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44화
안락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여우상담실.
‘오늘은 휴진합니다’라고 붙은 문패의 앞, 복도 같은 대기실 공간의 탁자에서 호 이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사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탁자 맞은편에 착석하자마자 내가 한 소리가 저거였다.
“산재 처리…를 원하신다고요?”
“네.”
나는 텅 빈 내 오른팔 부분을 꺼내 당당하게 탁자 앞에 보였다.
“재난관리국에서 첫 임무 투입 만에 팔을 잘라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
호 이사도 생각이 있다면 기억하고 있겠지.
-더 편안하실 거예요.
나한테 더 근무조건이 좋고 안전한 일이라고 스파이 직군을 소개했던 것 말이다.
근데 백일몽에서 반년 넘게 구르며 A급 용액 두 번 뽑아내는 동안 멀쩡했던 내 사지 하나가 요원 합격 사흘 만에 날아갔다.
‘사실상 사기잖아.’
물론 내가 운이 나빴다든가,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갈 경우도 충분히 대비했….
“저런! 당연히 해드려야죠!”
“……!”
호 이사가 울상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솔음 님. 그럼 지금 백일몽 주식회사의 재생 물약이 필요하신 게 맞을까요?”
“정확하십니다.”
“저야 물론 솔음 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당장 물약을 드리고 싶은데. 근데… 감당하실 수 있을까 걱정도 되는데요.”
“…예?”
호 이사가 힐끗 내 팔의 빈자리를 본다.
“갑자기 팔이 다시 생겨나면… 재난관리국에 변명할 여지도 없잖아요. 곤란하실 것 같아서.”
“…….”
“그리고 재난관리국에서도 분명 결손 신체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굳이 백일몽 주식회사의 재생 물약도 원하시는 급한 이유가 있는 건지….”
호 이사가 걱정 어린 얼굴로 말을 늘어놓다가 아차 하는 기색으로 양손을 잡는다.
“아, 제가 과하게 생각한 것 같네요. 물론 솔음 님께서 생각하시는 기발한 방법이 있겠죠.”
“네.”
“…….”
“음, 제가 말씀을 잘못 드려서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살짝 웃었다.
“저는 지금 재생 물약을 쓰겠다고 이사님을 귀찮게 만드는 건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귀찮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러시다면?”
“앞으로 ‘또 신체 부위가 없어질 시’ 즉시 재생시키기 위해 물약이 필요한 겁니다.”
“…!”
“초자연 재난관리국은 기본적으로 1인 1조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럼 괴담에서 나와서 보고하기 전에 재생하면 그만일 것 같아서요.”
어떠냐.
“신체 훼손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퇴직을 강력히 권유하기도 한다고 해서, 그걸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
“물론, 회사 사정상 힘들다면 버텨보겠습니다.”
그런데 호 이사가 우리 회사 정말 힘들다고 냉큼 거절한다?
‘그럴 리가 없지.’
굳이 거절하려면 아쉬운 소리를 하며 구구절절 말을 바꾸거나 역으로 갑자기 하급자를 찍어 누르는 식으로 나와야 하는데.
‘둘 다 호 이사 스타일은 아니야.’
C등급 재생 물약 하나 아끼겠다고 그러진 않을 거라 믿…….
“그거 아세요 솔음 님?”
호 이사가 나를 빤히 들여다본다.
“솔음 님을 보고 있으면, 이전 제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여우상담실이이상하게흔들렸다.
낡은 흙벽, 창호지, 서까래, 곰팡이 핀 마룻바닥.
“참 그리워요….”
어쩐지 다 부서진 초가집같은 것이 시야에 깜박거린다. 안락한 현대적 실내풍경 너머로 이상하게 그 스산한 폐가가….
달칵.
“아, 오셨네요.”
“…!”
여우상담실의 문이 열리며 모든 게 멈췄다.
문틈으로 두 명의 남녀가 긴장한 얼굴을 한 채 안락한 여우상담실 내부, 대기실로 들어온다.
아는 얼굴들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
고영은, 장허운.
나와 함께 초자연 재난관리국에 스파이로 잠입한 두 사람도 이 자리에 함께 초대받았던 것이다.
