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46화
“정리하자면 이거네여.”
이성해 대리님이 또랑또랑한 눈으로 우리의 선택지를 알려준다.
1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계단 위 대합실에 있는 ‘임종의 숲’을 클리어해서, 귀환이 가능한지 확인해 본다!”
그리고 2번.
“선로를 따라서 열차를 찾아 다른 역으로 가본다! 열차 안에서 사람을 봤으니까!”
…그것참.
“둘 다 만만찮구만….”
동감입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는 베테랑들을 보면서 똑같이 막막함을 느꼈으나, 동시에 감사함도 느꼈다.
‘이 상황에서 괴담을 처음 겪는 사람이 있었으면 벌써 자기 혼자 기차 쫓아가겠다고 발광하는 누군가도 나왔겠지….’
트롤적 돌발행동도, 개싸움도 없다 보니 그런 면에서는 마음이 편하다.
“담배 있습니까?”
“아이고, 최근에 끊어가지고. 근데 있어도 안 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상황이.”
두 흡연자를 묵묵히 보던 청동 요원이 선언했다.
“차라리 식사를 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
그리하여 가벼운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대충 이런 건 좀 챙겨왔긴 하지.”
“오오. 준비성 좋으신데요?”
“공무원분들만 하겠습니까?”
워낙 비상식량이 필요할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직군이다 보니, 일행은 대부분 약간의 보존식품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나도 그랬다. 나는 룩키마트에 들어가면서 즉석식품을 잔뜩 문신에 쓸어 넣어 갔던 나를 떠올렸다….
“오, 뻥튀기.”
“냄새 안 나면서 보관하기 편해서 말이죠. 하하하! 청동이는 안 좋아하지만.”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당연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안 먹어도 괜찮은 몸’이었기에.
그래서 일방적으로 분배받았다.
‘…이럴 때는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안 먹어도 괜찮은 몸이, 좀 더….
“노루 님!”
“…!”
고개를 돌리자, 밝게 웃는 얼굴의 이성해 대리가 뭔가를 내밀었다.
소형 포장된 약과.
“이거 드세여.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에여!”
“그럼 돌고래 님이 드시는 편이….”
“반응을 보고 싶어여!”
“…….”
나는 결국 쓰게 웃으며 받아 들었다.
“예.”
그리고 입에 넣으며, 육 개월 만에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단맛, 고소한 맛.
식감.
‘아.’
진짜.
이런 맛이었지.
“맛있으신가여?”
“아주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비스킷과 초콜릿바도 내게 분배된다.
그리고 유쾌한 너스레도.
“포도야. 나가면 얼큰한 것도 먹자. 우리 곱창전골집 다시 가야지?”
하지만,
이곳에서 나가면 나는….
…….
“예. 감사합니다.”
내 머리는 지금 그쪽으로 쓰면 안 된다.
‘탈출에만 최선을 다하자.’
먹은 값을 하자.
놀랍게도, 칼로리가 들어가니 머리가 좀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간 내가 극도의 긴장과 허함 속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머리가 완전히 맑아져서 느끼지 못했을 뿐,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짜내고 있던 건가.’
그리고 당이 들어간 머리는 빠르게 내가 더 체크할 거리를 떠올리게 해준다.
문신.
제대로 있나?
‘아까 대놓고 떠올렸는데도 생각을 못 했네.’
특히 산장지기의 문신이 기능한다면, 여차할 때 리조트로 모조리 사람을 빼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짝 소매와 와이셔츠 옷깃 안을 들여다보며 문신들을 점검했다.
‘…있다.’
일단 다 제자리에 있긴 했다.
그리고 일단 급한 산장지기의 문신 기능을 확인하면….
…….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벤토리라고 부를 만한 기능은 좀 살아 있지만 리조트와 연결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일단 이곳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는 문신을 통해 리조트로 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흠.’
가장 손쉬울 수도 있었던 탈출 방법이 사라진 것에 미약한 아쉬움을 느끼며, 나는 손을 뗐다.
하지만.
[오, 다른 방법이 남았습니까?]
응.
‘이것도… 솔직히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있는 건 확인했으니. 시도해 봐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혀 밑을 한 번 더듬어 본 후, 아직 식사 중인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돌고래 님이 제시하신 1번 안 말입니다.”
“아아. 임종의 숲을 클리어하기?”
“예.”
그거.
“적절한 준비물만 있다면, 매뉴얼이 없어도 경험자들이 있으니 시도해 볼 방법이 몇 가지는 있지 않을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왜, 우리 포도 머리에 뭐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어요?”
나는 약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물이 될 만한 아이템을 얻는 방법으로, 저한테 시도해 볼 만한 게 있습니다.”
