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89화
뭔가 이상하다.
나는 식탁을 둘러보았다. 각종 괴담의 모습을 하고 앉아 있는 내 모습들.
지금 내 오염들이 내가 인지할 수 있도록, 우주 쇼핑몰의 VIP 쇼핑 서비스에 의해 가시화되어서 저기 앉아 있다는 거지.
그리고 저걸 다 제거해 달라고 하니까, 도마뱀이 한 말이….
‘…내 일부를 영구적으로 파괴할 거냐고?’
그건 마치… 내 오염된 정신 자체를 파괴할 거라는 말처럼 들린다.
감염을 막기 위해 사지를 절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불가피하게 그래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도저히 회생 불가능할 때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겠지.
“…저기서 오염만 제거하는 건 불가능합니까? 그러니까, 오염된 정신을 다시 원상 복귀시키는 것 말입니다. 영구적으로요.”
“우주 쇼핑몰에서 서비스가 불가능한 상품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가능합니까?”
“정보 제공이 불가능한 항목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란 마스코트가, 내가 고개를 젓고 있다.
안 돼
나는 내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몸을 재생할 수 있는 이 괴담 세계관에서는, 가끔 사지를 잘라내기도 한다.
여기선 그걸 돌이킬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아를 잘라내 파괴하는 것은, 이곳에선 진짜 사지를 자르는 것보다 도리어 더 극단적인 선택… 아닌가?
“…….”
정말 이자헌 과장이 나에게 이 방법을 소개해 주려고 했던 걸까?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제 오염된 자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염의 문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 어떤 변이들이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것을 억제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도 이용할 수 있겠지.
“…제가 자신을 제어할 수 있게 말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회색 도마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것에 도움을 받을 만한 물건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가능합니까?”
“예.”
도마뱀이 즉각 손을 움직였다.
마치 내가 정답을 골랐다는 듯이.
“…!”
그러자 식탁 저 멀리서 안개에 휩싸여 있던 물건 하나가, 신난 촉수에 의해 빠르게 내 앞으로 옮겨진다.
“퍼스널 쇼퍼의 권한으로, 적합한 물품을 추천드리겠습니다.”
그건… 작은 기계였다.
마치 수술용 전문기기처럼 생겼으나, 로봇손 같은 기기 끝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바늘이 달려 있으며, 위로는 초승달 모양의 전등이 달려 기계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것과 유사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달빛 타투샵의 문신 기계.
감성적인 괴담 속 이해할 수 없이 기이한 기기를 미니어처처럼 작은 모습으로 제작한 듯한 아이템이 내 눈앞에 있었다.
일회용 자동 달빛 문신기
“달빛문신사들이 모종의 사태로 극소수의 생존자를 제외하고 모두 폐업하기 전 단기간 생산된 물건입니다. 남은 세 점 중 하나를 입수했습니다.”
예 뻐
독 특 해
달려온 촉수가 자랑스럽게 팔처럼 몇 가닥을 요란히 흔들더니, 곧 도마뱀의 눈치를 보듯 움찔거리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정확히 어떤 도움을 줍니까?”
“기기에 깃든 달빛문신사의 정신이 사용자의 필요를 보조할 문신을 새깁니다.”
달빛 타투샵과 유사하다.
“해당 기기로 새긴 문신은 유동적입니다. 이용자가 처하는 환경마다 적응하여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화합니다.”
이건 좀 다르군.
그러나 앞으로도 괴담에 들어가서 각기 다른 오염 위험에 맞서야 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더 좋았다.
‘처음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추천한 건가.’
“구매를 원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구매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가격은 일억 오천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원입니다.”
“…….”
사레들릴 뻔했다.
“혹시 다른 걸로 지불할 수 있습니까? 매입하시는 물건을 드린다든가….”
“어떤 물건입니까?”
잠깐만.
‘얘네 아무리 생각해도 매입 전문 업체는 아닌데.’
이 외계인들이 사람 돈을 모아다가 어디에 쓰는 건진 모르겠다만, 안 그래도 외계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 가격은 원가보다 살벌했다.
그 장사 수완을 볼 때… 아무래도 매입가를 엄청나게 후려칠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사주는 것도 편의를 봐주는 거긴 한데.’
결국 나는 고민하다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유쾌 테마파크에서 현무 3팀 팀장에게 받은 대가.
바리데기 세공소에서 만든 재난관리국의 지급품.
“이건 어떠십니까?”
“우주 쇼핑몰에서 매입하는 품목이 아닙니다.”
“음, 혹시 처음 보는 물건이십니까?”
“예.”
역시.
‘외계인 상점은 초자연 재난관리국이랑은 별 연이 없군.’
그러면 오히려 좋았다.
“이건 판매하시라고 드리는 게 아니라, 화폐입니다.”
나는 옥패를 도마뱀에게 내밀었다.
“다양한 곳에서 통용되는 화폐라서요. 판매하시는 여러 물건의 매입에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해 주십시오.”
