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30화
유쾌연구소 사무실.
호 이사.
검은 룰렛.
위험한 것.
“솔음….”
나는 반사적으로 연기로 호 이사의 얼굴을 덮었다.
유쾌연구소 직원증을 걸고 있는 그자가 검은 연기에 파묻히며 실루엣이 사라진다. 나는 그것의 내력과 설정을 읽어 내려 한다. 그리하여 그를 지워….
“그거 아세요? 저를 죽이는 것은 근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
“제가 회사에 해가 된다는 증거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나요?”
…….
나는 연기를 풀었다.
연기 속에서 드러나는 호 이사는 변함없이 미소를 짓고 있다.
나는 그 목에 만일을 위한 연기를 남겨둔 채, 묻는다.
상황 설명 요청
“아, 보안팀을 확인하러 시찰을 나왔는데… 마침 지하 29층 엘리베이터 버튼이 보여서요. 눌러본 거랍니다.”
…….
거짓
“네?”
나는 손을 들어서, 그가 걸고 있는 사원증을 툭 건드렸다.
준비된 것.
“아.”
사원증을 힐끗 내려다본 호 이사가 입꼬리를 일그러트리듯이 웃는다.
“여전히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 꼴이 되고도?”
호 이사는 자신이 내게 건네주었던 프로토타입의 보안팀 제복과 동일한 내 외양을 조롱하듯이 한번 훑더니 말을 잇는다.
“맞아요. 저도 찾는 어둠이 있어서 가끔 산책 겸 나온답니다. 이 사원증이 있으면 이 지옥을 비교적 안전하게 다닐 수 있거든요.”
…지옥?
기이한 단어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사원증의 출처
“죄송하지만 제가 알려드릴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아, 혹시 필요하시다면 빌려드릴까요? 걸어보실래요?”
호 이사가 친절히 속삭인다.
“이걸 걸면 유쾌연구소의 직원들을 볼 수 있거든요. 솔음 님께는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
나는 몸을 돌려서 수색을 재개했다.
“솔음 님?”
‘이제 휘말릴 필요가 없지.’
사람의 몸이 아닌 채 청 이사에게 삶을 저당잡힌 것의 장점 하나를 찾아냈다.
이제는 저자의 말에 쩔쩔매며 대꾸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솔음 님?”
룰렛은 제복의 주머니에 넣고, 계속 사무실을 살핀다.
“왜 그걸 챙기시죠? 어둠인가… 아, 그런 것 같네요. 저도 의심되긴 했는데, 솔음 님은 바로 찾으셨나 봐요.”
호 이사가 여상스럽게 뒷말을 잇는다.
“역시 유쾌연구소에서 제작된 어둠은 서로를 알아보는 걸까요?”
나는 발을 멈췄다.
방금.
“솔음 님이 유쾌연구소의 마지막 꿈 배양기에서 탄생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
질문 : 알아낸 시기
“당연히 첫 만남부터죠.”
…!
“그런데 소원을 잘못 비셨나 보네요. 청 이사와 계약하신 것을 보면요.”
나는 호 이사를 돌아보았다.
놈은 그림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여기에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거예요. 백일몽 주식회사는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받아주는 곳이니까. 이용 가치만 있다면 말이죠…. 솔음 님처럼.”
궤변이었다.
그리고 그 호칭.
호칭 변경 요청
본명으로 부르지 마.
“하지만 솔음 님. 솔음 님은 그대로 솔음 님이시잖아요?”
일부러인가?
어둠 한복판에서 사람의 본명을 부르는 것에 신경이 곤두선다.
특히 그게 유쾌연구소라면 더욱.
그리고 발화자가 호 이사라면, 더더욱.
“그래도 많이 신경 쓰이신다면 제가 호칭을 바꿔볼게요. 노루 님이면 될까요?”
나는 상대를 쳐다보았다.
“침묵은 긍정으로 알아들을게요. 노루 님!”
질문 : 나에 대하여 아는 것
“노루 님께서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알죠. 유쾌연구소의 마지막 남은 연구원들이 사활을 걸고 당신을 부르고, 빼돌리려 할 만큼, 그리고….”
호 이사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재난관리국에서 아무 첩보 활동도 하지 않았으면서, 내가 요구한 세광특별시의 정보를 이미 알던 것처럼 알려줄 수 있을 만큼.”
…….
‘역시 의심스러웠나.’
정보를 넘기고 소원권을 탈 때는 나를 수상쩍게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 깨달았다.
‘내가 누군지는 모르는구나.’
<어둠탐사기록> 위키만이 있던, 괴담이 없는 세상에서 왔다는 것 말이다.
이 본관 지하의 유쾌연구소를 들쑤시다 보니 내가 봤던 실험일지를 저쪽도 본 건지는 몰라도, 더 자세한 건 알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는 건….
저쪽이 도리어 내게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대답해 줄 의향도, 필요도 없고.
나는 다시 수색을 재개했다.
“저기, 저희 서로 교환하는 건 어떨까요? 서로의 정체를 말이에요.”
필요 없다.
“같이 다녀도 될까요? 혼자 다니기 무섭기도 해서요….”
무섭다는 증언
▶백일몽의 근로자 자격 미달
“…괜찮아요. 그건 정규직 근로자만 해당되어서.”
호 이사가 다시 어수룩한 직원처럼 선량하게 웃는다.
“저는 계약직이라서, 괜찮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고.”
……영구적으로 삶이 저당 잡힌 것도 계약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노루 님?”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서 발을 옮겼다.
뒤에서 나를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부르는 소리도.
“노루 님?”
…….
“같이 가주세요. 노루 님.”
경고 1
사유 : 업무 방해
누적 경고 : 1 / 징계까지 2
“……제게 징계를 내리시겠다고요?”
경고 2
사유 : 업무 방해
누적 경고 : 2 / 징계까지 1
“혹시 누가 노루 님께 그래도 된다고 말했을까요? 청달래 이사? 곽제강 연구원? 경비반장 J3? 박민성….”
경고 3
사유 : 업무 방해
나는 뒤를 돌아 상대의 목을 잡았다.
“…!”
누적 경고 : 3 / 징계까지 0
집행
호 이사의 목에 걸린 연기가 얼굴을 다시 덮는다. 호 이사가 손을 뻗는….
‘안 되지.’
나는 그 손을 다른 손으로 우그러트리듯 잡았다.
…….
…….
“아, 닿았다.”
[이런, 조심하십시오, 친구!]
호 이사의 손 관절이 기괴하게 돌아간다. 그것은 내 보안복 슈트의 팔목 부분 지퍼를 잡아,
지이이이익.
끌어내린다.
“내가 만든 수의를 입고 있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요. 나와 맺은 언약이 여전한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요.”
긴 손가락의 관절이 지퍼가 벗겨지며 드러난 팔뚝의 부정형의 살점을 움켜쥐려 든다.
살점에서 수포가 올라온다.
“남자. 너는 손을…”
금제를 시도하려는 행위.
그러나 수포는 전보다 느릿하게 올라오며, 손은 기이하게 뒤틀린다.
아슬아슬하게.
‘감히.’
나는 연기로 놈을 완전히 덮었다. 그리고 금제를 읊기 전에 먼저 놈을 읽어낸다.
백일몽 주식회사에 소속된 호 이사의 기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