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23화
[이런.]
내 손에 들려 있던 노스텔지어 캔디가 사라졌다.
“…!”
[맙소사! 노루 씨, 사탕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습니까?]
“하하….”
[이런 일은 좋지 않지요!]
사라졌던 노스텔지어 캔디는 마법처럼 브라운의 장갑 낀 손에 나타났다가, 다시 마술 같은 손동작에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졌다.
“…….”
아, 박수를 보냈어야 했던 건가?
짝짝짝….
내가 손바닥을 부딪치자, 브라운이 마치 마술사처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기, 사탕은 어디….”
[노루 씨, 한 달만의 첫 끼가 언제 산 건지도 까마득한, 케케묵은 옛날 사탕이라니! 오, 이건 케이터링에 대한 모독입니다.]
따닥.
사회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혹자는 창작의 열정이 굶주림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내 기준은 좀 다르군요!]
[일단 제대로 된 음식을 듭시다.]
사회자의 요청에 얼굴 없는 직원들이 내 대기실 문을 열고 쾌활하게 인사한다.
그리고 방 한편에 놓인 탁자에 흰 식탁보가 깔리더니, 일사불란하게 음식이 놓이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양식이다.
코스요리로 나와야 할 것 같은 정찬이, 한꺼번에 탁자 위에 올라온다.
[노루 씨가 따로 신청을 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이 브라운이 엄선해 보았습니다.]
[자, 식사를 마치면 기운이 날 겁니다….]
“…….”
…나는 문득, 따뜻한 음식을 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맞은편에 앉은 사회자는 TV에 웃는 이모티콘을 띄우며 식기를 그 양옆으로 흔든다.
Bon appetit!!
…어쩐지, 주변이 어둡다.
오로지 탁자의 정찬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내리쬐고 있는 것 같다…….
반짝.
은반지가 탁자를 비추는 조명에 반짝였다가, 포크에 반사되는 빛에 밀려 밋밋해졌다.
“…….”
나는 머뭇거리다가, 일단 식기를 잡아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같이 들 음료로는… 그래, 노루 씨. 포도를 좋아한다고 했었지요?]
“……!”
사회자의 손동작에 탁자에 루비빛 액체가 찰랑이는 곡선형 유리병 하나가 툭 올라왔다.
와인병.
[아주 질 좋은 포도주입니다. 이전에 퀴즈쇼를 진행하던 중에 선물 받은 건데, 내 친구의 성공적인 첫 출연을 기념하면서 열어보게 되었군요….]
나는 무심코 보틀에 적힌 생산 연도를 읽었다. 1999년 산.
이번에 내가 섭외한 게스트였던 ‘해피엔딩 곰돌이’ 에디션의 판매 연도다.
“…혹시 이번 방송 게스트 생산 연도랑 맞춘 건가?”
[아, 의도를 알아 차려주는 관객은 언제나 즐겁지요. 맞습니다!]
[축하의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첫 데뷔 무대 아니었습니까!]
[아, 이런 디테일은 훌륭한 엔터테이너라면 감동을 위해 꼭 챙겨야 하는 법입니다. 솔음 씨, 좋은 공부가 됐으면 좋겠군요….]
사회자가 직접 와인을 개봉한다.
그리고 유리잔에 찰랑거리는 루비빛 액체가 고이고, 내 앞에 놓인다.
[자… 그럼, 한 잔?]
……음.
이렇게까지 왔는데 안 마시는 것도 이상하긴 했으나, 어쩐지 식욕은 생기는데 의욕이 안 생긴단 말이지.
[…이런.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노루 씨? 내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재주가 부족했군요. 방송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초조해졌다.
나는 잔에 따라진 포도주를 들어서….
마셨다.
…….
“맛있네.”
[그렇지요? 편하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래.”
나는 식기를 들었다.
“…….”
식사가 계속된다.
어쩐지 먹고 마실수록 머릿속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마치 지친 몸에 영양분이 들어오는 것처럼… 아니, 비유가 아니라 정말 딱 그 상황이긴 하군.
‘컨디션이 좋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지쳐 있던 걸지도 모른다.
…….
…아니지, 잠깐만!
‘한 달이나 안 먹었으면 당연히 그렇겠지!’
상식적으로 인간이 한 달간 식사를 안 하고 멀쩡한 게 말이 되나.
‘죽었어야 정상이야.’
맙소사. 내가 이걸 지금 알아차렸다고?
[음? 노루 씨, 음식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나는 식사를 계속했다.
먹을수록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 어둠에 오염된 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정신이 몽롱해졌었나 보다.
여기 들어와서도 무작정 열심히 일하고만 있었구나.
