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84화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매직버니의 판타지랜드.
모든 게 멈췄고 어둡다.
소리 없는 놀이공원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러운 상상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내가 맨 앞에서 걷고 있다면 더더욱.
‘후우우….’
귀신 분장을 하고 귀신의 집에 숨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내가 보안팀 분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마스코트 인형탈이 주던 묘한 안정감은 사라졌다는 것.
…장단점이 있는 일이지만, 일단 긴장감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아, 한밤중의 잠입이라. 정말 긴장되고 재미난 상황이지요!]
[그리고 이 말을 꼭 한 번 더 전하고 싶군요. 아까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거대한 괴수를 사냥하는 거대한 덫! 역시 파괴는 원초적 즐거움 중 하나지요. 참 즐거운 구경거리였습니다!]
으음.
나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브라운의 목소리에 익숙한 허허로움과 약한 안도감을 느꼈다.
‘너라도 재밌어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괴담 속 사회자에게 재밌을 거라고 장담해놨는데 노잼이라고 평가받았으면 식은땀을 줄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 상황은 기뻐하고 안도해야 마땅했다.
제대로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니까.
철퍽.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파란 마스코트.
아니, 그 마스코트의 탈을 벗은 누군가.
그를 의식하자 등 뒤로 소름이 돋았으나, 동시에 내 안의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섭지만, 동시에 천군만마 같다.
‘세레머니 직전에 합의가 되어서 다행이다.’
처음에는 아예 테마파크 영업이 끝나자마자 매직버니 구역을 습격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었다.
내 리조트가 공격받는 틈을 타서 그쪽도 빨간 구역을 습격하고 먹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랬다가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혹시라도 파란 마스코트가 밀리면 곤란했다.
‘둘이 세력이 비슷한 것 같은데.’
아마 파란 마스코트는 매직버니가 자신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서로 무시하는 상태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건드리면 공멸할 수 있으니까.
‘그 미친 빨간 마스코트가 파란 구역엔 안 쳐들어가는 걸 보면 아마 힘의 균형 같은 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 그가 매직버니를 안전히 잡아먹을 수 있도록 판을 짜야 했다.
‘차근차근히 진행해야 했어.’
그리하여 가장 확률적으로 보수적이게 진행한 결과가 지금 이 순간이다.
나와 직원들은 대피소에 숨고, 리조트 자체를 폭격하기.
그러고 나서 강력한 파란 마스코트와 함께 매직버니의 구역에 침입하기.
물론….
‘조건이, 있었지.’
절 대
보 지 마
‘…….’
그래도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철퍽.
등 뒤에서 물이 부딪히는 소리, 꼬리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배를 끌고 발을 옮기며 따라오는 소리.
들린다.
거대한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뱀이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하고, 기묘하지만 날개나 수염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혹은 눅진하게 바닥에 눌어붙은 것 같기도 하다.
뒤에서 따라오는, 파란 마스코트의 탈을 벗은…… 무언가.
철퍽.
신경이 본능적으로 곤두선다.
아마… 파란 마스코트는 매직버니와 다르게 이 테마파크에 완전히 정체성이 쭉 빨려 외피를 잃어버리진 않은 것 같다.
어느 정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소리다.
물론 뒤를 돌아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유가 있겠지.’
나는 연기로 만든 글자, ‘절대 뒤를 보지 않는다’를 없애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 이거 어느 순간부터 쓸 수 있더라. 마스코트에게 역으로 이 코스튬도 영향을 받은 건가?
어쨌든 전진은 계속되었다.
목적지는 빨간 구역 중앙.
매직버니의 판타지 캐슬.
“…….”
“…….”
조용히 하라고 경고하지도 않았건만, 재난관리국의 구출 대상자인 민간인까지도 입을 다문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럴 필요 없는데.’
하지만 불안 때문인지 발걸음은 거의 뜀박질에 가깝게 변하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유원지의 궁전 모양 건축물이 어둠 속에서 급속히 가까워진다.
이 구역의 가장 거대한 핵심 시설.
‘…뭔가가 남아 있을 거야.’
비록 매직버니 본체와 떼거리들은 노란 구역에 습격해 왔다가 벼락 처맞고 건물 붕괴에 파묻혔더라도, 빨간 구역에 아직 남아 있는 찌꺼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매직버니가 될 수 있다.
이젠 안다. 마스코트는 그런 종족이다.
그리고 그 찌꺼기가 시간이 지나면 본체처럼 기능하게 되는 거지.
그 전에 잡아야 했다.
“…도착했네여.”
