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75화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개장 사흘 차 아침이 밝았다.
로비 문을 여는 9시에서 한 시간 전, 출근한 직원들은 로비에 모여서 마스코트의 브리핑을 듣는다.
그리고 오늘은 또다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저 기
마스코트가 리조트의 왼쪽 창문을 가리킨다.
그 너머에는 아직 폐허인 리조트 구역의 일부가 보였다.
이 제
운 영
그리고 마스코트가 선언하는 순간.
“…!!”
창문 너머의 폐허가 재구성된다.
깨진 유리가 휘몰아치며 반구형을 만들고, 틈 사이에 금장식이 반짝인다.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화려한 황금꽃들.
위에서는 증기가 나오고, 유리 통로가 리조트 건물로 뻗어 나오더니 창문을 뚫고 문이 생기며 연결된다.
보급형 마스코트들이 달려 나와 그 위에 우아한 간판을 달았다.
[힐링 골든 스파]
모든 직원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 황금빛 유리 온실을 보았다.
이렇게 보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멋진 장소 같으나, 사람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인간이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가서 스파를 즐기려 들 시 ‘■■가 되어 실종’, ‘사지의 뼈가 제거됨. 이후 분리수거장에서 발견’ 같은 끔찍한 묘사로 엔딩이 끝나는 게 어울릴 곳이었다.
쓰는 향유부터가 그랬다.
스파에 배치한 향유는 태양오렌지, 포도, 무화과, 영원농장의 사과즙, ■■산 만 18년생 ■■의 피, 이족보행 영장류의 혈관즙 등 엄선한 최고급 원료로….
…등등이 적혀 있던 스파 소개문 예시를 떠올리며, 김솔음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죽기 딱 좋잖아.’
그리하여 그는 고민 끝에 비상책을 도입했다.
바로… 무인화!
힐링 골든 스파에서는 모든 마사지가 전문가 의식이 충만한 식물에 의하여 맞춤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곳의 마사지는 전부 기묘한 온실 시설물이 자동으로 해준다.
김솔음이 코인을 때려 박아서 이 위험천만한 장소와 직원과의 연결을 최대한 끊어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스파는 더 기괴해졌으나 후회는 없다!
‘더 이상의 나폴리탄풍 근무 수칙 추가는 그만….’
‘소중한 투숙객님만의 프라이빗한 휴식을 보장한다’라는 테마는 이번에도 알차게 써 먹혔다.
참고로 그러고 남은 코인은 닥닥 긁어모아 리조트 룸의 최고급 침구에 맞도록 침대 가구를 바꾸는 데에 다 때려 박았다.
수익성이라곤 고려하지 않는 투자!
‘방에 만족하셔서 로비든 복도든 나오지 마십쇼.’
오직 동선의 최소화, 변수의 차단만을 위한 행동이었다.
사실상 목적은 퇴마용 봉인과 다름없다.
근무 수칙이 20번까지 불어나는 걸 막으려는 마스코트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노란 마스코트는 한숨을 참으며, 드디어 신규 직원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배정해 준다.
우선 돌고래 가면을 쓴 이성해 주임은 스파의 예약확인 데스크로.
“오케이. 알겠습니닷.”
다음으로 족제비 직원을 스파 대기실의 청소부로 정했다.
“예, 예….”
아직도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족제비 직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으로 고개를 푹 숙여 달려 나갔다.
그리고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직원이 있었다.
무당벌레 가면.
그는 혼자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쓸모없는 직원은 직접 응대를 안 하는 곳으로 넣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곡이었다.
김솔음의 기준에서 믿음직한 직원일수록 괴담을 직접 상대하는 쪽에 넣은 것이다.
전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공리주의적 배치였으나, 본래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과 사고방식대로 상대를 판단하기 마련이었다.
‘선별하는 거구나!’
무당벌레 직원은 손을 꽉 쥐었다.
저대로 쓸모없는 직원은 잘리거나 보급형 마스코트로 개조되는 게 아닐까?
어느 쪽이든 식은땀 나는 엔딩이었다.
‘X발 진짜.’
그리고 어두운 눈으로 경쟁자들을 둘러보았다.
이미 직원이 되어버린 이상 ‘눈에 안 띄어 묻어가듯 클리어한다’라는, 최대한 안전한 공식은 적용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공식을 써야 한다.
합격권 안에 들기.
괴담이 그에게 살아남아도 괜찮다는 평가를 하도록 만들기…!
이 리 와
노란 마스코트는 자신의 팀이었던 직원들을 따로 불러서 스파 입구에 놓인 도장으로 탑승권을 찍어주었다.
