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3화
<어둠탐사기록>에서 괴담 속에 들어오면, 보통 데이터 송신과 통신이 전부 불가 상태에 빠지면서 고립된다.
‘전형적인 무서운 이야기 구성이야.’
하지만 이야기는 주고받고 부딪혀야 더 재밌는 법.
이 구성을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백일몽 주식회사>의 일부 조에는 비상 통화가 가능한 일회용 아이템이 있다는 서술을 어느 괴담에서 봤던 것도 같다.
‘이 단추가 그건가?’
머리는 바쁘게 추리하면서도 입은 당장 떠든다.
한시가 급하니까!
“D조 조장님이십니까?”
[예.]
“저는 D조 신입사원 김솔음입니다. 급하게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일단 상황을 들이박자!
“30분 후면 D조 전원이 사망할 겁니다.”
상대가 당황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게 효율적이다. 빨리 진정시키고 말을….
[그렇군요.]
[5분간 브리핑받겠습니다.]
“…….”
왜 평온하냐.
동료 전멸 정도는 현장탐사팀에서는 일상다반사…라고 해도 이건 인간적으로 좀.
‘인성에 하자가…?’
혼란해질 뻔했으나 상황이 다급하니 일단 넘겼다. 나는 지금까지 있던 상황을 최대한 짧게 요약해서 전달했다.
“D등급 화요 토크쇼에서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토크쇼에 중간 난입한 다른 조 직원들, 갑작스럽게 폐지된 퀴즈쇼.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미친 합창단 쇼의 상황까지.
[남은 직원은 몇 명입니까?]
“7명 중 3명입니다. D조가 전원 살아 있지만, 이대로라면 쉬는 시간이 끝나는 대로 다 죽을 겁니다.”
D조 조장은 간단명료하게 반응했다.
[그렇군요.]
[시간을 30분 더 끌어보십시오.]
“…….”
되겠냐?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습니다.]
곧 죽을 사람을 30초 만에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이런 대화로 낭비할 시간이 없는데.’
이 회사 현장탐사팀이 위로 갈수록 모럴이나 상식이 박살 난 직원이 꽤 있긴 했지만 실제로 만나니 보통 열받는 게 아니다.
‘자기 조원들 목숨이 걸린 일이 장난인 줄 아나.’
나는 그냥 전화를 끊고 알아서 생각을…….
“…….”
잠시만.
“30분이 더 생기면 뭐가 달라집니까?”
왜 시간을 끌라고 한 거지?
[예.]
[지금으로부터 55분 이상의 여유가 있다면 경비팀에게 허가를 받은 후, 반출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구와 진입 장치를 대여할 수 있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평이하게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절차를 사후 처리하더라도 40분가량이 소요될 것이고, 해당 어둠에 진입할 때까지 추가로 15분에서 20분 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그 과정만 이루어지면 D조를 구출할 수 있다는 겁니까?”
[확률적으로, 그렇습니다.]
“…….”
특수 장비를 이용해서, A등급 어둠에 단독으로 진입해 괴현상을 진압할 수 있는 현장탐사팀 직원?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네임드다.’
지금 통화 중인 이 직원, 내가 <어둠탐사기록>에서 읽어본 직원 중 한 명이 분명했다!
‘그것도 꽤 비중 있거나 인상 깊은 역할….’
등에 소름이 올랐다.
몇 명의 후보군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머리가 팽팽 돌았다.
“경비팀의 장비를 훔쳐 오는 건… 예. 불가능하겠군요.”
[…? 그렇습니다.]
경비팀은 괴담의 서사적 개연성을 위해 활동반경이 제한되어 있으며 보안이 아주 강력했다. 설정상 불가능한 행위가 맞았다.
‘하지만 이 상대가 정말로 내가 아는 직원 중 한 명이라면….’
경우의 수가 생긴다…!
나는 침을 삼키고 물었다.
“……혹시, 과장님께선 어떤 가면을 쓰시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혹시 내가 아는 별명이 나온다면….
[도마뱀입니다.]
“…….”
아.
너였구나.
“과장님.”
남은 시간은 20분.
“…말씀 주신 걸 기반으로, 제가 계획을 하나 짜봤습니다.”
이걸로 가자.
* * *
[아, 노루 씨!]
쉬는 시간이 끝나간다.
나는 대기실에 비치된 물병 하나를 들고 토크쇼 현장으로 복귀했다.
인가아아안. 2번. 인. 인간입니다!
‘합창 연습’에 몇십 분이나 노출되며 안색이 극도로 나빠진 두 직원을 배경으로, 구형 TV를 머리로 단 사회자가 내게 악수를 청한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힘내서 최고의 방송을 만들어 갈 준비는 됐겠지요?]
“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참가자의 컨디션이 좋아야 쇼에서도 더 좋은 장면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간 사회자의 행동을 감안해도 말투가 매우 우호적이었다.
아직 스마일 스티커의 효과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진 예상대로야.’
나는 준비한 말을 골랐다.
“…사회자님은 굉장히 쇼에 애정과 열의를 쏟으시는군요. 그래서 항상 눈을 뗄 수 없이 재밌는 쇼를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극한 상황이라 그런지 아부가 수치고 나발이고 거침없이 매끄럽게도 나온다.
