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58화
“포도야?”
…….
“왜 대답이 없어. 네 친구 브라운이 진행하는 토크쇼 너무 궁금한데.”
이 몸으로 날 리가 없는 식은땀으로 샤워하는 것 같다.
[오. 이번 생방송을 봤나 보군요. 이 기회에 시청자와 만남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내 솜 든 몸을 잡고 있는 건 다소 과한 접촉 같군요. 팬의 열정은 감당해야 할 숙명이지만, 이만 내려달라고 전해주겠습니까, 친구?]
역시 식은땀이 날 것 같다.
“아, 혹시 이런 식으로 하시는 건가? 반가워요, 어린이 여러분! 저는 브라운이에요!”
[맙소사.]
“요원님.”
브라운의 성대모사를 하는 최 요원을 말린 청동 요원이 토끼 인형을 빼앗듯 들었다.
그러나 마치 폭탄을 잡고 있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놀림이었으며, 이내 대청마루 위에 둔다.
[흠. 이건 나쁘지 않군요!]
아니, 이제 보니 마루 위에 비단 손수건을 깔아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푸른 조약돌로 원형의 방위진 같은 것을 만들어, 브라운을 딱 중앙에 두는 것이다.
누가 봐도 삿된 걸 임시방편으로 달래거나 막는 류의 처사 같다….
그리고 나를 본다.
“…….”
…….
거의 사람 뚫어버릴 것 같은 눈빛… 아니,
‘어떻게 알았지?’
현무 1팀 요원들은 브라운의 심야토크쇼는 존재도 모를 텐데.
그리고 안다고 하더라도 내 토끼 인형 브라운을 연관 짓는 건 너무 논리 비약 아닌가…?
심지어 이번 생방송도 대외적으로는 이자헌 과장님이 진행했는데!
‘찔러 보기인가?’
일단 적당히 얼버무리는 방향으로….
“포도야 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젠장.
“…일단 옮길까.”
그리고 현무 1팀 요원들은 말없이 일어나서 무언가 소속을 밟더니, 나와 브라운을 외부로 반출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재난관리국 본관에서 브라운을 떨어트려 두려는 의도도 은은하게 감지된다.
그 과정에서 대화는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아니, 내가 브라운을 집어 들려고 할 때 딱 한 문장 듣긴 했다.
“손 떼십시오.”
예….
그나마 위안이 된 점은, 요원들이 브라운을 공격하거나 처리하려고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매우 조심스럽고 거의 정중하다시피 인형을 들고 옮겼다. 덕분에 브라운에 의한 소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귀빈 모시기보다는 무슨 절에 봉인된 저주 인형 같은 것을 조심스럽게 옮기는 것 같긴 했는데….
‘오히려 상황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뜻 같단 말이지.’
침이 없지만 침을 삼키고 싶은 기분으로, 나는 이송되었다.
이번 외출지는 서울 끝자락, 재개발 소문이 오가는 낙후되고 인적이 드문 골목 부근에 위치했다.
재난관리국에서 사용하는 출동용 휴식처 중 하나로, 낡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컨테이너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 대참사의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노루야.”
그 컨테이너 안, 낡은 책상 맞은편에 은하제 대리님이 앉아 계셨으니까!
벼락처럼 깨닫는다.
‘정보가 양방향으로 오갔구나!’
화요퀴즈쇼와 심야토크쇼를 아는 은하제 대리님과, 착한 친구 인형의 이름이 브라운인 걸 아는 요원들이 만나며 이런 대참사가 벌어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피할 곳이 없네.’
조졌다.
“앉아라.”
…….
나는 조용히 준비된 책상에 앉았다.
은하제 대리가 손수건 위의 토끼 인형을 심란한 눈으로 본다.
“그 브라운이… 이 브라운 맞냐?”
…….
예…….
긍정
대리님이 눈으로 욕을 하고 계신다.