옆에서 들쥐 직원이 이제 슬슬 마음을 놓고 있는지 히죽거리기까지 한다.
“이대로면 앞으로 나흘 내로 탈출하겠는데요?”
“…….”
멍청한 새끼.
무당벌레는 초조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룸서비스 담당인 자신은… 몇 순위일까?
‘도장 세 개 다 찍기 전까지 밀려나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일개 직원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리조트는 운영된다.
영 업 시 작
새로운 시설과 함께 하루가 시작했다.
그날의 영업도 성공이었다.
다만, 다음 날부터 노란 마스코트는 묘한 이상 현상들을 눈치채기 시작한다.
* * *
영업 나흘 차.
김솔음은 저도 모르게 장허운과 당혹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
“저, 왠지 투숙객분들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
스파가 생긴 이후로 어딘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제까지 리조트에 찾아오는 투숙객들은 대부분 테마파크가 목적인 것 같은, 혹은 테마파크를 즐기고 온 것 같은 외관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테마파크 부속 리조트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딘가 기묘한 외관이 늘었다.
“조용히쉴수 있다고들었어요선물정말고마워요저는신경쓰지마세요목욕물만 있으면아무문제없어요고맙습니다”
방금 지나간 건 점액에 팔다리만 달린 기묘한 괴생명체였다.
외딴 숲속 조난 괴담에나 등장할 법한 외양.
입장권도 팔목에 없고, 기념품이나 머리띠 하나 없었다. 누가 봐도 테마파크를 즐기러 온 모양새는 아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런 묘한 손님들이 마치 러쉬하듯 프론트 데스크로 와서는 방을 잡아간다.
우르르 들이닥친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의 인파!
‘…??’
이렇게까지 잘 된다고?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매출은 잘 나오겠지만….
다 음
어쨌든 김솔음은 다음 투숙객을 받았다.
그런데, 그 투숙객은….
심지어 안면이 있다.
“방 하나 주시죠. 스파 포함해서. 후우….”
유니폼 같은 기사용 제복을 입고 정모를 쓴 창백한 남자.
‘종말의 택시기사잖아…!’
사망단길에서 탈출할 때 신세를 졌던 김솔음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왜 저 양반이 테마파크 같은 곳에 온단 말인가. 종말의 4기사 중에 테마파크에 관심이 있을 만한 개체가 있었던가?
‘안 되겠다.’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
결국 노란 마스코트는 입을 열었다.
저 기
“음?”
이 거 하 면
선 물 하 나 더
김솔음은 급하게 ‘어떤 경로로 찾아오셨나요’ 설문지를 만들어서 내밀었다.
택시기사는 피로한 눈으로 그것을 훑어보다가 그냥 말로 한다.
“요새 후기로 홍보를 많이 하던데… 직업상 휴식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끝날 때까지 그만둘 수가 없거든. 하하하….”
……??
디럭스 룸을 받아서 4층으로 올라가는 택시기사를 보며, 노란 마스코트는 눈을 끔벅였다.
‘후기로 홍보…?’
그리고 떠올렸다.
파란 마스코트가 뿌리던 쿠폰을.
플라워 골든 리조트
디럭스룸 1일 숙박권
(체험 후기 필수)
‘…!!’
설마.
노란 마스코트는 당장 이자헌을 호출했다.
후 기
적 었 어 ?
“예.”
세상에!
어 디 에
“안내원으로 배치된 마스코트 중 하나가 엽서를 건네주었습니다.”
김솔음은 해당 업무의 보급형 마스코트들을 호출해, 엽서의 정체를 확인했다.
‘맙소사.’
…쿠폰을 사용했던 투숙객들이 적은 엽서는 이미 수십 장이 쌓여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자헌 과장의 한 줄짜리 엽서도 거기 있다.
-침대 매트리스가 푹신합니다.
‘…….’
그것참, 좋은 후기이긴 한데….
‘아무래도 이 후기 엽서들이 이상한 괴담 네트워크를 타고 홍보물로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게 새롭게 런칭한 거리두기 테마와 잘 맞아떨어지며, 평소 테마파크에 오지 않을 법한 성격의 괴담까지 부르는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는 듯했다….
전혀 예상 못 한 호황!
‘으아악.’
김솔음이 ‘왜 장사가 잘되는 건데’라고 울부짖으며 갑자기 방 개수를 파격적으로 줄여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는 손님을 쫓아낼 만한 행동은 마스코트로서의 정체성이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노란 마스코트는 뿔을 축 늘어트리며 체념했다.
