실패하고 기절한 승객이 떨어트린 커터날을 주워들었다.

그대로 팔뚝을 그었다.

터진 핏줄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 같은 급한 상황에 대안이고 뭐고 없다…!’

기절한 인간 팔을 그었다가는 깨어날 수도 있고, 출혈을 못 잡을 수도 있었으니까.

‘더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은 못 견뎌.’

혈욕조 안으로 내 피가 쏟아진다. 나무와 향기로운 아로마 냄새가 물씬 피어올랐다.

입욕제를 가득 머금고, 인형이 점점 부풀어 오르듯이 커지기 시작한다….

회춘한다.

봉제 인형의 털이 더 깨끗하고 윤이 나며, 조약돌 같은 눈에서 오묘한 빛이 난다.

그리고 급속히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한계선을 넘어가기라도 한 것 같다. 입욕제에 젖은 인형이 키링 사이즈에서 벗어나서 양손에 가득 찰 만큼 거대해진다.

마치 원본 ‘착한 친구’ 인형처럼 말이다.

투두둑.

보타이 모양의 머리끈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가 욕조 한쪽에 들러붙었다.

그 정도로 변화는 확실했다.

하지만, 하지만….

인형은 여전히 조용했다.

“…….”

나는 숨을 죽이고, 고개를 돌려서 다시 인형쪽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 들리던 진동도 들리지 않았다.

허리가 잘린 봉제 인형은 그저 혈욕조의 향기로운 입욕제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

“…….”

나는 다시 인형을 응시했다.

작은 혈욕조에 가득 찰 만큼 거대해진 ‘착한 친구’ 봉제 인형은, 마치 장인이 수제로 만들어 막 출고된 인형처럼 윤기가 흘렀다.

그러나 동강 난 그대로였다.

‘아.’

젊음의 욕조는, 말 그대로 젊음을 되찾아주는 것이지… 상처를 회복시켜 주진 않는 것이다…….

“…….”

사실 알고 있었다.

아니, 알았지만, 그래도 해본 것에 가까웠다….

착한 친구 봉제 인형은 망가졌다.

나는 심호흡했다.

‘…괜찮아.’

다시 구하면 된다.

그래, 굿즈박스가 아니라 원래 출처에서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유쾌 테마파크는 여전히 있다. 착한 친구 봉제 인형은 그곳의 기념품 숍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어차피 가야 했는데 오히려 효율적인 거지.’

거기서 착한 인형을 구하자. 그리고 전에 했던 그대로 다시 소환하면….

…….

“……하.”

웃기지 말자.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착한 친구’ 소환법은 특정 존재를 지정해서 부르는 게 아니라, ‘이면 세계의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다.

‘또 소환한다고 같은 존재가 또 나오리란 보장이 어딨어.’

아니, 오히려 똑같이 소환되는 상황이 이상한 것이다.

<어둠탐사기록>에서 소환기록마다 다른 누군가가 나오는 걸 구경하는 재미로 읽었으면서 말이지.

‘하하,’

하….

“…….”

나는 이 시점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오염과는 관계없이, 내가 이 괴상한 봉제 인형에게 꽤 정이 들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정말로, ‘착한 친구’였으니까 말이다.

힘들 때는 격려하고, 화가 날 때 같이 화를 내주고, 속 깊은 대화는 나누고, 야밤에 예능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나를 계산 없이 우선순위에 둬 주는 친구.

그런 건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니까….

“…….”

그래.

할 수 있는 건 더 해보자.

“꿰매기라도 해볼까.”

그게 안 되면 복구 아이템을 찾거나, 물건을 수리해 주는 괴담에 들어가거나… 정보를 뒤지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많았다.

내 멘탈을 위해서라도.

“해보자.”

좀 진정되었다.

예고도 짐작도 없이 일어난 사건에 지나치게 당황했던 머리가 차분함을 되찾고,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 수습부터.’

