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42화
이 미친 마트 괴담에서 상품권으로 정상 구매에 성공했다.
“…….”
나는 결제를 마친 물건을 들고 떠는 고등학생을 계산대에서 챙겼다.
그리고 텅 빈 오른팔 부분을 들키지 않도록, 재킷을 반쯤 어깨에 걸친 채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심호흡하고 돌아보면….
“…!”
마트의 기괴한 부분들이 전부 흐릿해져 있었다.
괴이한 문구, 이상한 물건, 섬뜩한 핏물과 장기.
모두 마치 인지 체계에서 블러 처리된 것처럼 신경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더는 기괴하게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다.
마치 우리가 평범한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한 평범한 쇼핑객인 것처럼 말이다.
“와.”
고등학생이 감탄하며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대신….
“어이쿠.”
“……!”
과거의 쇼핑객들도 우리를 평범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고등학생은 자신과 부딪힌 쇼핑객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과하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나는 눈이 튀어나오게 놀라는 고등학생을 데리고 옆으로 물러났다.
“말했었지? 놀라면 안 돼.”
“네… 네넵.”
고등학생이 허둥지둥 내 옆에 붙었다.
하지만 그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그럼… 이대로 나가면 되는 거예요?”
“응.”
“와…!”
이렇게 탈출에 필요한 모든 작업들은 다 생략된다.
상품권을 쓰면서 계산하면 과거의 쇼핑객과 똑같이 취급받으니까.
가령, 혹시 영업 종료 때 물건을 파손하거나 음식을 먹었어도 그 값만 지불하면 나갈 수 있었다.
“저기, 계산하고 계세요…!”
“잠시만.”
지금 고영은 씨처럼 말이다.
나는 고영은 씨가 계산 중인 카운터에 귀를 기울였다.
“고객님 저기 룩키마트에서물건을망가트리셨어요!배상하세요!삼만구천구백원!”
“네.”
고영은 씨가 침착하게 5만 원권을 내밀었고, 풍선처럼 부풀던 캐셔는 상품권을 낚아채며 부자연스럽게 활짝 웃더니 만 원을 거슬러준다.
그리고 다시 단조롭게 묻는다.
“아, 이 껌 계산 도와드릴까요?”
“……네.”
그러고 나서야 고영은 씨가 골라온 물건이 정상적으로 결재되었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마트 문이 언제 열릴지 모를 때는 이만한 게 없지.’
영업 종료 시간에 벌어진 웬만한 실수도 구매로 무마하고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룩키마트에서 영업 종료 상태로 일주일 이상 흐른다면, 우리 중 누가 됐든 한 번은 실수를 할 것이라 예측했다.
나든, 고등학생이든, 고영은 씨든.
‘…내가 따로 챙겨온 물건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계단참에서 음식을 먹으면 카운트되지 않는 것도 물건이 있어야 가능한 편법이다.
결국 다 떨어지는 순간 마트 음식이나 생필품을 훔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다 한 번쯤은 걸리게 됐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럼 비품행으로 끝장이었다.
‘그 꼴을 안 봐서 다행이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고영은 씨는 본래 청동 요원이 맡았던 학생이 계산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준 후, 함께 계산대에서 나왔다.
무사히.
“…덕분에 통과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청동 요원님.”
우리는 아직 계산대 안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신호했다.
류재관과 이수빈.
긴급탈출 아이템, 오방색 신발 끈을 이용하기로 선정된 두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청동 요원님은 십만 원권 내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학생이 같이 나가는 편이 좋겠어요. …먼저 실종됐던 학생이요.
청동 요원은 이미 ‘비품’ 처리된 데다가 금액이 도저히 십만 원으로 안 될 수준이기에 정상적으로 복귀하기 어려워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실종됐던 이수빈 학생이 다음으로 확정됐다.
우리 중 가장 장기간 실종되어서 어떤 빚을 마트에 졌을지 모르는 데다가, 캔디가 없으면 거동도 어려울 만큼 정신적 충격도 크게 받은 상태였으니까.
‘어차피 저 아이템은 빼돌릴 수도 없어.’
사용해서 ‘영험함’이 사라졌는지 아닌지도 도깨비 공방해서 다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럼 알차게 쓰는 게 낫지.
나는 빠르게 말했다.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
청동 요원이 고요히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먼저 나가십시오.”
아.
“나가시는 걸 확인한 후 즉각 이쪽도….”
“나갈 수 있어?!”
“…!!”
청동 요원의 앞으로 누군가 쏟아지듯 달려들었다.
침을 흘리는 40대로 보이는 주부. ……였던, 이상한 눈을 하고 있는, 팔 대신 인형을 끼고 있는 오염된 자.
장기 실종자.
“저기 나갈 수 있어요?? 쟤네랑 말하네? 하하하! 나가자! 나가자아아~!”
……청동 요원이 우리와 일행인 걸 알아차린 것이다.
‘일단 계산하고 나가면 장기 실종자도 헛짓 못 할 거라고 생각, 했는데.’
정상적인 쇼핑객에게 시비를 걸어서 소란을 피우면 직원이 오니까.
하지만 그건 너무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괴담에 오염되면 욕망의 앞뒤가 바뀔 수도 있다.
가령….
저렇게 무조건적이고 강렬한 탈출욕.
“나도 나가고 싶어! 나도 나가고 싶어어어어어!! 내놔! 상품권 내놔아!!”
시선이 몰린다.
캐셔가 이쪽을 본다.
“고객님 저기 룩키마트에서물건을망가트리셨어요!배상하세요!오백이십만팔천이백사십원!”
‘안 돼.’
최소한 우리면 떼어놓고 도망가면 되지, 저 둘은 걸리면 안 된다고…!