‘…만족한 투숙객 수치를 빨리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는 어제 적은, 3번째 시설 추가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떠올렸다.
리조트 시설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것
직원 3
만족한 이용객 300
마스코트 세레머니 의식
필요한 이용객이 딱 10배가 됐다.
그리고 수상쩍은 행사까지 개최해야 한다….
‘그래도 필요한 추가 직원은 여전히 셋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밀려드는 손님들을 보니 이용객 수치 채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문제가 있습니까?”
뿔을 축 늘어트린 노란 마스코트를 보고 이자헌 과장이 물었다.
물론 마스코트는 그냥 시킨 대로 좋은 리뷰 적어준 외계 도마뱀에게 화낼 이유도 배짱도 없었다….
아 니
노란 마스코트는 도마뱀의 등을 토닥였다.
잘 했 어
“? 예.”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다만 그 모습을 전혀 웃지 못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보고 있는 자도 여기 있다.
룸서비스 콜 데스크에 앉은 무당벌레 직원.
그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 광경을 훑었다.
‘인정받는 건가?’
혹시 저 도마뱀 과장이 승진하면 어떡하지?
자신이 밀린다.
생존 가능성이 떨어진다…!
‘안 돼.’
무슨 수를 써야 했다.
무당벌레 직원은 자신이 가진 ‘비장의 한 수’를 떠올렸으나, 곧 이를 악물었다.
도마뱀 과장은 술수를 부리기 너무 어려운 상대였다.
그의 특수한 괴담 탈출법은 이미 사내에서 유명했다. 허튼짓하려다간 머리가 물리적으로 터질 수 있다.
같은 의미로 돌고래 주임도 어려웠다. 정예팀이니까.
결국….
그보다 고평가를 받으면서, 만만한 직원은 하나뿐.
“…….”
그는 프론트 데스크를 돌아보았다.
매니저로 승진한 들소 가면의 직원, 장허운이 일하고 있었다.
* * *
그날 밤.
똑똑똑.
장허운의 호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저, 누구신지….”
“아, 접니다. 무당벌레.”
“아!”
여러 근무 수칙을 떠올리며 뒤로 물러나던 장허운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조금 사라졌다.
다행히 목소리를 모사하는 귀신류의 투숙객도 어제 퇴실했다. 그가 직접 체크아웃 처리를 해줬다.
‘조, 좋아.’
장허운은 문을 열어주었고, 무당벌레 직원은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방 안으로 발을 뻗었다.
“그, 안녕하세요. 들소 씨. 죄송하지만 물건 하나만 빌려….”
“저, 저기.”
“네?”
장허운이 앞을 막았다.
“들어오진 마십시오.”
“……!”
“근무 수칙에 적혀 있습니다.”
16. 다른 투숙객을 방 안으로 초대하는 행위를 삼가 주세요.
동료 직원이 찾아오더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본인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
“저, 무례하게 굴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냥… 규칙은 규칙이니까 되도록 지키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서,”
“물론이죠.”
무당벌레 직원은 한 발짝 물러나며 허허 웃었다.
“제 방에 생수병이 다 떨어져서요. 그냥 저 물 한 병만 빌려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아…! 물론이죠. 저한텐 여분이 있을 겁니다. 잠시만요….”
장허운의 가면 아래 안색이 살짝 밝아졌고, 그는 얼른 룸 안쪽에 비치된 냉장고에서 생수를 찾아 꺼냈다.
“…….”
그 틈을 타서, 무당벌레는 아주 살짝 움직였다.
아주. 살짝.
팔랑.
“…….”
“아,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당벌레는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 현관으로 돌아온 장허운에게 물병을 받아 들고 웃으며 떠냈다.
장허운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문을 닫았다.
“후우.”
혼자가 됐다.
오히려 이렇게 밤에 쉴 때가 더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낮에 봤던 피와 내장들을 떠올리면 토기가 치밀어오르기도 하니까.
‘그래도 보람이 있어.’
이 리조트는 정말 멋진 곳이고, 마스코트님은 정말 대단하고 멋지고 위대한 분이다.
아주 오랜만에 일상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장허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문단속을 하기 위해 현관을 살폈다….
그런데.
‘어?’
현관 밑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납작한 노란색 사각형.
‘포스트잇?’
문서에 흔히 쓰는 포스트잇이었다.
아무래도 청소하는 보급형 마스코트나 무당벌레 직원이 흘리고 간 모양이었다.
그마저도 노란색이라 장허운은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여기답네.’
황금보다는 누런색에 가깝지만, 어쨌든 장허운은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뒷면으로 떨어져 있던 포스트잇의 앞면이 드러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