나는 이성해 주임의 속삭임을 들으며 먼저 발을 멈추었다.
판타지 캐슬의 뒷면이 보였다.
그래. 우리는 후방으로 접근한 상태였으며, 과장된 동화 속 궁전에는 테마파크답게 현대적 기술로 마감되어 교묘히 감추어진 뒷문이 있었다.
“…….”
나는 그 뒷문을 완력으로 열어버리려는 이자헌 과장을 말리지 않았다.
빠각, 끼이이익.
문이 열리며 알록달록 화려하고 적막한 내부가 드러난다.
무언가 끔찍한 것들이 테마파크 컨셉소품처럼 아무렇지 않게 진열된 것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내 등불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모습을 감춘다.
꿀꺽.
뒤에서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자, 원하는 만큼 수색해 봅시다. 친구….]
나는 벽면이란 벽면은 전부 집요히 뒤졌고, 빨간 토끼 마스코트가 서서 이용객들을 안내했을 게이트의 옆까지 왔다.
그러자 ‘찾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건….”
“…스태프 구역 같은 건가?”
맞다.
리조트에도 관계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시설사무실이 있었다.
내가 거기서 운영용 문서나 도장 따위를 발견했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이 빨간 구역에도 비슷한 공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빨간 구역을 점령한 걸 인정받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여기겠지.’
“목적지가 이곳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헌 과장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한번 잠긴 문을 개방했다.
지하.
아래로 내려가는 현대적 양식의 계단이 나왔다.
삭막한 양식에, 이곳저곳이 피에 부식된 듯 녹슬어 있다.
“…….”
나는 연기로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주었다.
자유롭게 선택
▶여기서 대기
▶내려가기
“어…?”
그리고 나는 조용히 ‘매직버니 외 출입금지’ 구역의 계단 앞에 섰다.
‘제발 강한 몇 명만 좀 따라와 주십쇼.’
나 혼자 뒤도 못 돌아보면서 탈 벗은 파란 마스코트였던 무언가와 말없이 걸어가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기, 기다리려다가 실수로 ‘뒤’를 돌아보면 어떡해!”
“이런 건 원래 낙오되면 죽는 거야.”
“…….”
음. 제법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어쨌든, 다시 어둠 속에서 탐험이 시작된다.
내려가면서 몇몇 ‘비품실’, ‘냉동고’, ‘마법의 보관실’ 같은 기묘한 명칭의 문들이 보였으나, 나는 그것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그저 계속 내려갔다.
감지된다.
[오, 마스코트였던 자의 본능입니까?]
비슷하다.
사람들도 최대한 그 문에 달린 유리창마저 쳐다보지 않으며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에 닿는 순간.
녹슨 문패가 보였다.
[마스코트 개발실]
반쯤 열린 문.
찾았다.
“저기, 선생님. 잠시만요. 마스코트 개발이라는 건 무슨….”
나는 문고리를 잡고 확 개방했다.
“…!!”
직원들이 비명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이런, 제법 전위적이군요!]
거대한 개발실 공간의 중앙, 피륙이 반쯤만 차 있는 거대한 붉은 몸체가 보였다.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뒷발과 웅장하고 사악한 피막 날개, 잘린 꼬리, 하반신만 덩그러니 남은 거대한… 무언가.
“히읍,”
사람들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그때, 옆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인형탈이네여!”
“…!”
“근데 미완성 같은데요? 절반만 있어서여.”
그렇다.
하반신만 덩그러니 전시된 그것은 잘 보면 안이 텅 비어 있고, 여기저기 솜을 대체하는 듯 잘린 머리카락 뭉치가 끼어 있었다.
마스코트 인형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려던 것 같은 흔적들.
‘후우.’
나는 내 안광으로 만든 시야로 그 기묘한 짐승의 하반신을 더 살폈다.
촘촘히 비늘이 덮여 있다.
사람의 손톱이다.
‘…하.’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넓은 ‘개발실’ 공간의 곳곳에서 연결되지 못하고 방치 중인 부위가 보인다.
노란 세로 동공 눈알, 지느러미 같은 작은 피막, 새의 발 같은 기묘하고 거대한 앞발톱, 혀, 주둥이의 살점.
마스코트 개발의 흔적들이다. 원료의 출처가 짐작되는 형태가 많아 속이 매슥거린다.
다만 이걸 ‘마스코트’로서 테마파크에 공식적으로 꺼내거나 소개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여긴 빨간 토끼, 매직버니의 구역이니까.