심야토크쇼에서 완전 오염 상태로 근무하는 나를 보셨는데, 그 토크쇼 사회자 이름을 붙인 토끼 인형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상당히 두렵다….
그리고 이자헌 과장님 구출하겠다고 가더니 그 심야토크쇼와 똑 닮은 결혼 예능이 방영되는 것을 봤다면.
‘……후우.’
[저런. 노루 씨,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요.]
[차라리 이 기회에 당신의 착한 친구가 얼마나 유익하며 매력적인 존재인지 소개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잠깐.
잠깐만…!
요청 : 종이와 펜
사유 : 상황에 대한 설명
그래. 백사헌과 종이배로 소통하면서 깨달았지 않은가. 필담이면 나도 사람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태를 타개할 아주 정확한 설명 문구가 떠올랐다.
“…거, 여기 종이 있습니까?”
“후우.”
나는 청동 요원이 건네준 종이에 은하제 대리가 내민 펜을 들고 다급히 적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브라운은…!
브라운은 범장군님 같은 존재입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제가 도움을 얻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
이 인형도 사실 브라운에게 받은 게 아니라, 일종의 신령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아이템으로 제가 구한 겁니다.
“뭐?”
계속 들어보십쇼!
기억하십니까? 제가 한 달간 실종 상태로 백일몽에서 사망으로 인한 퇴사 처리됐다고 말씀드렸던 것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유리 감옥에서 그건 진실이라고 증언했던 것도 기억나십니까…!
나는 열심히 청동 요원을 쳐다보았다. 상대가 움찔거린다.
“…기억은 납니다만.”
저는 사실 그 한 달간 단순히 실종된 게 아니라, 심야토크쇼라는 초자연 현상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면서 토크쇼 사회자인 브라운을 설득한 겁니다.
그 결과, 브라운은 제 퇴사 요청을 받아주었고, 이후로는 인형에 깃들어 제가 초자연 재난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마치.
마치 요원이 도깨비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
그래. 재난관리국 공략법이다.
‘어차피 요원들도 잘 어르고 달랠 수 있다면 초자연 존재에게 힘 빌리잖습니까…!’
그중에는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도 많았다. 당장 최 요원이 불러왔던 범장군만 해도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백호대살의 형상화 같은 존재다.
‘브라운도 다르지 않다!’
[호오.]
비록 당사자는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 비유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렇다는데요?”
“저거 다 구랍니다. 저 자식 토크쇼에서 죽을 뻔했어요.”
아니!
브라운 덕분에 죽을 위기를 넘긴 적도 많습니다.
대리님, 그 미친 전시회 괴담 기억나십니까? 거기서도 브라운이 확성기로 한몫해서 우리 다 같이 잘 나온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테마파크에서 제가 살아나온 것도 브라운 덕인데!
“근데 잘못 써서 결국 죽을 뻔했잖냐.”
그건….
죽는 게 아니라 오염
“진심이냐?”
크읍.
‘그래. 내가 생각해도 얼토당토않게 들린다….’
내 오염된 상태를 본 은하제 대리님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물론 초자연 존재라서 사람과는 감성이 다른 건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곤란한 경우도 생기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제 현재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
나는 방독면 너머로 흐르는 연기를 느꼈다.
머리 위에 무성한 뿔도, 옷 아래의 부정형 살점 덩어리들도.
제가 격리될 때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긴 했습니다.
…좀 신기한 일이다.
분명 설득하기 위해 그럴싸한 궤변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적고 보니 내 스스로도 이게 어느 정도 진심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
위험하지 않다고 장담하거나, 제가 완전히 브라운을 신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전보다 나은 상태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건 대리님과 주임님, 과장님이 고등급 어둠까지 저를 찾아와주신 덕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이 인형에 든 브라운이 제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펜을 놓았다.
복잡미묘한, 가라앉은 분위기가 컨테이너 박스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노루 씨.]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친구로서 말입니다.]