“오.”
“진짜여?”
“예. 다만… 이 시도에도 준비가 필요한데.”
“뭔데?”
나는 시선을 피했다.
“돈… 될 만한 것 가지신 분 계십니까?”
“…….”
“현금도 받습니다. 한… 오천쯤.”
“…….”
“…….”
“이거 혹시 사기….”
“어허.”
쪽팔려서 울 뻔했다.
* * *
다행히 그간 내 행적(스파이, 잠적, 신분 바꿔치기)에도 불구하고 일행들은 나를 제법 믿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이것을 시도하게 된다. 바로….
‘우주 쇼핑몰.’
혀 밑에 붙은 VIP 세포로, 퍼스널 쇼핑하기.
“…….”
이미 한 번 겪어본 감각.
세포를 인지하고 눌렀던 것까지는 기억하나 그 이후의 일이 몽롱하다. 마치 깜박 졸았던 것처럼….
“고객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일행이 사라진 지하철 승강장 옆, 정장을 차려입은 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도마뱀 머리를 내게로 돌리고 있다.
“퍼스널 쇼핑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됐다.
“예.”
‘외부라서 안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신체에 이식하는 것이다 보니, 혹시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시도해 보길 잘했다.
나는 달성감으로 작게 주먹을 쥐었다 피며, 도마뱀과 눈을 마주했다.
음.
‘이번에는 흑갈색이네.’
뚱하게 느껴지는 세로 동공 아래로 입이 열린다.
“원활한 쇼핑을 위해 테이블이 있는 구조에서 진행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
환경상 그렇게 됐습니다.
“저, 근데 어떻게 연결된 겁니까? 여기서는 외부의 힘을 빌어오는 아이템이나 장비가 다 통하지 않던데.”
“외부의 비현실적 영향력이 차단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우주 쇼핑몰은 비현실적, 공상적 공간이 아닌 실존하는 우리의 상점이기 때문입니다.”
음. 그러니까.
‘외계인은… 현실적 존재로 분류된다고…?’
그러고 보니, 이자헌 과장님은 꿈결을 문제없이 추출하고 있기도 했다. 사람으로 판정받는다는 뜻이다.
‘…으음.’
극도로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분간할 수 없다… 같은 건가?
흥미가 반짝 고개를 치켜들었으나 그걸 탐구할 상황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 감사합니다.”
“예. 고객님.”
그리고 말이다.
여기서부터 말을 꺼내기 좀 어려워진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주 쇼핑몰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벼락 맞듯이 기억난 게 있기 때문이다.
빚!!
“제가 우주 쇼핑몰에 맡긴 아이템이 있었습니다.”
무명찬란교의 신성법 경전 조각.
흉내장이 경전이 내게 끼치는 악영향 때문에, 지난번에 나는 우주 쇼핑몰에 보관료를 내고 그것의 보관을 맡겼었다.
…한 달에 거의 구백만 원에.
“보관료가… 매달 발생했겠지요?”
“예.”
“밀리면, 이자도 내야 하는 겁니까?”
“예.”
하.
하…….
‘원금만 오천만 원이 훌쩍 넘었다….’
외계 도마뱀들이 백일몽 격리실로 쳐들어오지 않은 게 놀라울 뿐이다.
과연 외계 도마뱀들에게 법정 금리라는 제도가 있을 것인가.
‘제발 1억만 넘지 말았어라.’
나는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도마뱀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말했다.
필요하면 무릎도 꿇을 수 있을 만큼 간절한 마음!
“혹시, 조금만 더 연체해도 괜찮겠습니까? 이곳에서 나가서 돈을 찾으려면 일단 아이템이 필요해서….”
“고객님의 연체기록은 없습니다.”
“…?!”
자, 잠깐만.
“어떻게… 아니, 누가 대신 내주기라도 한 겁니까?”
“예.”
뭐?!
“그게 누굽니까?”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중 하나입니다.”
설마.
“……좀 더 정확히 지칭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과장 직급으로 근무 중인 이자헌이라는 개체를 의미합니다.”
“…….”
“해당 개체가 당신의 보관료를 대납 중입니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도마뱀을 보았다.
‘…왜?’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
‘잠깐만.’
……내가 넘기고 간 장비와 아이템에 가격을 측정해서… 그만큼 대신 납부해 준 건가.
정말로?
‘…과장님!’
믿음직한 그 파충류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혹시 이자헌 과장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해당 개체는 현재 기숙학교에 있습니다.”
“…….”
갑자기?
‘갑자기 무슨 기숙학교야.’