눈물 나게 반갑다.
“어서 오세요. 두 분.”
호 이사가 웃으며 둘을 탁자에 앉혔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고영은과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가 내 오른팔을 보고 안색이 시허옇게 변하는 장허운을 연달아 보았다.
“아, 솔음 님께서 좋은 의견을 내주셔서, 여러분 모두 재생 물약을 하나씩 받으시게 됐어요. 참 좋은 일이죠?”
“…?! 네, 네….”
“…예. 감사합니다.”
고영은 씨는 그나마 나은데, 장허운 씨는 완전히 고양이 앞의 쥐 같은 모습이다.
극도로 긴장한 채 있다는 뜻이다.
‘임원 앞에서는 이게 맞겠지….’
심지어 괴담에서 만나는 괴담 회사 임원이라면 더더욱.
“저기, 안 기쁘세요?”
“기, 기쁩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인데, 업무 보고를 앞두고 있어서 긴장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렇죠. 충분히 긴장하실 일인 것 같아요. 그럼 관련해서 이야기 빠르게 잠깐 나누죠!”
호 이사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며 휙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영은 씨는 거의 실종될 뻔했는데 여기 동기님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참 다행이에요! 그렇죠? 세 분이 함께 잠입한 보람이 있네요.”
“……예.”
고영은 씨가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
“허운 씨도 잘 지내신다고 들었어요. 현장정리반에 들어가셨다면서요? 문서에 접근하기 좋은 반이잖아요.”
“그, 예. 그렇습니다….”
장허운이 시선을 올리지 못한다.
호 이사가 웃으며 내가 타온 녹차를 들었다.
“이렇게 직접 뵙고 대화 나누니 참 좋습니다. 처음이라고 긴장하지 마시고 편히 계셨으면 좋겠구요….”
“…….”
“…….”
우리 셋 모두 근황 보고가 처음이라면.
대체 누구에게 우리 소속을 각각 ‘들었다’는 거지?
‘…재난관리국에 다른 수족도 있는 거야.’
아무 짓도 함부로 못 하게 제대로 분위기 조성할 줄 알았다.
이런 윗사람 진짜 싫다….
그러나 까라면 까야 하는 하위직급 직장인 셋은 경직된 채 고개를 꾸벅이며 말없이 인스턴트 녹차나 들이켰다.
“저, 저기.”
“…!”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더 놀랍게도, 장허운 씨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쭉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아, 뭘까요?”
“저희가 재난관리국에서 찾아야 하는 서류가 정확히 뭔지,”
“당신들이 신경 쓸 일은 아닌데.”
정적이 흘렀다.
“때가 되면 제가 잘 알려드릴게요! 여러분이 충분히 우리 프로젝트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요.”
“…….”
“일단은… 음, 이 정도만 아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호 이사가 미소 짓는다.
“그건 어떤 초자연 재난에 관한 서류입니다.”
거기까지는 예상했다.
“재난관리국 강원도 지부 지하 33층의 서고에 있는 물건이죠. 분류상으로 불러주자면… 멸형 등급.”
“…! 그, 그건…….”
“아, 교육받으면서 들으셨군요! 맞아요.”
멸형(滅形) 등급
“초자연 재난관리국에서 공식적으로 최고 등급 위험을 발령한 초자연 재난이에요.”
…그렇다.
사상자가 발생하는 괴담만 관리하는 재난관리국에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명피해가 나는 초자연 재난에 붙는 명칭.
기준은….
사망처리자 추산 오십만 명 이상.
한 마디로 대도시만큼 사람이 갈리는 미친 사태에나 붙는 이름이었다. 정말로 ‘재난’이라는 명칭이 어울릴 코스믹 호러적 괴담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 뭔지 알 것 같은데.’
지금 호 이사가 말한 저 괴담.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멸형급 괴담 중 백일몽 주식회사의 ‘프로젝트’와 관련 있는 것.
이 단서만으로도 이미 너무 사례가 좁혀져 버렸다.
‘어둠탐사기록에서 하나뿐이잖아.’
덕분에 지금 호 이사가 찾는 게 뭔지, 저놈의 프로젝트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아버렸다고…!
‘미치겠네.’
