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화
어느 놀이동산이든 이름 꽤나 있는 곳이라면 돈 좀 투자해서 뽑아놓는 어트랙션 3종이 있다.
하나는 롤러코스터, 하나는 회전목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수효과와 애니마트로닉스 인형을 많이 때려 넣어야 해서 가장 돈을 많이 먹는 고급 어트랙션이 바로…….
‘다크라이드.’
테마파크의 테마, 그 자체를 소개하는 정교하고 거대한 세트장 속을 구경하는 실내 라이딩 놀이기구다.
국내에서는 신밧드의 모험, 지구마을 같은 것이 유명했던가.
그리고 이 ‘유쾌 테마파크’ 괴담 속에서는 그게 바로 이 어트랙션이다.
“판타지 트레인!”
연구원이 침을 튀겼다.
“이거 다 죽었던 거잖아! 나 안 타!! 안 탄다고!”
증언 #4 (생존자 : 박예인)
-‘판타지 트레인’을 탑승한 4인 전원 실종.
이후 기념품숍에서 해당 인원의 옷가지와 뼈를 재활용하여 만든 봉제 인형 발견. (사망 추측)
분명 그렇게 적혀 있긴 했지.
그리고 내가 읽은 <어둠탐사기록>에서도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어트랙션이긴 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건, 그만큼 이 어트랙션의 등장 빈도가 많다는 거니까!’
랜덤 요소가 있는 보드게임답게, ‘유쾌 테마파크’ 괴담은 진입할 때마다 구역과 마스코트 조합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 ‘판타지 트레인’이라는 어트랙션은 공통적으로 항상 등장하는 어트랙션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테마가 아주 확실하니까.
“표지판 밑의 소개글을 보십시오.”
나는 <판타지 트레인>의 표지판 밑을 가리켰다.
-판타지랜드의 각 구역 거주민과 스토리를 만나보세요! 유쾌한 기차 라이드!
“이 테마파크를 소개해 주는 어트랙션 같습니다.”
이 괴담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이 테마파크는 어떤 색으로 어떻게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가.’
잊지 말자. 이건 원류가 보드게임이었다.
게임에서 진영을 고르는 건 어떤 뜻인가?
내 특색을 고르는 거다.
‘그리고 색별로 팀을 나눈 건, 그 색에 따라서 이익이나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뜻이야.’
그러니 이곳에선 그것부터 제대로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자신이 속한 색깔 팀이, 어느 구역을 담당하는 색인지.
어떤 특이점을 가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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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테마파크 이용 지침서 (탐사기록 64번까지 적용)
4. 테파마크의 각 구역은 테마에 따라 색칠되어 있습니다! 처음 눈을 뜨는 곳이 바로 당신의 팀이 속한 구역이에요!
구역을 존중하세요. 구역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색깔을 보세요 마스코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세요 마스코트는 구역의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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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이걸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다른 논리가 필요하다.
‘일해라 두뇌야.’
일단 1번 타켓은… 역시 최고 상사지.
“흠. 탔던 사람이 다 죽었는데?”
나비가면을 쓴 A조 진 대리.
이 선민의식 가득한 엘리트를 공략하려면… 그렇지.
추켜세우자.
“민간인 한 팀이지 않습니까?”
“흠?”
나는 일부러 목소리 톤을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썼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각심 없이 놀이기구 타는 마음으로 접근한 사람들입니다. 초자연적 상황에 제대로 대응했을 확률은 낮죠.”
“그래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어둠을 클리어하는 현장탐사팀과 비교하는 건…. 음.”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민간인들에게 좀 가혹한 처사 같습니다.”
“…허.”
A조 상사가 코웃음을 쳤다.
“맹랑하게 말 한번 잘도 하네. …뭐, 맞는 말이긴 한데.”
“마, 맞긴 무슨…!”
“야.”
A조 상사가 연구원의 대가리를 꽉 잡았다.
“…!”
번뜩이는 손톱이 관자놀이를 콱 찍는다.
“너는 네가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해?”
“…….”
“지금 여기서 죽어서 기념품도 못 되는 음식물쓰레기 될래. 아님 저거 탈래?”
연구원이 또 조용해졌다. 담당 일진이 따로 없다….
“이동해.”
“…….”
연구원은 죽을상을 한 채 발을 질질 끌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판타지 트레인 방향으로.
‘일타이피….’