안 무서워졌다고 너무 신났던 건가… 어쨌든.
‘확인해 보는 게 낫겠는데.’
나는 문신에서 새로운 캔디를 꺼내려다가, 왠지 아까운 마음에 그만두었다.
위대한 사회자의 허락도 받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브라운, 아까 가져간 사탕 돌려줄 수 있을까?”
[음?]
“식사도 했으니까 간식으로 하나 먹으려고.”
[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 브라운이 사탕 한 알을 도로 올려주었다.
노스텔지어 캔디.
[여기 있습니다, 솔음 씨!]
이제 확실히 기억났다.
‘이 사탕을 먹으면 10년 중 가장 전성기 때의 몸 상태로 돌아가던가.’
이 덕에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버텼지.
‘좋아.’
나는 사탕을 입에 털어 넣었다.
…….
음.
‘아무 변화 없는데?’
그냥… 확인 사살 당한 기분이다.
‘이거, 아무래도 지금이 가장 좋은 상태라는 뜻 같은데.’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역시 사람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한가 보다.
앞으로는 그냥…… 밥 안 먹고 일만 하지 말자….
아무리 내가 초자연적인 토크쇼에서 근무해서 식사를 걸러도 별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이렇게 영향을 끼쳤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일만 하는 것도 좀 이상했지.’
나는 다 마신 포도주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브라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해야겠는데….”
[음?]
“내 근로계약 말이야. 휴가나 봉급 같은 건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 솔음 씨.]
브라운이 어쩐지 떨떠름한 기색으로 나를 보더니, TV 속 이모티콘이 이마를 짚는다.
[당연히 내 쇼의 크루에겐 충분한 휴가와 은화가 보장됩니다…. 대체 첫날 무슨 설명을 들은 건지 당혹스럽군요.]
그, 그런가?
‘밥 안 먹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여기서 근무를 시작한 뒤 며칠에 대한 기억이 흐릿했다.
심지어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쓰던 물건들도 다 잃어버린 것 같다…. 미치겠네.
“미안. 그런데 지금이라도 근무 조건 협상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물론입니다, 노루 씨!]
나는 밥 잘 먹고 맑은 정신으로 사회자와 격렬히 협상한 끝에 근로 계약서를 완성했다.
일주일에 이틀을 쉬고, 여름과 겨울 휴가를 받고, 기묘자의 은화 50개에 반년마다 실적에 따른 상여를 받고….
음. 괜찮은걸.
[그럼 이번 주가 다 지나기 전에 계약서에 서명하는 걸로 하지요!]
“알았어.”
[이제 정식으로 토크쇼에서 근무하게 되겠군요. 아, 그렇지. 오늘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떠오른 깜짝 아이디어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 말을 하려고 대기실에 들렀더니, 한 달 금식한 빈속에 사탕부터 넣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놓쳤군요. 맙소사!]
“하하… 음. 미안. 뭔데?”
브라운이 내 팔뚝을 장갑 낀 손으로 가리킨다.
[노루 씨의 문신 말입니다.]
아.
나는 팔을 들어서 글자들을 보았다.
분장이 얼룩덜룩 지워진 팔뚝이 울긋불긋했다.
[이제 매번 출연할 때마다 분장을 받기는 귀찮겠지요. 오, 안 그래도 휴식 시간을 줘도 일하려고 드는 노루 씨 같은 워커홀릭은 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예 지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
[생각해 봅시다. 시간도 절약되고, 귀찮은 속박에서도 벗어날 기회니까요….]
“잠깐만.”
[‘잠깐만’? 아하,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도?]
“이 문신들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잖아.”
[하하! 난 또 뭐라고!]
[그건 당신이 그 재미도 처우도 없는 고통스러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요.]
[솔음 씨는 이제 이 멋진 토크쇼의 크루가 아닙니까! 어디를 가든 대우받을 겁니다. 부티크에서 공짜 선데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지요. 자자, 이 지저분한 글 쪼가리들은 깨끗하게 지우지요.]
흠.
“그래도 이건…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인벤토리 문신 말이다.
‘토크쇼에서도 여러모로 재밌게 연출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마술처럼 팔에서 뭔가 꺼내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든가 말이다. 꼭 무대에 나오지 않더라도, 여차하면 급할 때 스탭들 도와서 세트나 조명 나를 때도 좋지 않을까?
“이미 있는 능력을 왜 없애야 하는데? 별로 납득이 안 가서 묻는 거야.”
[흠.]
사회자가 양손을 깍지 꼈다.
[그래요, 솔음 씨. 식사를 하고 기운을 차리니, 더 본연의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군….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아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걸 찾아보지요.]
