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86화
내 유쾌 테마파크 두 번째 탐사가 마침내 끝났다.
그리고….
담당 연구팀은 뒤집어졌다.
탐사 결과 :
투입 인원 12명 중 8명 복귀.
복귀자 중 2인은 예정 시간 내로 탐사를 종료했으나, 6인은 탐사 6일째에 보드게임을 시작한 회의실에서 발견됨.
이 중 완전 오염 증상을 보이는 직원(가면의 변형) 확인됨. 여우상담실로 이관.
복귀하지 못한 4인 중 3인의 사망 목격담 확인. 전원 빨간 말을 뽑은 인원으로, 그중 하나는 머리만 생존자에게 운반되었으나 노란 구역에서 분실.
추가 특이 사항 1) 수집된 꿈결 용액을 육안으로 감정한 결과 기존보다 고품질의 용액으로 판명됨. A등급과 유사.
추가 특이 사항 2) 6일째 복귀한 탐사 직원 중 다수가 테마파크 직원으로 근무 경험 진술. 임금으로 기프트샵에서 아이템을 받았다고 주장.
아마 위키였다면 그렇게 정리되었을 집요한 확인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탐사 기간이 여섯 배로 늘어났는데 용액 등급은 한 등급 높은, 말 그대로 이레귤러이니까.
그리고 이레귤러의 변수는 하나뿐이었다.
‘나지.’
보안팀 특수부서 직원 말이다.
그러나 괴담 생물이나 오염된 무언가로 보이는 나는 연구팀을 겁주며 순조롭게 인터뷰 지옥에서 벗어나 귀가할 수 있었다.
-저기여! 완전 감사했구요, 혹시 밥 사려면 어디로 연락드리면 될….
-주, 주임님!! 안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성해 주임이 고맙게도 내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여주려고 했으나 연구원에게 막히기까지 했다.
‘도리어 다행이었지.’
애초에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까.
이 모든 건 호 이사가 만든 변장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호 이사를, 연구팀보다 더 집요하고 무서운 상사를 귀가하기 전에 만나야 했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솔음 님!
보안팀 슈트를 벗자마자 나는 텅 빈 오른팔과 호롱의 형태로 돌아간 도깨비불을 확인했다.
도깨비불은 겁을 먹은 듯, 호롱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호 이사는 기묘하게도 눈가를 휘며 그것을 유심히 보긴 했으나, 다행히 도깨비불을 뺏어 가지는 않았다.
도리어 내가 벗어놓은 보안팀 슈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와! 이번 어둠에서 솔음 님과 다니면서 보안팀 유니폼이 재밌는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게 아니어도 참 재밌는 복장이죠? 대여 기간을 좀 더 늘려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사용하실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순순히 그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은 용납되지 않을 분위기였기도 했다. 나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입장이었으니까. 바로….
-그런데, 혹시 장허운 씨의 행방에 대해서 아시나요?
후우.
-솔음 님을 돕기 위해 함께 투입된 직원인데, 유용하게 잘 쓰셨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진실만을 말했다.
재난관리국의 요원이 갑자기 진입했고, 정체를 들킨 장허운은 결국 재난관리국에서 구출 명목으로 데려갔다고.
-…저런!
호 이사의 반응은 철저히 단편적이었다.
‘…화가, 났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사님, 허운 씨가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이라는 것은 들키지 않았으니 계속 스파이 업무를 수행하실 순 있을 겁니다.
-아하, 그런가요?
‘그러나 구출 과정에서 오염 등으로 검사를 받느라 한동안 장허운의 운신이 어려울 것이다’라는, 내 추리의 탈을 쓴 변명은 통한 것 같았다.
…일단은, 말이다.
-그렇다면 장허운 씨의 꿈결 수집기는 수거되었나요? 이번 탐사에서 A등급 용액이 수집되었다고 연구팀이 소란스럽던데요.
-…안타깝지만 재난관리국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회수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아니다.