나는 기꺼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주로 동아시아의 전설, 민담에서 파생된 괴담, 가끔은 유럽이나 미대륙 쪽 전래동화에서도 어쨌든 옥패를 화폐로 취급해 받아 갔다.
‘음. 이렇게 정리하니 주로 각종 문화권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류 괴담들에 통한 건가.’
도마뱀이 말없이 옥패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더니….
“확인했습니다. 화폐로 인정하여 지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지.
‘좋았어.’
다만 도마뱀은 내가 내민 옥패 다섯 점을 모조리 긁어갔다.
‘이건 안 좋았어….’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합리적으로 측정해 준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기계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일회용 자동 달빛 문신기.
“사용 보조를 원하십니까?”
“괜찮습니다.”
나는 기기를 팔에 가져다 댔다.
기존에 문신들이 있던 곳 위에 새길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사용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지이이잉-
부드러운 빛과 소음을 내는 미니 문신기는 내 팔에서 빠져나와 홀로 부유한다.
“…!”
그리고 내 왼쪽 쇄골 아래에 무언가를 새기기 시작했다.
달빛을 모아 끝을 태우듯이.
지이이잉-
그 속에서.
나는 문신기에 깃든 누군가의 고뇌와 예술적 감각을 느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
가장 원초적이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에 수많은 정체성과 번뇌가 있으면 하나로 모아 다스리기 어려운 법.
각각 색인표를 달아 접합 부위를 주자.
언제든 원할 때 정리하고 짜 맞출 수 있도록.
그렇다면… 가장 인상적인 부위는 심장의 위가 아니겠는가!
뜨거운 것이 심장에 느껴지고,
문신기에 빛이 잦아든 순간, 나는 황급히 단추를 끌러 맨살을 보았다.
“……!”
문자로 이루어진 별이 드러났다.
정교한 나무 테처럼 반복되는 원형 퍼즐 같은 형태의 문신은 마치 그 광륜을 표기한 듯하다.
알 수 없는 각종 언어의 단어가 제작기 크기로 들어 있으며, 정교히 짜 맞춰져 몇 겹의 원을 이룬다.
사이사이로는 아직 충분한 공백이 있었고, 나는 알았다….
이제 문양을 이룬 번뇌들은 각자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것이다.
손님은 문신을 통해 자신을 인지하고, 원하는 자신이 되도록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
일회용 문신기에서 빛과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찰칵, 소리와 함께 초승달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사용 완료 확인했습니다.”
“…….”
나는 고개를 돌려, 식탁에 앉은 자들을 보았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그건 전부 나였을 뿐이다.
이제 내 일부라는 것을 문신으로 확인하니, 더는 육안으로 보지 않아도 의사결정에 문제가 없어졌을 뿐.
“……후우.”
나는 문신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중, 마치 컴퓨터의 오류로 폰트가 깨진 듯한 단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세광고등학교의 종소리가 들렸다.
“…!”
나는 원하면 당장이라도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침입자와 다른 시간과 빛 속에서 사는 공포 게임 속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부작용이 어떻든 간에.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이 문신, 단순히 내 머릿속을 정리해서 보여준 게 아니라고?
내 오염을 정리해서, 원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건가?
이런 미친.
‘일억 오천일 만하네.’
물론 이걸 쓸지는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은 내가 오염에 당장 휘둘리지 않고 정리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됐어.’
나는 아무리 봐도 무명찬란교 흉내장이의 것으로 보이는 낡은 고딕풍 글자에 손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옷을 정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보다 황금빛 고풍스러운 필기체와 작은 발톱으로 휘갈긴 듯한 단어가 더 중앙에 거대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스코트와… 고양이?’
기묘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 둘은 나한테 우호적인 걸까.
…어쨌든, 당장은 이 사태도 일단락된 것 같다.
후우.
“다음 쇼핑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도마뱀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아직도 식탁 위에 놓인, 무명찬란교의 신성법 조각을 보았다.
‘저것도 처리해야 하는데.’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을 사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문제는 내가 더 이상 지불할 큰돈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좋은 건 당장 백일몽에 달려가서 저걸 팔아버리는 건데 스파이라서 타이밍도 여의치가 않다….
“제가 쇼핑을 끝내면, 다시 저 물건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
“확률적으로 발생 가능합니다.”
흠.
거지새끼인 나는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보관 서비스도 하십니까?”
* * *
“김솔음 씨.”
“…….”
“김솔음 씨.”
헉.
나는 눈을 떴다.
식탁 맞은편에서 도마뱀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회색이 아니다.
“과장님.”
“예.”
하얀 도마뱀 머리에 빨간 동공, 이자헌 과장이 내 앞에 서 있었다. 후우.
“VIP용 쇼핑에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예. 도움이 많이 됐….”
그리고 나는 보았다.
이자헌 과장의 식탁 앞에는 어느새 분홍색 봉제 인형이 앉아 있었다.