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는 정신 나간 괴담 뒤를 파고 있던 거였다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소원권… 몇 년 내로 못 받을 것 같은데.’
손절해야 한다.
그러나 저 눈치 빠르고 무서운 이사에게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들키는 순간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다.
식은땀이 등으로 주르륵 흐른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일단 닥치고 있자.’
고래 싸움에 등 터지지 말자.
나는 최대한 남들처럼 긴장하는 얼굴로 이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탁자를 보았다. 이미 긴장하고 있어서 어렵진 않았다.
다행히 이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저, 이걸로 대답은 충분할까요?”
“……예.”
“좋습니다!”
계속 대화가 굴러간다.
“아, 그리고 ‘산재 처리’ 말인데요.”
재생 물약.
“정식 집행은 어려울 것 같네요. 아무래도 세 분은 공식적으로는 본사 소속이 아니신지라.”
다행히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활동비로 지급 드리는 걸로 하죠.”
호 이사가 손가락을 폈다.
“월간 포인트 1만 점.”
“…!!”
“복지몰 임시계정을 드릴게요. 어디에 쓰시든 자유지만, 한 달 내로 쓰시지 않으면 사라질 거예요.”
맙소사.
C등급 재생 물약을 매달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럼 저희 다 만족한 걸까요?”
호 이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며, 나에게까지 시선을 준다.
나는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예. 지금으로서는 감사할 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말이다.
“좋아요!”
호 이사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한술 더 뜬다.
“아, 활동하시는데 또 하나 도움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세 분 모두 손을 내밀어주세요.”
“아.”
두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양손을 들어서 손바닥을 펼쳐 내밀었다.
나도 한 손을 들어서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탁자로 올….
“그렇게 말고, 손등이 위로 오도록.”
“…….”
손 모양을 고친 순간.
“그렇지.”
손등 위로 무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조심하세요. 움직이면 재생 물약을 써야 할지도 몰라서요….”
이런 미친.
구멍 난 수많은 동그라미가 마치 파동처럼 손등에 일렁였다.
‘무슨 짓이지?’
이상한 옥죄임 같은 답답함이 퍼지고….
-남자, 여자, 남자. 너희 셋은 이제부터 서로의 코드네임을 부르지 못하게 된다.
“……!”
-훔쳐보는 시선이 있으면 너희의 진실된 정체를 암시하는 그 어떤 정보도 서로 나눌 수 없다.
쿵.
쿵.
-이를 바꾸려 할 시, 벌을 받는다.
무언가 동그란 것이 파고들 듯 손등을 때린다. 손등에서 시작된 울림이 전신으로 퍼진다. 그리고….
“허억!”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
“…….”
식은땀을 흘리며, 세 첩자는 탁자에서 손을 뗐다.
“…이, 이건.”
“여러분이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으시도록 도와드리려고 열심히 준비해 봤어요.”
호 이사가 친절하게 웃었다.
그러나 우리 셋 중 아무도 웃지 못했다.
“방금, 벌이라고 들었는데요.”
“네?”
“저희한테 벌을 준다고 했잖아요.”
“아,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뻔한 건데… 억지로 이 금제를 풀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잖아요.”
호 이사가 웃으며 손깍지를 꼈다.
“그럼 ‘벌’로…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절 만나게 될 거예요.”
“……!”
“제가 잘 챙겨드릴게요.”
“잠시만요! 그건….”
나는 항의하려던 고영은 씨와 일부러 눈을 마주쳤다.
“…….”
“네?”
고영은 씨가 천천히, 몸을 진정시키더니 다시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순간까지 이 금제를 받는 걸까요?”
“아뇨. 이건 세 분께서 근무하시는 데에 도움을 드리기 위한 장치인걸요!”
말 정말 교묘하게 한다.
‘도움?’
“제가 말씀드릴 멸형급 재난에 대한 정보를 찾아와주시는 대로 이 보조장치는 사라질 거예요. 그리고….”
호 이사는 턱을 괬다.
우리에게 몸을 기울이며.
“이 일에 기여해 주신 분은, 그때 바로 물약을 지급 받으실 거예요.”
“…….”
잠깐만.
옆에서 장허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 물약이라면.”
“소원권이요.”