내가 파괴했다.
이 논리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테마파크 탈출 직전, 장허운이 가지고 있던 꿈결 수집기를 회수해 보급품 마스코트 형태로 분쇄했다.
장허운이 가지고 있다가 재난관리국에 들키면 스파이 인증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다고 수집기를 그냥 괴담 안에 방치해 두면 회사로 자동 송환될 테고, 녹음된 기록 때문에 장허운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호 이사가 파악하게 될지도 몰랐다.
파괴밖에 답이 없었다.
-안타깝네요. 수집기 파괴는 보통 담당자가 포인트로 값을 치르게 되는데… 아, 그렇지. 이번에는 업무상 특수 사태였으니 제 선에서 잘 무마해 볼게요!
-…예. 감사합니다.
-하하, 솔음 님께 편의를 봐 드린 것도 아닌데요. 뭘!
다행히 호 이사는 적당히 넘어 가줬다.
수집된 용액이 고등급이라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본인은 용액의 고등급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듯했다.
‘…기묘한데.’
아무튼 A등급은 A등급이니, 나도 내 정예팀 수집기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당장은 어려웠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침대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서 그다음 날 아침까지 잤기 때문이다.
‘진짜 죽는 줄 알았지.’
너무 피곤해서인지 중간에 깨는 일 없이 통으로 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리고 이걸 다시 말하자면….
…내 휴일 6일이 그렇게 증발했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
나는 눈 뜨자마자 재난관리국에 출근했다…….
크윽.
“어이쿠, 오랜만에 뵙습니다. 쉬는 동안 연락 한번 없던 매정한 MZ 포도…….”
현무 1팀의 대기실에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들어오던 최 요원이 나를 보고 멈칫했다.
“쉬는 동안 어디 산에서 수련이라도 했어? 애가 피골이 상접했네! 야야, 재관아. 그렇지?”
“예?”
상사가 자기 팔을 잡아당기며 나를 삿대질하자 눈살을 찌푸리던 청동 요원도 막상 나를 보자 당황하며 멈칫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잠을, 잘, 못 잤습니다….”
“…….”
“…….”
진실이긴 했다.
5박 6일간 망한 리조트에서 마스코트로 밤낮없이 일했으니까….
최 요원과 청동 요원은 순간 서로를 마주 보더니, 무언의 합의를 본 것처럼 재빨리 내 곁에 다가와 근처 소파에 앉는다.
“잘 못 쉬었어?”
나는 말 없이 어설픈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류재관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휴무 중에 도깨비 호롱을 충전하러 오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까?”
아.
“예. 괜찮습니다…. 필요한 경우가 없었어서 깜박한 것 같습니다.”
“…….”
후우.
참고로 도깨비불은 내가 어르고 달래자 겨우 기운을 차렸다.
아무래도 마스코트의 기운에 눌려서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던 모양이었는데, 그래도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재충전을 받자 팔로 돌아오며 본래의 명랑함을 되찾은 듯했다.
비록 내가 보안팀 슈트를 언급만 하면 벌벌 떨면서 엄지를 격하게 아래로 내릴 것 같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기껏 연가 쓸 수 있게 배려해 주셨는데.”
“그건 원래 포도가 쓸 수 있던 거지요?”
최 요원이 장난스럽던 태도를 싹 가라앉히더니 편안한 어투로 말을 잇는다.
“음… 포도야. 저기 설악산에 관리국이 운영하는 물 좋은 온천 있거든? 다음 휴무에는 우리 다 같이 거기 갈까? 직원 복지용치고는 시설이 괜찮아.”
“…….”
직장 동료들과 굳이 온천을?
…하지만 그 온천이 뭔지 깨달은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재난관리국의 복지시설도 한 번은 보고 싶긴 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짜식, 그래도 의욕은 있네!”
“…?!”
최 요원이 내 머리를 헤집더니, 등을 두드렸다.