나는 혈욕조에 손을 집어넣어서, 대롱대롱 매달린 브라운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대강이라도 솜을 정리하고 인형을 보관하려던 순간이었다.

‘어?’

봉제 인형의 뒷면에서 팔락거리는 천떼기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라인에 재봉된 작은 사각 실크.

‘…택?’

아무래도 지난번에 혈욕조에서 흔적처럼 돋아났던 것이, 이번 목욕으로 완전히 돌아온 듯했다.

‘착한 친구의… 상품 라벨인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원산지, 세탁, 관리법, 혹은 구매자나 제작자의 서명을 넣는 것 말이다.

무심코 시선이 갔다.

그건 분명 라벨다운 규격과 틀로, 알 수 없는 글자가 깨알같이 이상한 줄 굴로 적혀 있긴 했다.

다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 모든 정보 위에, 마치 검열처럼 검은 마커로 갈겨 쓴 거대한 글자.

라벨 제거 필수

[아.]

[여기 있었군요.]

탁.

거대한 손이 택을 잡아챘다.

맵시 좋은 정장용 장갑을 낀 손이다.

그 엄지가, 라벨의 글자가 거의 보이지 않도록 휙 가려서 택을 잡아당긴다.

[찾았다.]

그 손은.

내가 들고 있는 반토막 난 ‘착한 친구’ 인형 속에서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우드드드득.

인형의 하반신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팔 너머로 어깨가 빠져나오고, 우악스럽게 다른 쪽 팔이 나와 세면대를 짚는다.

이윽고 거대한 몸의 나머지도 쏟아지듯이 나타나 작은 화장실을 가득 채운다.

맵시 좋은 갈색 쓰리피스 정장을 갖춰 입은 거대한 몸과, 긴 다리, 그 밑에 갖춰 신은 검은 끈 구두, 그리고…….

머리 대신 달린 구형 텔레비전.

미소.

[]

완전히 부서진 인형의 하반신 속을 비집고 나온, 거대한 구형 TV 머리가 내게 기울어진다.

[솔음 씨!]

머리가 흔들린다.

사회자가 내 어깨를 잡고 있다.

[이런, 나를 많이 걱정해 줬나 보군요. 하하! 이젠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 든든한 사회자, 브라운이 여기 찾아왔습니다!]

괴담 속 사회자가 손가락 사이에 택을 끼고 흔든다. 봉제 인형의 너덜너덜한 상반신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아, 이 택을 복구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입니다! 덕분에 이 주소로 찾아올 수 있었지요. 휴우.]

[아, 감탄, 칭찬, 그리고 박수를 사양하진 않겠습니다만… 하하, 겸손히 말하자면, 마침 생방송 리허설을 막 끝마친 참이라 가능했던 일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금방 다시 만났군요!]

“…….”

[솔음 씨?]

이게 뭐지?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는군요. 음…… 아, 혹시 이 솜인형이 망가져서 그렇습니까? 그래요. 관객이란 언제나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 그렇지!]

딱.

사회자가 손가락을 튕긴다.

[이건 어떻습니까?]

TV 머리에서 이모티콘이 사라졌다.

그 대신, 화면 속에서 무언가 터벅터벅 걸어서 나타났다.

…보타이를 맨 착한 친구 토끼 인형이.

[자, 당신의 친구인 솜 든 몸입니다! 어때요, 내 화면 속에서도 여전히 귀엽지 않습니까? 오, 손을 흔드는군요.]

“착한 친구는….”

[그래요. 여기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착한 친구! 나 브라운이 말입니다!]

아니다.

“착한 친구는….”

“인형이잖아.”

…….

…….

[솔음 씨.]

찰칵.

화장실이었던 좁은 스튜디오 공간에 핀포인트 조명이 꽂힌다.

이제 스포트라이트는 전설적인 사회자와 나를 비추고 있다.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어쩐지 소극적이더니, 큰 착각을 하고 있었군요…. 괜찮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지금 당신 앞에 선 자는 매우 친절하고 유능한 쇼 호스트이니까요.]