성공적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건 하나인가.
Y조 신입, 강허운.
나는 ‘판타지 트레인’ 표지판을 따라 가면서도, 슬쩍 뒤로 빠져 해당 신입사원과 발맞춰 걸어가며 귀띔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방금 건 그냥 저분 설득하려고 한 말이고… 사실, 다른 묘수가 생각나서 가려는 겁니다.”
“묘수…라면,”
“관계자 노하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작게 웃었다.
“제가 전에 테마파크에서 알바를 했었거든요.”
“아!”
미안하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쫄보들에게 불친절한 극한상황에 뭐로 가도 생존으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닐까?
너도 ‘와! 거짓말해 줘서 고맙다 동기야!’ 하고 말하게 될 거라니까?
“그,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예. 제법 안전할 겁니다.”
대충 그렇다고 생각하십쇼.
아무튼, 표지판을 따라가자 ‘판타지 트레인’ 탑승 입구는 곧 나타났다.
정교하고 실감 나는 각종 증기기관차 부품과 벽돌 장식으로 장식된 멋진 간판이 달린 모형 역이었으나…,
“아무도 없네.”
“…….”
그 안은, 기묘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다.
-하하, 멋진 기차여행을 즐겨요! 하하, 멋진 기차여행을 즐겨요! 하하, 멋진 기차여행을 즐겨요….
신나는 놀이공원 음악 소리와 엇갈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이는 건 대기줄 너머에 서 있는 열차.
그리고 그 앞에 기관사 차림으로 서 있는 토끼 마스코트뿐.
“또 마스코트군요.”
“저게 이 어트랙션 직원이야?”
맞았다.
텅 빈 대기줄을 빠르게 지나 다가가자, 텅 빈 눈의 기관사 마스코트는 장갑 낀 손을 뻗어 우리의 팔찌에 도장을 찍었다.
[(유쾌) 판타지랜드 탑승권 ■□□]
이렇게 하나인가.
이어서 우리는 알록달록한 동화 속 증기기관차 같은 작은 열차에 탑승하도록 안내되었다.
그리고 마스코트 본인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양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즐거운 탑승되세요!’ 같은 느낌인가.
여기까지는 별일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연구원이나 Y조 신입은 저도 모르게 좀 안심한 얼굴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지금 그 별일을 할 거지만.
‘있을 만한 곳은… 음. 저기뿐인가.’
나는 주변을 다 체크해 본 후, 결국 마스코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진 대리님.”
“뭐?”
“저 직원 역할의 마스코트가 서 있는 곳 말입니다. 단상이 보이시죠.”
나는 기관사 토끼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에 있는, 일종의 모형 매표소 탁자 같은 것을 가리켰다.
“혹시 진 대리님의 전용 장비로 저 단상을 살짝만 이쪽으로 돌리는 게 가능할까요? 훼손시키지 않고 조용히 말입니다.”
“왜?”
“저 뒷면에 뭔가 있습니다.”
A조 대리는 나를 약간 묘한 기색으로 쳐다보았으나, 곧 검지 손톱을 뽑아냈다.
빠르고 조용하게.
틱.
키기기긱….
레트로한 청록색 단상으로 던져져 모서리에 걸린 가짜 손톱이 미세한 마찰음를 내며 단상을 틀었다.
반쯤 돌아가며 보이는 그 뒷면에는 흔히 기대하는 목재 마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복잡한 버튼과 회로가 보였다.
어트랙션 비상조작반.
“…!”
찾았다.
제어 패널!
‘분명 <어둠탐사기록>에서 읽었어.’
이 테마파크 놀이기구들에도, 실제처럼 제어장치가 구현되어 있다고 묘사된 장면이 말이다!
———————=
‘토마토 익스프레스’라는 명칭의 바구니 모양 어트랙션 탑승 직후, <철판에 신나게 뭉개지세요!>라는 내용의 라벨이 바구니에 부착된 것을 확인.
즉각 비상정지 버튼 탐색.
어트랙션 출발 지점에서 발견 성공. 그러나 버튼을 누르려는 모든 시도 실패. (실행자 : 이지원 주임, 시도회수 : 6)
전원 사망.
———————=
비록 그쪽은 실패했지만.
‘이쪽은 할 수 있어.’
나는 즉시 동전을 튕겨 반투명한 장갑을 불러내, 500원 동전을 던지고 손짓해 합체했다.