“원래 열심히 일하다가 쉬면 갑자기 몰아서 확 아프기도 한 거야.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
“그래도 칼같이 출근은 했네. 잘했어.”
스파이인 거 안 들키려고 온 건데요….
게다가 이번에 백일몽 주식회사식 괴담 한번 겪고 나니까 재난관리국 괴담은 선녀 같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도 했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파에 기대어서 대기 시간을 보냈다….
보드게임을 권유하는 최 요원에게 학을 떼면서 놀라지 않기 위해 애쓴 걸 제외하면, 특이 사항은 없었다.
다행히 호출도 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포도 요원님!”
나는 서류를 들고 방문한 신규조사반에서 고영은 씨를 만났다.
“그거 들으셨어요? 그, 포도 요원님과 같이 근무했던 주작 2팀… 화각 요원님.”
아.
고영은 씨는 아직 테마파크 사태에 대해서는 몰랐으나 대신 다른 경로로 장허운의 상태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아뇨. 처음 듣습니다. 무슨 일….”
고영은 씨의 얼굴에서 표정이 점차 흐릿해지더니, 울컥하는 걸 참는 듯 말을 잇는다.
“어제, 오염이 심한 상태로 발견돼서, 격리요양실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설악산으로 이송됐다고 하는 걸 들었는데….”
“…….”
“쉬시는 동안 초자연… 재난에 휘말린 것 같다고.”
“그거 우리 막내 이야긴가?”
“…!”
나와 고영은 씨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장허운의 재난관리국 상사인 주작 2팀 팀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
“그래. 신입 요원들은 좀 무서울 수 있겠다. 갑자기 동료가 출근 안 하니까 이상하지?”
“…….”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사람 사는 일, 또 방법은 찾으면 되는 거야. 구출했다는 게 중요하지.”
정리반, 주작 2팀 팀장의 안경 너머에서 요원 특유의 의지력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익숙한 피로와 슬픔 같은 것도 느껴졌다.
……결국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지 못한 요원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젠장.’
나는 한숨과 욕지거리를 참았다.
어쨌든 장허운이 유리 감옥이 아니라 치료 시설에 있다는 건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는 거다. 그건 다행….
“그래도 저 친구가 구해온 게 어디겠어. 거기 해금이!”
“어어?”
주작 2팀 팀장이 손을 흔들자,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가까워진다.
테마파크에 진입했던 팀장급 요원. 현무 3팀의 해금 팀장이다.
‘티, 팀장님…!’
사레들릴 뻔했다.
“아. 신입들?”
“아아, 맞아. 우리 애랑 같이 들어온 친구 하나랑… 여기는 이번 공채 현무팀 신입.”
“아. 그 파괴왕!”
…….
“최 요원 고게 얼마나 잘 빼돌리는지 인사도 처음이네. 반가워.”
“아, 안녕하세요…!”
하마터면 말대꾸할 뻔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침음을 참으며 해금 팀장에게 인사했다.
머릿속에서는 황급히 우리의 ‘직원 파견 거래’가 지나가고 있었다.
‘…장허운 씨를 보내주는 대가를 받아야만 수상쩍지 않았지.’
그래서 나는 저 팀장에게 재난관리국에서 만든 옥패 다섯 점을 받았다.
…위키의 서술을 떠올리면서.
바리데기 세공소에서 제작한 옥패가 초자연 현상에서 화폐로 취급받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의식용으로 제작되었다는 건 압니다만, 요원 지급품으로 반출될 수 있도록 허가 요청드립니다.
괴담의 화폐.
큰 부담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쓸모는 확실했다.
“그래도 우리 파괴왕 신입 요원님이랑은 제대로 인사해 봐야지. 자. 악수.”
“네……. 가, 감사합니다.”
일부러 어깨를 움츠리려고 하지 않아도 반자동으로 됐다. 현무 3팀의 팀장, 해금 요원은 내 등을 한번 툭 치더니 손을 흔들고 돌아갔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며 다시 고영은 씨에게로 시선을 돌렸….