나는 마트 매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일단 캐셔의 시선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당장 가세요, 얼른!”
청동 요원은 군말하지 않고 장기 실종자를 빠르게 밀어 일시 제압한 후, 당장 고등학생을 챙겨서 순식간에 신발끈을 묶었다.
그리고 세 걸음.
“허어어, 무서워, 무서워, 나가게 해줘!”
“배상하세요!”
미칠 것 같은 목소리를 배경음으로, 두 사람은 마지막 걸음에서 마치 증발하듯이 마트에서 사라졌다.
1차 탈출 : 류재관, 이수빈 / 성공.
그러나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어?”
“저 갈래요!! 쟤가 돈 있대요!!”
이목이 끌리자 다른 장기 실종자들이 중얼거리며 매대와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근처에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계산대로 달려가면서 외쳤다.
“양초, 양초!!”
고영은 씨는 이미 촛불을 꺼내 들고 자기 뒤로 고등학생을 숨겼다.
“너희 나가!”
셋이 출입구로 달려간다. 그리고… 고영은 씨가 고등학생 둘만 출입구 밖으로 보낸다.
유리문으로 나간 둘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2차 탈출 : 장민서, 현재훈 / 성공.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고영은 씨는 뛰어서 돌아온다.
“노루, 포도!! 아무튼!!”
황급히 촛불을 든 채,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황급히 고영은 씨의 촛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매장과 계산대 밖은 장기실종자들이 출몰하기 시작했고, ‘직원’들이 이상 현상을 보이며 비품을 징발하는 아수라장.
“얼른 나가요!”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단 말이다.
스파이, 관계자 둘만 남을 순간을.
“잠시, 잠시만요.”
“또 왜…!”
주머니에 들어 있던 남은 상품권을 꺼냈다.
“상품권을, 마저 쓰고 갑시다.”
“…!!”
나는 재빨리 계산대 안으로 도로 들어왔다.
상품권을 탔을 때부터, 금액이 좀 남으면 하려고 노렸던 게 있었다.
이 마트에서 파는 특이한 물건들.
사망단길이나 외계인 상점 괴담에서 내가 아이템을 얻었던 것처럼, 명색이 마트 괴담이니 분명 이질적인 물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분명 쓸 만한 물건도 팔 거야.’
그래야 재밌으니까.
그리고 그런 건 과거의 쇼핑객들에게서 훔치는 걸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과거의 행동을 재현하고 있기에, 당연하지만 그들이 구매하는 물건들은 다 평범한 생필품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무슨 방법으로든 직접 찾아서 구매해야 했다.
‘빨리 찾아낸다.’
이미 탈출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지 않도록 빠르게.
그리고, 소란에 휘말리기 전에…!
‘얼른!’
나는 다급히 매장을 훑었다.
5월 어린이날 행사로 1층 이벤트 매대는 장난감으로 가득했고, 이 중에 ‘괴이한 물건’은 도리어 찾아내기 쉬웠다.
흐릿하게 블러 처리된 듯 아주 집중해야 보이는 것들이 바로 ‘룩키마트’ 괴담 속 특제 상품들이다.
나는 기차 모형, 도넛 튜브. 찰흙 세트를 보았다. 하지만 집어 들지 않았다.
‘안전한 것.’
도박수를 최소화하고 싶다.
되도록 이 마트 괴담의 탐사기록에서 내가 확인한 적이 있는 물건이면 좋겠다.
두세 단어짜리 외양 묘사만으로 똑같은 물건을 찾아내긴 힘들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식별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머릿속과 매대를 함께 뒤졌다. 되도록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찾아야….
“…….”
잠깐만.
‘저거.’
나는 인형이 가득 쌓인 이벤트 매대 하나를 보았다.
그중 몇 가지 인형이 블러 처리된 듯 보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흐릿함을 뚫고 내가 포착한 인형을 관찰했다.
하얀 도마뱀 인형.
바로 D조 사무실에서 이자헌 과장의 책상 위에 있던 것과 똑같은 인형이다.
“…!!”
나는 그 인형을 집어 들었다.
“고르셨어요?”
“예. 영은 씨는?”
고영은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에도 작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갑시다.”
우리는 숨 가쁘게 계산대로 가서 각자가 고른 ‘아이템’을 계산했다.
…뒤에서 장기실종자들이 비품이 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손에 들린 상품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친 금액을 요구하는 소리와 함께.
“이만 팔천 원입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각자 하나씩 아이템을 챙긴 우리는 숨을 몰아쉬며 출입구로 향했다.
“…관리국에서 캐묻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는 쪽으로 합시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고영은 씨의 마지막 인내심을 시험하는 대신, 순순히 달려서 함께 마트의 출입문으로 갔다.
“양초 끌게요!”
“예!”
그리고 출입문을 열었다.
‘하.’
며칠간 갇혀 있던 탓인가, 속이 울렁거린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없는지 자꾸 생각을 돌이키게 되지만.
‘가자.’
나는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괴했던 입간판도 이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유리문 밖의 과거의 풍경. 혹시라도 그곳으로 그대로 나갈까 봐 무서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시하자.’
나와 고영은 씨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딸랑.
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앞으로.
찬 바람과 함께 햇살이 눈을 찔렀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하.”
천천히 빛이 가셨다.
그렇게 회복된 시야로 보이는 것은….
늦겨울의 햇살이 눈부신, 2020년대의 정겨운 골목.
그리고, 먼저 탈출한 사람들의 모습.
“…!”
“요, 요원님…!”
고등학생들이 달려왔다. 이미 눈물 콧물을 다 뺀 얼굴이었으나, 환희에 찬 표정이다.
보고 실감했다.
‘나왔구나.’
3차 탈출 : 고영은, 김솔음 / 성공.
우리는 결국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