…….
나는 수긍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검은 연기를 뽑아내어 책상 위를 휘감았다.
초자연적 존재의 일부인 연기가 만든 공간.
괴담 속에서 토끼 인형이 몸을 일으킨다.
“…!!”
토끼 인형에 깃든 착한 친구는 재난관리국의 요원들과 은하제 대리를 하나하나 돌아본 후, 정중히 몸을 숙여 인사했다.
약간 과장된 신사의 인사.
자신을 소개하는 듯이.
청중에게 감사하듯, 없는 모자를 내려서 허리 부근에 가져다 대는 정중한 동작이 조그마한 봉제 인형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손을 흔들더니, 다시 얌전히 손수건 위에 앉았다.
“…….”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포도야.”
최 요원이 입을 열었다.
“친구 관계로 토크쇼 사회자를 ‘모시고’ 힘을 빌리고 있다는 거지?”
……!
긍정
“어느 정도로 강력한 존재인데?”
“손가락 튕기기 한 번에 사람이 잿더미로 변할 정도.”
…!
“…오케이.”
은하제 대리님의 첨언에, 최 요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긍정적 의미가 아니다.
‘저건….’
강대한 초자연 재난을 상대할 때의 긴장감 어린 미소다.
“모시는데 다른 조건도 있나? 아까 보니까 모자 잡는 동작을 하던데, 멋진 중절모 하나 해드리는 건 어때.”
[호오.]
[노루 씨. 이 자는 제법 경우가 있군요. 물론 저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자면 선물의 질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지만 말입니다!]
브라운이 기뻐함
“그래? 오케이.”
나는 최 요원을 보았다.
최 요원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일상적인 얼굴을 유지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랑 반년간 지낼 때는 어떠셨대? 현무 1팀 대기실에 뒀었는데.”
…….
나는 브라운의 묘사를 옮겼다.
나쁘지 않음 :
▶ 방석 위에 두고 가끔 단장을 도와준 것
▶ 포도 요원의 추적 근황을 이야기 해준 것
“오.”
그다지 유쾌하진 않음 :
▶ 음식을 먹이는 흉내를 낸 것
▶ 핑크로 지칭된 것
“앗.”
그리고….
개선점 :
방석 재질이 지나치게 싸구려임
“…….”
“…….”
“캐시미어로 바꿔주면 된대?”
용납 가능
“선호가 아주 확실하시네….”
아무래도 그런 편이긴 하다….
어쨌든 인형 방석 컴플레인 덕에, 완전히 긴장 상태로 접어들려던 분위기는 조금 풀렸다.
‘브라운이 착한 친구의 형태로는 반년간 소동을 일으키지 않아서인가.’
그건 확실히 괜찮은 요소였다.
하지만.
“그리고 말이야.”
최 요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살짝 가라앉는다.
“…토크쇼에서 인명 피해 발생하지?”
…….
예.
“거기 사회자분은 범장군님처럼 비건 생활할 줄 아는 멋쟁이는 아니라는 거고.”
나는 어렵게 응답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방송과 관련된 거라면, 쉽게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설득은 해봤다는 거고. 오케이.”
그리고 요원들은 가만히 앉아서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장비로 소통하는 건가?’
잠시 후.
다시 최 요원이 입을 연다.
“포도야. 우리도 네 ‘멋진 친구 브라운’을 믿는 건 아니야. 알지?”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믿음직한 모습 보여줬으면 좋겠네. 친구답게 말이야.”
…!!
“계속 지켜볼 거거든. 잘 들으셨지요, 브라운 씨?”
깨달았다.
이건 절대 ‘그래, 브라운이 친구라니까 같이 있어’가 아니다.
‘그냥 떨어뜨려 놓으면 X될 수도 있다고 본 거다….’
가만히 둘 때는 ‘기본적으로’ 호의적인데, 자칫하다가는 긁어부스럼으로 대참사로 번질까 봐 일단 두는 것에 가까웠다.