[그런 극찬이라니! 하지만 방송이란 모름지기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노루 씨, 당신도 그 일부입니다!]
아니, 그 방향은 아니고….
“감사한 말씀이지만, 이 큰 토크쇼를 이끌어가는 사회자님과 비교할 순 없을 겁니다.”
이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회자님께 통보식으로 방송 형식이 바뀔 줄은, 몰랐습니다….”
[…….]
“관객도 없이 녹음된 소리를 쓰고, 벌칙도 사라졌고…. 밴드 인원도 줄었고요.”
나는 대기실의 흑백 방송 포스터들을 떠올렸다.
모두 관객석이 있고, 소통하면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토크쇼들이었다.
거기가 사회자의 개인공간이라면 말이다.
‘이 사회자는 바뀐 방송 형태를 안 좋아할 확률이 높다…!’
“전체적으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바뀐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토크쇼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오해하는 순간 목이 잘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있어도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자.
나는 힐끔, 스테이지 가운데를 돌아보는 척하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죽은 돼지머리를 단 합창 지휘자를.
“…혹시 이렇게 개편된 이유가, 저 게스트분을 섭외하는 데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서입니까?”
[!]
사회자의 TV 속 이모티콘이 사라졌다.
하지만 곧 웃는 이모티콘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참가자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쇼.
사실 저 무서워서 죽은 돼지머리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제가 워낙 화요 퀴즈쇼의 팬이라서, 참가하는 걸 기대했거든요. 그래서 무례한 말을 드렸나 봅니다. 폐지가 아쉬워서….”
[아, 고마운 말이군요! 하지만… 쇼 비즈니스는 냉정하니까요.]
사회자의 TV 화면이 고요히 검게 변한다.
[이런 방식을 시청자들이 더 좋아한다면, 그것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게 엔터테이너의 자질이죠…….]
“그렇군요.”
나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시청자의 심정은 아직 미지수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전이 좋았습니다. 실시간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화요 퀴즈쇼가요.”
[…….]
“이렇게 다짜고짜 무례하게, 진행자와의 상의도 없이 바꾸는 건…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 사견이 과했습니다.”
나는 머뭇거리는 척하다가 덧붙였다.
“그냥… 아까 생방송하면서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웠거든요. 두근거리기도 했고 말입니다.”
[-]
사회자가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 TV 화면에서 노이즈가 지지직거리는 듯하다가….
띠리리링!
[…아! 촬영 재개까지 60초가 남았군요!]
현장에 울려 퍼지는 알림음에 퍼뜩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자자, 모두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가봅시다!]
[노루 씨도 단상으로 올라가야죠.]
“…예.”
[시작합니다! 10, 9, 8….]
사회자는 전처럼 카메라를 보며 숫자를 카운트다운 했다.
하지만 나와의 대화가 어떤 인상을 남기긴 했는지, 어쩐지 전처럼 홀린 듯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 같지 않았다.
‘좋아.’
밑밥은 충분히 깐 것 같다.
나는 사회자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내 단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 오소리 씨.]
[이제 정말로 정답을 말할 차례입니다!]
쇼가 재시작되었다.
[과연 오소리 씨는 영광스러운 합창단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요?]
박민성 주임은 그새 마음의 정리를 한 듯, 좀 체념한 표정으로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빠르게 입을 뻐끔거리는 걸 보았다.
-고마워.
뭐라고 하는 거지?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했….’ 아니, 잠깐만. 이쪽도 말 좀 합시다.
나는 입을 벙긋거렸다.
전달하려는 말은….
-정답을 맞히십시오.
“…?!”
주임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음, 이해한다.
‘목만 남아서 죽기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인간 악기가 되느니, 소각되는 게 낫긴 해….’
하지만 이래야 한다.
주임은 당황한 듯 고개를 휘젓다가 대리를 보았다.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리 씨? 3초 드리겠습니다.]
“아! 으으음, 옙. 대답하겠습니다….”
주임이 눈을 질끈 감더니, 외쳤다.
“4번, 화상입니다!”
[오오오!]
녹음된 관객의 웅성거림이 울리는 가운데.
나는 마침내 보았다.
팔랑.
불 꺼진 구석 단상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엽서.
우리가 이곳에 진입할 때 사용한 그 괴상한 엽서였다.
직전, 이자헌 과장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과장님, 그럼 그 장비를 쓰면 매개체를 통해서 괴담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유한 건 긴급 물자보급용으로, 작은 물건 정도만 어둠으로 건내주는 용도입니다.
-충분합니다. 그걸….
나는 엽서를 보았다.
그것은 조명이 비치지 않는 틈 사이로 조용히 바닥에 떨어지더니….
작은 AAA 건전지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튀어나왔다.
“…!”
불길한 지휘자를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 건전지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가격했다.
은쟁반 하나를.
-힘껏 던져주십시오.
두터운 쟁반이 건전지에 뚫리듯 구겨진다.
눈을 의심하게 되는 물리력.
‘역시.’