“……??”
브라운이 왜 거기 있는가.
“저, 그건 제가… 주머니에 챙겼던 것 같은데.”
“쇼핑에 방해되지 않도록 빼두었습니다.”
“…….”
나는 힘겹게 물었다.
“설마 과장님께서는 지금도 브라운, 그러니까… 봉제 인형이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십니까?”
“예.”
“저한테는 안 들립니다만.”
“그렇군요.”
“뭐, 뭐라고 합니까?”
“한숨, 과도한 흥분, 비난과 협박입니다.”
으아악!
“정보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예. 예….”
나는 다급히 봉제 인형을 조심스럽게 식탁에서 들어 올려 다시 내 옷의 앞 포켓에 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맙소사. 드디어.
“…브라운?!”
-노루 씨! 오, 우리가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
나는 황급히 봉제 인형을 포켓에서 꺼내어 점검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목소리가 끊겼다.
‘어?’
나는 다시 포켓에 브라운을 꽂았다.
-노루 씨? 들립니까?
달라진 건 하나뿐이었다.
‘내 왼쪽 가슴 위의 문신.’
설마 내 문신 근처에 있으면 괴담 속에 있다고 판정받는 건가.
‘맙소사.’
“응. …아무래도, 널 여기 두면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모양이야.”
-심장 근처라. 운명적이군요! 좋습니다. 저 정신 나간 지루한 작자와 나를 23분이나 단둘이 방치한 것은 너그럽게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착한 친구니까요.
-이제 당장 쫓아내십시오. 얼른.
“자, 잠깐.”
나는 얼른 브라운을 달랜 후 이자헌 과장에게 말했다.
“저, 과장님… 제가 쇼핑 중에 과장님과 비슷한 분을 보았습니다만.”
“그는 이자헌 과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맞다고요?”
“예.”
“그럼 과장님께서는 제가 했던 일도 다 이미 알고 계신 겁니까?”
“예.”
나는 약간 멋쩍게 물었다.
“그럼 마지막에 제가 한 일도 아시겠군요.”
“물품 보관 서비스 요청 말입니까?”
맞다.
-이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나는 도마뱀들… 아니, 우주 쇼핑몰에 만악의 근원인 무명찬란교 신성법 조각을 맡기고 왔다.
‘아무래도 아예 제거하거나, 그걸 제어할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보다 싸게 먹힐 것 같았거든.’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맞았는데도 비쌌지만.
-현재 거주하는 행성 기준 100일에 팔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 원입니다.
-…할부 서비스도 하십니까?
할부라니.
현실에서도 써본 적 없던 금융서비스를 괴담 세계관에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백일몽이 살 때 저것보다 비싸게 쳐줄 것 같긴 하니까, 이게 맞겠지.’
타이밍이 오면 당장 찾아서 팔아버리자.
다행히 이자헌 과장의 설명으로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내가 혀 아래에 넣었던 유심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이제부터는 우주 쇼핑몰에 접속하는 것으로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솔음 씨는 우리와 연결되었습니다.”
…혹시 그것도 오염의 일종 아니냐고 묻고 싶어졌지만, 문신에는 보이지 않았으니 괜히 무례하게 굴지는 말자. 상대는 철을 한 손으로 짜내는 괴력의 소유자다.
애초에 내 오염을 매번 눈치채고 대신 대처해 주는 고마운 존재기도 하고 말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좀 정신 차렸습니다.”
“예. 그러나 선택은 김솔음 씨의 재량입니다.”
“…제가 잘 선택했다고 보십니까?”
도마뱀의 주둥이가 작게 곡선을 그렸다.
“예.”
“……!”
“잘 선택했습니다.”
이전에 몇 번 그랬듯이.
“…….”
역시.
아까 쇼핑할 때는 같은 도마뱀 머리인데 다가 말투도 비슷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느껴진다.
‘묘하게 달라.’
뭐랄까, 이쪽 도마뱀에게서는 지성과 감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개성이 있다고 할까…… 모르겠다.
물론 저 외계 파충류들이 하나의 정신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면, 어쩌면 이자헌 과장과 친분을 쌓은 내가 멋대로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난 이미 D조가 아니라 자기 소관도 아닌데 계속 챙겨주고 있기도 하고.’
아마 다른 D조 선배들에게도 그러고 있겠지.
여러모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고마운 상사였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용무가 끝난 이자헌 과장을 모텔 밖으로 배웅했다.
이자헌 과장은 문을 이용하는 대신 창문을 이용해서 조용히 사라졌다.
-문제가 발생 시 우리에게 연락하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말이다.
“…….”
-끝났습니까?
응.
-후우. 드디어 갔군요.
-혹시 이 끔찍한 장소에서 우리도 떠날 계획 없습니까?
허허허.
“있어.”
-오?
“내일 출근하거든.”
그리고 말이다.
“나 이제 국가기관에 잠입한 스파이야.”
-쇼 비즈니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