‘5초면 충분하다.’
허공에 뜬 내 손이, 반쯤 드러난 단상의 뒷면으로 다가갔다.
노리는 것은… 레버.
MIN MAX
∥—————–∥
▲
“자, 잠시만요, 솔음 씨. 저건 대체 뭡니까? 저 표기는….”
“꽉 잡으십시오.”
“예? 뭐, 뭘….”
“열차 좌석 손잡이,”
내 손이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제대로 잡으십시오.”
MIN MAX
∥—————–∥
▲
그 순간.
미친 듯한 속도로 기차가 쏘아져 나갔다.
키이이이이잉!!
-판타지 트레인 출발합니다!
“흐억!”
“뭐, 뭐야?!”
나는 필사적으로 기차 좌석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대답했다.
“속도 레버를 당겼습니다! 최고속도로!”
“그걸 왜 당기냐고 미친 새끼야!”
노린 게 있으니까.
“빠르게 달려가면, 기차에 허튼짓을 못 하지 않습니까!”
“……!”
바로 이벤트 생략이다.
‘다크라이드는, 보통 천천히 기구가 움직이면서 꾸며놓은 실내를 보고 경험하는 놀이기구지.’
근데 미친 듯이 빠르게 거길 지나가 버린다면?
‘다 생략되는 거야!’
실내 장식도, 효과도.
그로 인한 목숨의 위험까지도!
내가 봤던 <어둠탐사기록>의 사례에선 롤러코스터에서 속도 늦출 때 썼던 거지만,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속도 조절 장치의 유무!
높은 확률로 여기서도 통할 줄 알았다.
‘좋아!’
성공적이다!
다만… 이다음 단계가 문제긴 한데.
나는 힐끗 바깥을 보았다.
키이이이이잉!
풍압이 느껴졌다.
거의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는 속력.
이건 거의 안전 확인 용도로만 쓰려고 넣은 속도가 틀림없었다.
…실제 운행할 거라 고려되지 않은 속도란 뜻이다.
‘…이거 겁먹고 졸도하면 열차 밖으로 튕겨 나가겠지?’
그럼 확정 사망이었다.
열차가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같은 쫄보에게 치명적인 단점이긴 하나….
‘보안책은 있다!’
졸도할 것 같다고?
안 보면 되지!
[승객 여러분, 아름다운 판타지랜드에 찾아오셨군요!]
내레이션이 나오는 순간, 나는 외쳤다.
“저는 눈을 감겠습니다!”
“뭐라고?!”
나는 미친 척 눈을 감았다.
“저 내레이션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집중하겠습니다!”
“…!”
“혹시 죽을 것 같으면 말해주십시오!”
“이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하하, 좋아!”
A조 대리가 웃는 소리가 막 그칠 때,
내레이션이 휙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 판타지 랜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머나먼 옛날, 403930291928494시간 전 노란 꽃, 파란 용, 그리고 빨간 토끼가 한 땅에 함께 살았습니다.]
[바로 이 멋진 장소죠!]
“이, 이상한 꽃이, 꽃이 절 부르….”
“숙이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달랐어요!]
[‘넌 너무 시끄러워!’]
[‘넌 너무 더러워!’]
[‘넌 너무 지루해!’]
[결국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싸우게 되었답니다. 여긴 내 땅이야!]
“으아악! 뱀, 뱀 괴물들이, 괴물이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히익! 기차, 기차에 붙으려…고 했는데, 뒤쳐졌네…….”
“후욱.”
[노란 꽃이 말했어요.]
[‘나는 네가 싫어! 여기서 꺼져!’]
어트렉션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차가 쏜살같이 지나가며 빨리 감기 하듯이 탑승시간이 배속된 것이다.
[파란 용이 말했어요.]
[‘나는 네가 싫어! 너야말로 꺼져!’]
‘싸움도 후반부인가….’
이제 마지막 내용이다.
‘이것도 몇 번 묘사됐었지.’
저 마스코트들은 결국 각자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로의 색별로 구역을 나누어 판타지 랜드에서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평화롭게 살게 되는….
[빨간 토끼가 말했어요.]
[죽어.]
…….
뭐.
[빨간 토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이제 친구가 아닙니다. 적! 적! 적!]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굴에 빠트리고 물에 빠트리고 절벽에서 밀고!]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