이 알록달록 귀여운 놀이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장엄하고 위압적인 저 모양새는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유쾌 테마파크라 허락하지 않았겠지.
“토끼가 아니라 저걸… 마스코트로 새로 쓰고 싶었던 걸까요?”
“……글쎄다.”
요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이미지 개발이라! 식상하지만 전형적인 발상이군요. 노루 씨의 추측은 어떻습니까?]
음.
‘…반대가 아닐까?’
[음?]
‘저 탈로 본래 자기 모습을 복원하려던 게 아닐까, 싶어서.’
매직버니는 아예 마스코트 탈 안에 있던 자신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본래 자기 모습대로 탈 모양을 만들려고 들었을 것 같단 말이지.’
본능이든, 계산이든 간에.
결국 실패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 조각난 모습들을 맞춰 봤을 때, 본래 매직버니의 정체는….’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무언가 움직였다.
“아악!”
나는 재빨리 민간인의 뒷덜미를 잡아 요원들에게 던졌다.
찌르르르르….
민간인이 유심히 들여다보던, 비늘로 덮인 꼬리가 진액이 떨어지며 움직이고 있었다.
“허억.”
매직버니의 찌꺼기.
그것은 꼬리 모양 탈 내벽에 들러붙어서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팔다리는 없다.
실종자와 이용객들의 신체 부위를 수집해 붙여놓은 온갖 장기와 사지도 없다.
형상을 잃어버린 매직버니 인형탈의 내용물 찌꺼기.
하지만 교활함과 공격성은 여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찌걱찌걱찌걱찌걱.
사방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개발실에 있던 모든 인형탈 부위가 진동하는 소리다.
그리고 중앙의 거대한 것도 꼬리를 따라 관절을 뒤틀기 시작했다.
붉은 탈 사이로 더 시뻘건 것들이 울룩불룩 꿈틀거렸다.
“아아악!”
몇몇 사람의 비명, 계단으로 도망가려다가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주춤거리는 자들, 요원들이 민간인을 사이에 두고 대응 자세를 취하는 사이….
“파괴해야 합니까?”
“이 정도면 싸울만한 것 같기도 하구여?”
그, 그거 아닙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은 후 검은 연기를 다시 다뤘다.
우리를 맨 뒤에서 따라온 후, 개발실 한구석에 고요히 있던 거대한 형상을 향하여 보낸 것이다.
파란 마스코트의 본체.
“…!”
파란 마스코트의 탈을 벗은 것이, 내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잠시 모두의 시야에서 차단됐다.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계단으로 대피하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직원들이 다급히 우르르 계단으로 빠진다. 나도 그들을 따라 계단으로 가서 개발실 문을 등지고 마지막으로 섰다.
똑같이 개발실을 등지고 서서 식은땀을 흘리는 그들의 앞으로, 파란 마스코트에게 보냈던 연기를 거두어 다시 글자를 만들었다.
절대 뒤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철퍽.
개발실에서 소리가 들린다.
“…….”
우리를 따라왔던, 파란 마스코트 안에 든 자가 움직인다.
약속된 일을 해주기 위해서.
느릿하게 그 강력한 발걸음을 옮기는 거대한 물결이, 심해의 주인이, 회한에 잠긴 듯 조각난 인형탈과 그 내용물을 둘러보는 마찰음이 들리고….
결국 이 순간이 도래했구나
이방의 삿된 종자여
빨아들인다.
“…!!”
개발실에 있던 매직버니의 내용물 찌꺼기들이 세찬 해일이나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이 으깨지며 짓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워터파크에서 ‘나쁜 아이’가 그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삼켜진다.
괴이한 비명, 괴이한 공허.
“흐으으윽.”
“윽!”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인다. 감당할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기 싫다는 듯, 거부하려는 듯한 그 동작들.
다만….
나는 나를 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노란 마스코트의 가면을 쓴 자.
장허운은 빙긋 웃고 있었다.
마치 이미 다른 것에 완전히 종속되어, 이런 상황에 두려움에 떨 자아마저 없는 듯이.
원한다면 언제든 뒤를 돌아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직시하겠다는 듯이.
다른 의미의 소름이 내 전신을 감돌고 지나갔다.
그러나 등 뒤에서도 거대한 존재감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거대한 물줄기가 육중한 채찍이나 꼬리처럼 개발실의 사방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사라졌다.
“…….”
“…….”
귀를 막고 있던 사람들은 아주 서서히 손을 뗀다.
등 뒤에서 상냥하려 노력한 듯한 의지가 들린다.
다 되었다
“…….”
그리고.
계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어어어?”