[언제나처럼 설명에 일가견이 있지요. 자….]

장갑을 낀 손이 택이 아니라 망가진 인형을 제대로 집어 들었다.

머리 대신 달린 TV 화면에서 송출하던 착한 친구 토끼 인형이 휙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웃는 이모티콘이 들어찬다.

그리고…….

화르르륵.

…사회자의 손안에 있던 착한 친구 봉제 인형이.

소각되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탁탁, 사회자가 손을 털 때마다 한 줌도 안 될 재가 장갑에서 떨어져서 바닥으로 흩어진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보았다.

하지만.

‘인형에 일부만 깃들게 해서, 마치 친구처럼 만드는 게 아니었….’

[자… 이제 다시 떠올려 봅시다. 당신은 어떻게 친구를 불렀지요?]

…….

이면 세계의 누군가를 초대해, 정신의 일부를 인형 속에 깃들게 하여 친구로 만들어 주는 기묘한 물건.

그러니까,

나는, 봉제 인형과, 넥타이와, 동전을 이용해서….

[를 초대했지요.]

사회자가 자신을 가리킨다.

[전화기가 고장 난다고 저녁 약속이 취소될까요? 우편함을 부순다고 청구서가 사라질까요? 연서를 찢는다고 연인이 헤어질까요? 우린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입니다.]

[인형을 부순다고 당신의 초대가 취소될까요?]

사회자가 양팔을 펼친다.

[그럴 리가요!]

아.

[당신이 한 것은 영원한 의식입니다. 오, 그렇습니다….]

“…….”

뻣뻣해진 머리가, 천천히 문장을 도출한다.

‘그러니까,’

착한 친구 의식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일부만을 소환해 인형에 가둬서 친구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다.

그 존재가 봉제 인형이 걸러내는 필터에 의해 일부만 제한적으로 드러날 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유아용 역할극처럼.

[이 의식을 계속 친구라고 부르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의 친구가 된 겁니다. 솔음 씨! 아,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영원한 우정!]

TV 머리의 이모티콘이 감동으로 그렁그렁한 표정을 잠시 띄우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 MVP 참가자, 이번에도 타이밍의 귀재로군요! 마침 아주 좋은 시기입니다. 솔음 씨….]

내 어깨를 잡은 손이 격려하듯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말한다.

[새로운 토크쇼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

[새로운 인원, 새로운 세트장, 새로운 음악, 새로운 시즌… 모든 촬영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로지 관객의 즐거움만을 위한 내 소박한 토크쇼지요.]

[기쁜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당신의 새로운 직장….]

안 돼.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문을 열고 일단 나가서, 이 스포트라이트를 벗어나서 머리를, 생각을….

[이런.]

TV 머릿속 웃는 이모티콘이 사라진다.

아니.

화면이 검게 꺼졌다.

[내 쇼의 팬이며 고작 참가자 신청으로도 그토록 즐거웠다고 말했으면서, 토크쇼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순간에서 도망치겠다고? 지금까지 내 조언과 도움, 전적인 지지와 헌신을 받은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하다니.]

[솔음 씨, 친구라는 건 원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니었습니까? 이 감정적이고 일방적인 거부라니! 저는, 저는… 마음이 아프군요.]

토할 것 같다.

“미, 미안….”

[이런! 그렇다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솔음 씨. 생각 없는 사과는 쇼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니지요.]

[그리고 나는 언제나 상대의 속생각과 기분을 살피고 이해할 수 있는 진행자입니다….]

[그러니.]

다음 순간.

[이 브라운이 성심성의껏 당신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활짝.

화면 가득 웃는 이모티콘이 가득 찼다.

가득.

가득히.

“잠깐…….”

그러나 거대한 구형 TV머리는 점점 가까이 온다.

가까이.

더.

가까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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