도마뱀 과장님은 최소한 30대 아닌가? 내게 외양은 도마뱀으로 보이지만, 과장 직급이면 20대는 아닐 텐데. 웬…….
…….
…!!
-아! 이자헌 과장님이라면 그젠가 좀 장기 어둠 탐사에 들어가셨다고 했던 것 같아여. 무슨… 기숙학교 괴담이었던가?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답변.
이자헌 과장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
그게 벌써 언제였지?
‘내가 별관 근무할 때잖아.’
그때 진작에 나왔어야 했던 사람이, 왜 아직도 어둠에 있단 말인가.
“위험한 상태입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의입니까?”
“우리의 의사는 아닙니다.”
“…….”
느낌이 안 좋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외계인들은 ‘우리’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인다. 그렇다면, 혹시 이자헌 과장이 위험에 처한다고 해도, 고작 정신의 일부분에 불과한 한 개체를 그렇게 존중하고 구하려 해줄까.
‘나가는 대로 이자헌 과장님 행방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좀 초조해졌다.
빨리 이 세광특별시에서 귀환하는 법을 찾아야 했다.
어쨌든 ‘우물’ 같은 통로가 있었으니, 괴담을 클리어하면 진입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발상은 제법 시험해 볼만 했다.
‘내 상태는… 어떻게든, 수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방울도 통했으니 말이다.
당장은 그렇게 믿고.
‘클리어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하자.’
“그럼 구매하고 싶은 물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일단 0순위.
상황과 관계없이 쓸 수 있는 것.
“혹시 ‘우리가 도움!’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습니까?”
외계 도마뱀이 직접 도와주는 옵션.
무려 브라운의 심야토크쇼에서 날 탈출시켜 준 아이템이다.
그러나.
“구매의 이유가 현재 위치 좌표에서 안전한 장소로 탈출하시려는 목적입니까?”
“그렇습니다.”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기록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양심적인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확실히 한번 검증된 물건을 파는 업체다웠다. 가격은 터무니없는 고가지만.
그런데 말이다.
‘기록이 있다는 건… 이 세광특별시에서 ‘우리가 도움!’을 사용해 빠져나가려다가 실패한 자가 있다는 뜻인데.’
스산한 예감.
아무래도, 세광특별시 바깥에서는 정말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젠장.’
나는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영험한 기운이 담긴 물건이 필요합니다.”
흑갈색 도마뱀이 나를 본다.
“외부에서 끌어오지 않으며, 그 자체로 신령하고 좋은 기운을 품고 있었으면 합니다. 현재 제 위치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휴대가 가능할 만한 모양새에, 한 사람이 가지고 이동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적당했으면 합니다.”
과연.
“그런 게 있습니까?”
“예.”
…!
“퍼스널 쇼퍼의 권한으로, 적합한 물품을 추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몇 개의 후보군에서, 우리 일행이 지금 시도하려는 일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을 마침내 골라냈다.
‘됐어.’
희망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가격!
“구천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원입니다.”
“…….”
‘그냥 9500만 원이라고 하십쇼….’
사실상 1억이었다.
-5만 원권이 한 다발 있긴 한데. 어차피 프로젝트 활동금이라 뭐 내 돈도 아니다.
-카드도 돼여?
-아, 이거 순금에 보석 맞지? 바리데기 공방 장신구인데….
-요원님, 그거 대여품 아닙니까!
그 과정을 다 겪어서 모은 게 대충 매입가 육천이 좀 넘었다.
이것도 일반 직장인이었으면 못 끌어모았을 가격이었고 말이다.
‘후우.’
“계좌번호 알려드리면 거기서 빼가시는 건 안 됩니까?”
“고객님 본인의 계좌입니까?”
“…….”
아뇨.
이성해 대리님 계좌였습니다….
‘와, 이걸 어쩌냐.’
어쩔 수 없다. 다시 한번 할부 같은 염치 없는 소리를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해보려던 찰나였다.
[이런, 내 친구가 곤경에 빠진 모양입니다.]
‘…!’
승강장의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 속.
어느 틈에, 조명으로 장갑 낀 손 하나가 나타난다.
그 손은 승강장의 어둠 어딘가에서 클래식한 생김새의 고동빛 의자 하나를 슬쩍 끌어내더니, 그곳에 손의 주인이 맵시 좋게 걸터앉았다.
근사한 정장을 갖춰 입은 실루엣.
머리는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나는 그곳에 무엇이 달려 있는지 알고 있다….
내 일부로 계속 따라붙고 있는 목소리.
“…브라운?”
[쇼핑에 쓸 금전이 부족한 가요, 친구?]
[그렇다면 파격적인 제안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이 브라운에게 가불받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