마치 실시간으로 개조되는 것처럼, 파도치듯 움직이더니 사람들을 계단 위로 가볍게 밀어냈다.
“뭐, 뭐야?”
마침내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 문이 열리고 그 밖으로 호쾌히 탈출한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목격한다.
“어어?”
매직캐슬에서 빨간 토끼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가 만들었던 끔찍한 상징물들은 아직 남아 있었으나, 본래 매직캐슬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온갖 토끼 캐릭터의 형상들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그 대신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블루드림.
귀엽게 데포르메된 푸른 용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었다.
영업 전 황급히 보수 공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되, 된 건가?”
직원들이 왠지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직버니 구역은 다른 마스코트에게 점령당했다.
완전히!
이제
안전
“아!!”
“돼, 됐다!”
내 연기를 본 사람들이 안도한 듯이 한숨을 쉰다. 몇몇은 화색이 되거나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으나, 뒤를 돌아보진 못하니 저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낸다.
“저, 감사합니다.”
“감사해여.”
파란 마스코트를 향한 것이다.
내 노란 등불에 비친 뒤의 그림자가, 어딘가 기쁜 듯이 흔들린다.
그 그림자는….
“…용?”
“팀장님?”
“용이나 이무기… 아니, 됐다.”
팀장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가 그만두는 모습이 보인다.
“…….”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마스코트로 강제 취임했지.’
내 등 뒤에 있는 자도 파란 마스코트가 되기 전에 다른 무언가였다면.
그리고 아까 그 인형탈도 본래의 자기 형상을 잃어버린 매직버니의 원모습이 맞다면.
어쩌면. 유쾌 테마파크는 다른 괴담이나 설화에서 유래한 강력한 개체들을 계약으로 붙잡아서 마스코트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
이 테마파크에 진입하는 보드게임도 유쾌연구소에서 만들지 않았던가?
‘기묘한 느낌인데.’
어쨌든 당장 고민해야 할 것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이제 매직버니는 없다는 것.
혹시 리조트에 누군가 남더라도, 매직버니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것.
‘됐다.’
그것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고생한 건 노루 씨인데 말이지요!]
[공을 전부 몰아준 덕분에 자기가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아는 저 마스코트의 버릇이 한층 더 나빠지긴 하겠습니다만.]
어휴.
‘그래도 괜찮을 거야.’
나는 직원들을 이끌고 매직캐슬을 걸어 나왔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 *
유쾌 테마파크가 곧 영업을 시작한다.
우리는 노란 구역의 연결 게이트로 돌아왔으나, 사용한 게이트의 통로가 블루드림 워터랜드는 아니다.
매직버니가 설치했던 게이트.
하지만 이제 그곳에는 다른 팻말이 붙어 있었다.
[블루드림 판타지랜드 게이트]
마스코트 탈을 다시 쓴 파란 마스코트는 이제 자신의 구역이 된 그곳에서 손을 흔들었다.
직원들이 어설프게 다시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맙소사, 스톡홀름 증후군 같군요.]
…라고. 아마 브라운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하지만 날이 밝자 수화기는 기능을 상실했고, 브라운과의 연결은 이미 끊긴 상태였다.
그래도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화기를 허벅지 근처에 걸어두었다.
그때, 이성해 주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 이제 마스코트님도 마스코트 인형탈로 돌아가셔야 하는 거져?”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보았다.
만약 다른 대책이 없다면 그래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나가지 못한 채, 이 테마파크에 영원히 마스코트로 머물러 있어야겠지….
마스코트를 그만두면 남아 있을 내가 없으니까. …사라지니까.
그러나.
-유쾌 테마파크가 개장되었습니다!
발랄한 음악과 함께 운영이 시작되는 순간.
내 보안팀 옷 위로 리조트 영업용 의상이 덮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형탈은 아니다.
“어어어?!”
깔끔한 정장 유니폼에, 노란 보타이.
“지, 직원?”
그렇다.
마지막으로 내 가면의 뿔들이 그럭저럭 단정히 정리되며, 나는 완연한 ‘플라워 골든 리조트’ 직원의 모습으로 섰다.
“마스코트…님?”
음.
엄밀히 따지자면, 아니다.
이 몸은 직원이었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일루미네이션 시작하기 직전부터 그랬지!
‘근로 계약서 썼거든!’
고용주 : GOLDEN
고용인 : 노루
그래.
나는 파란 게이트 옆에 있던 내 원래 몸을 데려와서 근로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만들었다.
마스코트인 나와 분리되도록!
‘살아 있는 개체는 직원으로 삼을 수 있잖아.’