[마술사 묘기까지 탐내다니! 열정적인 태도, 감동적입니다. 하하!]
브라운의 TV 화면으로 눈물을 훔치는 이모티콘이 뜬다.
[그럼 남은 휴식 시간도 편안히 보내길, 친구!]
“그래. 고마워.”
사회자는 케이터링 담당자들이 내 대기실의 식사 흔적이 깨끗하게 치우는 것까지 확인한 다음, 손을 흔들며 내 대기실에서 나갔다.
“후우.”
나는 소파에 앉았다.
다음 토크쇼는 내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주 게스트 섭외나 연출 회의도 벌써 끝났으니까 여유시간이 좀 있었다.
‘그럼 정리나 좀 할까.’
문신을 지우게 될 수도 있으니, 일단은 문신 안에 든 물건을 좀 정리해 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받은 물건들을 잃어버린 것도 눈치챘으니, 겸사겸사 안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고 말이다.
탁.
나는 인벤토리 문신 안에 손을 집어넣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꺼내서 탁자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부분 다 멀쩡하게 잘 있네.’
회사 물건 외에 없어진 건 혈욕조… 아, 이것도 욕실에 있었지. 그렇다면 없다.
심지어 회사에서 만든 전용 장비들도 멀쩡히 잘 있었는데….
그중에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선물 받은 것도 있다.
“아.”
나는 손톱만 한 검은 단추를 꺼내 들었다.
…은하제 대리님의 통신 단추다.
‘혹시 이자헌 과장이 말했던 게 이 버튼인가?’
음, 계속 연락하자는 뜻이었나 보다.
‘고마운걸.’
나중에 휴가를 받으면 나가서 써봐야지. 나는 웃으며 단추를 챙겼다.
그리고 해피메이커, 비상식량, 흡혈 나이프, 포장지, 네크로노미콘을 지나서….
빨간 버튼도 보인다.
우리가 도움! – ₩66,666,666
‘설마 이 버튼을 얘기했던 건 아닐 거고.’
이런 건 절체절명의 순간에 누르는 것 아니겠는가!
멀쩡히 잘 근무 중인 이직자에게 굳이 권유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무심히 그것을 탁자 위로 올렸다.
‘거의 다 됐나.’
이제 문신 안에 남은 건 거의 없… 아, 하나 더 있네.
테마파크 마스코트가 그려진 종이봉투가 문신으로부터 빠져나온다.
봉투를 채운 건 용 모양 츄러스다.
[블루소다 츄러스]
와.
‘언제부터 있던 건지 이제 까마득하다.’
내가 재난관리국 공무원에게 하나를 팔고 남겨뒀던 거 같지?
그래도 인벤토리 문신에 보관했으니 상하진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탁자에 올리려다가… 기묘한 느낌에 들어서 살펴보았다.
읽지 못했던 문자가 읽혔다.
황홀한 맛
어린이를 위한 건강 간식
건강 간식이라.
‘…먹어도 괜찮나?’
왜냐하면, 음, 사회자가 사탕도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식사를 잘 챙기라고 했으니까!
‘문신 지우면 상할 텐데, 그전에 차라리 빨리 먹어놓는 게 나쁘지 않을지도.’
아깝지 않은가.
‘그래.’
나는 츄러스를 입에 넣었다.
입에서 톡톡 터지는, 불량식품 같은 식감의 츄러스가 씹히고,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리고.
그리고…….
“~~!!”
내 목구멍에서 뭔가 치솟아 오른다.
후두두둑.
츄러스를 삼켰던 입 밖으로 검푸른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짠 내가 풍기는 바닷물.
“…!! ~!!”
바닷물이 목구멍부터 입안까지 완전히 가득 찬 채 토크쇼 대기실 바닥으로 미친 듯이 쏟아진다.
수, 숨을 못 쉬겠다!
숨을 쉴 수 없다!
‘이, 이게 무슨….’
이딴 게 무슨 건강 간식, X발… 아니! 욕은 하면 안 돼! 하지만 이 상황에서 대체 뭘….
아, 안 돼. 산소가 희박해지는 건지 정신이 희미해진다. 죽, 죽는…….
…….
‘저거.’
우리가 도움.
나는 탁자 위에 간신이 손을 올렸다.
늘어놓은 소지품들을 마구잡이로 헤집다가, 빨간 버튼이 손에 닿는 순간.
“~!!”
미친 듯이 팔로 탁자를 치며 버튼을 눌렀다.
이제 눈과 코, 귀로도 바닷물이 줄줄 흐른다.
‘사, 살려….’
그리고.
피이이이익!
머릿속에 미친 듯이 알람이 울리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