나는 <어둠탐사기록>에서 이자헌 과장의 묘사를 떠올렸다.
———————=
직원 D
별명은 도마뱀. 마지막 직위는 팀장.
현장탐사팀에 몇 없는 무력 요원.
주로 사고능력과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온갖 괴담을 무력 원툴로 승부 보는 기믹으로 기록에 쓰인다. ??? : 몸이 나쁘니 머리가 고생하는 것 아닌가?
반대로 말하자면, 이 캐릭터의 무력이 전혀 통하지 않을 때부터 진정한 X됨을 느끼게 하기도.
———————=
만일 죽은 돼지 머리의 지휘자를 직접 공격했으면 저 ‘X됨’을 직접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쟁반 하나라면?
‘‘괴담인데 물리 퇴마가 되네’ 기믹을 가진 직원이니까, 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쟁반은 거의 뚫리다시피 흠결이 생겼다.
‘그렇다면.’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야! 오소리 씨, 정답입니다!]
원래는 여기서 정답자의 목이 뜯겨나가 또 다른 은쟁반 위에서 합창단원으로 합류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소중한 ‘악기’가 손상된 지휘자의 반응은….
[…지휘자님?]
죽은 돼지가 입을 쩍 벌렸다.
썩은 살결이 다 찢어질 만큼 비정상적으로 턱뼈가 꺾였다.
예정되어 있던 객석의 박수 소리 녹음이 기계적으로 울렸다가 혼란스럽게 끊겼다.
[…음, 우리의 게스트께서 새로운 연주법을 떠올리시나 보군요! 과연 어떤 기가 막힌 방식을 구상 중인 걸까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돼지가 절규했다.
찢어진 주둥이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
[…참가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휘자님, 부디 그를 합창단원으로 맞이해 주시죠!]
끔 찍 한 절 규 가
토기가치밀어올랐다. 내가지금무슨끔찍한짓을한거지무슨어처구니없는짓을벌산벌레를보셨나요아노래하고싶어라잘못된판단선택역시
순은의옥좌에찬양죽
밴드 사운드가 절규 위를 덮었다.
“허억!”
이런 미친.
뚝. 뚝.
단상 위로 뻘건 점이 생겼다.
내 코피였다.
그러나 귀를 막아야 했다. 귀를 막아야…. 아, 밴드 사운드가 사라지고 있.
[당신]
뚝.
[쇼를 존중하지 않는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고요한 중에.
화르륵.
스테이지 정중앙의 위대하고 불길한 게스트가 검게 불타올라 재로 변했다.
몇 번이나 본 장면이었다.
‘소각.’
사회자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고유 권한. D등급 어둠인 ‘화요 퀴즈쇼’에서, 방송의 진행을 방해하는 참가자에게 내리는 처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D등급 어둠이…… A등급 어둠을 통째로 불태운 건…가?’
뭔가 이상… 이상하다.
난 그냥 사회자가 게스트의 불성실함에 폭발한 나머지 탈주해서 오늘의 녹화만 중단되는 그림을 노렸던 건데.
[역시 쇼의 본질은 화려한 게스트가 아니라, 본질에 충실하는 거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탭도, 조명도, 밴드도, 녹음기기도, 카메라도.
불타올라 재로 변한다.
사회자의 구형 TV만이 색을 튀기며 빛나고 있었다.
[목격의 즐거움, 소통의 기쁨,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짜릿함, 기대감….]
[너희 ■■■ 제작자들은 그걸 몰라. 너희는 쇼를 만들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다!]
사회자가 해방자처럼 양팔을 고결히 들어 올렸다.
내게 고개를 돌린다.
[노루 씨!]
[고마워요! 제게 새로운 비전을 줬군요!]
[머리가 아주 맑아요. 아… 그래! 앞으로는 요일마다 쇼에 참가자를 받아야겠어.]
사회자가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당신에겐 쇼 크리에이터로서의 재능이 있어요.]
[꼭 내 새 토크쇼에서도 크루로 합류해 주면 좋겠군요, 노루 씨!]
잘못됐다.
[새로운 인원, 새로운 세트장, 새로운 음악, 새로운 시즌… 촬영 준비가 완료되면 초대하죠!]
그러나.
[오늘 방송이 이렇게 중단되어 너무나 안타깝지만… 열정적인 참가,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그럼 다음 방송에서 보죠!]
통했다.
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에서, 손을 흔드는 정장 차림의 TV 머리 인영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나는 내가, 불 밝고 조용한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렸다.
얼빠진 표정으로 코나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주임과 대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살았다.
“와아아아아!!”
“이 기특한 자식, 이 미친놈!”
나는 쏟아지는 환성과 껴안기 속에서, 스르르 소파 위로 미끄러졌다.
살았다.
살아서, 탈출했다…!
“…! 너 수집기!”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둥켜안던 대리가 내 정장 앞 포켓에서 뭔가를 휙 꺼냈다.
꿈결 수집기였다.
그 안은 황금빛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번, F등급을 클리어했을 때와 색이 달랐는데, 이건….
“A등급이다.”
“…….”
“노루 너, 입사 이틀 만에 A등급 어둠을 클리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