“…!!”
“여러분은 맡은 역할을 수행해 주시기만 하면 바로 소원권을 받으실 수 있어요! 대단하죠?”
맙소사.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셔도 괜찮게, 제가 열심히 힘써 봤거든요.”
갑자기 소원권 수령까지 기한이 대폭 줄었다.
이 스파이 업무가 엄청나게 매혹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잘하면 말도 안 되게 빨리 받을 수 있잖아.’
나만 잘한다면!
“…….”
동시에 등이 서늘해졌다.
‘일부러 지금 밝혔어.’
죽도록 매달릴 동기를 이차적으로 한 번 더 부여하는 것이다.
처음에 전부 고지하고 심사숙고해서 선택하게 만드는 대신, 정보를 통제했다.
‘그래서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어.’
전부터 생각했지만, 수법이 식은땀 나게 교묘하고 겹겹이다.
‘…이것뿐만 아니지.’
나는 호 이사의 지난 발언을 떠올렸다.
나를 스파이 업무에 꽂을 때 했던 말을.
-그리고 혼자는 외로우실 것 같아서, 다른 분들께서도 함께 투입되실 거예요.
이것만 들으면, 마치 날 위해 다른 사람도 스파이로 재난관리국에 함께 잠입시키겠다는 말 같다.
하지만 막상 오케이하고 확인하니 반대였다.
‘이미 동기들은 나보다 먼저 재난관리국에 투입된 상태였으니까.’
호 이사는 현상 자체에 대해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다만 그 의도와 해석에 대한 프레임을 자유자재로 바꿔서 사람을 몰아가는 것 같았다….
당장 동기들의 표정을 봐라.
‘눈이 빛나고 있어.’
‘이 일만 끝나면 소원권’이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가.
하지만.
“그럼 전원 인정도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이럴 때 디테일을 놓치면 안 된다.
“저희가 다 같이 ‘협력’해서 자료를 넘긴다면, 모두 소원권 물약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 물론이죠.”
“…그럼, 저희가 제대로 ‘협력’했는지 이사님께서 판단해 주십니까?”
“…….”
호 이사가 나와 눈을 잠시 마주치더니, 다시 웃었다.
“그건 여러분의 보고를 신뢰하죠!”
후우.
“감사합니다.”
이걸로 호 이사가 다 같이 협력한 것을 부정하고 한 명만 MVP로 선정해 소원권 물약 비품 처리를 절감하는 사태는 막았다.
“아, 시간이 됐네요.”
그때 호 이사가 손목시계를 보며 일어났다.
그리고 짝, 박수를 하더니 기분 좋은 얼굴로 우리에게 친근히 말한다.
“세 분, 천천히 대화 나누세요. 이제 ‘밖’에서는 함께 모이기도 어려우실 거니까. 이렇게 자리 마련해 본 거거든요.”
스파이끼리 모여서 의심받을 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주었다.
말 끝나니 하위 직급 모임에서 꺼져주었다는 말이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서로 만나도록 자리 마련해 보겠다’라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일어난 호 이사가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황급히 탁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 일어나셔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담실을 나가는 문 앞까지 가서, 문고리를 잡다가 문득 생각난 듯 돌아본다.
눈이 마주쳤다.
호 이사는 내 왼손가락의 은색 반지를 살짝 눈짓했다.
은반지.
내 정신 방호 아이템.
“그거, 다 닳았네요.”
“…!”
스르륵.
“그럼 다음 상담 때 또 뵙겠습니다, 여러분.”
여우상담실 문이 부드럽게, 친절히 닫히는 소리가 났다.
툭.
“…….”
“…….”
호 이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하…….”
깊은 한숨 소리가 대기실에 가득 찼다.
까마득한 상급자인 미친 새끼와 대면한 하위직급 실무진들의 한숨이었다….
‘그래도 독대가 아니라는 점이 좀 힘이 됐던 것 같기도.’
한 사람은 또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말이다.
“저… 오랜만입니다, 솔음 씨.”
나는 동기를 돌아보았다.
한때 마무리팀이었던 직원.
장발의 남성이 나를 반가워하면서도 걱정 어린 기색을 드러내며 말한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장허운 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