그 증거로, 청동 요원은 거의 나한테 칼을 꽂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이런,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고 굳게 믿는 철 지난 게스트를 상대하는 것 같군요.]
[물론 나처럼 믿음직한 친구는 어디서도 보기 힘들 테니, 쉽게 믿기 어려운 건 어쩔 수 없겠지요!]
“브라운 씨가 뭐라셔?”
…후우.
긍정적 대답
“오케이~ …물론 우리 포도가 인형 답변을 막 지어내고 있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무, 물론입니다.
“그래. 또 다른 말씀은 안 했고?”
…….
차라리 이게 낫나.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고스란히 옮겨 주었다.
브라운의 정정 요청 :
자신이 진행하는 토크쇼는 고품격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며, 어린이보다 좀 더 넓고 대중적인 시청자풀을 추구한다는 전언.
“…음. 그렇구나.”
정정 요청 2 :
비건 생활과 멋쟁이의 연관성은 없으며, 브라운은 너그럽고 유쾌한 성정의 소유자라는 전언.
“아, 2번도 있네?”
자신이 대기실에서 들은 청동 요원의 고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으며, 차후에도 당사자의 허락이 없이는 방송 소재로 쓰지 않겠다는 맹세로 확인 가능한사항.
“…!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정정 요청 3 :
우악스럽고 늙은 동물원 호랑이와 교양, 화술, 매력을 갖춘 전설적인 사회자를 같은 선상에 두고 취급하려는 노루 씨의 발언에 호도되지 말 것.
(해당 묘사는 브라운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130666의 감상과 일치하지 않음.)
“아니 우리 범장군님 그 정도는,”
정정 요청 4…
“그냥 알았다고 전해줘라.”
좋은 판단이십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브라운의 말을 전달하며 컨테이너 박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브라운의 신원은 유혈사태 없이 다시 내게로 인도되었고.
“…그래. 일단은 챙겨가고.”
전보다는 분위기가 좀 괜찮은 듯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지만.
“아, 중절모는 아니지만, 우리가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말이야. 브라운 씨한테.”
그리고 청동 요원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브라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얇은 비단 끈으로, 리본 매듭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장식이었다.
본래는 사람의 약지 등에 묶을 수 있을 것 같은 형태.
“요새 애들은 키링 꾸미기? 그런 것도 한다면서. 토크쇼 사회자시면 트렌드에 또 민감하실 것 같아서 말이야~”
장담한다. 저거 상태 추적 아이템이다….
[오, 그럼 기념으로 챙겨가도록 하지요!]
다행히 브라운은 흔쾌히 승낙했고, 요원들은 내가 브라운의 머리 부근의 키링 부자재를 다는 곳에 해당 장식을 장착하는 것을 완전히 확인한 후에야 이동을 시작했다.
“가볼까.”
그렇게 분홍색 토끼 인형은 재난관리국에 ‘130666의 친구 괴담’으로서 유쾌 테마파크산 인형에 깃든 무언가로 등록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브라운 정체 들킴’ 소동은, 우선 일단락된 것이다.
‘후우….’
…참고로 이 모든 과정에서 은하제 대리님은 ‘알았다’라는 반응을 했을 뿐, 침묵과 함께 브라운 인형을 계속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컨테이너를 나갈 때에는 평소와 같은 태도로 돌아와 계시긴 했다.
딱 한 마디를 덧붙이시면서.
-믿지는 마라
…….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광특별시 탐사대는 모두 착한 친구 브라운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게 차후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또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
* * *
그리고 얼마 후.
“솔음 씨.”
‘과장님!’
마침내 이자헌 과장이 찾아오며, 드디어 세광특별시에 진입할 준비가 끝났다.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렇군요. 해당 탐사에 추천 인선이 있습니다.”
“오~ 누굽니까?”
“백사헌 주임입니다.”
방독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