아직 세레머니 의식은 진행하지 않아서 내가 가진 모든 정신과 육체가 마스코트를 위해 존재하진 않은 상황.
그러나 보급형 마스코트도 육체처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마스코트의 자아는 강했기에, 이 분리는 절묘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내 본체는 직원으로 분리된 것이다!
이러니 대피소 안에 묻혀 있어도 매직버니는 눈치채지 못할 수밖에 없다.
나는 마스코트가 아니라 직원이었으니까.
“어어어어….”
당황한 채 나를 보는 몇몇 직원에게 보안팀 컨셉상 미소도 지어주지 못하는 건 약간 미안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물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긴 했다.
내 의식이 둘로 분리되는 것 말이다.
보급형 마스코트 안에 있는 나의 죽음을 경험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아니, 감당해야만 했다.
이 결과를 위해서!
‘이제 나갈 수 있어.’
어차피 노란 마스코트들은 보급형 몇 개체를 제외하곤 다 죽은 데다가 리조트까지 무너졌다.
이렇게 마스코트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직원’인 나는 얼른 퇴사하고 이 테마파크를 떠나면 된다.
마스코트로 찢어지며 괴담에 남을 내 의식은… 섬뜩했지만, 감수해야 했다.
브라운의 말대로 이 모든 걸 직원에게 떠넘겼으면 매직버니에게 둘 다 찢겨 죽었을 테니까.
‘…그랬다간 안 그래도 약해진 내 자아가 못 버티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번 유쾌 테마파크 탐사는 내 요청으로 호 이사가 따로 개최한 것이다.
지원은 각자 자발적으로 했다고 해도, 특히 장허운 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호 이사가 꽂은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뭔가 감당해야 한다면 이편이 낫다.
나는 숨을 쉬었다.
그리고 무너진 리조트에서 보급형 마스코트에 깃든 내가, 빠져나오게 했다….
‘일단 모두 퇴사한 다음에 리조트를 재건하게 하자.’
빨간 구역을 점령하며 분배받은 유쾌 주화를 털어 넣으면 쉽게 될 것이다.
그럼 남는 직원들도 근무할 곳이 생기고, 우리도 빠르게 도망갈 수 있다.
문제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착한 아이
게이트 너머의 파란 마스코트가 나를 물끄러미 본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손을 들더니… 자신이 서 있는, 매직버니가 개척한 구역을 가리킨다.
음?
여기
착한 아이
가져
‘…?!’
자, 잠깐만.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나고 있었다.
푸른용이 ‘양도’한 구역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푸르게 변했던 산책로의 빛깔이 다시 한번 황금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산책로의 절반을 따라 타고 올라간 황금빛은 ‘판타지 랜드’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판타지 랜드에서 휴양시설에 해당하는 구역, 거의 전체 면적의 1/3이나 되는 곳들이 황금빛에 물들었다.
그리고 꽃가지를 머리에 단 고양이 마스코트 장식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착한 아이가
해줬어
아니.
아니!! 나는 노란 구역을 넓힐 의도는 손톱만큼도 없었다고…!
‘리조트 재건하게 돈이나 좀 줬으면 그만이었는데!’
나는 어쩐지 기대에 차서 나를 보는 파란 마스코트의 얼굴을 보며 비명을 참았다.
노란 구역의 시설물이 이제 다섯… 아니, 일곱 개잖아!
‘미치겠네.’
느껴진다.
마스코트의 의식이 너무 커지고 있었다.
잠깐만, 이대로라면 나는 퇴사하지 못하는데…!
‘마스코트가 너무 강력해지고 있어!’
리조트 하나 가지고 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것들이 머릿속에 밀려 들어오며, 내 직원으로서의 자아를 밀어내고 보급형 마스코트로 자꾸 시야를 옮기려 든다. 안 돼!
‘지금 퇴사하면, 내, 내가 남아 있을 수 있나?’
공포에 점령당하려다가도 마스코트의 기쁨이 몰려오는 그 미칠 것 같은 순간.
보안팀 제복을 뚫고 빛이 나온다.
“…!”
나는 고개를 내렸다.
팔목 부근에서 글자 모양대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恩主 :
인벤토리 역할을 하던 문신.
그리고 그 빛은 피부에서 떨어져나오며 형상을 만든다.
그 모양은….
‘고용계약서!’
거기서 뭉개져 있던 내용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태생적, 존재적 고결함을 지닌 자.
거부하듯 처져 있던 취소선이,
태생적, 존재적 고결함을 지닌 자.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