“잠깐만.”
…….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 왠지 좀 낯이 익은데.”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저, 사실 제가 대기실 앞 복도에서 한 번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데…. 피곤하셨는지 못 보고 지나가셔서….”
“어?? 미안해. 요새 내가 바빠 가지고. 이거 최 모씨 탓할 게 아니었구만. 기회가 있었네.”
해금 팀장이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하하 웃었다.
“그럼 알겠지만, 나는 3팀 팀장이고. 퇴근길에 심심하면 대기실 한번 놀러 와. 알았지?”
“가, 감사합니다….”
후우.
그렇게 해금 팀장은 주작 2팀 팀장과 대화를 하면서 떠났다.
“…….”
고개를 돌리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표정인 고영은 씨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영은 씨….
* * *
그리고 오후 6시.
나는 마침내 퇴근했다.
‘와 제발.’
낮 근무여서 다행이었다.
출동이 없었던 것도 불행 중 행운이었으나, 이대로 쓰러져서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그럴 수 없었다.
‘할 일 해야지.’
“…….”
나는, 인벤토리 문신에 살짝 손을 넣어서 ‘할 일’을 만졌다.
부드러운 봉제 인형의 솜털이 손끝을 간질거린다.
그래.
유쾌 테마파크의 기념품샵에서 파는 봉제 인형.
오리지널 착한 친구를, 나는 밖으로 반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관련해서 여러 가지 편법을 사용했는데, 이건 일단 의식을 진행하면서 다시 정리해 보고… 중요한 건 하나.
이제 내가 완전히 적당한 상황에서 적당한 매개체로 착한 친구 소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자.’
더 지체하다가는 혹시라도 심야토크쇼 때의 꼴을 다시 보게 될까 봐 식은땀이 난다. 나는 내가 머무는 모텔방의 문을 얼른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안에 누군가 있었다.
도마뱀 머리.
“노루 씨.”
……??
지난 6일간 동고동락한 익숙한 도마뱀 얼굴이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눈 비빌 뻔했다.
“이, 이자헌 과장님??”
나는 모텔방 바깥을 한 번 보고 다시 안을 보았으나, 다시 봐도 도마뱀 과장이 맞았다.
아니…!
나는 다급히 모텔방 안으로 들어와서 조심스럽게 문을 걸어 잠갔다.
설마….
“호 이사님 지시로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여기에…?”
“잠입했습니다.”
“…….”
그럼 그렇게 당당하게 거기 서 계시면 안 됩니다만…!
‘어차피 호 이사가 우리끼리 접촉하는 건 대충 알긴 할 테지만… 이,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이렇게 막 스파이 숙소에 방문해도 되는 건가? 아니, 애초에 남의 모텔방에 왜 천연덕스럽게 소식도 없이 들어 있냐는 말이다.
“이, 일단… 앉으시겠습니까?”
“예.”
나는 당황한 얼굴로 도마뱀과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내 당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그렇군요. 그러나 우선순위상 더 중요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후우.
“죄송하지만, 제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
그게.
그러니까 과장님께서 포격 쏘면서 절 구출해 주신 토크쇼 괴담 기억나시죠?
엄밀히 말하자면 그 난리가 났던 원인인 사회자를 다시 부를 예정이긴 한데….
이거 말해야 맞나? 아니, 오히려 안 말하는 게 답답한 안전불감증의 바보인가.
나는 왠지 모르게 휘말리는 기분으로 입을 열어서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안 부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그렇군요.”
도마뱀 과장은 아니나 다를까 또 단번에 긍정했다.
다만….
“의식 시 안전 수칙을 준수하십시오. 확인하겠습니다.”
“…….”
떠날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나는 이자헌 과장을 대동한 채, 착한 친구 브라운을 본격 소환하게 되었다….
‘이게… 맞나?’
환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